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8년째 살고 있는 집은 겨울이면 외풍이 유독 심했다.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별로 없을 때 건축비만 아끼려고 싸게 지은
집이었다. 그래도 경량철골조의 표준 공법은 제대로 적용해서 지었는데도 겨울이면 실내 온도가 16도 이상으로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난방비가 적게 드는 것도 아니어서 겨울이면 최소 60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기름값이 들었다.
그 앞서 살았던 집은 생전 처음
지은 집이었지만 무척 따뜻했다. 표준공법을 무시하고 동네 어른들의 충고를 받아 정말 무식(?)하게 지었다. 한겨울이면 소주병도 얼어 터진다는
양평의 강변에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3중, 4중 단열 구조를 적용하여 벽 두께가 무려 45㎝나 되었다. 여름이면 냉장고처럼 시원했고 겨울에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춥지 않을 정도였다.
두 번째 집은 골조만 지어놓고 중단된 현장을 인수하여 마감만 하다 보니 구조 보강에 내
생각을 반영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아내와 아이들이 햇볕이 잘 드는 날은 겨울에도 바깥이 실내보다 더
따뜻하다는 푸념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최소 60만 원 이상 난방비를 쏟아 붓고도 16도 이상 지내본 적이 없었다. 추위에는 거의
이골이 날 정도였지만, 그렇게 7년을 견디다가 이번 겨울을 나기 전에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보일러 진단부터 받아 보았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1, 2층 합해서 약 45평인 집에 보일러 용량이 턱없이 낮은 기종을 달아 놓아서 기름만 하마같이 먹고 난방 효과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실내 온도가 올라가면서 외풍도 피부로 느낄 정도로 줄었다. 흔히들 외풍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내에서 온도 차로 발생하는 외풍도 있다. 처음 이 집에 입주했을 때 하도 외풍이 심해서 문이면 문마다 문풍지를 물샐틈없이 발라 놓았지만 헛일이었다.
그런데 시골에서 올라오신 아버지께서 벽을 만져 보시더니 ‘여기서 찬바람이 나온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벽에 손을 대보니 정말 찬바람이 느껴졌다. 벽체 단열이 약해서 실내와의 온도 차에 따른 공기 이동이 심하다 보니 마치 외풍이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몸으로 겪은 몇 년간의 혹독한 체험 끝에, 좋은 집은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집’이라는 옛날 어른들의 말씀을 만고의 진리로 떠받들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에 빠져들어 여러 채를 짓게 되었다. 패시브하우스는 태양광이나 지열 같은 외부 에너지원의 도움을 받지 않고 건축물 자체의 구조적인 성능만으로 에너지효율을 극대화한 고단열 저에너지주택을 말한다.
통상 패시브하우스의 등급을 구분할 때 3리터하우스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는 1년간 1㎡의 바닥 난방을 하는데 3리터의 등유를 소모한다는 뜻이다. 최근에 들어선 아파트의 평균 난방효율이 12리터하우스, 2000년대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가 16리터하우스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굉장한 고단열 주택이다.
지금까지 여러 채 패시브하우스를 지어본 결과 단열 성능은 정말 탁월했다. 가장 최근에 경기도 가평에 지어 놓은 국민주택규모 패시브하우스는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에도 하루에 가스 소모량이 1∼2㎥에 불과할 정도로 단열효과가 탁월했다. 지난 12월 한 달간 가스비(LPG 기준)는 약 12만 원. 마을에 인입될 예정인 도시가스가 연말에나 들어오기 때문에 LPG로 임시 난방을 하다 보니 가스비가 좀 많이 나왔다.
LPG 기준 1㎥당 단가는 약 4천 원, 도시가스는 1천 원 수준으로 4배 차이가 있지만, 열효율은 LPG가 도시가스보다 약 2.3배 높다. 이를 감안한 LPG와 도시가스의 실제 가격 차이는 1.74배로 도시가스 기준으로 보면 약 7만 원에 불과했다. 국민주택규모 아파트 평균 난방비의 절반 수준이다.
전원주택에 살고 싶어도 난방비가 많이 들어서 못 간다는 사람이 많은데 패시브하우스는 그런 점에서 탁월한 대안이다. 그런데 너무 난방 효과가 탁월해도 문제는 있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보일러가 패시브하우스에 전혀 연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보일러는 3가지 방법으로 가동하는데, 실내 기온과 난방수 온도, 그리고 타이머에 의한 조작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실내 온도를 설정해 놓고 보일러 센서가 자동으로 온도를 감지해서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패시브하우스가 워낙 고단열 주택이라 한번 덥혀 놓은 실내온도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실내온도를 상온(20도)에 설정해 놓으면 보일러가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
최근 건축한 가평의 목조 패시브하우스는 5리터하우스 수준의 단열공법으로 지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단열 성능을 실험하고 있는데, 실내 온도 20도를 설정해 놓았더니 보일러가 거의 돌아가지 않았다. 목구조 자체에 충전하는 단열재는 일반 목조주택보다 4배 이상 고밀도 단열재를 사용하고 3중 유리 시스템 창호에 150㎜ 외단열까지 하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실내는 훈훈한데 보일러가 돌지 않으니 바닥이 차가웠다. 방법을 바꾸어서 난방수 온도를 40도(최저 기준)로 설정해 놓았더니 바닥은 따뜻한데 실내 온도가 26도까지 올라가서 너무 더웠다. 패시브하우스와 같은 고단열 주택은 난방수 온도가 30도만 돼도 미열로 바닥을 따끈하게 유지할 수 있는데,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보일러는 난방수 최저 온도가 40도로 설정돼 있다.
온천수 기준이 25도, 목욕탕의 온탕 기준이 38도, 열탕이 42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난방수 설정온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열 성능이 시원찮은 일반 주택은 이 정도가 돼야 난방이 되겠지만 고단열 주택은 30도만으로도 난방이 충분히 가능하다.
패시브하우스 공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또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패시브하우스는 단열과 보온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자연 환기가 아니라 기계식 환기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면 보일러나 에어컨에 의한 냉난방열이 외기 온도와 섞여서 열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에 열을 뺏기지 않고 기계를 통한 온도 조절을 해서 내외부 공기를 강제 순환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따라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지 않아도 외부에 열을 뺏기지 않고 항상 신선한 공기가 유입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을 적용한 1차 샘플 주택을 구경한 사람들 열에 아홉은 똑같은 불평을 했다.
“이렇게 공기 좋은 데 와서 답답하게 창문을 닫아놓고 살 거면 뭐하러 전원주택에 사느냐.” 창문을 활짝 열고 신선한 공기를 콧내음으로
만끽하고 싶은 본능적인 욕망을 무시하고 너무 기계적인 성능에만 집착한 결과였다. 결국, 두 번째 샘플 주택은 기계식 환기장치를 제거하고 창문을
통한 환기를 전제로 설계했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우리나라 실정과 보일러 성능을 감안할 때 가장 경제적인 단열주택은
7리터하우스 수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일반 아파트보다 열효율이 약 2배 정도 높다. 패시브하우스의 원조 독일에서도 주택의
에너지효율 설계기준으로 바로 7리터하우스를 적용하고 있다.
사실 5리터하우스 이하의 고단열 주택을 건축하려면 건축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든다. 구조적인 성능 개선에 건축비를 많이 투입하다 보니 같은 건축비를 투입할 경우 마감재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7리터하우스
수준이면 일반 주택에 비해 2배 이상의 열효율을 유지하면서도 마감재를 고급화할 수 있다.
그렇게 새로 집을 지어보고 있다. 겨울이
가기 전에 새로 짓고 있는 7리터하우스의 난방 효율을 테스트해서 가장 경제적이고 아름다운 고단열주택의 대안을 제시해 드릴 생각이다. 가평에서도
가장 추운 북한강변은 고단열주택을 테스트하는데 최적의 조건이다.
가평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겪으며 깨닫게 된 사실 한가지.
주말주택으로 싼값에 집을 짓기 위해서 샌드위치 패널을 많이 이용한다. 우리 현장에서도 사무실과 숙소를 샌드위치 패널로 지었다. 대개의
현장사무실이 그렇다. 그래도 일반 공사 현장사무실에 쓰는 것보다는 고단열, 난연 자재를 사용해서 난방 효과는 괜찮은 편이다. 적어도 외풍은
없다.
문제는 습도 조절 효과가 제로라는 것이었다. 친환경 합판으로 실내 마감을 보완했지만, 철판으로 마감된 샌드위치 패널은
조금만 따뜻해도 실내 습기를 그대로 말려 버려서 너무 건조했다. 주말가족으로 지내다 보니 가끔 숙소로 찾아와서 자고 가는 가족들이 이곳에만 오면
감기 기운이 떨어지지 않았다.
습기를 품었다가 내뿜기를 반복하는 목조주택과 샌드위치 패널의 습도 조절 효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주말에 가끔씩 쉬다 가는데 그게 대수냐고 하겠지만, 사람이 사는 집이라면 최소한 구조재는 제대로 써서 지으라고 권하고 싶다. 집은 단순한
구조체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숨을 쉬는 유기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