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건축
우리 시대 `건축 챔피언'은 어떤 건물일까?
# 미술관은 어떻게 현대 건축의 총아가 되었나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실로 눈부셨다. 인간의 지식이 만들어내지 못할 한계는 없는 듯했다. 이전 것들을 촌스럽고 낡아보이게 만드는 새로운 문물이 앞다퉈 쏟아지면서 인류의 미래는 장밋빛 낙원처럼 보였다. 전보다 더 크고, 더 높고, 더 빠르고, 더 강해진 것들이 하나하나 과거의 것들을 대체하는 흐름에 사람들은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빠르게 다가오는 미래를 극단적으로 낙관하며 예찬했던 이들이 미래파였다. 놀라운 변화에 사로잡혔던 그들에게 기존의 것들은 불편하고 비합리적인 것들일뿐이었다. 새로운 기계들의 뛰어난 기능은 그 자체로 예술품 이상으로 아름다워보였다. 낡고 털털거리는 마차와 달리 미끈하고 멋진 모습으로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는 미래의 가치인 속도와 기계의 미학을 그 어떤 것보다도 명쾌하게 상징하는 것이었다. 미래파를 이끌었던 이탈리아의 시인 마리네티는 그래서 질주하는 경주용 자동차가 그리스의 걸작 조각 사모트라케의 니케보다도 아름답다고 단언했다. ▲ 밀워키미술관 이 마리네티가 했던 예언이 있다. 미래파의 첫 번째 선언문에서 그는 미술관이란 “공공기숙사”에 불과하므로 앞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로 등장하는 것일수록 아름답고 훌륭해지는 시대, 케케묵은 과거의 유산들은 불필요한 고물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현대의 새 보물들이 넘쳐나는만큼 고물이 된 과거의 보물을 소장하고 전시할 필요가 어디있겠냐며, 미술관도 잡다한 고물을 모아놓은 곳이나 마찬가지이니 누구나 들어가 잠자는 공공 기숙사와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를 묘지처럼 뒤덮고 있는 무수히 많은 미술관들”에서 이탈리아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 로얄온타리오미술관 그러나 잠깐 주목받다가 금세 사라진 미래파의 운명처럼, 미술관의 미래에 대한 마리네티의 생각은 현실과 어긋나고 말았다. 기술과는 다른 예술의 가치, 그리고 문화를 사랑하는 인간의 보편적 감성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그는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미술관이 사라질 것이란 마리네티의 어처구니없는 예언은 인간과 문화의 본성에 대한 무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코미디로 끝나고 말았다. 마리네티가 지금 우리로선 어이없어 웃게 만드는 이런 오판을 했던 데에는 미술관이 당시로선 그 미래를 알 수 없는 신생 장르였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세계 어느 도시에 가도 크고 작은 미술관이 있을 정도로 미술관이 넘쳐나지만, 건축의 역사에서 보면 미술관은 19세기에야 비로소 자리를 잡아 20세기 후반에 전성기를 맞은 신생 건축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늦게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은 빠르게 진화하고 퍼져가면서 현대 건축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현대 건축의 간판스타이자 건축 흐름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장르를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누가 뭐래도 단연 미술관이다. 미술관이야말로 현대 건축의 진정한 총아다. ▲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있다. 정치 경제 사회적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 건축물도 바뀌어간다. 어떤 건물들이 그 시대의 상징이었는지는 도시 가장 한복판에 어떤 건물들이 있었는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고대에는 신전이나 광장이 도시와 건축의 간판이었다. 중세에는 누가 뭐래도 성당이나 사원 같은 종교 건축물들의 시대였다. 신의 시대에서 인간이 부활한 르네상스는 기존 종교시설들의 전성시대가 계속되는 가운데 시청 같은 관공서 건물들이 중요해졌다. 근대에 접어들면서는 극장이나 박물관 같은 시민사회를 상징하는 건물들이 새로 각광을 받았고, 이어 도서관과 박물관 등의 문화시설들이 주요 장르로 등장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온 뒤로는 교통 허브인 기차역, 그리고 상업시대의 만신전이랄 수 있는 백화점 같은 건물들이 도심 한가운데의 주역들로 떠올랐다. 그 뒤를 이어 시대를 상징하는 건축 분야가 된 것이 바로 미술관이다. ▲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이미지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 이미지의 본산인 미술의 신전인 미술관이 건축의 중심에 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정도다. 하지만 현대의 미술관은 인기 장르의 중심 공간이란 것 이상의 건축적 위상을 지니고 있다. 바로 현대건축, 특히 현대 공공건축의 풍향계 역할을 하는 점이다. 미술관이 현대 건축의 총아가 된 것은 미술관의 기능과 목적이 현대에 들어 더욱 진화,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미술관이 차지히는 비중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미술관은 우리 시대 최고의 문화상품이자 최고의 문화 활동 공간으로 발전했다. ▲ 덴버미술관 미술관은 건축적 측면으로 보면 다른 건축물들보다 훨씬 다양하고 파격적인 시도가 가능하다. 그래서 건축의 진화와 재창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다. 지금 현대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현대 건축이 진화하는 과정을 미리 점쳐보기 위해서는 미술관을 봐야 한다. 건축에서 새로운 개념, 새로운 사조, 새로운 기술이 가장 먼저 시도되는 현장이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중요해진 데에는 사회, 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세계 각국, 그리고 주요 도시들이 문화적 인프라와 랜드마크를 도시 경쟁력을 좌우하는 최고의 무기이자 자산으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미술관을 그 핵심 아이템으로 주목하게 된 것이다. 문화 전쟁의 시대, 관광 자원이 최고가 된 시대의 핵심 아이템이 된 미술관은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커지고 화려해지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사진=김용관 건축사진가 이런 추세속에서 미술관의 개념도 예전보다 넓어졌다. 초기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모든 것들을 백과사전처럼 모으려했다. 그러나 아무리 큰 미술관도 모든 것들을 소장할 수 없는 법이다. 미술관들은 주제별, 종류별로 분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종 기념관들이나 ‘명예의 전당’처럼 전에 없던 기념용, 전시용 건물들이 등장하면서 미술관의 범주는 계속 확장되는 중이다. 우리말로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따로 있어 우리는 미술관과 박물관의 성격을 나눠서 보는 경향이 강하지만 원래 이 두 공간의 뿌리는 같다. 영어에서 미술관과 박물관은 둘 다 ‘museum’이란 한 단어로 같이 쓴다. 시민 대중을 위해 중요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 것들을 모으고 보존하면서 교육하는 기능의 본질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나 똑같다. 건축적으로도 이 두 가지는 크게 구별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흡사하다. ▲ 우피치미술관 이 ‘museum’의 어원은 ‘무세이온’(museion)'에서 나왔다. 무세이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문화예술의 신 ‘무사’(musa)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영어로 ‘뮤즈’라고 흔히 불리는 무사는 여러 분야의 예술을 담당하는 신들로, 이 무사에서 음악을 뜻하는 ‘뮤직’과 문화예술 공간인 박물관과 미술관을 뜻하는 ‘뮤지엄’이란 단어가 생겼다. 동양에서는 없었고 서양에서 만들어진 이 뮤지엄은 16세기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의 뜻은 지금처럼 수많은 소장품을 거느린 커다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나 귀족이 개인적으로 모은 귀중한 물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뒤 근대에 들어 시민 사회가 탄생하면서 시민들이 사회의 주인이 됐고, 이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뮤지엄이었다. ▲ 루브르박물관 그래서 초기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모두 궁궐 수장고나 귀족들의 개인 전시실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혁명으로 왕정이 사라지고 귀족들이 몰락하면서 이들의 보물창고가 그대로 박물관 또는 미술관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초기 뮤지엄들은 그래서 거의 대부분 왕궁이나 귀족의 저택 그 자체였다. 왕궁에서 시민들을 위한 박물관 겸 미술관으로 바뀐 루브르궁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후 뮤지엄 전용 건물을 따로 짓기 시작하면서 미술관과 박물관은 건축에서 새 장르로 독립하기 시작했다. 왕들이 궁궐에 마련한 전용 엔터테인먼트 공간이었던 공연장이 공공 문화의 장으로 독립해 극장이 된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미술관과 박물관은 이후 극장과는 또 다른, 그리고 더 중요한 건축으로 발전해나간다. 앞서 말했듯 미술관이 파격적이고 상징적인 시도를 하기 가장 알맞았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구조가 정해져 있는 극장보다 공간 구성이 훨씬 자유롭고,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기능이 강해 고도의 추상성과 상징성을 추구하기에 제격인 덕분이었다. 그래서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미술관은 겉모습만 봐서는 전시장 모양의 네모 상자꼴이 아니라 거대한 조형물을 연상시킬 정도로 모양이 다양해졌다. 미술관이 소장하는 미술품 못잖게 미술관 건물 자체가 중요한 작품인 시대가 된 것이다. ▲ 퐁피두센터 도시에서 미술관이 맡는 역할은 건축적 변화 이상으로 크게 변했다. 이제 미술관은 단순한 공공 문화시설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틀을 바꾸는 핵심 요인이다. 미술관은 특정 시간대에만 사람들이 드나드는 극장이나 체육관과 달리 항상 열려 있는 공간이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효과가 훨씬 더 크다. 이런 점에 착안해 세계 도시들은 미술관을 쇠락한 도시를 재개발하거나 신도시를 만드는 과정에 미술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미술관의 경우 단순히 미술관을 하나 새로 짓는 수준이 아니라 주변에 넓은 공공용지를 배치해 시민들의 쉼터이자 다양한 문화활동이 펼쳐지는 중심지로 처음부터 기획됐다. 이는 주변 레알 지구에 활력을 불어넣어 지역 전체를 파리의 새로운 성장 지역으로 끌어올리려는 원대한 계획 차원에서 시작된 구상이었다. ▲ 테이트모던미술관 현대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와 도시 전체가 되살아난 스페인 빌바오시의 경우는 ‘빌바오 효과’란 말까지 낳았다. 16세기 이후 오랫동안 조선, 철강, 화학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던 빌바오는 1970년대 이후 주요 산업들이 사양화하고 기업들이 도시를 떠나면서 쇠락일로를 걷고 있었다. 도시를 살리기 위해 빌바오시는 문화를 키워드로 골랐고,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미술관 설계를 의뢰했다. 역동적인 디자인과 건물 전체를 감싼 티타늄판들이 빛나는 새롭고 독특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들어서자마자 전세계의 관심을 모았고, 빌바오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빌바오는 이제 관광과 문화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나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며 막대한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다. ▲ 닝보미술관. 사진=남수현 건축가 2000년 밀레니엄을 앞두고 런던의 새 볼거리를 만들기 위해 버려진 폐발전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한 테이트 모던 갤러리도 미술관이 낙후 지역을 문화 지대로 탈바꿈시킨 사례다. 우중충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황폐화되었던 템스 강변의 산업 지구가 중심에 있던 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바꾸면서 이제는 런던 방문객들이 꼭 찾아가는 명소가 됐다. 이렇게 미술관을 지역 개발의 촉매제로 삼는 것은 실은 미술관이 처음 등장한 근대에도 썼던 방법이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19세기초 네덜란드를 점령한 나폴레옹의 동생 루이보나파르트가 암스테르담을 네덜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더욱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 추진했던 도시계발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이런 흐름이 현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사진=남궁선 건축사진가 도시 재개발 차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술관은 버려진 산업 시설물들을 재활용하는 가장 보편화된 방법으로 애용되고 있다. 스페인에서 프라도 미술관 다음으로 중요한 미술관으로 꼽히는 마드리드의 소피아 왕비 미술센터는 18세기 병원 건물을 리노베이션했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파리 오르세미술관은 미술관은 못쓰게 된 철도역을 미술관으로 고쳤다. 독일의 함부르크 철도역도 미술관이 기차역 안으로 들어간 경우다. 폐공장을 미술관으로 고친 사례는 훨씬 더 많다. 피아트 자동차 공장을 복합문화센터로 바꾼 이탈리아 토리노의 링고토를 비롯해 스위스 제네바현대미술관과 샤프하우젠미술관, 뉴욕의 디아아트센터가 모두 버려진 공장을 재활용한 미술관들이다. 프랑스 툴루즈의 근현대미술관은 심지어 커다란 도축장을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 오르세미술관. 원래 기차역이었다가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미술관이 미술품 소장 기능만 하지 않고 요즘에는 도서관이나 극장 같은 다른 문화시설까지 거느리는 문화복합 공간이 되는 이유가 이렇게 지역 문화의 거점 기능을 하는 데에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미술관 건축 자체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미술관의 탄생 초기 미술관에서 전시공간과 다른 부대공간의 비율은 9 대 1이었지만, 요즘 미술관들은 도서관, 카페테리아, 아트숍, 교육장 등 딸리는 공간들이 크게 늘어나 이 비율이 1 대 2로 역전됐다. 미술관은 근엄하던 미술의 성전에서 이제 사람들이 다양한 음식과 볼거리 부대시설을 즐기며 편안하게 놀 수 있는 곳으로 변했다. ▲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다양하고 실험적인 새로운 미술관들이 늘어나면서 미술관은 건축에 대해서도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원래 미술관이 아니었던 건물들이 미술관으로 바뀌면서 과연 건물의 용도에 맞게 짓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건물 자체의 목적이 처음부터 정해지는 것이 불변의 법칙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또한 많은 미술관들이 리노베이션 또는 확장 공사를 하게 되면서 옛 건물과 새 건물이 공존하고, 건물 하나가 시대가 다른 여러 건축가의 공동 작품이 되는 현상도 미술관 건축이 낳은 새로운 풍경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이 현대 건축의 최고 정점에 선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미술관이 그 어떤 공간보다도 우리를 사로잡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관은 분명 건축물 중에서 가장 비현실적이고 비일상적인 공간이다.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환상을 경험하며 잠시나마 일상을 잊는다. 그래서 더욱 미술관에 열광하는 것인지 모른다. <계속> 구본준_http://blog.hani.co.kr/bonbon/건축 이야기 2014/0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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