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19세 메이저 여왕 김효주…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비결]

해암도 2014. 9. 16. 04:56


흐르는 물같은 스윙으로 '물의 왕국(에비앙)' 정복하다


  • -최대 장점은 일관성
    일정한 템포·리듬 항상 유지… 멀리 보낼땐 더 가볍게 쥐고 쳐

    -가장 중요한 건 한 번에 스윙하기
    자신만의 리듬 갖고 자신있게

    "제가 리듬으로 스윙하는 건 맞지만, 늘 100%의 힘으로 스윙하려고 한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호호."

    힘 하나 안 들이고 치는 것처럼 부드러운 스윙으로 15일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효주는 특유의 명랑한 말투로 자신이 스윙할 때만큼은 리듬을 탈 줄 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19세의 그린 반란'을 이뤄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스윙은 그녀의 꾸밈없고 천진한 성격과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박인비가 "LPGA투어에서도 최정상급"이라고 평가하고, 그녀의 골프백을 메 본 캐디들이 "아름다운 스윙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김효주의 스윙은 보기에만 좋은 게 아니다. 올 시즌 상금으로만 14억원을 넘게 벌어들였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8억 1000만원, 미LPGA 투어에선 3개 대회에서 6억4000만원을 벌었다. 김효주 본인과 전문가들에게 조용하지만 강한 '김효주 리듬 스윙'의 비결을 들어보았다.

    
	김효주의 경기 동영상을 연속 스윙 동작으로 캡처해 구성한 것이다.
    김효주의 스윙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 균형 잡힌 하체를 바탕으로 상체 회전이 피니시까지 막힘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김효주는 백스윙 톱에 이르면 왼발을 땅에 딛는다는 느낌을 주면서 가볍게 다운스윙을 시작한다고 했다. 임팩트와 팔로 스루에 이르기까지 머리 위치를 어드레스 자세 때와 동일하게 유지하려고 어릴 때부터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한다. 몸통 왼쪽 부분과 왼쪽 다리가‘벽’이라는 생각을 갖고 클럽 헤드가 피니시까지 한 번에 지나가도록 하는 느낌으로 휘두른다는 설명이다. 위 사진은 김효주의 경기 동영상을 연속 스윙 동작으로 캡처해 구성한 것이다. /마니아리포트 제공
    박인비를 비롯해 그녀와 동반 플레이를 한 골퍼들이 꼽는 김효주 스윙의 최대 장점은 일관성(consistency)이다. 위기 상황에서도 늘 일정한 템포와 리듬으로 치기 때문에 정확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김효주는 "공을 멀리 보내야겠다고 생각할 때 오히려 그립을 가볍게 쥐고 더 부드러운 스윙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래야 공을 맞히고 나가는 클럽 헤드의 스피드가 빨라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올 시즌 초 김효주가 사용하는 클럽 브랜드인 요넥스에서 측정한 자료에 따르면 김효주의 드라이버 헤드 스피드는 시속 155㎞다. 여자 프로 중에서는 빠른 편이다. 특히 김효주는 공을 클럽의 스위트 스폿에 맞히는 능력이 뛰어나 볼에 에너지를 전달하는 능력이 남녀 투어 프로 선수들을 통틀어 최정상급이라고 한다. 김효주는 올 시즌 KLPGA 투어에서 드라이브샷 평균 거리 255.31야드(28위)로 중상위권에 속한다. 페어웨이 적중률(82.97%)과 그린 적중률(78.57%)은 늘 상위권을 유지한다.

    김효주를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9년째 지도하고 있는 한연희 전 국가대표 감독은 "몸통 회전이 크고 하체를 잘 활용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보다 실제 헤드 스피드가 빠르게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주의 스윙은 프로 중에서는 비교적 느린 편이라고 한다. 임경빈 J골프 해설위원은 "LPGA 투어에서 스윙 템포가 가장 빠른 선수가 미국의 브리타니 린시컴이고 가장 느린 선수가 일본의 미야자토 아이라면 김효주는 평균보다 느리게 치는 편"이라고 했다. 특히 백스윙 톱에서 다운스윙으로 전환하는 순간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여유가 있기 때문에 공을 정확하게 맞히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설명이다. 임 위원은 "스윙의 일관성이라는 점에서는 약간씩 당겨치는 샷이 나오는 리디아 고보다 김효주가 앞선다"고 평가했다.

    김효주는 "공은 때리는 게 아니라 스윙 궤도를 따라 클럽이 움직이다 공이 맞아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주말 골퍼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이야기다. 실제 프로들도 위기 상황에서는 다운스윙이 빨라져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드라이버만 잡으면 긴장해 큰 실수를 하곤 한다.

    
	에비앙 챔피언십 4라운드 18번홀 상황.

    김효주가 훈련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 번에 스윙하기'이다. 공을 치기 위해 다운스윙을 시작할 때 왼쪽 발로 땅을 딛는다는 느낌을 가진 뒤 피니시까지 한 번에 휘둘러 주는 것이다. 그래야 클럽 페이스가 정확하게 공을 맞힐 확률이 높다고 한다.

    강혜원 프로는 "김효주의 스윙이 좋은 것은 '100% 긍정 마인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멘털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효주는 에비앙 챔피언십 4라운드 17번홀 두 번째 샷에서 뒤땅을 치는 큰 실수를 하고도 파 세이브를 했다. 18번홀에서는 드라이버샷부터 하이브리드샷, 퍼트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모습을 보이며 재역전을 이뤘다.

    김효주는 "골프는 어차피 실수를 피할 수 없는 운동인데 잘못한 것만 기억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늘 잘 쳤을 때의 느낌으로 자신 있게 스윙하려고 한다"고 했다. "아마추어 골퍼들도 남 스윙을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리듬을 갖고 부드럽게 스윙하다 보면 점점 더 자신감이 생기고 거리도 멀리 나간다"고 했다. 김효주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천진난만한 것 같으면서도 스윙의 철리(哲理)가 몸속 깊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민학수 기자   조선   입력 : 2014.09.16


    김효주 '멘털노트' 힘 … "생각 없이 치는 게 내 골프"

    [중앙일보] 입력 2014.09.16 02:46 / 수정 2014.09.16 02:50

    경기 집중, 18번홀 역전한지 몰라
    "난 잃을 게 없어 … 즐기고 배우자"
    3년 동안 멘털노트 쓰며 내공 키워
    5년간 LPGA 투어 풀시드 획득


    상금 5억원에 롤렉스 시계도 받아 김효주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LPGA 대회 41회 우승에 빛나는 백전노장 카리 웹을 상대로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김효주는 48만7500달러(약 5억원)의 우승 상금과 함께 롤렉스 시계를 부상으로 받았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는 김효주. [에비앙 신화=뉴시스]

    15일(한국시간)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 뒤 안니카 소렌스탐(왼쪽)과 함께한 김효주. [에비앙=이지연 기자]

    “와우~.” 15일 새벽(한국시간) 프랑스 에비앙 르뱅의 에비앙리조트골프장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 17번 홀까지 10언더파로 LPGA 투어 41승의 베테랑 카리 웹(40·호주)에게 1타 차 2위였던 김효주(19·롯데)가 5m 버디 퍼트를 홀 가운데로 떨어뜨리자 갤러리들은 탄성을 터뜨렸다.

     그린 주변 프린지에서 세 번째 어프로치 샷을 실수해 3m 파 퍼팅을 남긴 웹은 쫓기는 신세가 됐고, 그마저도 놓쳐 보기를 했다. 플레이에 집중하느라 역전극이 펼쳐진 줄도 몰랐던 김효주는 잠시 멈칫하다가 캐디의 말을 듣고는 그제야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김효주는 “처음에는 라인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캐디가 잘 알려줬고 무조건 성공시킨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스트로크를 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스포츠 심리학자인 패트릭 콘은 이 같은 상황을 고도의 집중을 하는 순간으로 해석한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프로들을 관찰한 그는 경기 중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라운드한 시간이 매우 짧은 것처럼 느끼며 자연스러운 흐름을 몸에 맡기고 무리하지 않을 때 집중력이 나온다고 봤다.


     김효주도 골프에서 멘털이 70% 이상이라고 여긴다. 골프를 꾸준히 잘하려면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나만의 스타일을 나답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여섯 살 때 골프를 시작해 주니어 무대에서 16승을 한 김효주는 고등학교 때 체계적인 멘털 트레이닝을 받았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골프 일기’, 일명 ‘멘털 노트’를 쓰면서 자신의 골프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메이저 대회에 처음 출전한 김효주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즐기고 배우자’는 목표를 세웠다. 첫날 남녀 메이저 역사상 최저타(61타)의 역사를 썼지만 기록엔 관심이 없었다.

     김효주도 마지막 날 웹과의 대결에서는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 순간 웹에 비해 자신은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효주는 “나도 사람이라 긴장이 된다. 하지만 좋은 스코어를 낼 생각을 하면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실수를 하게 된다”며 “그래서 목표에 대해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바로 다음 샷만 생각했다. 사람들이 나더러 생각 없이 치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바로 그게 내 골프다”라고 했다.

     김효주는 대회를 마친 뒤 LPGA투어 통산 72승을 거두고 은퇴한 ‘전설’ 안니카 소렌스탐(44·스웨덴)을 만났다. 시즌 메이저 대회 최고 활약자에게 주는 롤렉스 안니카 어워드 시상을 위해 대회장을 찾은 소렌스탐은 김효주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발길을 멈췄고, 먼저 찾아가 악수를 건넸다. 소렌스탐은 “18번 홀 퍼팅은 정말 과감했다. 앞으로 LPGA 투어를 이끌어 갈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고 김효주를 극찬했다.

     골프를 시작한 뒤 줄곧 소렌스탐을 동경해 왔던 김효주는 소렌스탐 앞에서는 마냥 설레는 10대 소녀가 됐다. 김효주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됐다. 소렌스탐은 은퇴를 하고도 여전히 카리스마가 대단한 것 같다. 나는 아직 그런 점이 부족한데 소렌스탐처럼 카리스마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효주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5년간 LPGA 투어 풀시드를 획득했다. 원하면 당장 다음주 대회부터도 출전할 수 있다.

     김효주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그날 저녁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메이저 최저타, 한국인 최연소(19세2개월) 우승, 세계랭킹 10위 등극 등은 이미 지나간 일이 됐다. 김효주는 “미국 투어에 가려면 체력도 그렇고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것은 좋지만 자만심은 금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19세 소녀의 내공은 이미 세계랭킹 1위감이었다.

    에비앙=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