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의 고통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삶이 통째로 뽑히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낀다. 치료가 끝나도 끝이 아니다. 화상의 고통은 이때부터 시작이다. 흉터가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그러진 얼굴, 화상 자국과 함께 일생을 살아간다. 발전한 분야가 화상재건(火傷再建)이다. 치료 후 기능적·미용적 장애를 치료해 복원하는 의술이다. 분당제생병원 김동철 화상센터·첨단화상재건센터 소장(성형외과)은 일반 화상 흉터뿐 아니라 잘못된 화상 치료로 굳어진 흉터까지 되돌리는 의사다. 그의 환자 대부분은 다른 화상전문병원에서도 “그냥 살라”며 돌려보낸 환자다. 그를 ‘미다스의 손’이라 부르는 이유다.
최근 김 소장에게 화상재건 수술을 받은 이선정(33·경기도 평택)씨. 그는 튀김집을 운영하던 어머니가 실수로 엎지른 기름을 얼굴에 뒤집어 쓰면서 두피의 3분의 1가량이 손상됐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한쪽 볼과 이마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이씨가 다섯 살 때 일이다. 곧바로 치료를 받아 합병증은 막았지만 화상 부위에 큰 흉터가 남았다. 당시 화상을 치료한 병원에서는 “흉터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결국 30년 가까이 머리카락으로 흉터를 가린 채 살아야 했다.
결혼을 앞두고 흉터를 고민하던 이씨는 수소문 끝에 김 소장을 만났다. 네 차례의 수술 끝에 볼과 이마는 거짓말처럼 원 상태로 돌아왔고, 귀와 두피는 현재 회복 중이다. 이씨는 “어렸을 때 화상으로 얼굴에 흉터가 크게 남아 속앓이를 해왔다”며 “수술로 대부분 원 상태로 회복돼 위축되지 않는 새 삶을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의 사례는 지난 대한화상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획기적인 두피 복원 사례로 발표됐다.
화상재건은 의료 종합예술
화상재건은 화상으로 손상된 피부를 원 상태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이다. 필요하면 코·귀·입술도 만든다. 수술도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수 차례 하는 것은 기본이다. 많으면 여덟 차례까지 수술한다.
일반 수술과 달리 수술에 사용하는 수술법도 한 가지가 아니다. 손상 부위마다 피부 상태에 따라 적절한 수술법이 결정된다. 환자 상태를 정확히 분석해 환자에 맞는 최적의 수술 방법을 고안한다. 해부학적 결손 부위를 회복시키면서 기능장애를 없애고 미용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화상재건이다. 그래서 김 소장은 “화상재건은 고도의 전문적인 술기가 동원되고, 치료와 디자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종합예술”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사례가 적절한 예다. 보통 손상된 조직은 이식이 기본 틀이다. 자기 피부를 이식하거나 경우에 따라 시체 피부·인조 피부를 이식하고 봉합한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주위 피부를 늘리는 것이 가장 좋다. 주변 피부와 색깔·질감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피부는 갑자기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서서히 확장시켜야 한다. 풍선처럼 생긴 조직확장기를 손상된 피부 안쪽에 넣고 부풀려 수개월 동안 늘린 뒤 당겨서 손상 부위를 덮는다.
이씨는 손상이 적은 두피를 고스란히 들어내 각도만 틀어 손상된 부위를 덮어주는 두피 피판술도 적용했다. 김 소장은 “이씨 사례의 경우 다른 의료기관에서는 시도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보기 드문 사례였기 때문에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흉터 최소화가 진정한 화상 치료
화상의 중증도 구분은 손상된 피부의 깊이와 범위가 기준이 된다. 1~4도의 구분은 화상에 의한 깊이를 뜻한다. 피부는 겉에서부터 표피·진피·피하지방층·근육층으로 나뉜다. 화상에 의한 손상이 표피층에만 국한된 것이 1도 화상이다. 보통 물이나 불에 가볍게 데거나 햇빛에 그을린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화상으로 진피 상부 조직까지 손상되면 2도 화상이다. 물집과 심한 통증이 동반되지만 치료 시 2주 내에 치유된다. 진피 중간 혹은 깊숙한 곳까지 손상되면 중간·심부 2도 화상으로 본다. 합병증 위험이 있고, 치료 후에도 흉터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흉터가 생기는 것이 바로 중간 2도 화상부터다.
3도 화상은 진피를 넘어 피하지방층까지 손상된 경우다. 이때는 피부가 자연재생이 안 되기 때문에 수술을 받아야 한다. 중화상은 몸 전체의 피부 표면적 중 2~3도 화상에 의한 피부 손상이 20%(어린이는 10% 이상)가 넘는 경우다. 중화상은 입원치료가 필수다.
화상 치료에서는 무엇보다 흉터를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환자의 기대와 요구가 전반적으로 높아진 데다 흉터가 환자의 삶의 질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는 “10여 년 전에는 외상으로부터 생존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제 환자가 가장 희망하는 것은 흉터 없이 낫는 것”이라며 “전문적인 화상 치료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화상 치료에서 미용 복원이 전제돼야 한다는 얘기다.
국내 유일 화상 협진시스템 구축
김 소장이 말하는 전문 화상 치료는 무엇일까. 협진 시스템을 통한 치료다. 각 분야 의료진이 참여해 최적의 치료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환자가 눈에 화상을 입었다면 안과 전문의가 수술에 참여하고, 어린 화상 환자라면 소아청소년과의 지원을 받는다. 흉터 치료를 담당하는 성형외과, 화상에 의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정신건강의학과도 필수 요소다. 그래야 기능적 장애 방지, 미용 복원, 정신건강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협진시스템의 유무는 치료 결과와 직결된다. 김 소장은 “협업 진료 시스템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최적의 결과가 나온다”며 “화상 치료는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분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화상 치료 협진 체계는 분당제생병원이 다른 화상전문병원과 차별화되는 요소다. 사실상 국내에서 협진 시스템을 제대로 갖춘 유일한 화상전문병원이다.
국내에서 전문적으로 화상을 치료하는 곳은 분당제생병원을 포함한 종합병원 두 곳, 전문병원(중소병원) 세 곳이 고작이다. 이 중 종합병원 한 곳은 아예 소아청소년과가 없고, 전문병원은 대부분 진료팀에 성형외과 의사가 포함되지 않는다. 외과와 응급의학과 의사만이 환자를 보는 화상전문병원도 있다. 김 소장은 “화상은 일반 상처와 다르다”며 “이를 일반 상처처럼 치료하면 흉터 없이 낫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한강성심병원을 화상전문치료의 메카로 만든 당사자다. 협진이 가능한 화상센터를 처음으로 도입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흉터 남을 가능성 있다면 전문 화상성형병원 찾아야
[인터뷰] 김동철 소장
김동철 소장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화상재건 분야에서 그만큼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는 의미다. 국내에 처음으로 화상센터를 만들었고, 1994년 미국성형외과학회에서 한국 국적 최초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화상재건에서 일반화돼 있는 ‘화상성형’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도 김 소장이다. 하버드의대를 비롯해 유명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유난히 적정진료를 강조했다. 그는 의사의 기본요건은 적정진료라고 했다.
-화상치료·재건을 하게 된 계기는.
“한강성심병원 근무 당시 화상 환자가 많았다. 구로공단이 근처에 있어서다. 결정적인 계기는 15년 전에 봤던 한 환자 때문이다. 얼굴에 3도 화상을 입은 37세 환자였다. 얼굴이 일그러져 아이들이 아버지가 아니라며 문도 안 열어준다고 했다. 환자가 많이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다가 당시 병원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그때 화상을 전문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국내에 화상전문병원이 상당히 부족한 것 같다.
“화상전문치료가 가능한 병원이 전국에 몇 곳 없다. 그나마 있는 이들 병원 대부분은 인프라가 충분하지 못하다. 오히려 전문병원 지정 기준이 느슨하다. 흉터를 치료하려면 성형외과가 있어야 하는데 지정 기준에는 없다. 지정 기준 중 필수진료과목에 있던 정형외과도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 병원의 화상 치료와 차이가 많이 나나.
“일반 병원에서 화상 환자를 많이 본다. 심하지 않으면 많이들 찾는다. 하지만 일반 상처를 치료하듯 화상을 치료한다. 적당히 화상연고를 바르고 만다. 당연히 안 남을 흉터도 남는다. 흉터가 남을 가능성이 있다면 전문적인 화상성형 치료를 해야 한다.”
-화상전문병원을 가지 않으면 오히려 키울 수 있겠다.
류장훈 기자 [중앙일보] 2014.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