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데뷔 25년이 된 마술사 최현우. 다음 달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마술쇼 '더 브레인'을 선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5년 넘게 마술을 한 인생은 어떤지 물었다. 16일 만난 마술사 최현우(43)는 고민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매일 똑같아요.”
그는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세 시간 정도 카드를 외우다 왔다”며 “그동안 이렇게 살았다”고 했다.
“마술의 기본인 트럼프 카드 52장을 다 섞은 다음 순서대로 외워본다. 더 완벽해질 때까지 계속한다. 직장 다니는 기분으로 매일 한다. 그다음에는 곧 올릴 공연의 대본을 점검하고 무대 여러 부분을 점검한다.” 공연이 없을 때는 새로운 마술을 연구한다. 1996년 한 대학교 축제에서 마술사로 처음 등장해 올해로 데뷔 25년인 최현우의 하루다.
그의 일과는 매일 비슷할지 몰라도, 마술사로서 하는 일은 초현실적이다. 20일 최현우는 네이버 쇼핑 라이브에서 생방송으로 제990회 로또 당첨 번호 6개를 맞히는 마술을 보여줬다. 이날 오후 8시에 방송을 시작하며 미리 봉인된 상자를 공중에 매달았고, 8시 45분에 번호가 공개되자마자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당첨 번호가 똑같이 들어있었다. 라이브 시청 수가 10만명이 넘었다. 본인은 로또를 사지 않았다고 했다.
최현우의 로또 번호 맞히기 마술은 처음이 아니다. 2015년에는 아프리카TV에서 생방송으로 번호를 예언했다. “그때 로또 발행 사업자가 항의성 연락을 하더라. 하지만 마술은 마술일 뿐, 비밀은 절대 묻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는 “공부를 꽤 하던” 고등학생 때 데이비드 카퍼필드(65)를 보고 마술에 빠졌다. “화려하고 멋있어 막연히 동경하던 중, 우연히 일본의 백화점에서 마술 도구를 봤다. TV에서 나오던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 인생의 전환을 겪었다.” 반대하는 부모님을 피해 집을 나와 외국 서적을 구해서 보고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마술 공부만 했다”고 했다.
96년 데뷔 이후 98년엔 SBS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만남’에서 마술을 보여주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2002년 국제마술사협회(IBM)의 대회에서 클로즈업 마술(관객과 가까이에서 하는 마술) 1위에 입상했다. 2004년 ‘최현우 매직 콘서트’로 이름을 건 공연을 시작했다. “지금껏 내 쇼를 관람한 사람이 150만명 이상”이라고 했다.
당연히도,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최현우는 질문을 바꿔보자고 했다. “그렇게 묻는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한다. 마술에는 트릭이나 속임수가 있을 거라고. 그런데도 그들은 왜 마술을 보러 올까? 이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는 15년 전쯤의 이야기를 꺼냈다. “‘미스터 마릭’이라는 일본 선생님께 배웠다. 그가 ‘초능력이나 마법을 믿느냐’고 물었다.” 마술에 대한 각 나라 책을 섭렵하고 통달했던 최현우는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한 스승의 일갈을 그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마술사야말로 마법을 믿어야 한다. 초능력이나 신비가 없다고 믿는 마음은 관객에 전달된다. 그리고 전 세계 70억 인구 중에 초능력자가 없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느냐?”
최현우는 “그때부터 사람들의 내면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시각을 바꿔줄 환상이 필요하다. 트릭일 뿐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진짜 마법이 있나’라고 잠시라도 생각하게 된다. 자신을 움직이는 힘이 세상에 어디엔가 있다는 믿음. 결국에는 인생의 변화에 대한 희망이다.” 최현우는 마술에서 말과 스토리를 줄였고,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빠져들 방법을 집중 연구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뛰어난 손기술, 빠른 두뇌가 아니라 선함과 호기심이 좋은 마술사를 만든다고 믿는다. “좋은 사람이 좋은 마법사가 된다. 관객이 마술사에게 보고 싶어하는 환상, 느끼고 싶은 순간을 만들어주려면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또 새로운 모든 것을 비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왜 마술사가 됐을까 생각해봤는데 모든 것을 즐겁게 받아들여서다. 뭐든지 새롭다 싶으면 재밌다. 처음에 마술을 할 때도 유명해질 마음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새로워서 재미있었다.”
마술도 세월 따라 바뀐다. 지금은 동물도, 아름다운 여성 조수도 없다. 동물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고, 여성을 이용해서도 안 된다. 대신 최현우는 심리학, 인지과학 논문을 찾아 읽으며 사람의 행동 패턴을 이용한 마술을 들고 나왔다. 2014년 시작한 공연 ‘더 브레인’이다. “현대 관객은 확인하고 싶어한다. 마술사도 발맞춰야 한다. 쌍방향으로 마술을 이끌고, 비법을 공연 맨 마지막에 공개한다.” 그는 “앞으로는 메타버스 안에서 마술 공연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조심스레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를 마술로 이끌었던 카퍼필드는 이제 “카퍼필드 형님”이라 부르는 사이다. “아직도 현역으로 라스베이거스에서 하루 세 차례씩 공연하는 형님처럼, 무대에서 버틸 수 있는 날까지 마술사이고 싶다.” 그가 매일 아침 출근하듯 카드를 섞고 외우는 이유다.
최현우의 ‘더 브레인’은 다음 달 3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열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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