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건축

시골 폐가가 지역 명소로…충남 공주 '루치아의 뜰'

해암도 2014. 3. 9. 06:08


충청남도 공주시에 사는 석미경(51)씨는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다도(茶道)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지난해 차 문화원으로 꾸밀 공간을 찾아 나섰다. 이곳저곳을 돌아보던 석씨가 발견한 곳은 공주시 중동의 한 폐가였다.
루치아의 뜰 남쪽 면 야경/박영채 사진작가
루치아의 뜰 남쪽 면 야경/박영채 사진작가
폐가는 겉보기에도 다 쓰러져가는 개량식 한옥으로 볼품이 없었다. 석씨는 집을 둘러싼 뜰과 세월이 묻어나는 푸른색 펌프, 전 주인의 아기자기한 살림살이들을 보고서, 조금만 손보면 폐가가 다시 아름다운 장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폐가의 대지면적은 132.2㎡(약 40평). 집은 방 두 칸, 부엌 한 칸, 다락 한 칸으로 다 합해도 33㎡(약 10평) 정도였다.
루치아의 뜰 남쪽 측면 야경/박영채 사진작가
루치아의 뜰 남쪽 측면 야경/박영채 사진작가
문제는 이 집을 다시 고쳐줄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찾아가는 건축 관련 사무소에선 ‘그 돈으론 못한다’, ‘손만 많이 가니 다 부시고 새로 짓자’는 식이었다. 건축의 건 자도 모르는 석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집에 고스란히 남은 전 주인의 흔적과 약 50년의 세월의 때가 묻은 장소를 없앨 순 없었다. 화려한 새 공간보다 아늑하고 정감있는 공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루치아의 뜰 동면 툇마루 전경/박영채 사진작가
루치아의 뜰 동면 툇마루 전경/박영채 사진작가
“건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마음속 느낌을 이해해주는 건축가를 만나고자 여러 책도 보고, 인터넷으로 건축가 관련 뉴스를 보기도 했다. 임형남·노은주 건축가가 쓴 책을 보고 나와 생각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한걸음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으로 달려갔다.” (차 문화공간 ‘루치아의 뜰’ 건축주 석미경)

임형남·노은주 부부 건축가의 손에 다시 태어난 충남 공주 중동 171-2번지의 루치아의 뜰은 지난 8월 준공됐다. 낡은 청색 대문을 지나면 남북으로 긴 땅의 형태에 따라 동향(東向)으로 자리한 집이다.
루치아의 뜰 내부 전경/박영채 사진작가
루치아의 뜰 내부 전경/박영채 사진작가
대문은 남향이지만, 집 자체는 동향으로 유지했다. 대신 막혀 있던 남쪽 면은 대문을 지나면서 바로 보이는 곳인데다 남향이라는 점을 들어 벽을 들어내고 창을 냈다. 차를 우려내고, 찻잔을 씻는 부엌이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일 수 있도록 했다.

동향으로 긴 형태의 집 툇마루에서 내부로 들어가면 동서로 오가는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천장은 본래 막혀 있었지만, 답답한 느낌을 없애기 위해 들어냈다. 이 덕에 대들보와 서까래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다락도 본래 방과 벽으로 막힌 창고 신세에서 차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내부에서 동면 쪽 전경/박영채 사진작가
내부에서 동면 쪽 전경/박영채 사진작가
공간에 자리한 소품도 허투루 쓰인 것 없이 재활용했다. 리모델링 이전에 삭아 내려앉았던 툇마루는 작은 탁자와 선반으로 쓰고 있고, 전 주인의 옷장은 그릇을 담는 장식장으로 변신했다. 녹슬어 빛이 바랜 철문과 1960년대에 많이 쓰이던 시멘트 기와는 그대로 둬 시간의 흔적을 살렸다.

임·노 건축가는 “겨울 스웨터처럼 낡은 집을 되살리고자 집을 덮고 있던 시간의 흔적을 적당히 걷어내기도, 남기기도 했다”며 “다만 뜯어낸 재료는 다듬어 새롭게 써 기본적인 집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이고 실용성이 가미된 집을 짓고자 했다”고 말했다.
임형남 건축가의 루치아의 뜰 스케치/가온건축 제공
임형남 건축가의 루치아의 뜰 스케치/가온건축 제공
폐가를 새롭게 변화시킨 임형남·노은주는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 중인 부부 건축가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공간디자인대상과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하며 실력도 인정받았다.

가온건축의 ‘가온’은 ‘가운데’란 뜻의 순 우리말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란 의미가 함께 담겼다. 설계사무소의 이름답게 가온건축은 주택 작업이 많은 편이다. 건축계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큰 호응을 얻은 금산주택을 비롯해 산조의 집·1월의 집·존경과 행복의 집·거창주택 등도 입주를 마쳤다.
가온건축의 노은주(좌), 임형남(우) 소장
가온건축의 노은주(좌), 임형남(우) 소장
노 소장은 “50여년의 세월의 흔적과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공간에 다시 숨을 불어 넣는다는 것 자체에 가치를 느꼈다”며 “솔직히 거리도 멀고 품도 많이 드는 작업이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좋아하는 모습에서 가온 건축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허성준
    조선비즈 건축 담당기자
    E-mail : hu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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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