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정영한(44)이 설계한 경기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의 ‘9X9 실험주택’은 아파트는 물론, 단독주택 설계에 능한 건축계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은 작품이다.
- 건축가 정영한의 9X9 실험주택./김재경 사진작가
건축가는 벽으로 공간을 구분 짓고, 설비와 가구로 공간의
기능을 규정하는 건축 방식에 반기(反旗)를 들고, 사용자가 스스로 공간을 정의할 수 있는 가변적인 평면을 내놨다. 이 때문에 이 집은 기존의
주택 양식에 적응된 사람에겐 어색할 수 있다. 어리둥절하기에 공간을 임의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집이다.건축가는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과를 졸업하고 2002년 독립해 건축설계사무소 ‘스튜디오 아키홀릭’을 열었다. 올해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복합건물 ‘체화의 풍경’으로
서울시 건축상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기획전시 ‘최소의 집’의 총괄 기획을 맡아 대중과 건축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 정영한 건축가./스튜디오 아키홀릭 제공
2층짜리 집인 9X9 실험주택(연면적 93.23㎡)은 1층과 2층이
판이하다. 1층은 각각의 영역이 정의된 전형적인 주거 양식을 적용했지만, 2층은 영역을 정의할 수 있는 가구나 설비를 모두 숨긴 임의의 공간으로
설계돼 있다.실제 외부에 면한 계단을 이용해 2층 출입문을 열면 두 부부가 사는 집임에도 백색 복도와 공간, 유리 문안으로 흙이
깔린 정원이 보인다. 보통 집처럼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방도 없다.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단차가 달라지는데, 복도 끝에 침대가 놓여 있을
뿐이다.
- 주택 내부 평면 설명./스튜디오 아키홀릭 제공
정원 안에는 욕조가 미술품처럼 설치돼 있어 갤러리 느낌이 난다.
책상·식탁이나 싱크대, 가스레인지, 화장실 등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들은 보이지 않는다. 집의 4면, 가장자리를 둘러싼 무빙 월(moving
wall) 속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서쪽 면의 무빙월을 열면 책과 컴퓨터가 놓인 긴 책상이 나오고, 북쪽의 무빙 월을 열면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등이 나온다. 동쪽 면엔 샤워실·화장실·세면대·옷장이 따로 배치돼 있다. 즉, 각 공간을 무빙 월을 필요에 따라 열어
사용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땐 닫아 다른 용도로 공간을 사용하는데 어색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 퍼니처 코리도 방식이 적용된 내부 전경. 무빙월을 통해 공간 활용을 사용자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김재경
사진작가
건축가는 “대다수의 주택과 같이 가구 배치가 공간의 기능을 규정하는 상황을 뒤집었다”며 “모든 공간이
사용자의 임의에 따라 가변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퍼니처 코리도(furniture corridor)’ 즉, 복도에 모든 기능을 집중시키는
설계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는 공간 사용의 가능성을 높여 궁극적으론 경직된 공간을 유연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또 이 주택은 각 공간의 경계뿐 아니라 집의 내·외부의 경계도 모호하다. 흙이 깔린 정원이 주택 내부에 들어와 있는데다,
이를 구획하는 벽을 유리로 처리해 상하좌우에 뚫린 1200×1200(mm), 1800×1800(mm) 크기의 창밖 풍경과 내부 정원이 겹치며
이상감을 일으킨다.
- 1200×1200mm, 1800×1800m의 사각 창./김재경 사진작가
건축가는 “집 내부에 정원과 같은 외부
공간을 들여오고, 정원을 이루는 유리벽과 창의 차경(借景)이 겹쳐지며 내·외부의 경계가 흐려진다”며 “안과 밖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좀
더 새로운 공간 관념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9X9주택은 정영한의 첫 주택작품이지만, 건축가협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의 최종심까지 오를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은 집이다.
- 주택 내부 전경. 내부에 정원과 같은 외부요소를 끌어들이고, 이를 유리로 처리해 창밖의 풍경과 내부의 경계가 흐려진다./김재경
사진작가
강호원 홍익대학교 교수는 건축저널 공간(space)를 통해 “여러 레이어(layer·층)가 겹쳐진 공간
구성은 가장 안쪽 경계인 유리로 더 복잡하게 구성돼 기묘한 느낌이 든다”며 “제한된 규모 속에서 공간적인 풍부함을 얻으려는 건축가의 의도가 잘
드러난 작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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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성준
- 조선비즈 건축 담당기자
- E-mail : huh@chosun.com
- 허성준 기자는 서른 중반의 외모에 외국인을 연상시키는 짙은 쌍꺼..
- 허성준 기자는 서른 중반의 외모에 외국인을 연상시키는 짙은 쌍꺼풀의 소유자지만, 1985년생으로 29세의 서울 출신 청년이다. 200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에 입학했고, 2008년부터 1년여간 인도에서 살며 전역을 떠돌기도 했다. 2010년 4월부터 조선미디어그룹의 경제 전문매체 조선비즈에서 증권, 부동산팀을 거쳐 현재 건축 담당기자로 일하고 있다.
돈 계산은 느리지만, 감수성이 풍부한 허 기자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 건축 분야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내에서도 소문난 주당(酒黨)인 그는 "시세 차익이란 단어보단 우리들을 둘러싼 공간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푸념을 자주 늘어놓는다. 그의 자리에는 주거, 가족, 이웃, 마을, 도시란 단어가 적혀 있다. -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 졸업
- 2010년 조선비즈 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