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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거는 언제나 더 분열된 쪽이 패했다”

해암도 2024. 3. 1. 06:34

[유석재의 돌발史전] 

‘한국정당정치사’ 쓴 심지연 전 한국정치학회장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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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 전 한국정치학회장. /이태경 기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증보판이 새로 나오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한국정치학회장과 국회입법조사처장을 지낸 정치학자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가 쓴 ‘한국정당정치사’(백산서당)입니다.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에 해당하는 한 장(章) 100여 쪽 분량의 원고가 5년마다 새로 추가되는 것입니다.

 

2013년 두 번째 증보판이 나왔을 때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광복 이후 한국의 정치사는 ‘위기와 통합의 정치’라는 원리로 작동해 왔습니다. 모든 대선과 총선에서 한 번의 예외도 없었습니다.”

 

이렇게만 들어면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조금 더 그의 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정치인은 늘 이합집산(離合集散)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한국 유권자는 이 과정에서 언제나 집(集)과 합(合)을 선택했고 이(離)와 산(散)은 외면했습니다.”

 

이 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게 됩니다.

 

“뭉치면 이기고 흩어지면 진다.”

 

정말, 이렇게 간단했던 걸까?

 

그런데 이렇게 간단한 공식이 정작 선거판만 닥치면 제대로 보이지 않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양쪽 모두가 통합을 지향할 때는 ‘더 큰 통합’을 이룬 쪽이 이겼다는 것이죠. 심 교수는 2002년 18대 대선에 대해 “대통합을 이룬 박근혜 후보가 소통합에 그친 문재인 후보를 이긴 선거였다”고 했습니다.

 

좀더 자세히 들어가면 이랬습니다. 당시 여권은 19대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를 중심으로 한 내부적 통합을 이뤘고, 이를 바탕으로 구야권 인사 영입과 충청권 기반 정당인 선진당과 합당함으로써 보수 진영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야권은?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협상에서 ‘감동’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통합의 효과를 보지 못했고, 진보정의당과 통합진보당 후보가 문 후보를 지지한 것도 이념적으로 융합이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통합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입니다.

 

2018년 세 번째 증보판이 나왔을 때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던 시절에는 통합에 성공했지만, 대통령이 된 뒤에는 여권 통합에 실패해 정권 실패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당은 최순실 등의 국정 농단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야당의 책임도 크지만, 그들은 분열을 피했기 때문에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겁니다.”

심지연 교수가 지난 주 출간한 '한국정당정치사'제4차 증보판. 2004년 첫 출간 이래 정권 교체 때마다 증보판을 냈다. 정당의 성패는 통합이 좌우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2023년 네 번째 증보판 때는 제가 인터뷰하진 않았습니다만, 이 때도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단일화한 덕분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김동연 후보와 단일화했지만 통합 규모가 보수 쪽이 더 컸습니다.”

 

그보다 앞서 2020년 21대 총선 직전 제가 하도 궁금해서 심 교수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가 이런 예측을 했습니다.

 

“야당 쪽이 훨씬 분열이 크다고 봐야 합니다. 여당이 상당한 격차로 이길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 예측은 들어맞았습니다.

 

현재 4차 증보판까지 나온 ‘한국정당정치사’는 933쪽에 이르는 대저(大著)입니다. 이 방대한 연구 끝에 도출된 ‘한국 선거의 법칙’은 이것입니다.

 

①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저는 책을 읽고 심 교수를 인터뷰한 뒤 이렇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사석에서 그에게 말했더니 일리 있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것은 이것입니다.

 

②잘한 쪽이 이긴 게 아니라, 언제나 못한 쪽이 졌다.

 

그런데 만약 선거를 앞두고 자위(自衛)를 위한 분당 수준의 분열을 의도적으로 일으키는 경우가 생길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며칠 전 다른 일로 심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가 끊기 전에 물어봤습니다. ‘이번 총선 어떻게 될까요?’ 그는 “아직은 선거일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느냐”며 말을 아꼈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이 그다지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