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살에 아이 엄마, 10년 지나 150억원 굴 갑부된 전직 간호사

해암도 2023. 11. 4. 05:47

[미스타피쉬] 경남 통영 유일물산 천주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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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앞바다에서 만난 유일물산의 천주연 대표. /더비비드
 

“어쩌면 세상물정을 몰라서 큰 결정을 쉽게 했던 것 같아요.”

20살, 아이 엄마가 됐다. 24살, 대학병원의 간호사가 됐다. 27살, 수산업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 31살인 현재 직원 11명 규모의 수산물 유통회사를 이끌고 있다. 유일물산의 천주연 대표 얘기다. 세상물정을 몰라서 한 선택이 세상물정을 몰라선 안될 자리로 이끌었다.

생글탱글한 얼굴로 처음 굴 경매장에 입성했을 때, 그를 두고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친 경쟁자들의 비아냥도 종종 귀에 박혔다. 아랑곳 않고 좋은 굴 찾는 데 집중했다. 딸처럼, 조카처럼 대하는 호의만 귀담아들으며 맷집을 키운 덕에 회사를 매출 150억원 규모로 키울 수 있었다. 통영 앞바다에서 천 대표를 만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준 은인이자 생계 수단인 굴에 대해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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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굴이 유난히 통통한 비결

잔잔한 통영 바다의 모습. /더비비드
 

경상남도 통영은 굴의 주산지다. 통영 앞바다는 바닷물을 깨끗하게 보존한 청정해역이다. 수산 양식업의 보호를 위해 청정해역 내에서의 유조선 통과, 오폐수 방류 등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철저히 관리된 바다에서 자란 통영 굴은 특유의 맑은 기운을 머금고 있다.

세찬 파도가 없고 조수간만의 차가 적은 통영 바다는 굴을 살찌우기 최적의 환경이다. 굴의 유생(幼生)은 바닷물에 빠져 있는 동안 플랑크톤과 영양분을 섭취하며 성장한다. 서해안과 달리 밀물과 썰물의 해수면 차이가 적은 남해에서는 굴이 오랜 시간 바닷물에서 먹이활동을 할 수 있다. 호수처럼 잔잔한 물 속에서 원 없이 영양분을 섭취한 통영 굴은 남다른 덩치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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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물산의 효자 상품인 생굴의 싱싱한 모습. /더비비드
 

통영에 기반을 둔 유일물산은 생굴, 가리비, 홍합 등 30여가지 농수산물을 유통하는 회사다. 1차 생산자에게 수매한 농수산물을 중간 유통 과정 없이 바로 발송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농수산물을 구매할 수 있다. 생산지부터 배송까지 전 과정에서 냉장 상태를 유지하는 콜드체인시스템으로 수산물을 관리해 신선하다. 수산물을 담은 봉지가 터지지 않도록 네모난 각 얼음 대신 동그란 얼음을 넣고 포장한다.

유일물산에서 유통되는 생굴를 요리에 적용한 모습. /유일물산

최고 인기 상품은 단연 굴이다. 연 매출 160억원 중 50억원이 굴 매출일 정도로 효자 상품이다. 기온이 떨어지는 10월부터 1월까지가 굴 성수기로, 찬 바다에서 자란 굴은 유난히 탱탱하다.

[통영 생굴 최저가 바로 가기] : https://bit.ly/3FDR0uO◇'굴수저’가 된 대학병원 간호사

 

10kg 굴을 들고 있는 천 대표. 천 대표는 스스로를 '굴수저'라고 소개했다. /더비비드
 

천주연 대표는 스스로를 ‘굴수저’라고 소개했다. 50년간 수산물 유통업에 종사한 시부모에게 굴에 대한 모든 것을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마땅한 재주가 없어 가업을 택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굴수저를 쥐기 전 그는 전문 직업인이었다. 대학병원과 적십자병원의 간호사로 3년간 근무했다.

- 간호사와 농수산물 유통업체라니, 간극이 크게 느껴집니다.

“20살에 결혼해서 엄마가 된 후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전공을 살려 간호사가 됐어요. 초년생 신분에 아이 키우며 3교대 근무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남편이 수산물 판매 사업을 하고 있었고, 그 분야에 잔뼈가 굵은 시부모님을 두고 있어서 수산업에 항상 관심이 많았는데요. 문득 ‘자영업을 하면 개인 시간과 육아 시간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스쳤습니다. 수산물 유통 시장에서 새로 도전해보고 싶은 것도 생겼고요.”

생굴을 비닐로 포장한 후 배송 전까지 시원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얼음 물에 담가둔다. /더비비드
 

- 어떤 도전이었나요.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데 주목했어요. 시부모님께서 도소매 시장을 잘 개척해두셨는데요. 제가 잘 끌어당기면 인터넷 플랫폼까지 판매처를 확장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바로 남편과 시부모님께 수산물을 인터넷으로 팔아보자고 제안했죠. 일단 시부모님 회사에 입사해서 일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 시부모님 회사 입사라니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매일 진땀 뺐습니다. 작은 실수도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시어머니께서 바로 옆자리에 앉힌 뒤 전담 멘토처럼 일을 가르쳐 주셨어요. 원물 수매하는 방법부터 경매하는 법, 물건 파는 법, 영업 비결 등을 하나하나 배워나갔죠. 꼼꼼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송장 입력할 때 주의사항 같은 작은 요소까지 공유해 주셨죠. 시부모님께서 50년 걸려 쌓은 노하우 증에서도 엑기스만 전수받은 덕에 남들이 수년 간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전 단 1년 만에 배웠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굴수저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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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되고 손 많이 가는 일을 왜 하냐’란 질문에 대한 답

천 대표는 굴을 소량으로 포장한 후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시도를 해서 성공을 거뒀다. /더비비드
 

배운 걸 토대로 여러 시도를 했다. 가장 먼저 오픈마켓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상세페이지 하나 만드는 데 세 달이나 걸렸다. 작으면 10kg, 크게는 1톤 단위로 굴을 유통했던 시부모는 1kg, 2kg 단위로 판매하려는 천 대표에게 ‘돈 안되고 손 많이 가는 일 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 인터넷 판매 시도는 승산이 있던가요.

“시작하고 한 달 만에 첫 주문이 들어왔어요. 첫 주문지는 아직도 잊지 못해요. 부산시 금정구였죠. 차차 주문 건 수가 늘다가 처음 기획전을 했을 때 주문 150건이 한번에 들어왔어요. 지금은 처리하는데 30분도 안 걸리는 일을 그땐 하루 종일 붙잡아서 해결했죠. 하나 하나 포장하면서 확신했어요. 아 수산물도 택배로 시켜서 먹는구나, 이 길이 맞는구나.”

(왼쪽부터) 중도매인 등록증을 보여주는 천 대표와 천 대표의 자녀가 그려 준 천 대표와 시어머니. /더비비드, 유일물산
 

- 길을 확신한 그 다음에는요.

“연 매출 10억원 수준으로 성장했을 때 중도매인 협회에 가입했습니다. 경매 입찰권을 거머쥐었다는 의미죠. 중도매인 번호로 61번을 배정받았어요. ‘유일’물산이라는 상호명에 딱 들어맞는 번호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협회 가입 후 독립된 사업체를 꾸렸어요. 언제까지 시부모님의 도움만 받을 순 없다고 판단해 홀로서기에 나선거죠. 남편은 온라인 플랫폼 영업에 집중하는 법인 ‘위플’을, 저는 원물 수매와 선도관리, 유통 준비에 집중하는 ‘유일물산’을 이끌기로 했습니다.”

- 매출 성장 분기점 같은 게 있었을까요.

“계단식으로 성장했는데요. 크고 작은 시도들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합포장’입니다. 굴, 가리비 등 다른 원물을 동시에 주문한 경우 같은 원물만 꾸려서 따로 포장 및 배송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포장비와 택배비가 두배로 듭니다. 비용 상승의 원인이죠. 저희는 같은 소비자가 물품을 여러 번 주문했을 때 하나의 박스에 묶어 배송하는 합포장을 도입했어요.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번거로워서 업자들이 기피하는데요. 번거로움을 무릅쓴 덕에 택배비와 포장비를 아꼈고, 아낀 가격을 원물에 녹일 수 있었습니다. 반응도 좋았어요. 합포장을 도입하고 매출이 10% 뛰었거든요. 공산품을 취급하는 게 아니다 보니 제품으로 차별점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아요. 다른 경로에서 강점을 찾아 나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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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와 달리 굴수저는 부지런해야 한다

경매에 집중하고 있는 천 대표. /더비비드
경매장에서 각 어가의 생산물을 들어서 보여주는 직원의 모습. /더비비드
 

매일 아침 7시30분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진짜 일과가 시작된다. 출근하자마자 재고를 관리하고, 주문건을 취합한 후 발주서를 작성한다. 오전 업무를 마무리한 후에는 생굴 경매를 하기 위해 굴수하식수협으로 달려간다. 평일 오후 12시와 오후 5시, 하루 두 차례 경매장을 찾는다.

굴수저는 금수저와 달리 부지런해야 한다. 김장철을 앞두고 굴 수요가 치솟는 요즘 같은 시기엔 더 바삐 움직여야 한다. 성수기 기준 하루 7000건가량의 주문이 몰리기 때문이다. 일주일 간 필요한 굴의 양으로 환산하면 15톤이다. 성수기 4달 간의 유통량만 180톤에 달한다.

(왼쪽부터) 싱싱하고 빛깔이 고운 유일물산의 굴, 선별 작업을 통해 걸러진 굴과 유통되는 굴을 차이 나게 비교한 사진. 상단에 붉은 빛을 띤 굴이 걸러진 굴이다. /더비비드
 

- 생굴은 경매로 수매하는군요.

“조합에서 조합 어장의 생굴을 위판하는데요. 굴은 ‘수산물 이력제’로 관리되는 몇 안되는 위판 수산물입니다. 바코드만 찍으면 어느 어장에서 키웠는지, 어디서 포장됐는지, 어느 날 몇 시에 출하됐는지 등 유통 경로를 투명하게 알 수 있거든요. 문제 발생 시 빠른 대처가 가능하죠. 수협은 생굴의 극심한 가격 변동을 막기 위해 경매 물량을 조정하기도 합니다. 가격이 떨어지면 경매를 취소하고, 폭등하면 주말에도 경매를 여는 식이죠. 가격적인 부분은 조합의 의견을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해 생굴은 경매로 수매하고 있습니다.”

- 굴 경매 시 중점적으로 보는 요소는요.

“굴의 때깔과 물 색깔, 쩍(흰 찌꺼기) 세 요소를 봅니다. 우선 굴의 테두리가 검정색이나 짙은 갈색인 제품을 고릅니다. 사실 테두리가 옅은 갈색인 굴이 자연채묘굴이라 더 맛있는데요. 선도가 낮아서 옅은 색을 띤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소비자 인식을 뒤집을 자신까지는 없어 색이 선명하고 신선해 보이는 걸 고르죠. 굴 담은 물이 갈색에서 분홍색을 띤다면 무조건 피해야 합니다. 상한거에요. 봉지를 들었을 대 하얀 가루가 가라앉아 있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하얀 가루가 없다면 어장에서 세척에 신경 썼다는 의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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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공기방울 세척기에 투입되는 굴, S자 길에서 세척되고 있는 굴, 굴을 선별 작업 중인 모습, 최종 세척 후 무게를 측정하고 있는 모습. /더비비드
 

- 수매한 굴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3단계에 걸쳐 세척합니다. 공기방울로 이물질을 털어주는 세척기를 거친 후 S자 형태의 길을 지나요. 긴 길을 지나는 동안 흐르는 물에 굴을 세척합니다. 그 다음 컨베이어 벨트에 굴을 펼쳐 선별 작업을 진행합니다. 알을 품고 있거나 붉은 빛을 띤 굴을 걸러요. 선별 후 한차례 물에 투척해서 또 세척하죠. 이후 채단으로 굴을 떠서 포장합니다. 포장 담당 직원이 엄청난 베테랑이라 말 그대로 굴이 저울에 스쳐요. 눈이 저울이죠. 포장이 완료된 굴은 비닐이나 이노캔이라는 플라스틱 통에 담겨서 배송됩니다.”

 

◇수산업체의 시계는 연말 연시에 빠르게 돌아간다

경매장에서 굴 수매 비결을 설명 중인 천 대표. /더비비드
 

유일물산 사무실 뒤뜰에 복숭아 나무가 자라고 있다. 여기엔 슬픈 사연이 숨어 있다. 성수기와 비수기의 매출 격차를 상쇄하기 위해 여름철 농산물 유통을 시도했다가 처참히 실패하고, 폐기한 복숭아를 묻은 자리에 나무가 자란 것이다. 당시 1억7000만원의 적자까지 봤다. 스스로 굴수저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깨달은 순간이다. 현재 농산물 사업을 안정화 시켰지만 여전히 수산업이 주력 사업이다. 유일물산의 시계는 남들 다 쉰다는 연말 연시에 빠르게 돌아간다.

- 간호사로 근무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어때요.

“바보 같은 결정이었어요. 3교대 근무보다 나을 거라 생각하고 자영업을 택한 게 어불성설이죠. 간호사일 땐 공동 책임을 지는 동료가 있었고, 일이 몰아칠 때 손을 내밀어주는 동료가 있었지만 자영업은 그런 게 없어요. 혼자 헤쳐 나가야 하죠.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경쟁자니까요. 직원들에게 저만큼의 애정과 충성을 요구할 수도 없어요. 자기 회사처럼 생각해주는 직원은 소수 뿐인데, 그마저 감사해야죠. 그 이상을 원하는 건 제 욕심이니까요.”

천 대표는 자영업만의 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왼쪽은 수협으로부터 받은 감사패. /더비비드

 

 

- 그래도 좋은 점이 크니까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맞아요. 매일 밤 9시 30분에 택배 차가 출발하기 때문에 8시 30분부터 다들 급하기 움직이는데요. 다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1시간에 300개 처리할 걸 500개를 해내는 그런 순간이 있어요.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나가는 걸 몸소 느낄 때, 직원들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 정말 기뻐요. 결국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사람 때문에 기쁘기도 한 것 같아요. 같이 일하고, 같이 팔고. 자영업만의 에너지가 있어요.”

- 좋은 굴 고르는 팁 좀 알려주세요.

“가루 섞인 거품이 있는 제품은 피하세요. 흔들려서 생긴 거품은 금방 사라지지만 상해서 생긴 거품은 좀 달라요. 냄새도 잘 맡아보세요. 싱싱한 해산물의 향과 비린내는 분명 다르거든요. 바다 비린내가 난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닙니다. 물에 녹은 찰흙 같은 모양의 처진 굴은 폐사한 굴입니다. 미끌미끌하고 탄력있는 것을 골라야해요. 구매한 굴에 알 같은 게 있다면 국거리로 쓰세요. 횟감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팁 하나 드리자면 굴을 라면에 넣어 먹어보세요. 시원한 국물이 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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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혜 더비비드 기자     박유연 기자     입력 2023.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