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말, 좋은글

商鞅(상앙)의 죽음

해암도 2014. 5. 16. 06:47



商鞅은 세자를 질타했다 '法이 시행되지 않는 건 위에서부터 어기기 때문'
그 측근 두 명의 이마에 먹줄로 罪名을 새겼다… 이 소식이 퍼지자…


"저 인간들은 선박을 불법 개조하고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배의 평형수를 뺀 것도 모자라 엄청난 탈세까지 했다. 탐욕으로 죄 없는 어린 학생들을 죽이고 자신들을 위한 구원의 왕국(王國)을 건설해 왔구나."

국세청이 유병언씨 일가의 법인을 조세 포탈, 허위 계산서 작성 혐의 등으로 고발하고 100억원 상당의 탈세(脫稅) 내역 자료도 검찰에 넘겼다는 보도를 봤을 때 이런 분노가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소한 의문부터 들었다. 그런데 왜 유씨 일가의 조세 포탈은 이제 와서야 드러나는가. 국세청이 그동안 세무조사를 안 했을 리 없다. 서민들의 구멍가게까지 한 푼이라도 더 짜내고 긁어 가는 국세청이 100억원 상당의 탈세를 그냥 지나쳤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그 사이 세법(稅法)이 바뀐 적 없고 국세청의 고유 업무가 달라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오래 안 보였던 유씨 일가의 탈세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왜 금방 보이게 됐는지 미스터리다.

지금 유씨 일가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는 공무원들 중에는 "유 회장님은 멋진 신사이고 예술가이며 아이디어가 참신한 분"이라고 한때 칭찬했는지도 모른다. 서울 청담동 '몬테 크리스토' 카페나 특급 호텔에서 식사를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면 이를 자신의 특권인 양 뿌듯하게 여겼을 것이다.

이런 의문을 풀어주지 않는 한, 장관 몇 명을 갈아치우고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고 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것에 별로 신용이 가지 않는다. 새로 기구를 만들고 예산을 늘리고 얼굴마담을 바꾼다면 일단 그럴듯해 보일 것이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민심이 나빠질 테니 정치적인 해법은 될 것이다.

그래도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번 참사는 법령과 규정이 없어서, 전담 기구와 인력이 없어서, 감독 기관이 없어서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뒤늦게 시비를 삼았을 뿐이지, 컨트롤타워가 부재해서 무능한 대응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규정대로 자신의 직업적 책임을 다했던 개인들이 당시 없었을 뿐이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자신의 직무를 분명히 아는 개인들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몇 명만 존재했어도 이런 파국을 맞지는 않았다. 거창한 '국가 개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쉽다. 그 속에 있는 개인들을 그 시스템의 주인(主人)으로 만드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중국 진(秦)나라 때 상앙(商鞅)은 나라를 개조할 법령(法令)을 만들었다. 하지만 법령이 말로만 그칠 것을 걱정했다. 백성들을 불러 모아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놓으면 금(金) 10개를 주겠다"고 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는 "금 50개를 주겠다"고 다시 말했다. 한 사람이 속는 셈치고 옮기자 약속대로 금 50개를 줬다. 그런 뒤 법령을 시행했다.

법령은 왕실과 관료들의 기득권을 제한했다. 백성들도 불편을 느꼈다. 세자가 만만하게 보고 법령을 어겼다. 상앙은 "법이 시행되지 않는 것은 위에서부터 어기기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왕위 계승권자를 처벌하는 대신 그의 측근 두 명의 이마에 먹줄로 죄명(罪名)을 새겼다.

이 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길에 떨어진 물건도 주워 가지 않았다. 나라를 위한 전쟁에는 용감했고, 사사로운 싸움에는 겁을 냈다. 살림살이는 넉넉해졌다. 법령에서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기반이 됐다.

세자가 왕위에 오르자 그는 모함을 받았다. 그는 도망쳐 국경 근처 여인숙에서 하룻밤 묵으려고 했다. 여인숙 주인이 '법령에 의해 여권이 없는 이를 투숙시키면 처벌받는다'고 했을 때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상앙의 죽음은 그 누구도 비켜 갈 수 없는 법령의 엄정함에 대한 답(答)이었다.

당대(當代)에 상앙은 각박한 인물로 낮게 평가됐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이런 '각박한' 공직자를 찾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만큼 귀하게 됐다. 자신의 직무에서 벗어나 인심을 잘 베풀고 눈감아주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평소에는 사람 좋고 친절하지만, 바로 이들이 직무에서 믿을 수 없고 부패와 무능, 탐욕의 사람들로 금방 바뀔 수 있다.

집권 초 박근혜 대통령은 여론의 비판 속에서도 공무원들을 중용했다. 그런 대통령이 '관(官)피아'라는 매스컴 조어까지 써가며 질타하는 중이다. 공무원들은 태풍이 불어닥치면 더 빨리 머리를 숙이는 풀과 같다. 이들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엎드려 있다.

하지만 이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 설령 '관피아'가 되든 '철밥통'을 누리든 이들을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규정과 직무를 벗어나면 그 대가가 얼마나 각박한지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이제 공무원들이 '명예'를 안다면 자신들의 손으로 정화(淨化)하고 징계할 규정을 만들 것이다.



최보식
편집국
E-mail : congchi@chosun.com
선임기자

입력 : 2014.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