좋은말, 좋은글

푸른 희망 품은 청양띠의 해에 다시 만나요

해암도 2014. 12. 27. 06:12

뚜벅뚜벅 한 해가 갑니다 … 여러분은 어떤 발자국을 남겼나요



말띠 해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지난 1년이 마치 바람을 가르며 제멋대로 내닫는 말갈기 같았던 건 말이다.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던 2014년이 나흘 남았다.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이제 종착점에 가까이 왔다. 저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희망을 만날 수 있을까.

 에세이 작가 박재규씨에게 2014년 마지막 토요일에 어울릴 만한 글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광고회사 덴츠 코리아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박씨는 다음의 모바일 콘텐트 서비스 ‘스토리볼’에서 감성 사진 에세이 ‘내 삶의 힌트’로 누적 조회 수 4000만을 기록한 인기 작가다.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날들을 보낼 때, 더 나은 사랑의 날들이 시작된다.’

 그가 보내온 ‘송년’이라는 작품에는 이런 글귀와 함께 뚜벅뚜벅 걸어가는 말 사진이 있었다. 걸어가는 말 뒤로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말이 아닌 그 발자국이 주인공이었다.

 “우리는 대부분 앞만 보고 살죠. 하지만 뒤도 보고 옆도 보고, 지나간 시간의 슬픈 일도 기쁜 일도 간직하고 기억할 때 앞으로의 날들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말 발자국을 빨간 하트 모양으로 한 이유는 사랑을 말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올해는 유난히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힘들 때일수록 사람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손길 손길, 걸음 걸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역시 앞만 보며 자신의 이기심을 추구하다 주위 사람을 함부로 대했던 때문이 아닐까요.”

 송년이라는 제목으로 보내온 또 다른 작품은 노란색 액자를 배경으로 한 사진 에세이였다. ‘아무 말 없이 떠날 리 없으니/ 찾으라/ 간직하라/ 그가 남긴/ 그 웃음/ 그 몸짓/ 그 사랑’이라는 글귀가 써 있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절대 그냥 떠날 리는 없는 거니까요. 우리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남긴 메시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박씨는 지난해 말 다음 스토리볼에 ‘스크래치’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주 2회 연재물인 ‘힌트’를 시작했다. 광고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 살면서 만났던 사람이나 사물을 통해 느낀 것들을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

 ‘작은 긁힘조차 두려워 피하는 자는/ 아름다운 음악도/ 감동적인 인생도/ 들려줄 수 없다.’(‘스크래치’ 중에서)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억울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고, 화나는 일도 있는 법이죠. 설탕만으로는 요리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삶에서 달달한 맛만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에게도 2014년은 힘든 한 해였다. 그만큼 더 의미가 있었던 해이기도 했다. 그가 생각하는 올해의 메시지는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라’였다.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이의 마음은 마치 힘센 자석 같아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올해 드라마 ‘미생’이나 영화 ‘명량’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같은 작품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진심의 자력’이 센 콘텐트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지만 울림 있는 그의 글은 내년에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런 글들을 통해 사람들은 세기의 석학이나 강단의 철학자들이 줄 수 없는 위로를 얻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이에 대해 “과거 지식인들이 두꺼운 책과 교훈 섞인 가르침을 통해 전하던 이야기를 이제는 누구나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쉽고 친근하게 나눌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모바일 글쓰기는 인간의 뇌를 움직이는 이성적인 글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인 글이다. 짧은 글과 임팩트 있는 이미지가 결합된 ‘바라볼 수 있는’ 글쓰기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카피라이터 정철의 책 『한 글자』.

 꿈, 별, 꽃, 물, 집 등 한 글자로 된 단어 262개를 골라 그 글자를 주제로 풀어낸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책이다.

 가령 ‘재지 마라. 너도 기껏 30㎝인 것을’이라는 글의 제목은 ‘자’. ‘흔들리는 건 당신의 눈이다. 활시위를 당기는 손이다. 명중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마음이다. 과녁은 늘 그 자리에 있다’라는 글의 제목은 ‘늘’이다. 저자는 책에서 “이 책이 당신을 많이 위로하고 응원하고 미소 짓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라는 한 글자의 바람입니다”라고 썼다.

 네이버의 모바일 콘텐트 서비스인 ‘포스트’에서 매일 아침 ‘아침 ! 명화 배달’을 연재하는 이소영(31)씨는 일상생활 중에 느낀 소소한 경험과 감상들을 그림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연재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구독자 1만5000명을 확보했다. 그 내용을 엮어 최근 『출근길 명화 한 점』이라는 제목의 책도 냈다.

 좌표가 사라지고 이정표가 희미해져 가는 시대. 경제는 어렵고 삶은 팍팍하다. 길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건 사람의 따뜻함뿐이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서로를 거울 삼아 함께 길을 찾아야죠.” 한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흘 후 2015년은 양띠 해다. 그중에서도 청양(靑羊)띠의 해라고 한다. 생명을 상징하는 푸른색에, 순하지만 진취적이며 적극적인 양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2015년 신년사에서 “국민 여러분의 삶이 청양(靑羊)처럼 늘 조화롭고 행복하길 기원한다고”고 발원했다.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은 “우리 주변의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주고, 그들과 함께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우리 사회가 이념의 차이가 아니라 사람이 보이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2014년 마지막 주말이다. 숨차게 달려온 한 해를 정리하며 소중한 사람들과 따뜻한 사랑을 나눠야 할 시간이다.

박혜민 기자 acirfa@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4.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