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건축

집은 돈으로 짓는 게 아니다

해암도 2014. 2. 11. 06:26


‘고객은 왕’이라고 떠받드는 세상에서 고객을 무식하다고 했다가 백수는 족히 살 만큼의 욕을 먹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무례를 저지른 것은, 집이라는 것이 그렇게 ‘평당가’로 쪼개질 수 있는 물건인가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 제기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그렇다면, ‘평당가’라는 것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의 장을 한번 열고 싶었다.
 
건축비를 놓고 건축주와 시공사가 벌이는 시시비비 대부분은 건축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껍데기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가장 답답한 것은, 집이라는 구조체를 제대로 세우는 것보다 마감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목조주택이든 콘크리트 주택이든 구조체는 마감재에 덮여서 보이지 않는다. 그런 부분에 얼마나 돈이 드는지에 대해서 대부분 건축주는 관심이 없다. 그런데 건축공사 기성금의 60%는 구조체와 외장공사 단계에서 지급된다. 나머지 40%의 공사비로 내부 마감공사를 한다.
 
구조물로서의 집을 제대로 지으려면 공사비는 통상 그렇게 분배가 된다. 그렇다면 이른바 ‘평당가’라는 것의 기산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나. 그냥 뭉뚱그려서 평당 얼마라는 식의 건축비 산정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그렇게 건축비에 매몰되면 집의 기능성은 실종된다. 한때 샌드위치 패널을 이용한 전원주택 건축이 붐을 이룬 적이 있다. 이런 집은 구조체와 마감공사비 비율이 일반 건축과는 정반대로 나온다. 상대적으로 건축비도 상당히 싸다. 단순한 구조체로서의 이런 집이 과연 주택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철판으로 둘러싸인 샌드위치 패널 주택은 습도조절 기능이 제로다. 집은 숨을 쉬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그 숨을 마신다. 창문을 통해서 환기하는 것은 일시적이다. 한옥이 우수한 것은 목재와 흙을 적절히 배합하여 사람과 함께 숨을 쉬도록 한 통기성에 있다. 북미식 목조주택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자연 친화적인 기능성 때문이다.
 
집의 기능성은 대부분 구조체에 좌우된다. 구조체는 일단 건축하고 나면 수정이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제대로 지어야 한다. 그래서 건축비는 구조체를 제대로 짓는데 우선 투입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열에 아홉은 마감재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처음 집을 짓는 건축주들이 논현동이나 을지로의 건축 자재 상가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은 많이 보았지만, 목재상을 찾아가서 구조재를 비교하고 직접 고르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건축 구조재로 사용되는 목재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의 목재 등급은 크게 1, 2, 3등급으로 구분되는데, 그보다 상위 등급으로 J 등급이 있다. J는 바로 Japan의 약자다. 일본의 건축주들이 1등급에도 성이 차지 않아서 그보다 더 좋은 구조재를 요구해서 만들어낸 물건이 바로 J-grade 목재다. 마치 대패질을 한 것처럼 표면이 반질반질하고 옹이도 거의 없다. 비싼 구조재를 사용한다고 해서 마감까지 화려한 것은 아니다.

일본의 주택문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다. 돈을 써야 할 곳에 확실하게 쓸 뿐이다. 반면에 한국에서 많이 찾아서 만들어낸 목재로 2+(Two & Better) 등급이 있다. 1등급은 비싸고 2등급은 성에 차지 않아서 그 중간 등급으로 만들어낸 것이 Two & Better 등급이다. 가격과 모양새의 절충, 이게 우리의 현주소다.
 
시장은 수요가 리드한다. 좋은 물건을 사주는 구매자가 있으면 좋은 물건이 나온다. 결국, 돈이 아니냐고 할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돈을 써야 할 물건과 쓰지 않아도 될 부분을 좀 구별하고 넘어가자는 얘기다. 약 30년 전, 필자가 햇병아리 기자로 전원주택을 취재하러 다닐 때의 일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전원주택 시공 전문업체로 꽤 알려졌던 중견 업체 영업부장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던 손님이 있었다.
 
은퇴 후 거주할 주택을 상담하러 왔던 그 분(지금까지 필자가 만났던 수백 명의 전원주택 건축주 중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철저한 분이었다)은 먼저 기본설계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는데 거의 한나절이 걸렸다. 왜 집을 지으려고 하는지, 어떤 집을 지으려고 하며 같이 살 식구는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소설 한 권을 구술하고 갔다. 그렇게 기본설계도면이 완성되자 그걸 모형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지금도 그런 건축주는 거의 없다. 그런데 먼저 모형을 만들어 보고 짓자고 했다. 손 빠른 건축기사라도 며칠은 꼬박 걸려야 도면과 똑같이 간이모형을 만들고 비용도 적지 않게 든다. 그러나 모형을 만들어보면 도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실제 건축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시행착오의 상당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다.
 
추가비용이 든다니까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 과정을 무려 10번 가까이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설계비가 올라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기존 시공 모델이 많아서 설계상담에서 허가까지 통상 한 달이면 족했던 기간이 기본설계를 확정하는 데만 석 달이 넘게 걸렸다. 결국, 상담에서 착공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시공과정에서는 도면대로 시공하는지에 대해서만 체크를 했고 더 이상 다른 말은 없었다. 총 건축비는 의외로 평범하게 들었다. 마감은 지극히 수수한 자재로 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집으로서의 공간을 창출하는데 모든 정력을 다 쏟았다. 그 영업부장이 그랬다. ‘집 장사 10년에 가장 제대로 된 집을 한 채 지어 보았다’고. 30년 전에 그런 분이 있었다. 돈을 써야 할 데를 제대로 아는 분이었다.
 
좋은 집은 좋은 건축주가 만든다. 집을 짓는(Construct) 것과 사는(Buy)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단독주택은 짓는 것이라면 아파트는 사는 것이다. 단독주택은 돈만 들고 있다고 해서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억대 자금이 들어가는 집을 연습 삼아 지어볼 수도 없고 먼저 지어본 사람들의 경험을 사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경험은 배우려 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서 한 번도 지어보지 않은 집을 흔든다. 한 사람이 집을 짓는 것은 한 국가가 성채를 세우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만큼 열심히 준비해야 하고, 집을 짓는 데 있어서 가장 우선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잣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건축주는 경제적인 이유 앞에서 모든 것을 후순위로 돌린다. 정말 지겨울 정도로 ‘평당가’ 타령을 많이 듣는다.
 
전원주택에 대한 가이드북이 전무하던 시절에 책을 한 권 썼다. 많은 분이 책을 읽고 궁금한 점에 대해서 물어왔다. 99%는 전화상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찍 출고할 기사가 있어서 새벽 6시에 출근했다. 운동장같이 넓은 편집국에서 혼자 기사를 쓰고 있는데 중년의 신사 한 분이 찾아왔다. 내가 일찍 출근한다는 사실을 그분이 알 리 만무했다. ‘궁금한 게 많아서 새벽같이 달려와 무작정 기다릴 작정이었다’고 하면서 꺼낸 책에는 새까맣게 밑줄이 그어져 있었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질문사항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새벽같이 찾아온 정성에 기다리라고 할 수 없었다.
 
결국, 원고는 팽개치고 그분 상담하느라 3시간 동안 진을 빼고 제시간에 마감을 못 해서 데스크에 엄청나게 깨졌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런 열정이 집을 올라가게 한다. 모두가 다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집을 짓기 전에 내가 왜 단독주택에 살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단 한 가지만이라도 확실한 이유를 만들어 보라. 그리고 그 이유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결국,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돈에 맞는 집은 얼마든지 지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그것에 맞출 수 있느냐, 비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단독주택을 장만하려는 대부분 사람들은 평생 처음 집을 지어본다. 그러다 보니 너무 생각이 많다. 전문가의 채반에 거르면 십중팔구는 걸러질 그런 생각들이 많다. 그걸 추리고 추려서 현실과 절충을 해야 한다. 그런데 건축가와 시공사는 ‘평당가’의 감옥에 가두어 놓고 집에 대한 구상은 만리장성을 넘나든다. 전문가가 될 수 없다면, 전문가의 충고를 경청할 마음의 문은 열어 놓아야 한다. 그 중간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건축비는 그다음에 따질 일이다.
 
전원생활 거의 20년이 된 필자도 처음 전원주택에 나오기까지 서울 토박이 아내와 함께 거의 1년 동안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때만 해도 전원에서 사람이 그리울 때라 먼저 전원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시행착오를 가감 없이 얘기해 주었다. 전원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차라리 실상을 적나라하게 알고 나면 극복할 자신과 대안이 생긴다. 아니면 포기하게 되든지. 극단을 오갈 자신이 없다면 전문가를 믿고 맡겨야 한다.
 
어떻게 시작하든 집을 짓는다는 것은 인생 설계와 같다. 남이 지어준 집에 돈만 주고 살다가 난생처음으로 집을 지을 때는 일단 마음을 비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인생에도 멘토가 필요하듯이 집을 지을 때도 선경험자에게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 마음을 비워야 먼저 지어본 사람들의 경험이 내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런 간접경험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내 생각의 교정이 가능해진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도 없고 완전히 불완전한 사람도 없다. 집도 그렇다. 좋은 생각을 퍼즐 맞추듯이 씨줄 날줄로 엮어야 좋은 집이 만들어진다. 돈이 부족하면 후일을 기약하면 될 일이다. 꼭 지금 해야 한다면 눈높이를 맞추면 될 일이다. 낮추는 것과 맞추는 것은 다르다. 집을 짓되, 가장 절실한 것과 나중에 해도 될 것을 골라내면 ‘평당가’ 논쟁은 의미가 없어진다. 돈이 필요하기는 하되 돈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집이라는 물건이다.   이광훈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1기  : 2014.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