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공주시에 사는 석미경(51)씨는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다도(茶道)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지난해 차 문화원으로 꾸밀 공간을
찾아 나섰다. 이곳저곳을 돌아보던 석씨가 발견한 곳은 공주시 중동의 한 폐가였다.
- 루치아의 뜰 남쪽 면 야경/박영채 사진작가
폐가는 겉보기에도 다 쓰러져가는 개량식 한옥으로 볼품이 없었다.
석씨는 집을 둘러싼 뜰과 세월이 묻어나는 푸른색 펌프, 전 주인의 아기자기한 살림살이들을 보고서, 조금만 손보면 폐가가 다시 아름다운 장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폐가의 대지면적은 132.2㎡(약 40평). 집은 방 두 칸, 부엌 한 칸, 다락 한 칸으로 다 합해도
33㎡(약 10평) 정도였다.
- 루치아의 뜰 남쪽 측면 야경/박영채 사진작가
문제는 이 집을 다시 고쳐줄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찾아가는 건축
관련 사무소에선 ‘그 돈으론 못한다’, ‘손만 많이 가니 다 부시고 새로 짓자’는 식이었다. 건축의 건 자도 모르는 석씨는 눈앞이
캄캄했다.그러나 집에 고스란히 남은 전 주인의 흔적과 약 50년의 세월의 때가 묻은 장소를 없앨 순 없었다. 화려한 새 공간보다
아늑하고 정감있는 공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 루치아의 뜰 동면 툇마루 전경/박영채 사진작가
“건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마음속 느낌을 이해해주는 건축가를
만나고자 여러 책도 보고, 인터넷으로 건축가 관련 뉴스를 보기도 했다. 임형남·노은주 건축가가 쓴 책을 보고 나와 생각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한걸음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으로 달려갔다.” (차 문화공간 ‘루치아의 뜰’ 건축주 석미경)임형남·노은주 부부 건축가의 손에 다시
태어난 충남 공주 중동 171-2번지의 루치아의 뜰은 지난 8월 준공됐다. 낡은 청색 대문을 지나면 남북으로 긴 땅의 형태에 따라
동향(東向)으로 자리한 집이다.
- 루치아의 뜰 내부 전경/박영채 사진작가
대문은 남향이지만, 집 자체는 동향으로 유지했다. 대신 막혀 있던 남쪽
면은 대문을 지나면서 바로 보이는 곳인데다 남향이라는 점을 들어 벽을 들어내고 창을 냈다. 차를 우려내고, 찻잔을 씻는 부엌이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일 수 있도록 했다.동향으로 긴 형태의 집 툇마루에서 내부로 들어가면 동서로 오가는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천장은 본래
막혀 있었지만, 답답한 느낌을 없애기 위해 들어냈다. 이 덕에 대들보와 서까래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다락도 본래 방과 벽으로 막힌 창고 신세에서
차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 내부에서 동면 쪽 전경/박영채 사진작가
공간에 자리한 소품도 허투루 쓰인 것 없이 재활용했다. 리모델링 이전에
삭아 내려앉았던 툇마루는 작은 탁자와 선반으로 쓰고 있고, 전 주인의 옷장은 그릇을 담는 장식장으로 변신했다. 녹슬어 빛이 바랜 철문과
1960년대에 많이 쓰이던 시멘트 기와는 그대로 둬 시간의 흔적을 살렸다.임·노 건축가는 “겨울 스웨터처럼 낡은 집을 되살리고자
집을 덮고 있던 시간의 흔적을 적당히 걷어내기도, 남기기도 했다”며 “다만 뜯어낸 재료는 다듬어 새롭게 써 기본적인 집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이고 실용성이 가미된 집을 짓고자 했다”고 말했다.
- 임형남 건축가의 루치아의 뜰 스케치/가온건축 제공
폐가를 새롭게 변화시킨 임형남·노은주는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 중인 부부 건축가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공간디자인대상과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하며 실력도 인정받았다.가온건축의 ‘가온’은 ‘가운데’란 뜻의 순 우리말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란 의미가 함께
담겼다. 설계사무소의 이름답게 가온건축은 주택 작업이 많은 편이다. 건축계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큰 호응을 얻은 금산주택을 비롯해 산조의
집·1월의 집·존경과 행복의 집·거창주택 등도 입주를 마쳤다.
- 가온건축의 노은주(좌), 임형남(우) 소장
노 소장은 “50여년의 세월의 흔적과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공간에
다시 숨을 불어 넣는다는 것 자체에 가치를 느꼈다”며 “솔직히 거리도 멀고 품도 많이 드는 작업이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좋아하는 모습에서 가온 건축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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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성준
- 조선비즈 건축 담당기자
- E-mail : huh@chosun.com
- 허성준 기자는 서른 중반의 외모에 외국인을 연상시키는 짙은 쌍꺼..
- 허성준 기자는 서른 중반의 외모에 외국인을 연상시키는 짙은 쌍꺼풀의 소유자지만, 1985년생으로 29세의 서울 출신 청년이다. 200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에 입학했고, 2008년부터 1년여간 인도에서 살며 전역을 떠돌기도 했다. 2010년 4월부터 조선미디어그룹의 경제 전문매체 조선비즈에서 증권, 부동산팀을 거쳐 현재 건축 담당기자로 일하고 있다.
돈 계산은 느리지만, 감수성이 풍부한 허 기자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 건축 분야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내에서도 소문난 주당(酒黨)인 그는 "시세 차익이란 단어보단 우리들을 둘러싼 공간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푸념을 자주 늘어놓는다. 그의 자리에는 주거, 가족, 이웃, 마을, 도시란 단어가 적혀 있다. -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 졸업
- 2010년 조선비즈 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