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차기 대통령 부부’ 윤석열-김건희의 모든 것!

해암도 2022. 3. 21. 19:54

밀착 취재기 | 윤석열-김건희와 함께한 ‘3년의 기록’

 

⊙ “검사 윤석열, 엄정함뿐 아니라 휴머니즘도 갖고 있더라”
⊙ 《월간조선》과 만난 김건희 “남편에게 반한 이유는…”
⊙ “내 성격은 돌직구… 남편에게 애교 부리는 것도 어색”
⊙ 기자가 김건희 대표 사무실에 가서 놀란 까닭은?
⊙ 장난기 많은 김건희 대표가 윤석열 당선인에게 하는 행동
⊙ 윤석열-김건희의 공통점은 ‘애견인’ 차이점은 ‘술’
⊙ ‘김종인 영입 작전’ 나선 尹 지인은 누구인가?
⊙ 尹이 ‘동부이촌동’에서 주로 TV토론 연습한 사연
⊙ TV토론에 등장한 ‘붉은 넥타이’에 담긴 뒷이야기
⊙ ‘김부겸 유임 검토’ 오보라고 했지만, 오보가 아닌 까닭

 

  2022년 3월 9일 이전까지 ‘그’에게 따라붙은 ‘최초’라는 수식어는 크게 네 가지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과 국내 최대 재벌 총수를 구속시킨 최초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후보 ▲여권(與圈) 인사로 분류됐다가 야당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곧바로 대선(大選)에 출마한 최초의 대통령 후보 ▲‘정치적 색깔’이 180도 다른 박근혜·문재인 양(兩) 정권에서 핍박받은 유일무이한 대통령 후보 ▲최초의 ‘0선(選) 정치 신인’ 대통령 후보가 그것이다.
 
  그런 ‘그’가 정치판에 데뷔한 지 1년도 채 안 돼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선거 기간 중 혼전에 혼전을 거듭하며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대권을 거머쥐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그것도 정치 신인이라는 숱한 핸디캡과 꼬리표를 딛고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권력의 정상에 오른 희귀한 케이스다. 거의 자력(自力)으로 당선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尹을 차기 대권 주자로 일찌감치 내다본 《월간조선》
 

2021년 11월, 《월간조선》과 인터뷰 중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당시 대통령 후보). 사진=조준우

  사실 윤석열 당선인을 차기 대권 주자로 일찌감치 내다본 매체는 《월간조선》이 거의 유일하다.
 
  그 ‘신호탄’을 쏘아 올린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다. 윤석열 당선인(당시 검찰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一家) 의혹 사건을 수사하면서 문재인 정권과 정면충돌 코스를 달리고 있던 2019년 11월이었다.
 
  당시 기자는 원고지 80매 분량의 ‘윤석열의 모든 것’이란 기사를 썼다. 윤석열 주변 인물 취재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다룬 최초의 기사로, 지금도 많은 언론이 인용하고 있는 바로 그 기사다. ‘윤석열 대망론’이 과연 실현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담아내기도 했다.
 
  《월간조선》이 떨어뜨린 이 ‘한 방울’이 윤석열 당선인의 대권(大權) 행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윤석열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첫 기사였기에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때까지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리라 예상한 이들은 사실상 전무(全無)했다. 기사가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특히 ‘윤석열 대망론’에 대해 몇몇 주변 동료는 ‘윤석열이 무슨 대통령이냐’ ‘윤석열이 대통령 될 가능성은 제로다’라며 평가절하했다.
 
  이런 분위기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도 이어졌다. 윤석열 후보 일가를 둘러싼 ‘리스크’로 인해 올해 1월까지만 해도 일각에선 회의론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윤석열 후보의 주변 환경은 불확실했던 게 사실이다.
 
  《월간조선》은 늘 그래 왔듯이 시시각각 변하는 권력의 흐름을 재빨리 포착해왔다. 그 과정에서 윤석열의 행보를 객관적인 눈으로 예의 주시하며 지난 3년간 잡지와 온라인에 다수의 ‘윤석열 기사’를 보도해왔다.
 
  그중 다른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본지가 3년간 취재해온 ‘윤석열의 모든 것’을 이 지면(誌面)에 총망라해보고자 한다. 윤석열 당선인뿐 아니라 본지가 최초로 만난 아내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에 대해서도 다루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기사 제목을 3년 전과 달리 ‘윤석열-김건희의 모든 것’이라고 붙여봤다.
 
 
  ‘인간 윤석열’을 표현하는 키워드 ‘솔직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상징하는 슬로건은 ‘공정’과 ‘상식’이다. 그와 함께 ‘인간 윤석열’을 표현하는 키워드는 ‘솔직함’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직선적’이기까지 하다.
 
  윤석열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된 직후인 작년 12월, 기자는 윤석열 당선인과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다. 그때 받은 인상도 이와 비슷했다. 윤 당선인은 기자의 질문 중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주는 한편 불리한 질문은 에두르지 않고 적극 반박하기도 했다.
 
  후보 시절 기자가 보낸 메시지에 빠짐없이 답하는 세심함도 보여줬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 정당의 대선 후보는 매 순간순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분주하게 하루를 보낸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켜켜이 쌓인 문자 메시지에 일일이 답한다는 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바쁜 시간을 쪼개, 짧게라도 답변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는 거의 모든 기자에게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윤 당선인의 솔직하고 세심한 면모는 정계(政界) 투신 후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된 게 아니라는 게 주변 사람들의 말이다. 윤석열 당선인 고교 동창 A씨는 기자에게 2019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1989년 제가 모 대기업에 다닐 때 얘깁니다. 그 당시 우리 회사가 상장(上場)을 하는데, 간부 한 명이 ‘공모가 1만3000원짜리 주식을 주당(株當) 5000원에 1만 주를 주겠다’고 제안하더라고요. 앉은 자리에서 큰돈을 버는 거니까 제 딴엔 고민이 좀 됐죠. 그래서 석열이한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제 뒤통수를 치며 ‘임마 그거 배임이야, 배임’이라고 하더라고요.”
 
  윤 당선인과 47년 지기(知己)인 그는 “석열이는 제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잘못된 점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지적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2020년 11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고(故) 윤홍근 변호사는 윤석열 당선인과 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 동기다. 그가 유명(幽冥)을 달리한 시기는 윤석열 당선인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일촉즉발의 한판승부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당연히 세인(世人)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려 있었다. 그런 경우 대개 외부 출입을 삼가는 편이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친구의 빈소을 찾아 당당히 조문했다.
 
  기자는 2019년 윤홍근 변호사로부터 ‘인간 윤석열’에 관한 이야기를 비교적 자세히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조국 전 장관 수사가 한창일 때라 윤 변호사는 “자칫 석열이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며 ‘비보도’를 전제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의 말이다.
 
  “석열이는 ‘옳다’ 싶으면 절대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아요. 조국 수사도 석열이 방식대로 원칙에 입각해 풀어나갈 겁니다. (조국 수사가) 석열이 인생에 있어 터닝 포인트가 될 거요. 두고 보쇼. 석열이가 분명 일을 낼 테니….”
 
  윤 변호사에게 ‘일각에선 윤석열 검찰총장(당시 기준)이 별건(別件) 수사를 한다는 식으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자, 그는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를 높이며 이렇게 반박하기도 했다.
 
  “그거 다 ‘검사 윤석열’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요. 그런 소리 하지 마요. 걔(윤석열 당선인) 일할 때 보면 얼마나 꼼꼼한지 몰라요. 다른 검사들이 놓치는 부분까지 세밀하게 파악합디다. 별건 수사? 검찰 수사의 ABC도 모르면서 떠드는 건데,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라고 해요.”
 
  윤홍근 변호사는 윤석열 당선인이 갖고 있는 독특한 ‘의리관(義理觀)’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석열이가 사시(司試)에 연거푸 낙방해 심정적으로는 방황했겠지만, 그렇다고 자기 소신을 꺾지도 않았어요. 그 소신 중 하나가 그 녀석의 의리예요. 석열이는 속된 말로 ‘의리 빼면 시체’예요. 맨날 주변 사람들 경조사나 쫓아다니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축하하고… 덩치가 커서 상여(喪輿) 메는 멤버로 늘 차출됐고요. 그러니 석열이 주변에 사람이 안 모일 수가 없죠.”
 
  참고로 윤석열 당선인과 윤홍근 변호사, 그리고 윤기원 변호사(법무법인 원) 세 사람 모두 고교와 대학 동기 동창이다. 고교 시절 이들은 ‘3윤(尹)’으로 불렸다. 공교롭게도 이들 ‘3윤’은 생일이 6일 간격으로 서로 비슷하다. 윤 당선인이 12월 18일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각각 12월 12일, 12월 6일이라고 한다. 세 사람 모두 본관이 ‘파평윤씨’란 것도 공통점이다.
 
 
  “‘최고의 칼잡이’이자 따스한 휴머니즘까지 갖췄다”
 

윤석열 당선인이 사석에서 ‘가장 존경하는 검사’라고 했던 이명재(李明載) 전 검찰총장. 사진=조선DB

  솔직하고 원칙주의적인 성격의 윤석열 당선인이지만, 그와 정반대되는 면모도 있다는 증언도 있다. 현직 변호사인 C씨는 과거 수사 과정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피의자에게 베푼 한 가지 일화를 들려줬다.
 
  “노무현 정부 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 하나를 윤석열 검사가 맡은 적이 있어요. 당시 사건에 연루된 인물이 노(盧) 정부 핵심 인사였어요. 윤 검사가 이 인사를 상대로 심문하기에 앞서 ‘선배님 사건은 남자로서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라며 정중히 다가갔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인간적으로 다가오니 피의자도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에요. 당연히 수사가 순조롭게 이뤄졌겠죠. 나중에 이 인사가 ‘특수부 검사 중에 (윤석열처럼) 솔직하고 화끈한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더군요.”
 
  사건에 연루됐던 이 인사는 문재인 정권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윤석열 당선인이 문(文) 정권에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발탁되는 데 있어 이 인사의 추천도 일부 반영된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C씨는 “‘검사 윤석열’은 누구보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수사에 대한 집념도 강하다. 하지만 그 엄격함 속엔 따스한 휴머니즘도 녹아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지는 C씨의 말이다.
 
  “윤석열 당선인이 수사했던 사건을 가만히 살펴보면, 법정 최고형보다 훨씬 못 미치게 구형한 사건이 많습니다. 물론 죄질(罪質)이 나쁘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죠. 제가 한 번은 왜 그러나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러자 당선인은 ‘이미 언론에 사건이 보도돼 도덕적인 단죄(斷罪)가 이뤄진 마당에 또다시 잔인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반문하더군요.”
 
  C씨는 “검사 윤석열은 ‘최고의 칼잡이’인 동시에 인간의 내면까지 들여다볼 줄 아는 몇 안 되는 검사”라고 했다.
 
  이와 비슷한 평가를 받는 검사가 바로 이명재(李明載) 전 검찰총장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사석에서 이명재 전 총장을 ‘가장 존경하는 검사’라고 밝힌 적이 있다.
 
 
 

 

尹 당선인은 ‘애주가’지만, 金 대표는…
 

걸레스님으로 잘 알려진 중광스님. 생전 윤석열 당선인과 매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사진=SBS 뉴스 캡처

  윤 당선인의 아내 김건희 대표도 솔직하면서도 직정적인 성격을 지녔다. 김건희 대표의 은사(恩師)인 D씨는 지난 1월 이런 말을 해줬다.
 
  “김건희 대표는 술을 싫어하지만, 저는 술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한 번은 김 대표랑 통화할 일이 있었어요. 제가 ‘저녁에 술 약속이 있다’며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김 대표가 ‘선생님, 제발 술 좀 드시지 마세요. 술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드세요?’라고 따지듯이 얘기하더라고요. 순간 머쓱해지기도 했지만, 날 걱정해주는 거니 기분 나쁘지는 않았어요.(웃음)”
 
  D씨는 “김건희 대표에 관한 소문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란 건 김 대표를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내가 보증(保證)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D씨뿐 아니라 김건희 대표를 잘 아는 많은 사람은 김 대표가 ‘의리파에 남성적 풍모를 지닌 시원시원한 사업가’라고 입을 모은다.
 
  술을 싫어하는 김건희 대표와 달리 윤석열 당선인은 소문난 ‘주당(酒黨)’이다. 당선인의 친척 중 한 명인 E씨는 이런 이야기도 들려줬다.
 
  “가족이다 보니 석열이 입장에서 편하게 함께 술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예요. 저도 주량만큼은 어디 가서 지지 않거든요. 저희 집에 석열이 부부가 자주 놀러 오곤 했는데, 그때 저와 석열이는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곤 했어요. 석열이 말이 ‘집사람(김건희 대표)에게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술 먹는 거만큼은 간섭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더군요.(웃음)”
 
  E씨에게 ‘둘 중 누가 더 주량이 세냐’고 물었더니 그는 “총량은 석열이가 더 많은 것 같다”며 웃었다. 술과 관련한 윤석열 당선인의 일화는 많다. 그중 하나가 ‘걸레스님’으로 유명한 중광(重光·2002년 사망)과의 인연이다. 이 역시 2019년 본지 취재로 처음 확인된 사실이다.
 
  당시 A씨에게 ‘윤석열 총장과 중광이 만나 주로 뭘 했나’라고 묻자 “주당끼리 술 먹으면서 돌아다녔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A씨의 설명에 따르면, 윤석열 당선인이 강원도 강릉에 있는 낙산사에 갔을 때 그곳에 있던 중광을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었다고 한다.
 
  여기서 우연히 술자리를 가졌고, 이후 윤 당선인과 중광은 함께 산사(山寺) 등을 배회하며 친해졌다는 것이다. A씨는 “석열이가 검사가 된 후에도 자주 어울릴 정도로 두 사람은 인간적인 유대를 쌓았다”며 이런 말을 했다.
 
  “중광스님이 관상(觀相)도 봤는데 석열이더러 ‘장차 크게 될 놈’이란 식으로 말했다죠? 나도 사석에서 석열이한테 ‘우리 중에 대통령이 나온다면 너밖에 없어’라는 식으로 농담한 적도 있어요.”
 
 
  ‘폭탄주 70잔’에도 끄떡 않던 尹 당선인
 

1985년 10월 11일, 윤석열 당선인이 고교 동창이자 대학 동기인 신용락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 사진=신용락 변호사 제공

  A씨는 윤석열 당선인과 ‘폭탄주’에 얽힌 일화를 들려줬다.
 
  “우리 아들이 특목고에 합격했을 때 일이에요. (아들이) 특목고 합격한 그해에 공교롭게도 ‘3윤’ 중 한 명의 딸도 의대(醫大)에 합격했어요. 석열이가 우리를 축하해주러 왔는데, 그날 폭탄주를 70잔 가까이 마셨어요. 끄떡도 않더라고요. 그 다음 날도 멀쩡했고요.”
 
  윤석열 당선인은 시련(사시 낙방)을 감내하면서도 주변 사람 챙기는 걸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신 갖가지 시련과 함께 다가오는 스트레스는 술로 달랬던 듯하다. 검사 임관 이후, 지인(知人)들과의 만남에서도 술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였다.
 
  윤 당선인이 사시에 낙방한 뒤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던 1985년, 고교 동창이자 대학 동기인 신용락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엔 이런 대목이 있다.
 
  〈난 지금 대학원 수업 발제 준비와 내년 논문을 위한 자료 수집을 하고 있단다. 발표 다음 날 논문 제출 자격시험이 있었는데 다행히 통과되고, 몇 달 동안 술이나 마시고 긴장이 확 풀린 탓인지 뭘 좀 해보려 해도 머리에 주입(注入)이 되질 않는구나…. 마음을 달래려 먹는 술은 도리어 이를 더욱 격하게 하는 것 같아 가급적 감상적(感傷的) 음주는 삼가고 있다. 약간의 체념이 사람을 단순하게 하고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아들이 술을 워낙 좋아한 탓에 모친 최성자씨는 속을 꽤나 썩었다고 한다. 최성자씨는 아들이 공부보다는 지인들의 경조사를 쫓아다니고 산사를 배회하는 데 열중하자 ‘호적에서 파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자 윤 당선인은 ‘제가 장남인데 파볼 테면 파보십시오’라고 모친에게 능청을 떨었다고 한다.
 
  신용락 변호사는 최근 윤석열 당선인 모친과 외가(外家)와 관련해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석열이 모친(최성자씨)은 유복녀예요. 석열이 외조모님 이덕자씨가 남편을 떠나 보내고 홀몸으로 최성자씨를 키웠다고 해요. 이덕자씨는 강릉에서 포목상을 했습니다. 이분이 대단한 게 그렇게 번 돈으로 장학사업까지 했어요.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있으면 집에 데려와 밥도 먹이고 그랬대요. 그 덕에 석열이 외조모님은 ‘장한 어머니상’도 받았어요. 한마디로 베푸는 데 있어 인색하지 않은 분이셨어요.”
 
  최성자씨는 이화여대 교수 출신이다. 그러나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됐다. 신 변호사는 “석열이 어머님 음식 솜씨가 참 좋다”며 “최근 화제가 된 석열이의 뛰어난 요리 실력은 모두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라며 웃었다.
 
  윤석열 당선인에게 있어 외가가 있는 강릉은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이다. 윤 당선인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찾은 곳이 강릉이었다. 앞서 본 대로 사시에 낙방하고 중광스님을 만난 곳, ‘전두환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한 뒤 군사정권의 매서운 눈을 피해 도피한 곳 모두 강릉이었다.

 

김건희 대표 “남편의 인간적인 매력에 반했다”
 
  이제 김건희 대표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기자는 올해 초, 우연한 기회에 김건희 대표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적이 있다.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윤석열-김건희 부부 사이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날 정치적인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고, 별도의 녹음도 이뤄지지 않았다.
 
  기자는 김건희 대표에게 ‘윤석열 후보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결혼을 결심했냐’고 물었다. 김 대표는 “남편 친구들 사이에서 그이(윤석열)에 대한 신망이 아주 두터웠다”며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남편이 친구는 물론 주변 사람들을 워낙 잘 챙겨요. 제가 그 인간적인 매력에 반했어요. 가령 친구 부모님이 상(喪)을 당하면, 남편은 아예 상주(喪主)가 돼 3일장을 다 치르고 집에 돌아옵니다. 거기서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운구(運柩)까지 해주는 거죠. 사실 슬플 때 같이 있어주는 친구가 최고잖아요? 남자가 그 정도 의리는 있어야죠.”
 
  김 대표가 자신의 성격에 대해 이런 요지의 말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는 성격이 ‘돌직구’에 가까워요. 뭘 에둘러 말하는 성격이 못 돼요. 그래서 그런지 누구에게 의존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예요. 남편은 (나이 차이 때문에) 저를 딸처럼 생각해 많이 챙겨주려고 해요. 하지만 저는 (윤석열의 정치 선언) 이전까지만 해도 ‘윤석열 아내 김건희’이기 전에 ‘사업가 김건희’였거든요. 그런 제 생각을 남편도 알기 때문에 제 일에 대해 별다른 터치를 안 합니다. 서로의 상황과 입장을 존중하는 거죠.”
 
  이러한 김 대표의 말을 뒷받침하는 증언이 있다. 현재 학계(學界)에서 활동하는 F씨는 윤석열-김건희 부부 이웃으로, 현재 모 대학 교수다. F씨는 “김건희 대표가 내 강의를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며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김건희 대표는 미술 전시 등 자신의 사업으로 인해 언제나 분주했어요. 하루는 제가 김 대표에게 ‘왜 그렇게 바쁘게 사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오더군요. ‘남편이나 선생님(F씨)처럼 평생 갑(甲)으로만 사신 분들은 모르실 거예요. 저는 사업상 늘 을(乙)이기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바쁘게 뛰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가 없어요’라고 하더군요.”
 
  F씨는 “남편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지낸 ‘윤석열’인데 김 대표는 남편의 후광(後光)을 얻으려 하지 않았다”며 “오직 김건희 대표 혼자서 사업을 개척해나갔다”고 말했다.
 
 
  인간적이고 소탈한, 장난기 넘치는 김건희 대표
 

윤석열 당선인 아내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지난 3월 4일, 서울 서초구 서초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사진=뉴시스

  다시 김건희 대표 이야기다. 김 대표는 자신이 “성격상 남편에게 살갑게 굴지 못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남편에게 애교 부리는 것도 사실 어색해요. 하루는 남편이 저에게 ‘뽀뽀 한 번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무슨 뽀뽀냐’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받아쳤죠.(웃음) 제가 남편에게 주로 하는 말은 ‘술 먹지 마’ ‘집에 빨리 들어와’ 이 정도예요.(웃음) 물론 농담 삼아서 하는 말들이죠.”
 
  김 대표는 “이런 게 정상적인 부부의 모습 아니냐”며 “겉으로 보여주기 위해 위선(僞善)적이고 가식적으로 행동하는 걸 나나 남편 모두 싫어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꾸로 말하면 우리 부부 사이가 아주 좋기 때문에 이런 말도 스스럼없이 오갈 수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김건희 대표는 “남편에 대해 관심 갖는 건 주로 건강과 몸 관리”라고 말했다.
 
  “남편은 쉽게 건조해져서 그런지 피부가 잘 갈라지고 일어나는 편이에요. 그래서 남편이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저는 꼭 (남편에게) 로션을 발라줍니다. 남편이 잠들어도 그건 꼭 해주려고 해요. 남편은 ‘잠든 사람 왜 깨우냐’면서도 굳이 싫어하지 않아요. 그러다가 서로 장난도 치고 한바탕 웃기도 하죠. 남편이 말은 그렇게 해도 제가 로션 발라주며, 장난도 쳐줘야 잠이 오나 봐요.(웃음) 사실 제가 장난기가 많은 편이거든요.”
 
 
  김건희 대표 사무실에서 본 이채로운 장면
 

윤석열 당선인과 반려견 토리. 사진=윤석열 당선인 페이스북

  김건희 대표의 말에서 윤석열 당선인과 김 대표,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지 엿볼 수 있다. 이런 일화는 또 있다. 2019년 윤석열 당선인 지인에게 들은 말이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모친 최성자씨가 교수 출신이라 까다로운 걸로 주변에 알려져 있었어요. 그래서 ‘윤석열 배필이 누가 될지’가 우리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죠. 더구나 검사 아들의 늦된 결혼이니까 얼마나 신경이 쓰였겠어요? 윤석열 총장 부모님도 며느리를 매우 아껴요. 김건희 대표 역시 시부모에게 깍듯한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겉보기와 다르게 윤석열 총장은 순정파이자 애처가예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 묻는 장면을 자주 봤어요. 부부 금실이 아주 좋아 보이더라고요.”
 
  기자는 김건희 대표에게 “만약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김건희’라는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영부인 모델’이 정립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선거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런 말씀 마시라”며 극구 손사래를 쳤다.
 
  두 사람은 술에 있어서는 서로 ‘상극’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애견인’이란 점이다. 기자가 김건희 대표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서너 마리의 반려견이었다. 낯선 사람(기자)이 들어왔음에도 꼬리를 치며 일제히 기자에게 달려들었다.
 
  사무실 직원 중 한 명이 “웬만해선 낯선 사람에게 안 가고 짖기만 하는데, 기자님은 좋은가 보다. 처음 보는 사람 중에 달려간 건 기자님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며 웃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한 마리는 ‘써니’, 또 다른 한 마리는 ‘나래’였던 것 같다. ‘써니’와 ‘나래’ 외에 대선 기간 중에는 반려견 ‘토리’가 윤 당선인 소셜미디어에 자주 등장해 화제가 됐다.
 
  윤석열-김건희 부부를 잘 아는 이 중 한 명은 “두 부부는 반려견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 보는 사람들을 부럽게 만든다”며 “두 사람은 아무리 바빠도 반려견 목욕과 관리엔 꼭 신경을 쓴다”고 귀띔했다. 그는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을 보고 더더욱 인간적인 느낌이 들었다. 반려견 예뻐하는 사람치고 ‘인간성 나쁜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정치 참여’ 결심한 시점
 

2021년 3월 4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총장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조선DB

  평범하고 소탈한 삶을 영위하던 윤석열-김건희 부부였지만, 윤석열 당선인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두 사람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윤 당선인의 대선 출마는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이었다.
 
  모든 정치인의 아내가 그렇듯이 김건희 대표도 마음고생을 꽤나 해야 했다. 김 대표는 “남편에게 ‘만약 당신이 정치하면 우린 이혼이다’라고 말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상황은 김건희 대표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에 실망한 이들이 윤석열 당선인의 대선 출마를 적극 종용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은 대략 언제일까. 윤 당선인과 친한 법조계 인사 G씨는 “윤석열 선배는 평소 정치를 혐오하며 정치인들 행태에 분개했던 적이 많다”고 했다. 그는 “윤 선배가 ‘공무원들은 몇백만원 뇌물수수해도 바로 구속된다. 정치인은 몇억을 먹어도 아무 탈이 없지 않으냐’며 씁쓸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G씨의 이어지는 말이다.
 
  “윤 선배가 추미애 장관과 대립하던 즈음에 만난 적이 있어요. 제가 조심스럽게 ‘기왕 이렇게 된 거 이참에 정치하시죠. 선배님밖에는 지금 대안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니까, 즉답을 안 하더라고요. 근데 그날따라 윤 선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어떤 비장(悲壯)한 결심 같은 게 엿보였다고 할까요? 워낙 오래 알고 지낸 분이니 윤 선배 눈만 봐도 대략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거든요.”
 
  윤석열 당선인은 작년 7월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검찰)총장직을 그만두게 된 데에는 월성 원전 사건의 처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20년 11월 6일, 대검찰청 지시로 월성 원전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그 직후 추미애 장관은 윤 당선인을 겨냥해 감찰 지시와 징계를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징계효력 정지 처분을 내렸고, 윤 당선인은 12월 24일 업무에 복귀했다.
 
  해가 바뀌자마자 문재인 정권은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하겠다’며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겠다고 나섰다. 이때 나온 말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이었다. 윤석열의 힘을 완전히 빼기 위한 일종의 ‘최후 일격’인 셈이었다.
 
  윤 당선인은 2021년 3월 4일, 그 유명한 “검수완박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는 말을 남긴 뒤 검찰총장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총장 임기를 약 4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이었다. 그동안의 상황 전개와 F씨의 주장을 종합하면, 윤석열 당선인은 대략 2020년 11월께 정치 참여 결심을 굳힌 것으로 추정된다.
 
 
  ‘김종인 영입 작전’ 나선 尹 당선인 지인 H씨
 
  이후 윤 당선인은 ▲정치 참여 선언(2021년 6월 29일) ▲국민의힘 입당(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2021년 11월 5일) 등의 일정을 밟아나갔다. 검찰총장 사퇴 후 불과 8개월 만에 야당 대선 후보로 급부상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 신인이라는 핸디캡 등으로 인해 숱한 험로(險路)를 통과해야 했다.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에도 시련은 끊이지 않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 ‘페미니스트’ 신지예씨 영입으로 인한 논란 등이 뒤따랐다. 그로 인해 지지율 하락도 겪었다. 결국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선대위 깃발을 내려야 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도 이 무렵 사퇴했다.
 
  여기서 잠깐 김종인 위원장 영입을 둘러싼 뒷이야기를 들어보자. 당초 김종인 위원장 영입을 적극 추진한 인사는 윤석열 당선인의 오랜 지인 중 한 명인 H씨였다. H씨와 김종인 위원장은 집안끼리 상당한 친분이 있다고 한다. 이 상황을 잘 아는 국민의힘 선대본 관계자의 말이다.
 
  “원래 김종인 위원장은 윤석열 후보를 돕는 데 주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때 김 위원장은 이른바 ‘윤핵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거든요. 김 위원장은 ‘윤핵관 중 ○○○을 핵심에서 제외하면 국민의힘 입당을 고려해보겠다’고 했어요. ○○○이 물러나자 그때부터 H씨가 김 위원장 영입에 나서 총괄선대위원장으로 합류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H씨가 김종인 위원장에게 ‘지금 당에 들어가면 윤핵관이든 뭐든 위원장이 마음대로 정리할 수 있다.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뭐라고 하면 될 일도 안 된다’는 식으로 설득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김종인 위원장은 이른바 ‘연기 발언’ ‘선대위 규모 논란’ 등으로 당과 갈등을 빚으며 물러나고 말았다. 선대본 관계자는 “윤석열 당선인은 김종인 위원장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고, 김 위원장도 바깥에 알려진 것처럼 윤 당선인과 사이가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두 사람이 소통하는 방식에 있어 약간의 시각차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김종인 위원장이 사퇴하고,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도 가까스로 봉합한 윤석열 당선인은 ‘선대위’에서 ‘선대본부’로 조직의 ‘슬림화’를 꾀했다. 이때 또 다른 문제가 터져 나왔다. 이른바 ‘김건희 7시간 통화 녹취록’이었다. 이는 윤 당선인에게 있어 악재(惡材)로 여겨졌지만, 막상 녹취록 내용이 보도된 후에는 김건희 대표에게 호감(好感)을 보이는 여론이 높아졌다.
 
 
  尹 당선인이 동부이촌동을 자주 간 까닭
 

2021년 12월 12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와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에 마련된 새시대준비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열린 현판식 후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또 하나의 고비는 TV토론이었다. TV토론은 윤석열 당선인이 필히 넘어야 할 과제였다. ‘정치 초보’인 윤 당선인은 TV토론을 통해 차기 대통령으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국민 앞에 증명해야만 했다.
 
  이때 도움을 준 이가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7년 대선을 치를 당시, 김한길 위원장이 김 대통령에게 TV토론과 관련해 많은 조언을 한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김 위원장이 그 역할을 맡은 것이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국민의힘 관계자의 말이다.
 
  “당선인과 김한길 위원장의 친분은 꽤 오래됐습니다. 윤 당선인이 검찰에 있을 때부터 서로 친했다고 해요. 당선인이 정치 참여를 결심하는 데 있어서도 김한길 위원장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래서 윤 당선인은 김 위원장을 ‘형님’처럼 여겨요.”
 
  이 관계자는 “윤석열 당선인이 TV토론을 연습한 장소도 서울 동부이촌동 김한길 위원장 사무실이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2년 전, 김 위원장 사무실 근방을 가본 적이 있다. 그의 사무실은 동부이촌동 아파트 단지 뒤편, 골목에 위치해 있다. 한강공원과 맞닿은 좁은 도로에 위치한 이곳은 인적이 드물어 저녁 무렵이면 이내 한산해진다.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이곳을 TV토론 연습 장소로 택한 듯하다.
 
 
  尹, 후보 시절 ‘김부겸 유임’ 꺼낸 적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석열 당선인이 김한길 위원장과 손을 잡은 데에는 ‘합리적 진보 세력과의 연대’라는 측면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윤 당선인에게는 ‘동서화합을 이루기 위해선 보수 세력이 합리적인 진보와 함께해야 한다’는 신념 같은 게 있다”며 “김한길 위원장을 영입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조선일보》(3월 14일 자)는 “새 정부 총리에 김부겸 유임 검토”라고 1면에 보도했다. 윤석열 당선인 측은 이를 ‘100% 오보(誤報)’라고 일축했다. 기자는 대선 기간 중 국민의힘 관계자로부터 ‘김부겸 유임 시나리오가 논의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즉 《조선일보》가 ‘검토’라는 단서를 달아 보도했기에, 이 보도를 오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선 직후 국민의힘 관계자가 들려준 말이다.
 
  “김부겸 국무총리 ‘유임설’은 윤석열 당선인이 후보 시절 언급했던 아이디어였던 건 맞아요. 저희에게 넌지시 ‘김부겸 총리 유임시키면 어떨 거 같아’라고 물었던 적도 있어요. 당선인은 김부겸 총리를 유임시키면 소수 여당의 한계, 즉 인준을 받지 않고 총리를 앉힐 수 있는 묘안(妙案)이라고 생각한 듯해요. 거기다 동서화합이라는 긍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고, 무엇보다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할 명분이 없잖아요.”
 
  그는 “새시대준비위원회 작명(作名)을 둘러싸고도 여러 의견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의 말이다.
 
  “새시대준비위원회란 이름을 듣고 처음엔 명칭이 너무 약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새시대추진위원회’면 모를까, ‘준비’는 너무 소극적인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김한길 위원장 생각은 다르더라고요. 김 위원장은 ‘안철수 후보가 시대교체라는 슬로건을 들고 대선에 출마했는데 우리가 새 시대를 추진하겠다고 하면 안 후보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김한길 위원장의 정치적 노련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대선 경선을 도왔던 인사 중 몇 명을 우리가 비밀리에 영입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윤석열 후보를 공개 지지선언한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외에 ‘이낙연 측 인사’ 몇 명을 더 끌어왔다는 얘기였다. 그중 한 명은 윤석열 후보를 지근거리에서 도왔다고 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그 과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관련 자료 일부도 국민의힘에 넘어온 것으로 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TV토론에 등장한 ‘붉은 넥타이’에 담긴 뒷이야기
 

2022년 3월 2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 초청 3차 TV토론회에 참석한 국민의힘 윤석열(왼쪽 두 번째), 국민의당 안철수(오른쪽 두 번째) 대통령 후보. 이날 두 사람은 똑같이 남색 양복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사진=조선DB

  마지막 남은 장애물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였다.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는 선거를 불과 엿새 남겨둔 3월 3일 새벽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그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물밑에서 단일화를 조율해왔지만, 양측은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국민의힘 선대본 관계자의 설명이다.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조건으로 일관되게 내세운 게 100% 여론조사 방식이었지 않습니까? 저희 당은 처음엔 당연히 난색을 표했죠. 그런데 국민의당 측 모 인사가 ‘선거까지 시간도 얼마 없는 상황에서 여론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안 후보와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단일화 방식에 이견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선대본 관계자는 “우리도 차츰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꿨다. 100% 여론조사를 해도 윤석열 후보가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측은 국민의당에 ‘여론조사 받을 테니 안철수 후보의 사인(답)을 받아오라’는 취지의 의사를 전했다. 그러나 국민의당 측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주지 않았다는 게 선대위 관계자의 주장이다. 양측의 협상은 또다시 결렬돼 윤석열 후보가 ‘단일화 결렬’ 기자회견까지 여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던 중 마지막 TV토론이 지난 3월 2일 열렸다. 이날 최대 화제는 윤석열, 안철수 두 사람 모두 공교롭게도 ‘붉은 넥타이’ 차림으로 토론회에 나온 것이었다. 여기에도 숨은 이야기가 있다. 이어지는 선대본 관계자의 말이다.
 
  “토론회 전날, 국민의당 측에 ‘윤석열 후보가 남색 양복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나갈 것이다’라고 언질을 줬어요. 국민의당의 최종 반응을 보기 위함이었죠. 토론회 당일 안 후보가 붉은 넥타이를 매고 나온 걸 보고 ‘이제 거의 다 됐구나’ 하며 작은 탄성이 나왔죠.”
 
  선대본 관계자는 “윤 후보가 매고 나온 넥타이는 당 차원에서 준비한 게 아니다”라며 “후보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부탁해 급조한 것이다”라고 했다. ‘후보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군지는 당사자가 노출을 꺼려해 이 지면에서는 밝히지 않는다.
 
 
  윤석열 당선인이 시장경제 강조한 까닭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강조했다. 특히 윤 당선인처럼 일관되게 시장경제를 설파한 대통령 후보도 드물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등장한 대선 후보 대부분은 분배·복지에 천착해왔다. 이는 2000년대 들어 ‘포퓰리즘’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잘 알려진 대로 윤석열 당선인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1912~ 2006년)이 쓴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다. 윤 당선인은 《월간조선》(2021년 12월호) 인터뷰에서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선택할 자유》는 신자유주의 경제 이론서이기도 하지만, 규제를 가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고발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시장의 왜곡을 잘 분석했죠. 검사로 있으면서 무엇인가 단속을 하라거나 혹은 수사권을 행사할 때, 그게 과연 국가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항상 의문을 가졌어요. 검찰 상부에서는 늘 어떤 지시를 내리잖아요. 저는 그 지시를 이행하기에 앞서 ‘이게 과연 국가 공권력이 할 일인지 해선 안 될 일인지’ 생각했어요. 그런 의문에 논리적 근거와 이론을 제공해준 책이 바로 《선택할 자유》입니다. 이 책 덕분에 검찰의 가장 강력한 공권력인 ‘수사권(搜査權)’ ‘소추권(訴追權)’을 남용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가 검사 생활할 때 그 책을 항상 들고 다니며 읽었어요. 심지어 노랗게 될 때까지요.”
 
  윤석열 당선인은 자신이 ‘신자유주의자’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말도 안 된다”며 “신자유주의의 발상지인 미국에서조차 지금 신자유주의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그 이론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윤 당선인의 말대로 그는 신자유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비롯해 국가(공권력)가 법질서를 유지하거나 경제 정책을 작동하는 데 있어 최소한의 간섭을 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았다.
 
 
  “윤석열이 헨리 토머스 버클을 알더라”
 

2013년 4월 15일 충북대 개신문화관에서 열린 삼성그룹 ‘열정樂서’에서 강연하고 있는 신상목 기리야마 대표. 사진=뉴시스

  윤석열 당선인의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있다. 20년간 외교관 생활을 한 신상목(기리야마 대표)씨는 일본을 비롯한 세계사 전문가다. 《일본은 악어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계사》를 집필했다. 신상목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런 글을 남겼다.
 
  〈예전에 윤(석열) 후보가 가게에 온 적이 있다. 어찌어찌해서 자리에 꼽사리 끼게 됐는데, 윤 후보가 내 책을 봤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내 책의 내용을 꿰뚫고 있었다. 내 책 말미에 헨리 토머스 버클이라는 영국 경제학자 겸 역사학자 얘기가 나오는데,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근대화 과정에서 후쿠자와 유키치 등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신 대표에 따르면, 버클은 ‘기업인의 기업가 정신이 부(富)의 원천’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인물이다. 그는 “윤 후보가 그 버클을 알고 있었다”며 “버클이 문제가 아니라 애덤 스미스 이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계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썼다.
 
  윤석열 당선인은 신 대표에게 “경제학자인 아버지(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영향으로 경제사에 관심이 커 그쪽 분야의 독서량이 많았다”고 했다고 한다. 신상목 대표는 “그 경험 이후 최소한 윤 후보가 무식하다거나 무지하다거나 하는 마타도어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선거 기간 중 왜 시장경제를 유독 강조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尹, 자유시장경제 체제 확실히 신봉하는 사람”
 
  《월간조선》(2021년 5월호)은 윤 당선인이 1988년 집필한 서울대 석사 논문 〈미국 Class Action에 있어 대표요건에 관한 연구〉를 최초 입수해 그 내용을 조목조목 분석했다. ‘Class Action’이란 ‘집단소송’을 뜻하는데,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집단소송 대표자의 지위와 법적 근거 등을 미국의 사례에 비춰 분석한 것이다.
 
  윤 당선인이 논문을 썼던 1980년대 중후반, 집단소송은 미국에서는 보편화돼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생소한 제도였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법 제도를 통해 일반 국민들이 권익(權益)을 보호받기란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민초(民草)’들이 세를 규합해 소송에 나선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것이었다.
 
  윤석열이 논문을 한창 작성하던 1987년 국내 최초로 집단소송이 제기됐다. 1984년 호우로 인해 유수지의 배수갑문이 무너져 서울 망원동에 수재(水災)가 발생했다. 이때 피해를 입은 5885가구, 주민 2만5000여 명이 집단소송에 참여한 것이다.
 
  그가 집단소송 관련 논문을 쓴 배경엔 고(故) 조영래(趙英來·1945~1990) 변호사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영래 변호사는 1987년 우리나라 최초로 집단소송을 제기한 법조인이다. 인권 변호사인 조 변호사는 좌우(左右) 양 진영에서 신망을 받았던 인물이다.
 
  기자는 그의 어렵고 복잡한 논문을 읽으면서 윤석열이 어떤 인물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논문에선 일견 진보적인 색채가 엿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진보란 정치적인 관점이 아닌 사회 현안을 바라보는 시각을 말한다.
 
  민주화 바람과 함께 우리 사회에 등장한 환경 문제, 노사 문제 등을 집단소송 관점에서 바라본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독특한 시각이었다. 이런 ‘진보적 관점’이 윤석열 당선인의 ‘정치적 색깔’과도 관련이 있는 건지 궁금했다.
 
  윤석열의 논문 지도교수는 송상현(宋相現) 서울대 명예교수(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송상현 교수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재선)을 지내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송 교수는 작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당선인 논문과 관련해 기자와 다음과 같은 문답을 나눴다.
 
  〈― ‘집단소송’이라는 개념이 자유시장경제 체제와 상충하는 건 아닌가. 논문을 근거로 윤석열이 ‘반(反)시장주의자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있다.
 
  “그런 잣대를 적용한다면 공정거래위원회도 있어서는 안 되는 기구다. 공정위도 엄밀히 말하면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반(反)하는 것이잖나? 윤석열을 ‘반시장주의자’로 보는 시각은 아주 고전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그런 시각이 부합하지 않는다.”
 
  ― 그렇다면 ‘집단소송’은 자유시장경제에 부합하는 것인가.
 
  “그렇다. 집단소송이라는 건 한마디로 거대자본과 거대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다. 자본과 권력이 독단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자본시장 내에서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의 권익을 보호해주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더욱 원활하게 돌아간다. 그런 측면에서 집단소송을 단순히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반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선 안 된다.”
 
  ― 윤석열을 정치적인 관점에서 진보라고 해석할 수 없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당연하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윤석열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확실히 신봉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검사 시절부터 갖고 있던 생각과 관점, 아내 김건희 대표의 성격과 두 사람의 관계까지 폭넓게 알아봤다. 윤석열 당선인은 비록 0.73%포인트라는 매우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지만, 그의 당선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향후 5년은 지난 5년의 폐단을 바로잡아야 하는 시간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모색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국가의 존립(存立)을 뒤흔드는 데에는 5년이란 시간으로 충분했을지 모르나, 그것을 바로잡는 데에는 5년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지난 5년간 보았듯이 또다시 ‘비상식’과 ‘편 가르기’가 판치는 대한민국이 돼서는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윤석열 당선인은 무거운 역사적 책무를 지고 있음을 늘 유념해야 할 것이다.⊙

 

 월간조선   글 : 조성호  기자  chosh760@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