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마트 끊고 1년... 채집, 수렵으로 살아보니" 한국엔 자연인, 영국엔 이 여인

해암도 2024. 2. 17. 12:56

스코틀랜드 채취인 할머니의 ‘야생의 식탁’
수렵과 채집만으로 1년 생활, 체중 30kg 감량
버섯으로 풍성한 식탁… 탄수화물 그립지 않아
식량 지도 머릿속에… 1시간 산책에 먹거리 해결
고등어 낚시, 겨울은 사슴고기로 단백질 보충
버섯이 나를 불러… 생화학 신호 들린다
야외에 나가, 계절마다 무엇을 먹을 지 찾아보라

 
 
▲‘야생의 식탁’의 저자 모니카 와일드(Monica Wild). 블랙프라이데이가 시작되는 날, 소비 저항의 의미로 1년간 채집 수렵으로만 생활하는 ‘야생의 식탁’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여기 1년간 마트를 끊고 사계절을 오로지 수렵과 채집만으로 생활을 꾸린 실험가가 있다. 영국의 채취인 모니카 와일드는 코로나 기간에 1년간의 수렵 채집을 계획하고 겨울부터 이듬해 겨울까지 사계절을 야생식으로만 ‘버텼다’. 아니 ‘버텼다’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다.

 

그가 먹고 뜯고 산책하며 보낸 365일의 기록 ‘야생의 식탁’을 보면, 책갈피마다 군침이 절로 돈다. 어수리 튀김, 꾀꼬리버섯을 곁들인 훈제 고등어, 훈연한 바닷소금, 산사나무 열매 셰리주, 석잠풀 덩이뿌리 찜, 쐐기풀잎 칩, 구운 야생 사과… 자연에 먹을 것이 이토록 많았던가!

 

모니카 와일드는 기후 위기를 염려하면서도 당장 블랙프라이데이에 무한 욕망의 소비 지옥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며, 이 실험을 계획했다. 그동안 채취 강습생들에게 수없이 들어왔던 질문 “채취만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요?”라는 의문에도 속시원히 답할 겸, 고대 인류처럼 살아보기로 한 것.

 

다행히 그는 숲이 우거진 스코틀랜드 중부 지역 바람부는 언덕 위에 세 명의 하우스메이트들과 살고 있었다. 한 명은 버섯에 도통한 동료 채취인이었고, 한 명은 해초를 널어놓은 집안에서 의연히 프라이드치킨을 먹는 사람이었지만, 그들이 어울려 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봄 여름 가을에는 버섯과 나물과 열매, 해초와 물고기를 찾아 숲과 바다를 이동하고, 겨울은 저장식품과 이웃 사냥꾼의 선의에 의존한 채 사계절을 슬기롭게 관통한다. 허기와 결핍을 각오한 실험이었으나, 자연은 그를 굶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피클과 허브차와 술을 담그며 계절을 누리는 이 다정한 스코틀랜드 할머니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갯벌의 보물과 하지의 햇살, 야생의 자아를 지탱하는 ‘우정의 근거'로 서식지를 고백하는 이 자연철학자의 이야기는 음식보다 더 풍미 있다. 모니카 와일드는 홀로 세 아이를 키우다 쉰 살에 대학에 들어가 약초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침실 창밖으로 너도밤나무가 보이는 모니카 와일드의 언덕 위의 집.

 

-스코틀랜드의 요즘 날씨는 어떻습니까?

“스코틀랜드는 지금 겨울입니다. 일조량이 매우 낮고 오후 4시가 되면 어두워지죠. 춥고 비가 내리며 가끔 눈과 함께 혹한이 찾아옵니다. 그럼에도 몇몇 야생 먹거리를 발견할 수 있고, 밖으로 나가 그런 먹거리들을 발견하면 힘이 나요. 분홍 쇠비름, 봄맞이냉이, 겨울냉이, 수영, 별꽃과 같은 일부 식물들은 겨울에도 계속 자생합니다.

 

-1년 수렵 채집 프로젝트를 해보니 어떠셨어요? 나의 동물성, 식물성 혹은 인간성을 동시에 자각하는 나날이더군요.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1년간의 실험이 끝날 즈음에는 한 해를 더 이렇게 지내라고 해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매일 인스타그램에 식단을 게시하면서 자신감과 자제력이 생겼어요. 생각만큼 커피와 초콜릿이 아쉽지 않았고 감자, 빵, 파스타는 영원히 안 먹어도 될 것 같아서 기쁩니다.

야생식을 채취하다 보면 정신이 또렷해지고 집중력이 올라와요. 예전에는 그냥 산책에 나서서 반찬거리를 조금씩 따왔다면 이제는 모든 산책에 목표가 생겼죠. 먹을거리를 찾아다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슈퍼마켓에서 쇼핑하기가 싫어집니다.”

 

-어떤 계절이 가장 지내기 좋았습니까?

“봄, 가을은 지내기가 정말 좋아요. 야생 먹거리가 가장 풍부한 시기죠. 봄에는 신선하고 맛있는 녹색 새싹들과 속이 꽉 찬 조개류, 아삭하고 감칠맛이 나는 해조류가 풍부합니다. 가을에는 산딸기, 자연산 버섯, 단밤과 헤이즐넛이 풍부하죠. 그러나 제가 사는 스코틀랜드는 다섯 계절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해산물과 봄나물에 의존하는 춘궁기가 지나면 진짜 봄은 4월 말에 시작되죠.

여름은 다른 장소로 이동하지 못하면 견디기 힘든 계절입니다.

저는 여름에 주로 해안가로 이동해서 풍성한 먹거리들을 수확했어요. 샘파이어, 명아주과 같은 바다 채소를 구할 수 있고 고등어 낚시도 했어요. 꾸준한 영양 공급을 위해 해안가에서 캠핑을 했습니다.”

▲갯근대, 삼각 부추, 사과를 더한 잎새버섯 볶음.

 

-겨울에 산토끼나 다람쥐를 먹을 땐 기분이 어땠나요?

“겨울에는 고기가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라 이웃이 선물한 산토끼를 먹었어요. 대신 산사나무를 심어 산토끼에게 더 많은 은신처와 겨울 식량을 제공하는 것으로 감사를 표했지요. 제 몸도 다른 동물들처럼 지방이 거의 없는 상태라, 이웃이 준 다람쥐 세 마리의 몸에 붙은 지방을 발라내서 프라이팬에 녹여두기도 했습니다.

육류만 먹으니 몸의 체취가 강렬해진다고 느꼈어요. 산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은 오직 채소뿐이었답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채취란 무엇인가요?

“채취는 ‘사냥, 낚시, 식물 채집으로 식량을 획득하는 행위’입니다. 매우 육체적이고 지적인 행위지만, 조금만 공부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잠시 잊고 있을 뿐, 인간은 지구에 존재한 모든 시간 동안 채집을 해왔으니까요. 채취는 내 발아래 지구와 나의 육체성을 연결해 줍니다.”

 

-보통 사람도 채취로 살아갈 수 있나요?

“물론이죠. 일단 선호하는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을 택해야 합니다. 위치 선택은 생존의 문제죠. 대강이라도 한 해의 식생을 잘 아는 지역을 찾고, 주변에 해조류 채취와 낚시도 가능하면 좋습니다. 더불어 냉장고(보관)와 자동차(이동), 단열이 잘 되는 거처(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나려면)가 있으면 금상첨화고요.”

 

-1년 채취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당신이 정한 규칙은 무엇이었죠?

“몇 가지 규칙을 정했어요. 1 오로지 야생식만 먹는다. 2 다양한 서식지를 다니며 현지 식량을 구한다. 3 돈은 쓰지 않고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 4 물물 교환은 가능하다. 5 제철 음식을 먹되 겨울에는 미리 채취해서 보존 처리한 야생식도 섭취한다.”

▲야생 살구 버섯으로 가득한 스코틀랜드 숲.

 

-한국의 석학인 언어학자 고 이어령 선생은 선사시대 육체노동을 이어받은 ‘캐는 인간’을 코로나 인류의 미래로 지명했습니다. 한국에는 산에서 산삼을 캐는 심마니와 바다에서 전복을 캐는 해녀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연의 엷은 막에서 손으로 후드득 직접 생명을 캐냅니다. 그들에 대해서 동료의식을 느끼시나요?

“네, 그분들에게서 동지애를 느낍니다. 비록 환경은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그분들의 활동은 자연계의 주기와 리듬에 깊이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서로 만난 적도 없고 저는 그분들을 잘 알고 있지도 않지만, 우리에겐 공감할 수 있는 연결 고리와 서로가 존중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꼭 한번 뵙고 싶네요.”

 

-반면에 또 한국에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컨셉으로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서 자급자족하는 중년 남성들도 있습니다. 도시의 삶에 지쳐 고립을 자처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들이지요. 당신과 함께한 오두막의 동거인들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은둔 생활은 흥미롭지만 혼자서 살아가는 삶은 위험해요. 저와 제 동거인들은 모두 주변이 자연 그대로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시골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작은 섬이고 집값이 비싸서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혼자 살 수 있는 여유가 없었죠. 그래서 자원을 공유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지였습니다.

맷과 게저와 저는 셋 다 독신이며, ‘버섯맨’이라는 별명이 붙은 남성 동료 맷은 저의 야생식 실험에 동참해 주었습니다. 반면 게저는 빨래건조대에 해초가 가득 널브러진 가운데서 프라이드치킨을 사 와서 먹기도 했어요.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함께 사는 데 익숙합니다.

요즘엔 혼자 사는 분들이 많지만 작은 규모의 핵가족으로 사는 것은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꽤 최근에야 자리 잡은 관습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야생식을 하면서 이웃의 도움을 많이 받으신 것 같습니다. 이웃이 없었다면 겨울엔 동면에 들었어야 할 거라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사실 이웃분들이 제 계획에 대해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후한 인심을 보여주실 줄은 몰랐어요. 이곳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살아온 로컬 농부 한 분은 저를 ‘제정신이 아니지만 무해한’ 사람으로 보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본인이 소유한 땅 어디에서나 야생 덩이줄기와 뿌리를 캐도 된다고 허락하셨죠.

또 병충해 방제 목적으로 회색 다람쥐, 야생 토끼, 산비둘기와 같은 동물들을 가두어 놓은 사람들도 그것들을 먹을 수 있도록 저에게 기꺼이 나누어 주셨어요. 폭설로 인한 고립이 알려지면서 훈제 비둘기, 사슴 지방, 버섯 피클 등의 음식 선물 꾸러미도 도착했어요. 음식은 가장 사소하면서 가장 큰 선물입니다. 저는 죽음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으니까요. 그것보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질입니다.”

▲야생버섯이 발견되는 스코틀랜드의 전형적인 너도밤나무 숲지대.

 

-때때로 숲이 나를 경계하거나 환영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나요?

“숲에서는 거의 늘 환영받는 느낌입니다. 숲은 결코 위협적이지 않아요. 다만 날씨는 위협적일 수 있어요! 극심한 추위, 폭우, 눈보라 때문에 자연이 매우 사나운 것처럼 착각하죠.

숲은 이미 살아 숨 쉬고 있어서 어느 순간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밤이나 해 질 녘에 다른 감각이 살아나서 이전에는 무시하고 지나쳤던 수많은 생명체가 우리 주변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더 잘 인식하게 되죠. 알고 보면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은 우리 자신에 대한 감정일 뿐입니다.”

 

-식물도 인간처럼 서식지를 까다롭게 고른다면서요? 식량 지도란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 봄에는 벚나무가 예쁘지만, 버찌를 먹고 싶다면 여름에 벚나무를 찾아가야 합니다! 어떤 식물은 숲 아래의 그늘진 장소를 어떤 식물은 개활지를 선호합니다. 저는 항상 식물이나 버섯의 입장에서 생각했어요. 나도산마늘은 그늘진 삼림지대를 좋아하고 까마귀마늘은 양지바른 모래땅을 좋아해요. 꾀꼬리버섯은 이끼로 뒤덮인 자작나무를 좋아하죠.

제 머릿속에는 모든 버섯이 자라는 ‘지하 지도’가 있죠. 수렵 채집을 하는 저의 모든 친구가 이와 같은 경험을 합니다.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대략 2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에 대한 정통한 지식과 20~30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보유할 수 있다고 해요. 현대인의 대부분은 이런 능력을 상실했지만, 가능한 일입니다.”

 

-특별히 버섯과 베리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더군요!

“버섯은 사시사철 나타나서 다양한 식감과 레시피로 야생의 식탁을 격려했어요. 갖가지 베리 열매가 없었다면 겨울에 육식의 힘겨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겁니다.”

 

-숲에 있으면 버섯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도 사실인가요? 정말로 식물과 소통이 가능한지요?

“인간이 아닌 종이 보내는 신호가 있어요. 식물의 언어는 생화학의 신호로 존재해요. 버섯전문가는 균류의 지능을 이야기하는데, 언젠가 입자 물리학을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래요. 어쨌든 모든 생명은 유기체의 영혼 에너지로 연결되어 있어요.

특별히 산딸기를 채집하거나 버섯을 찾을 때 집중하는 상태가 되고, 영혼의 움직임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명상하는 것과 유사하죠.

산만한 ‘원숭이의 마음’이 물러가면 내적인 고요함이 찾아오고 이 순간에 식물과 버섯의 소리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가끔은 낯선 곳에서도 그 소리가 들려요.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분명히 제정신입니다!”

▲8월에 난 버섯과 이파리들.

 

뛰어난 채취인이라면 한번 먹을 것을 발견한 곳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자동차 열쇠를 어디 두었는지는 깜빡깜빡 하지만, 한번 먹을 것을 발견한 곳은 절대로 잊지 않아요. 뇌의 원초적인 부위에 각인됩니다. 제 머릿속에도 숲의 모든 버섯 균사체 지도가 있어요. 건축 도면의 레이어와 비슷해요. 레이어를 켜고 끄면서 지표면 아래를 볼 수 있습니다.”

 

-낚시꾼들도 머릿속에 바다 아래 지도를 그릴 수 있다면서요?

“네. 저는 여름이면 해안가로 이동해서 고등어 낚시를 했어요. 처음 본 낚시꾼 닉에게 낚시를 배웠죠. “최대한 덜 고통스럽게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라는 저의 질문에 닉이 그러더군요. “두 눈 사이에 칼을 꽂으면 뇌신경이 끊어져서 금방 죽어요.”

닉도 바다 아래의 지도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더군요. 썰물 때면 걸어 다니면서 도랑과 웅덩이를 살피고 해초가 자라는 곳을 확인한다고요.”

 

-어느 순간, 시간의 대부분을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게 괴롭지 않았나요? 초기 인류와 하나가 되는 건 좋지만, 문명과 오락,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도 동하지 않았을까요?

“한정된 기간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괴롭진 않았어요. 게다가 채집 활동은 하루에 평균 1~2시간밖에 걸리지 않아요. 젊은이들이 소셜 미디어에 쓰는 시간보다 적죠. 저는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원한다면 영화관이나 극장에 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보통 주말에 하루를 채집 활동에 투자하면 일주일 동안 충분히 먹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토착 부족민들도 도시인들이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적은 시간을 사냥과 채집 활동에 할애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리죠. 그러나 이것은 따로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커피와 탄수화물과 치즈 중 무엇이 가장 간절했나요?

“재미있게도 그 어느 것도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커피, 초콜릿, 감귤류 과일이 그리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3일이 지나자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어요. 장 속의 박테리아가 적응하고 나면 더 이상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또한 야생 음식은 같은 양이라도 더 많은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어서 혈당이 떨어지거나 ‘배가 고파서 화가 나는’ 일이 없습니다.

가끔 치즈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못 참을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겨울에 가장 생각나는 건 과일과 색깔이 있는 음식이었죠. 겨울 음식은 온통 갈색과 짙은 녹색뿐이거든요.”

▲직접 훈제한 고등어에 야생 루꼴라와 그물버섯.

 

모니카 와일드는 ‘야생의 식탁’에 채취의 기술과 수려한 자연 레시피 뿐 아니라 식생과 인류의 역사에 관한 깊은 통찰을 담았다. 농사 전문가가 된 후 인류는 이동을 멈췄고 계급을 만들었고, 채취인, 유목민, 사냥꾼은 사회주변부로 밀려났다. 땅없는 빈민이 몰려들면서 18세기 도시는 신선 식품 부족과 열악한 위생으로 전염병이 창궐했다.

1940년대, 항생제가 나오면서 질병의 종말을 꿈꿨지만, 196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 2명 중 1명은 암에 걸려 죽는다. 한 해에 350종의 식물을 섭취하던 수렵 인류는 오늘날 일일 칼로리의 절반 이상을 쌀, 밀, 옥수수 단 세 종류의 곡물에서 얻고 있다. 식품은 산업화되었고, 초가공 식품 등으로 음식은 너무 복잡해졌다.

지난 1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에 등장했던 마크 하이먼 박사의 지적대로 질병의 원인은 불균형이고, 불균형은 ‘녹말과 설탕의 홍수’ 속에서 앉아서 생활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모니카 와일드의 삶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야생식 후 체중이 30kg 줄었다고 했습니다. 부러워라! 특히 감자, 빵, 파스타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니, 귀가 솔깃해집니다.

“저는 체질상 탄수화물을 최소한으로 섭취하지 않으면 금방 다시 살이 찝니다. 그래서 등산이나 하이킹 같은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 공급이 있어야 할 때만 탄수화물을 섭취하죠. 북부 지역의 기후에서는 중석기 시대의 식단을 통해 일 년 내내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가 없었습니다. 계절에 따라 식탁에서 탄수화물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시기가 있죠.

글루텐도 마찬가지입니다. 곡물은 여름에 익고 예로부터 겨울에 먹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일 년 365일 내내 곡물을 섭취하며 몇 년이 지나면 글루텐 불내성을 경험하죠. 제철에만 섭취하면 몸에 과부하가 걸리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다양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요. 스펠트밀, 테프밀 또는 엠머밀와 같은 고대 밀에서 수확한 곡물도 추천합니다. 저는 소화가 잘되는 외알밀을 가장 좋아해요. 우리 조상들은 곡물을 섭취했지만 다양한 종을 함께 섞어 먹었어요.”

▲풍성한 자연의 레시피가 입맛을 돋우는 모니카 와일드의 통찰력 깊은 사계절 이야기 ‘야생의 식탁’.

 

-최근에 슈퍼마켓에 간 적이 있습니까?

“저는 슈퍼마켓에 거의 가지 않습니다. 간다면 가끔 사용하는 유기농 버터나 크림 같은 유제품이나 고양이 사료를 사러 가는 정도입니다. 고양이는 혼자서도 쉽게 사냥하지만 고양이 사료를 주면 새들을 괴롭히는 일이 없죠.”

 

-요즘은 무얼 먹고 또 무얼 하고 있나요?

“요즘엔 혼합 식단을 실천하고 있어요. 매주 로컬 유기농 도매상에서 구매하는 유기농 채소 중심으로 취나물과 바닷가에서 채취한 해조류, 야생 버섯을 곁들인 식단이죠. 매주 현지에서 잡은 생선을 구입하고, 사슴고기와 산비둘기도 먹습니다. 가끔은 지역 농부가 공수한 원산지가 확실한 양고기도 먹어요.

최대한 제 체질에 잘 맞는 야생식을 실천하지만 언제나 같은 식단을 먹지는 않아요! 겨울에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거나 숲으로 나가 채집을 하며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를 예의 주시합니다.”

 

-책 중간에 동네 친구의 자연 분만을 돕는 모습과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가 둘째를 계획하고 있다는 문장이 병치된 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도울 수 있어서 무한한 영광이었습니다! 다음 세대는 늘 우리보다 현명하니까요.”

 

-서식지를 공유하는 것이 우정의 증거라는 사실도 반가웠어요. 도시인들은 자기만의 맛집을 공유하는 것이 ‘애정 표현’입니다만.

“채취인에게 자기만의 채취 장소를 공유한다는 것은 엄청난 존중과 우정의 표시입니다. 그곳에는 생계뿐 아니라 발견의 기쁨과 관련된 자기만의 추억이 있지요. 그런 곳에는 진정한 친구만이 입장할 수 있어요. 탐욕스럽지 않고 이윤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사람!”

▲온갖 발효저장식이 가득한 부엌에 서 있는 모니카 와일드.

-문득 궁금합니다. 당신에게 친구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가장 진실한 ‘야생의’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죠. 인간은 원래 고독한 동물이 아니었기에 저는 함께 먹고 걸을 수 있는 친구가 소중해요. 진정한 친구는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도 있다’는 자연의 기본 법칙임을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배달 음식과 초가공식품으로 연명하는 가여운 콘크리트 시민들에게 자연과 가까워질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 팁을 부탁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건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죠.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으니까요. 지역의 야생 식물을 관찰하며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곳에서 자라는 걸 선호하는지 등등을 알아보세요.

생선을 주로 먹는 이누이트도 베리를 따러 다녔고 우유로 고단백 식단을 유지한 마사이족도 다양한 야채를 먹었죠. 좋은 식단을 구성하려면 야외에 직접 나가 계절마다 무엇을 먹을 수 있는 지 찾아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