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독일을 뛰어넘어야(Beyond Germany) 일본과 중국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미텔슈탄트(중소기업)’가 한국 중소기업에 역할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독일 배우기’ 열풍의 주역인 김택환(56) 경기대 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는 1983년 옛 서독 본(Bonn)대학 유학생으로서 독일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연구원·언론인·교수로 변신하면서도 지난 30년간 독일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최근에는 독일 사회와 경제를 분석한 ‘넥스트 코리아’(2012), ‘넥스트 이코노미’(2013)를 잇달아 출간했다. 이후 한국 정치권과 재계, 학계, 시민사회에서는 ‘독일 배우기’ 열풍이 불어닥쳤다.
지난 7월 29일 만난 김택환 교수는 “독일의 경제시스템은 한국의 경제시스템과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독일은 2차대전 패전 직후 정치지도자들이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도입했다. ‘사회적 시장경제시스템(Soziale Marktswirtschaftssytem)’이다.
미국식 정글 자본주의도 아니고, 구(舊)소련식 사회주의 계획경제도 아닌 ‘제3의 경제모델’을 도입한 것. 반면 “한국은 신(新)자유주의를 추종한 결과 부의 편중으로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우려다.
독일식 모델은 ‘모두가 잘사는 나라’ 건설에 목표가 맞춰져 있다. 독일의 여야 정치인들도 좌우 구분 없이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지향했다. 특히 보수정치인들이 앞장섰다.
2차 대전 이후 잿더미가 된 독일의 초대 경제부 장관이자 제2대 총리를 지낸 루트비히 에르하르트(1897~1977)가 대표적이다. ‘모두를 위한 번영(Wolhfahrt fur Alle)’을 국가 최고 목표로 내건 에르하르트 총리는 ‘라인강 기적’의 설계자이자 사회적 시장경제 시스템의 틀을 구축한 인물이다.
“에르하르트 총리는 라인강의 기적으로 창출된 부의 과실을 모든 국민이 골고루 혜택을 받게 하는 사회보장제도를 동시에 마련했습니다.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거나, 돈이 없어 공부를 하지 못하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또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을 중심에 두는 경제정책을 펴는 등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에 ‘올인’했죠. 또 고환율, 저인플레이션 등 중소기업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과 서민층과 중산층의 지갑이 두툼해지는 정책을 폈습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역대 독일 정부는 연구개발(R&D) 비용을 중소기업과 창업에만 집중 투자해 왔다. 독일의 정부 연구개발 비용은 총 18조원.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대기업에 정부 연구개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실정이다. 또 전통적으로 기술과 제조업을 중시하는 나라로서 ‘마이스터(장인)’ 하면 독일을 떠올릴 정도로 전문 인력을 양성해 왔다.
김 교수는 “독일에는 ‘구구팔팔(9988)’이라는 용어가 있다”며 “독일 전체 기업의 99%가 종업원 500명 이하의 중소기업이며, 전체 노동자의 88% 이상이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실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독일의 미텔슈탄트 가운데는 100년 넘은 장수기업들이 수두룩하다. 400년 이상 된 기업도 있다. 대개 수대째 가족경영을 해온 것도 특징이다.
최근 한국 기업들의 독일 ‘미텔슈탄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해 11월에도 대구상공회의소 회장단 및 기업인들을 이끌고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들을 탐방했다.
당시 금복주 김동구 회장, 아세아텍 김신길 대표, 삼익THK 진영환 회장 등 20명 기업인이 메르세데스-벤츠, 바이엘, 파버카스텔 등 독일 일류장수기업을 탐방했다.
한국 기업인들이 독일 현지를 방문하자 독일 기업들은 자신들이 향후 2030년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는지에 관한 ‘미래 전략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이어 본사와 공장을 탐방하고, 질문과 토론시간도 가졌는데 모두 ‘큰 영감을 얻었다’는 평가였다고 한다.
김 교수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격언이 있지 않느냐”며 “세계 최고 기업의 경영전략을 듣고, 현장방문을 통해서 자사의 미래 발전 전략을 위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조선 : 2014.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