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민 교수가 개발한 알코올 항암제 혼합주입요법(PICT)은 수술이나 고주파 치료를 못하는 환자에게도 적용해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간암 환자의 영상자료를 판독하고 있는 박 교수. 사진=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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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은 암 중에서도 특히 생존율이 낮다. 낮은 순으로 췌장암 다음이다. 초기 5년 (상대) 생존율이 46.3%(2013년)에 불과하다. 중기로 넘어가면 10%대(16.3%)로 급격히 떨어진다. 조기진단이 어려운 데다 수술을 해도 재발이 잦기 때문이다. 분당제생병원 간질환센터 박영민(관동의대 교수) 소장은 전통적인 치료법을 응용한 새 치료법으로 부작용을 줄이고 생존율을 끌어올렸다. 연구를 통해 간암 조기진단법도 개발했다. 개인별로 간암 발병 위험도까지 체크할 수 있다. 국내에 간질환센터와 간암센터를 최초로 구축해 간질환 연구에 몰두한 성과다.
이천에 사는 40대 후반의 김병국(가명)씨. 그는 건강검진에서 간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위해 큰 병원으로 옮겼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여생이 2~3개월이 고작이라고 했다. 의사에게 들은 말은 “마지막이니까 집에서 쉬라”는 말뿐이었다. 간에 큰 암 덩어리가 있는 데다 폐까지 전이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박 교수를 만났고, 치료를 받은 김씨는 이후 5년째 더 살고 있다.
알코올 항암제 혼합주입요법 개발
거짓말 같은 김씨의 사례는 박 교수의 실제 환자 사례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박 교수가 개발한 치료법 덕분이다.
일반적으로 간암은 초기에는 수술·이식·고주파치료 등의 다양한 치료법이 적용된다. 과거에는 수술이나 이식이 어려우면 에탄올주입술(PEIT)을 시행했다. 이후 고주파치료가 나오면서 에탄올주입술을 대체했다. 에탄올주입술보다 효과가 좀 더 좋고, 심한 통증 등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장점에서다. 현재 에탄올주입술은 고주파치료가 불가능할 때나 쓰인다. 간암 중기로 넘어가면 색전술을 한다.
박 교수는 “간암 초기라도 수술·이식·고주파치료를 못하는 환자가 있다”며 “PICT는 이런 환자에게도 99% 시행이 가능하고, 안전하면서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치료 결과도 좋다. 색전술은 3년 생존율이 50% 내외다. 진행성으로 가면 2년 생존율이 30% 미만, 말기는 1년 생존율조차 10% 미만으로 떨어진다. PICT는 중기나 진행성 간암이라 하더라도 5년 생존율이 50%에 달한다. 3년 생존율을 5년 생존율로 끌어올린 셈이다.
간암 위험도 예측법으로 조기 진단
간경화는 간암의 가장 큰 위험요소다. 박 교수는 간경화를 ‘간암 밭(田)’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암은 수술로 떼어내면 재발률이 크게 높지 않지만 간암은 다르기 때문이다. 간경화인 사람은 수술로 암을 떼어내더라도 다른 위치에 또 암이 생길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 그래서 조기에 발견하고 재발할 때마다 반복 치료해야 한다. 이식이 아니고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박 교수가 간암의 조기진단법을 개발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 교수는 인천성모병원 장정원 교수와 공동으로 2011년 조기진단법을 개발했다. 유전자 진단법인 ‘헤파토타이퍼(Hepato Typer)’다. 혈액으로부터 추출한 DNA의 특정 돌연변이를 분석해 간암을 진단한다. 헤파토타이퍼는 간암이 생길 개인별 위험도도 평가할 수 있다.
박 교수는 B형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여덟 가지 유전자 돌연변이를 조합해 얻은 256가지 경우의 수 중 높은 빈도를 보이는 40여 개를 추리고, 이 중 간암 발생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일곱 가지 조합을 걸러냈다. 이 중 6개 이상 돌연변이가 있으면 70% 이상 간암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헤파토타이퍼를 간암 환자와 간염 환자 150명에게 적용한 결과 94.3%의 정확도를 보였다.
“초음파를 청진기처럼 써야”
박 교수가 간암 치료의 새 진단법을 개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보통 영상의학과 영역으로 알려진 초음파를 섭렵한 결과다. PICT도 초음파 유도 아래 항암제를 주입하는 치료법이다. 초음파 영상을 보면서 하는 시술이다. 분당제생병원은 내과의 간질환 전문가가 간암 환자에게 직접 초음파를 시행하고 분석하면서 초음파를 이용한 치료까지 담당한다.
박 교수는 “다른 병원에서 PICT 같은 치료를 못하는 이유는 영상의학과와 내과, 즉 간질환 전문과가 이원화돼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다 보니 내과는 초음파의 장점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하고, 영상의학과는 간암 환자에게서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초음파 예찬론자에 가깝다. 그는 “초음파를 이용한 치료까지 일원화해 치료해야 간암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초음파를 청진기처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실에도 초음파를 구비하고, 내과 전공의에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박 교수는 “요즘은 첨단 기기에 현혹돼 있는 시대지만 기본이 되는 진단 기기에도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며 “초음파가 점점 소형화되고 있는 만큼 5~10년 안에는 청진기처럼 쓰일 날이 올 것이다. 청진기처럼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초음파는 방사선 노출 위험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라고 덧붙였다.
류장훈 기자 [중앙일보] 입력 201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