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를 상징하는 물질은? 아마도 플라스틱과 유리, 두 가지일겁니다. 플라스틱은 일상 생활을 바꿨고, 유리는 건축을 바꿨습니다. 예전에는 유리가 무척 귀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선 창문의 갯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기도 했습니다. 비싼 유리를 쓰는 것에 일종의 `사치세'를 매겼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유리창이 시원시원한 집은 현대에 등장한 가장 현대적인 건축입니다. 자연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이런 유리집, 누구나 좋아하겠죠. 
자연이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오는 집, 유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누구나 이런 집은 좋아할 겁니다.
우리는 최소한의 경계를 이루며 내부와 외부를 연결합니다. 그리고 투명한 소재 자체의 매력을 발산합니다. 안과 밖의 경계가 희미해지며, 그 안에서 양쪽을 다 바라보는 공간을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집에 사는 것은 쉽지 않죠.
일단 돈이 많이 들어서 아무나 짓기 어렵고, 저렇게 경치가 좋은 곳에서만 가능합니다.
주택가에서 저렇게 지으면 밖을 보기는커녕 밖에서 안을 보지 못하게 커튼 치기 바쁘겠죠.
또한 관리하기도 어렵습니다. 냉난방 단열이 첫번째 어려움이고, 또 한국처럼 계절 변화가 크면 결로 현상이 쉽게 생깁니다.
곧, 이런 유리창 넓은 집은 한국이 아니라 지중해성 기후 지대 같은 곳에서나 가능합니다만,
보기에는 최고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미지만으로는 좋아합니다. 그게 유리의 마력입니다.
# 그러면 아예 유리만으로 집을 지어볼까?
누구나 해볼 법한 생각입니다.
실제 건축의 역사에선 실제 유리로 짓는 `글래스 하우스'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건축사에 남은 유명 건물인 글래스 하우스입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필립 존슨이 직접 짓고 살았던 집입니다.

집 자체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기둥만 빼면 4면 전체가 유리입니다. 이건 뭐 집이 아니라 전시장 수준이죠.
필립 존슨은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아버지가 엄청난 주식을 유산으로 물려주었고, 그 덕분에 필립 존슨은 자기가 좋아하는 건축에 아무 걱정없이 빠져들수 있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는 넓은 땅을 사서 틈틈이 자기가 직접 설계한 집을 곳곳에 지으면서 건축 놀이를 즐겼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집이 이 집입니다.

집의 이름이 아예 `글래스 하우스'입니다. 집이 이렇게 생겼으니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없겠죠.
글래스하우스는 유리라는 소재는 `최대한'으로 쓴 건축이지만, 전체로 보면 모든 것을 극도로 덜어낸 `최소한의 건축'입니다.
쇠로 만든 기둥도 최소, 그리고 벽은 유리뿐, 모양도 기본꼴인 네모 상자 그대로.
내부 역시 모든 것을 최소하하고, 절제와 균형의 극치만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집에 과연 살 수있을까요? 멋지기는 하지만 쉽게 질릴 것 같고, 다 들여다보이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필립 존슨은 자기가 건축주였고, 주변에 이웃이 없는 넓은 땅이 있으니 혼자서 저 안에서 벌거벗든 말든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건물이 진정한 건축은 아니라고 비판했지만, 필립 존슨은 이 집을 사랑해서 여기서 숨을 거뒀습니다.
# 최악의 결과가 되어버린 집, 그런데 건축사에 남다
이 글래스하우스는 그러나 원조 논쟁도 빚었습니다. 이런 집을 진짜 생각해낸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이 집 때문입니다.

이 집의 이름은 판스워스 하우스. 판스워스라는 의사네 집입니다.
앞서 본 글래스 하우스와 색깔의 차이만 있을뿐 콘셉트는 거의 같습니다.
뭐든지 다 덜어내, 그리고 유리로만 감싸줘! 라고 절규하는 듯한 건축이죠.
판스워스 하우스는 레고에서 나오는 유명 건축물 시리즈에도 들어있을 정도로 유명한 집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건물을 설계한 이가 미스 판 데어로에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미스 판 데어로에는 건축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되면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이름입니다.
미술로 따지면 피카소 급이라고 할까요,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이 미스 판 데어로에의 건축 철학은 `덜어낼대로 덜어낸 건축'입니다. 그가 남긴 말 `Less is More'는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말로 일컬어집니다. `적을 수록 아름답다', 는 이 말은 건축의 본질 깊숙히 파고들어가는 그의 지론을 대변합니다.
미스 판 데어로에는 철골조와 유리로 이뤄지는 현대건축의 지존입니다. 그는 한없이 투명하고, 내부는 네모 단순한 건축을 평생 추구했습니다. 구조 그 자체가 이미 아름다우니 덕지덕지 꾸미기 위한 장식은 필요없어, 내부 공간은 훤하게 뚫어 다양하게 쓸수 있어, 라고 역설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쌍동이 같은 두 집이 등장한 것이냐, 그건 미스 판 데어로에와 필립 존슨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이런 건축을 함께 이끌었던 파트너였기 때문입니다.
미스 판 데어로에가 독일에서 이런 건축으로 거대한 바람을 불러 일으킬 때 훨씬 후배인 필립 존슨은 그를 미국에 소개했고,
나치의 압박으로 미스가 망명해서 미국에 정착하도록 도움을 준 것도 필립 존슨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두 사람은 사이가 틀어졌고, 이 집을 지을 때에는 얼굴도 잘 안보는 관계로 변했습니다.

미스 판 데어로에의 이 판스워스 하우스는 글래스 하우스와 그 운명이 출발부터 달랐습니다.
글래스 하우스는 건축가 자신의 집이지만, 이 집은 미스의 집이 아니라 건축주 판스워스 박사의 집이었습니다.
사진으로 이렇게 보면 환상적이지만, 건축주 판스워스에게 이 집은 악몽이었습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 문을 열면 모기가 로마 군단처럼 몰려오고, 커튼을 치지 않으면 다 들여다 보이고,
무엇보다도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기까지 했습니다. 곧, 사람이 살 집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애초 건축가 미스와 오묘하고 알콩달콩한 관계로 알려졌던 이 여자 의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습니다.
건축가에게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사냐"고 항의했지만, 건축가는 자신의 철학을 앞세워 무시했고,
결국 사이 좋던 건축주와 건축가는 소송을 벌이며 원수가 되었습니다. 모두 집, 아니 유리 때문이었습니다.
( # 자세한 내용은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을 참고하세요)
좌우지간 그럼에도 이 판스워스 하우스가 건축사에 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미지 자체는 근사하기 때문일 겁니다.
사방 유리인 집, 근사한 경치 속에 정자처럼 존재하는 집, 보기에는 얼마나 멋집니까.
# 진짜 유리집이란 이런 것이다
현대 건축에서 이런 유리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유리집들은 이 말고도 여럿입니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구마 겐고는 이런 집도 지었습니다.

우주선 내부가 아니라 실제 건축물입니다. 제목은 `워터/글래스 하우스'. 일본에 있습니다.
옆쪽 4면 뿐만 아니라 아래와 위로도 투명합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물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너머 바다가 펼쳐집니다.
이미지만으로는 가히 환상입니다.

이 집의 가장 유명한 장면은 이것입니다.
물 위에 유리 상자를 띄운 집 안으로 다시 유리 통로가 지나고, 그 마지막에 동그란 유리방이 있고, 거기에 테이블이 있습니다. 오로지 보이는 것은 한없이 펼쳐지는 바다 풍경.

자연과 건축의 경계가 흐려지고,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사라지며, 한없이 투명함만을 추구하는 집입니다.
물론 이런 집이 가정집으로 쓰기에는 힘들겠죠. 특별한 건축주가 정말 작정하고 지어야만 가능한, 유리라는 재료의 극한에 도전하는 집입니다.
# 우리는 유리집만 짓는다
이처럼 유리는 현대 건축에서 중요하고 매력적이기에, 건축가들은 유리에 대해 늘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다보니 유리집을 자기 건축의 중요한 연구 과제로 삼아 실험적인 건축물로 짓는 이도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산탐브로조밀라노라는 건축회사에서 지은 `글래스 하우스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이건 뭐, 유리에 환장한 집이라고 하겠습니다. 더 극단적인 것은 내부입니다.

자, 이렇습니다...

바닥 빼고는 공간 6면 중 5면이 유리, 그리고 테이블도 유리, 선반도 유리...
도저히 살 수 없는 집이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유리라는 소재로, 그리고 내부의 다른 시설들도 모두 유리로 하면 어떤지 실험하는 집이라 하겠습니다. 일종의 컨셉 하우스.

산탐브로조밀라노는 이런 유리집을 여기 눈밭에다만 지은 게 아니라 곳곳에 지어 실험했습니다.
자연 속에 집이 최대한 투명하게 들어가는 방식을 시험한다, 뭐 그렇게 봐줄 수 있겠죠.

필립 존슨처럼 이런 집도 절벽가에 지었습니다.

예전 소설가 김주영 선생이 나온 사이다 광고가 떠오르네요.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가."

새가 저 유리 천장에 똥이라도 싸면...?
별 쓸데 없는 걱정이 꼬리를 무는 집입니다만 실험이니 넘어갑시다.

그나마 좀 정상적(?)인 유리집입니다. 저 경치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네요.
실험에서 알 수 있듯 이런 전체 통유리집은 주거 본연의 목적보다 새로운 건축을 위해 테스트하는 특별한 건축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볼 수 없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유리에 대한 사람들의 매혹이 계속되는 한 이런 실험적인 유리집은 계속 시도될 것이고,
그렇게 얻은 시행착오 속에서 진짜 현실로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 지금까지 없었던 유리집, 중국에 들어서다
최근, 옆나라 중국에서도 새로운 `글래스 하우스'가 들어섰습니다. 나름 건축계에서 화제가 된 바 있어 살짝 소개해봅니다.

유리집이 들어선 곳은 중국 상하이의 쉬후에이에 있는 롱텅 거리입니다.
그런데, 유리집이 어디 있냐고요?
저기 있습니다. 이 건물이라니까요. 다가가서 보시죠.

이 건물입니다. `이게 무슨 유리집이야'라고 하시겠지만, 유리집 맞습니다. 이 집 이름은 분명 `글래스 하우스'입니다.
다만 유리로 둘러싸지 않고 아예 입구도 없는 듯 콘크리트 상자로 처리했을뿐입니다.
생긴게 이런데도 `유리집'이 된 이유는, 예상 하셨겠지만, 그 내부에 있습니다.

도대체 이건 또 뭐냐 싶습니다.
내부는 철골조가 정직하게 가로세로로 가로지르고, 4면은 온통 노출 콘크리트 벽인데, 그런데,
아래 위가 유리입니다. 천장도 바닥도 유리인 집, 그래서 글래스 하우스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긴거죠.
이 아래층은 요렇게.

목욕하기가 실로 부담스러운 욕실입니다만,
부담스러워서 일을 보지 못할 것 같은 화장실보다는 덜합니다.

이 집의 좀 더 정확한 이름은 `수직 유리집'입니다.
필립 존슨의 글래스 하우스와는 달리 벽은 온통 틀어막과 위아래를 유리로 뚫어버린 집입니다.
이런 집, 도저히 살 수는 없죠. 당연히 실험의 의미만으로 지은 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실제로 지어 구현한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 집을 최종 완성한 건축가는 `Architects: Atelier FCJZ'지만, 실제 아이디어를 낸 건축가는 장융호입니다.
장융호는 중국 건축을 대표하는 거물로, 아버지도 당대의 중국 건축가였던 건축가 집안의 스타 건축가입니다.

장융호가 이 수직 유리집의 아이디어를 만들었던 것은 23년 전이었습니다. 1991년 일본 신건축 주거 디자인 공모 때 이 안을 내서 주목받았었는데, 22년이 흐른 뒤인 지난해 이 건물이 실제로 지어지게 되었습니다.
웨스트 분드 건축과 현대미술 비엔날레가 상하이에서 열리면서 영구 보존용 파빌리온으로 지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리 공간은 빛과 풍경이 수평으로 관통되는데, 그와 달리 `수직으로 빛이 투과되는 집'이란 아이디어를 낸 점에서 이 집은 특별한 생각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렇게 현실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땅과 하늘이란 두 자연이 집이라는 인공 구조체 사이에서 유리라는 물질을 거쳐 연결된다, 는 뭐 그런 시도라 하겠습니다.
여기에 `프라이버시가 없는 공간'이란 점도 건축적으로는 한번 실험해볼만한 주제죠.
하늘과 땅으로 열려있는 집, 정말 특별한 집입니다.
주거로선 어려워도 명상이나 특별한 활동이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지요.
이 모든게 유리 때문에 벌어진 일, 그리고 앞으로도 벌어질 일일겁니다.
인간이 유리라는 물질을 만난 이상, 그리고 유리에 매혹되는 한, 유리를 통한 건축 실험은 계속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쭈욱~.
by 구본준 http://blog.hani.co.kr/bonb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