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오산 ‘윌하우스 가죽공방’의 박상기 대표가 직접 만든 보석함을 보여주고 있다. 한때 노숙자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는 ‘독특한 디자인’과 ‘정성이 담긴 수작업’ 덕분에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김형수 기자]지난 주말 오후 경기도 오산시 오산중앙시장. 시장 한복판에 자리잡은 가죽공예 전문점 ‘윌하우스 가죽공방’에 들어가자 가죽 냄새가 짙게 배어났다. 40㎡ 정도 되는 공간에는 그가 직접 만든 가죽제품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각종 가방·벨트·지갑·신발을 비롯해 색다른 디자인의 도장집·담뱃갑·머리핀·휴대전화 케이스 등이 눈에 들어왔다. 매장 곳곳에 놓인 공예 도구와 가죽·실 등 때문에 다소 어수선했지만, 손님들은 이를 아랑곳 않고 재질과 디자인을 살펴보며 제품을 골라 담았다.
윌하우스 박상기(53) 대표는 작업대에 고개를 파묻다시피 하고 이리저리 가죽을 만지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가 문양을 새기고, 재단을 하자 밋밋했던 가죽조각은 어느새 그럴듯한 지갑으로 다듬어지고 있었다. 윌하우스의 겉모습은 지방 전통시장에 위치한 여느 상점과 다름없다. 특별히 인테리어에 신경 쓰거나 따로 광고를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이 가게의 월 매출액은 2500만원에 달한다. 비결을 물어보니 첫 답변이 엉뚱하다. “저도 잘 몰라요. 그냥 사람들이 많이 와요.”
박상기 대표는 평상시 메모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이를 스케치한다. [김형수 기자]그가 직접 공방을 차린 건 1980년대 초반이다. 공고를 졸업한 이후 그림을 배우겠다고 화방을 전전하다 우연하게 접한 가죽공예의 세계에 매료됐다. 대구의 한 가죽공방에서 일하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운 뒤 직접 공방을 차렸다. 작은 장신구에서부터 문구류·가방·대형 장식품까지 그가 만들어낸 가죽제품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좋은 평판을 받았다. 90년대에는 백화점에 납품할 정도로 꽤 크게 사업을 벌였고, 지역 공예협동조합에서 임원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외환위기로 빚더미에 앉게 됐다. 그는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게 실패했다”며 “가죽 때문에 망했다는 생각에 가죽공예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고 회고했다.
박 대표가 2009년 초 오산 중앙시장에 좌판을 깔 때 처음으로 내놓은 가죽공예품들의 사진. [김형수 기자]이후 그의 독특한 손 매무새가 입소문이 나면서 서서히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다. 매일 오전 6시부터 가죽 일에 매달려 오후 9시에야 작업을 마치는 고된 하루의 반복이었지만 그를 짓누르던 수억원의 빚도 갚을 수 있었다. 매장도 넓히고 시장 인근에 별도의 작업실도 마련했다.

독특한 디자인도 그가 꼽는 자신만의 강점이다. 가죽은 가공 방법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고, 조각이나 그림을 그려 넣고 염색을 하는 등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다. 가죽공예에선 디자인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그는 평상시 메모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이를 기록한다. 그는 ‘요철 문양이 형성된 통가죽 및 그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를 내기도 했다. 요철을 활용해, 가죽에 입체적인 질감을 입히는 기술이다. 그는 “가죽에 아주 미세한 문양을 섬세하게 형상화하려면 상당한 노력과 손재주가 필요하다”며 “공고를 다닐 때 터득한 기술과 졸업 후 잠시 배운 미술공부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제품은 가격이 제법 나간다. 가죽으로 만든 탁자는 350만원, 가죽가방은 30만~130만원 등이다. 하지만 소형차 값에 달하는 외국 가죽명품에 비하면 훨씬 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대표는 “가죽을 잘 모르는 소비자라면 상당히 비싸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진정 가죽을 즐기는 매니어들은 가격을 따지지 않는다”며 “어떤 가죽을 쓰고, 얼마나 정성을 들여 창의적으로 제품을 만들었는지가 명품과 평범한 제품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라”는 말을 꼭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돌아보면 정말 형편없는 인생을 살았다. 지금 잘되고 못되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다 보면 운도 따르고 일도 잘 풀리게 된다. 이런 평범한 진리를 늦은 나이에 깨달은 것이 안타깝다.”
사진=김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