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상식

개는 사람 말 다 알아들어… 아닌 척하는 이유가 있지

해암도 2021. 12. 19. 07:17

[나는 강아지로소이다] 

 

개아범은 처음에 “너는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니?”라고 자주 말했었다.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살짝 기울여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사실은 알아들으면서도 아닌 척한 것이다. 이것은 엄마가 내게 가르쳐 준 삶의 중요한 기술이다.

/김도원 화백

 

인간이 시키는 대로 다 하면 인간은 개에게 무조건적 복종을 원하게 된다. 못 알아듣는 척 소파 물어뜯고 벽지에 오줌도 싸고 해야 인간은 개를 설득과 훈련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앉으라고 할 때 뒷다리를 앙버티고 서 있으면 인간들은 간식을 들고 와서 앉으라고 한다. 오줌이 마려워도 꾹 참고 있다가 인간이 보고 있을 때 배변 패드에 가서 눠야 한다. 그러면 인간들은 박수를 치며 간식 봉지를 연다.

 

남미의 아튜아족이란 부족은 껄끄러운 대화를 해야 할 때 개를 사이에 두고 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부부가 개를 사이에 두고 이런 대화를 한다. “너네 아빠는 왜 맨날 술을 마신다니? 지겹지도 않나?” “너네 엄마는 월급쟁이가 술이 좋아서 마시는 줄 아는 모양이네.” 당연히 아튜아족 개도 인간의 말을 다 알아듣지만 마치 아닌 척 양쪽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가만히 앉아있는다.

 

그러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는 한마디도 직접 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개가 말을 알아듣는 걸 안다면 그런 풍습이 없었을 것이다.

 

어떤 책에서 이런 내용을 읽었다. 늘 혼자 방구석에서 지내며 우울증에 시달리던 한 인간이 개를 키우기로 했다. 그는 개와 매일 대화하고 산책하며 서서히 우울증에서 벗어났고 점차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바깥 활동이 잦아지면서 개에게 점점 소홀해진 그 인간은 아침에 나가 밤 늦게 들어왔고 산책도 시켜주지 않았다. 개는 집 안에 배변을 하고 가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인간은 개에게 왜 안 하던 짓을 하느냐고 야단을 쳤다. 개가 속으로 말했다. “네 우울증을 내가 가져온 거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가 인간 말을 알아듣는다는 사실은 영원히 비밀로 남아야 한다. 개가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은 개를 챙겨주고 사랑한다. 만약 비밀이 탄로 나면 개와 인간은 맨날 싸우고 같이 살지도 못할 것이다.

 

인간들도 차라리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소설 ‘나는 강아지로소이다’ 번역자의 말에 이런 내용이 있다. “서로의 말을 알아듣고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여기서 착각, 오해, 배신감, 좌절, 실망, 분노 같은 감정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끝>

 

토동이 말하고 한현우 기자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