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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마지막 인터뷰 될걸세” 주역 대가 김석진 옹의 마지막

해암도 2024. 2. 1. 16:06

“이게 마지막 인터뷰 될걸세” 주역 대가 김석진 옹의 마지막

  • 카드 발행 일시2023.04.17

 

#궁궁통1

연초에는
대산(大山) 김석진 옹을 찾아가
세상에 대한
주역적 전망을 묻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참,
뜻밖이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저에게
대산 선생께서
말했습니다.

 

  “이게 마지막 인터뷰가
   될지도 모르겠다.”

대산 김석진 옹은 자타가 인정하는 당대 제일의 주역가였다. 그는 “주역은 항상 변하는 세상을 대상으로 한다”며 말했다. 중앙포토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유, 건강하셔서
   내년에도 좋은 말씀을
   해주셔야지요.”

대산 선생은
엷은 미소를 띠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꼭
   점심을 사고 싶다.”

뜻밖이었습니다.
지금껏
수차례 인터뷰를 했지만
그런 식의 말씀은
없었거든요.
아, 이건 뭔가
예년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깥에 나가서
점심을 먹으려면
자동차로 이동을 해야 하고,
대산 선생께서
아무래도 불편하실 것 같아
괜찮다는 말씀만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선 제자에게
“그럼 자네가 가서 점심을 대접하라”고
일렀습니다.

저는 제자분과 함께
근처 식당에 가서
냉면과 만두를 먹었습니다.
그때도 말했습니다.

  “참, 이상하시네요.
   지금껏 한 번도
   마지막 인터뷰라거나
   점심 대접 하고 싶다는
   말씀은 없으셨는데 말이죠.”

인터뷰할 때
건강이 안 좋으셨느냐고요?
아니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96세의 나이에도
상당히 기운차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의아했습니다.

 

 

#궁궁통2

인터뷰를 한 기사가
올해 2월 9일자에 실렸습니다.

얼마 후에
대산 선생의 제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께서 별세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갑자기 건강이 약해져
병원에 입원했다가
1주일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인터뷰를 할 때만 해도
정정해 보였거든요.
인터뷰 기사가 나간 지
불과 엿새 뒤였습니다.

대산 선생은 생전 마지막 인터뷰를 할 때도 두 손을 적극적으로 써가며 활기차게 물음에 대답했다. 중앙포토

서울 아산병원에 차려진
빈소를 찾았습니다.
조문한 다음에
대산 선생의 제자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래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하늘로부터 받은
   수명은 76세다.
   현대 의학이 발달해
   더 오래 산다면 86세까지 갈 거다.
   만약 그보다 더 오래 간다면
   96세까지 갈 거다.”

그때만 해도 제자들은
그냥 그런가보다 했답니다.
그런데
올해 세상을 떠난
대산 선생의 연세는 96세입니다.

참 묘하더군요.

#궁궁통3

14년 전이었습니다.
대산 선생께서
대전에 사실 때
자택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터뷰 주제는
단군 시대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이었습니다.

마침 대산 선생께서
『하늘과 땅 사람이야기-대산의 천부경』이란
책을 냈었거든요.

혹시 ‘부신(符信)’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나무조각이나 두꺼운 종이에
글자를 쓰고
증인(證印)을 찍은 뒤에,
두 조각으로 쪼개서
한 조각은 내가 갖고
나머지 한 조각은
상대방에게 주는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서로 맞추어서
증거로 삼던 물건입니다.

천부경(天符經)의 ‘부(符)’자에도
그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대산 김석진 옹은 우리 민족의 경전인 ‘천부경’에는 하늘의 이치가 온전히 담겨 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이름이 천부경이니,
하늘의 뜻과
경전에 담긴 뜻이
쪼개서 둘로 나눈 듯이
맞아떨어진다는
의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천부경에는
하늘의 이치가
온전히 담겨 있는
셈입니다.

#궁궁통4

그날 인터뷰에서
저는 ‘천부경’의 첫 구절부터
물었습니다.

-‘천부경’의 첫 구절이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이다.
무슨 뜻입니까.

  “옛사람들은
   둥근 하늘을 그릴 때는 원(O),
   작은 하늘을 그릴 때는 점(·),
   하늘을 무한히 넓혀서
   말할 때는 한 일(一)자로 표현했다.
   천부경의 일(一)은
   우주의 시작을 뜻한다.”

듣고 보니
놀랍더군요.
우주의 시작,
현대 과학에서는
그걸 ‘빅뱅’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천부경’에서 말하는
우주의 시작은
그보다 더 뜻이 깊습니다.

왜냐고요?
현대 과학에서는
‘빅뱅 이전’이라는 게 없습니다.
만약
빅뱅 이전이라는 게 있다면
빅뱅이란 출발점을
거기로 옮겨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천부경’은
달리 말합니다.
하늘과 땅이 생겨나기 전에
우주의 바탕은
그냥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주의 시작과
우주의 시작 이전은,
다시 말해
빅뱅의 시작과
빅뱅 이전은
둘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빅뱅 이론이
현상계의 시작을 말한다면,
‘천부경’의 첫 구절은
현상은 물론이고
현상이 생겨난 뿌리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대단합니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으로
불리었습니다.

대산 김석진 옹이 서울 덕수궁 돌담 앞에 서 있다. 대산 선생은 주역의 역자는 바꿀 역이라며, 세상과 우주는 고정되지 않고 늘 변해서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중앙포토

대산 선생은
그 의미를
이렇게 풀었습니다.

  “주역으로
   세계 방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간방(艮方·동북방)’이다.
   간(艮)은 뿌리를 뜻한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종시(終始·선천의 마침과 후천의 시작)를 이루는
   중심이 된다.
   그래서 이 땅에서
   ‘천부경’이 나왔다.”

제가 물었습니다.

  “‘천부경’에서는
   천(天)·지(地)·인(人)이
   하나라고 한다.
   유독 ‘3’이란 숫자를 강조한다.
   이유가 뭡니까?”

대산 선생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주는 3(三)의 조화로 돌아간다.
   3은 온 우주에 벌려 있다.
   태양에 산다는
   발이 셋 달린 새 이름도
   ‘삼족오(三足烏)’다.
   옛날에 왕위 계승을 상징하는
   신물(神物)이었던
   ‘정(鼎)’이라는 솥도
   다리가 셋이었다.
   임금 왕(王)자도 천지인 셋(三)을
   하나(一)로 꿴 것이다.
   하늘에는 해·달·별이 있다.
   땅에는 물(바다)·흙(땅)·바람이 있다.
   나라에는 행정부·입법부·사법부가 있다.
   가정에는 부(父)·모(母)·자(子)가 있다.
   유교에는 군(君)·사(師)·부(父)가 있고,
   불교에는 법신·보신·화신이 있고,
   기독교에는 성부·성자·성신이 있다.
   사람 몸에도
   상단전·중단전·하단전이 있다.
   제각기 말하면 셋이지만,
   통틀어 말하면 하나다.”

#궁궁통5

‘천부경’은 모두
81자로 돼 있습니다.
원래는 우리 민족에게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다
고조선 때 녹도문자(사슴 발자국 모양의 고대문자)로
기록됐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천부경’은
주로 신라 말 최치원이 남긴
한역본입니다.

‘천부경’의 첫 구절은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입니다.
대산 선생에게
그 뜻을 물었습니다.

대산 선생은 천부경은 모두 81자로 돼 있다. 하나(一)로 시작해 하나(一)로 끝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천부경’의 81자는
   하나(一)로 시작해
   하나(一)로 끝난다.
   그런데 그 하나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한(一)이다.
   거기에 천부경 사상의
   현묘함이 있다.
   ‘한(一)’사상은
   무궁하다는 거다.
   여기서 홍익인간 정신이 나왔다.
   무궁한 이 우주처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거다.”

대산 선생은
‘천부경’의 가치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천부경’이 있다면
   중국에는 ‘주역’이 있다.
   우리나라에 ‘윷판’이 있다면
   중국에는 바둑판이 있다.
   둘 다 우주가 돌아가는
   이치를 담고 있다.
   그래서
   천부경과 주역은
   서로 통한다.”

연초가 되면 찾아가
지혜를 묻던 대산 선생께서
더는 안 계시니
참 허전합니다.

그래도
선생께서 남기신
안목과 통찰이
두고두고 후학들에게는
살이 되고
피가 됩니다.

 

에디터백성호          중앙일보 2024,02,01   2023.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