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에 서사를 담아... 억울하지 않게, 염치 있게”
”판사 과로사 심각… 숫자 늘려야 좋은 재판 가능“
”판사는 당사자, 국민을 독자로 판결문 쉽게 써야“
”죄의 중심엔 돈과 탐욕… 가난은 가까이 보면 더 참혹“
”악 피하려면, 스스로 양심과 염치 지켜야”
‘한가족이 외식을 하는 동안 다른 한 가족은 번개탄을 피운다. 같은 프레임 안에서 조차 아웃포커싱으로 흐려진 곳에 ‘얼굴’들이 있다. 사랑은 근경이다. 원경의 사랑은 없다. 원경의 그리움만 있을 뿐. 법정에 선 사람들의 슬픔은 계속 차올랐고 나는 판결문이 아닌 글을 직접 쓰리라 결심했다.’- 박주영의 ‘법정의 얼굴들’ 중에서
판사의 글쓰기 책을 냈어도 좋았을텐데… 박주영 판사가 쓴 책 ‘법정의 얼굴들’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어떤 양형 이유’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법정의 얼굴들’은 아름답고 눈물겨운 문장으로 가득하다. 작가가 되었어야 할 사람이 판사가 되어 죄많은 인간과 죄없는 인간 사이에서 몸소 서사의 다리가 되었다.
학대아동부터 소년범까지, 정신질환자부터 사형수까지… 그가 그린 법정의 서사는 참혹하지만 정확하고, 정확하기에 더욱 생동한다. 그의 판결문은 오래 들여다보고, 많이 울어본 자만이 그릴 수 있는 구체적 사랑의 근경이다. 죽은 자의 판결문은 부고가 되고, 산 자의 판결문은 우리 사회에 보내는 편지가 된다.
‘법정의 얼굴들’은 ‘혼잣말 하는 사람들’이라는 챕터로 시작한다. 동반 자살을 하기 위해 만난 세 명의 청년이 자살 시도 직전에 단톡방에서 나눈 대화가 충격적이다.
판사는 동반 자살 실패로 법정에 온 청년들에게 집행 유예와 보호관찰을 선고한 후, 떠나려는 그들을 자리에 앉혀 ‘피고인께 드리는 당부’라는 글을 써서 읽어준다.
‘우주가 도서관이라면 우리 모두는 하나의 책이기에 한번 시작된 이야기는 도중에 허망하게 끝내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가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으니, 듣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여러분의 이야기는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스스로를 선처하고 아끼며 살라’.
“잘 살아주십시요, 부디”라는 말로 당부의 편지가 끝이 났다. 법정을 나서는 젊은이의 손에는 스스로 쓴 반성문과 가족의 탄원서, 판사가 쥐어준 책과 돈 20만원이 들려있었다
박주영 판사를 인터뷰했다. 그는 7년간 변호사로 일하다 경력법관제도로 판사가 됐다. 형사 재판을 주로 했고, 소년재판, 공보기획판사도 했다. 현재 부산지방법원에 부장 판사로 있다. 자신의 판결이 사회구성원에게 위로보다 상처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피고인에게 돈까지 쥐어서 내보내는 그 마음이 궁금합니다. ‘영배 씨와 찬우 씨가 세상에 나가 별별 추한 꼴을 보더라도 이 순간을 기억해주길’이라고 책에 쓰셨어요.
“(미소지으며)판사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돈을 줬어요. 소년 재판할 때 아이들에게 책 사주고 밥은 사줬지만 돈은 안줘봤습니다. 제 나름대로 사회에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피고인들에게 편지도 읽어주고, 반성문, 탄원서는 직접 읽도록 시켰어요. 어찌보면 쇼였죠.”
-쇼 라구요?
“하하. 네. 저는 경상도 사람이라 이벤트 이런 거 되게 안 좋아해요. 하지만 사람 살리기 위해 이벤트라도 하자, 싶었어요.”
-선량한 쇼네요. ‘스스로를 선처하며 살아라’는 말이 뇌리에 박히더군요. 스스로를 해치고 처벌하려는 자살 시도자에게 가장 자애로운 형벌이 ‘스스로 선처하며 살라’는 당부가 아닐른지요.
“약한 사람일수록 자기 비하가 많아요. 그래서 ‘혼잣말하는 사람’을 그냥 두면 안돼요. 법정에서는 피고인들에게 판결을 내리지만, 집에 오면 저도 그냥 한 사람이잖아요. 그즈음에 아내가 혼잣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반성을 많이 했어요. 상대가 허공에 대고 혼자 말하도록 두는 건 잔인한 거죠. 판결문 쓸 때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판사의 위엄과 남편의 역할이 분리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통합되는 모습이 신기했다. 삶이 법으로, 법이 삶으로 흘러들어 반성하고 선처하는 모습은 이러하구나...
-죽은 사람을 사라진 책으로, 울음을 약자들의 문장으로 표현하셨어요. 한 사람을 책과 서사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판사라는 직업에 도움이 되나요?
“책을 그치지 않고 완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돼죠. 재판하다보면 유죄로 인정된 경우 적합한 형량을 고르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늘 시간이 부족해요. 시간에 쫓기니 양형조사할 때 한 사람을 통시적으로 보기가 어려워요. 어릴 때 환경, 살아온 이력 등 전체 관찰을 못하고 CT나 MRI처럼 범행을 저지를 무렵의 단면만 딱 잘라서 보게 돼요.
전체 페이지 중 158p만 보고 판결을 해버리는 셈이에요. 꾸준히 관찰된 자료, 한 사람의 앞선 페이지를 읽으려는 노력은 중요해요. 오류와 오해를 줄일 수 있죠. 다만 시간 여건이 안돼요.”
서사와 시간의 다툼 속에서 필요한 것은 한 개인의 ‘속독’과 ‘과로’ 아니라 더 많은 판사라고 했다. 하루에 평균 10건의 선고, 매일 평균 1건의 살인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판사의 노동량은 듣기만 해도 열악했다.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구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란과 독촉을 견디지 못한다고.
두 아이의 엄마였던 고 이승윤 판사의 과로사 이야기를 들으니, 하루 빨리 ‘판사를 갈아넣는 시스템’을 멈춰야, 판결문 앞에서 우리의 서사도 지켜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의 수를 늘릴 수는 없습니까?
“법으로 그 수가 정해져 있어요. 이제 한계치에 와 있으니 법을 바꿔야죠. 사건 당 30분 정도 이야기를 들으면 밤 12시 귀가. 10분 내로 말을 자르면 저녁 8시에 갈 수 있어요. 허허. 개인의 삶과 공적인 일 사이에서 타협을 못하고 있죠. 이걸 해결해야 국민도 좋은 재판을 받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가장 큰 걸림돌이 뭔가요?
“법원에 돈이 없어요. 예산만 있으면 판사를 늘릴 수 있어요. 독자적인 예산 편성권이 없이 기재부 등에서 돈을 타쓰니 주도적으로 일하기 어렵죠. 그렇다고 국회나 정부 부처를 만나면, 그 사이에서 사법 농단이나 재판권 남용같은 부작용이 일어나죠. 딜레마예요.”
지금은 법원이 신뢰가 바닥이라 악순환이라고 했다. “법원이 신뢰받으면 예산이 늘고 판사가 늘고 좋은 재판이 늘겠죠. 판사도 사람이라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법정에서 약자의 이름을 부르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시간의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판사가 이름을 호명하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습니까?
“피해 대상이 특정되면 느낌이 달라져요. 특히 아동 학대 사건은 마지막에 반드시 호명을 합니다. 형사합의부장이 되어서 아동학대나 정신질환자들의 선고를 할 때는 울면서도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요. 윤택할 윤에 빼어날 수 자 윤수, 창호, 진희... 이름을 부르는 이유는, 평안하게 사는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입니다.”
-상처를 주고 싶다니요?
“‘내 아이는 조현병입니다’를 쓴 작가가 ‘이 책이 위로가 아니라 상처가 되길 바란다’고 했는데, 저도 같은 심정이에요. 내 판결이 사회구성원에게 상처가 되길 바랍니다. 상처를 깨달아야 그걸 딛고 좋은 세상으로 갈 수 있잖아요.”
자신이 실력이 출중한 판사는 아니라고 했다.
“저는 평균치에 못 미쳐요. 우리나라 판사분들 수준 높습니다. 다만 저는 사건 당사자들의 미묘한 심리를 읽고 다른 표현력으로 법원에 기여하고 싶을 뿐이죠.”
타인의 마음을 상상해 보지 못하면 법리에 갇혀 사건의 행간을 보지 못하기에, 그는 틈날 때마다 책과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다. 판사들이 술과 골프보다 인문 교양을 쌓는데 시간을 써야한다는 말에는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높고 엄중한 언어를 쓰는 판사들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낮고 부드러운 언어를 쓸 용기를 냈나요?
“법률가의 문장으론 좋지 않아요(웃음). 공동 문서를 작성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훈련받은 문장을 쓰지만, 제가 단독 재판을 할 때 만큼은 판결문에 시와 경구도 인용하며 자유롭게 썼어요. 마음을 담아 솔직하게 썼죠.”
-솔직하기가 정확하기보다 어려운 법입니다.
“여지껏 법원의 솔직한 이야기가 없었잖아요, 판사들은 언비주의, 신비주의에 익숙해서 많은 걸 설명할 필요를 못 느꼈어요. 모르면 모르는 대로, 내버려두고 알아서 이해하라는 식이었죠.
저는 변호사를 하다가 경력법관제도로 법원에 와서 공보판사로 일을 했어요. 당시에 기자와 판사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했습니다. 기자분들이 의미를 물으면 제가 판결의 경위와 맥락을 설명해드렸어요. 그런 경험으로 제가 쓰는 판결문만큼은 되도록 길게 자세히 풀어서 쓰려고 했어요.”
-판결문을 쓰면서 읽는 독자를 생각하셨군요!
“그렇죠, 판결문의 주된 독자는 상급심과 당사자예요. 그런데 지금 판결문은 상급심만 주된 독자로 생각하죠. 사건 당사자가 배제돼 있어요. 당사자가 이해해야 판결에 오해가 없잖아요. 일반 사람은 사건의 표면만 보니 선고된 양형이 ‘낮거나 높다’고 비난할 수 있어요. 기자도 국민도 왜 어떤 강간죄는 3년이고 어떤 건 5년인지 한눈에 납득하기 어렵죠. 그래서 저는 판결문에 서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늘 궁금했습니다. 치정, 방화, 학대, 살인… 신문에 한 줄로 처리된 수많은 사건과 괄호 안의 신상정보를 볼 때마다 저 안에 생략된 개별적인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피해자든 가해자든, 그들의 이야기를 누군가 제대로 듣고 적기라도 했을까?
“변호사 생활할 때는 의뢰인의 입장에서 치우쳐서 들었어요. 판사가 되면 이해관계 당사자에 따라 2배 이상의 정보가 들어오죠. 재판으로 모이는 서사의 양이 100이라면, 그 중에서 판결문에 담기는 양은 5정도예요. 징역 몇 년을 선고하는데는 필요한 서사의 양은 극히 적죠. 그렇게 95분량의 서사는 다 휘발되고 판결문엔 앙상한 몇 줄만 남아요.”
-실제 재판에서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서사가 양형에 영향을 미치겠지요?
“네. 가령 아이를 데리고 동반자살을 시도한 경우. 중형을 선고하는 게 맞아요. 검찰은 5년을 구형했고, 저는 4년을 선고했어요. 그런데 맥락을 보면 집행유예를 선고해도 이상하지 않았어요. 발달장애 자폐 아이를 최선을 다해 돌보다 벼랑 끝에 몰려서 아이는 죽이고 자기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바보가 된 상태였죠. 스스로 왜 법정에 와 있는지도 몰라요.
그 상태로 교도소 들어가면 케어하느라 교도관들이 더 고생이죠. 하지만 ‘자녀 살해’가 더이상 미화되서는 안되겠기에, 눈물을 머금고 4년을 구형했습니다. 그리고 판결문에 자세히 썼죠. 선고되지 않은 나머지 형은 우리 사회가 져야할 몫이라고요.”
-매일같이 끔찍한 사건을 다루다 보면, 인간에 대한 실망과 트라우마도 겪을 것 같습니다.
“아동학대 사건의 양형을 정하고 판결문을 쓸 때는 하룻밤에 몇 년은 늙어버리죠. 잔혹한 사건, 결론이 보이지 않는 사건, 증거가 부족한 사건 앞에 있어도 빠져나오기 어려워요. 밥 먹을 때, 길을 걸을 때 온통 몰입하죠. 내 판결로 한 사람의 인생이 좌우된다고 생각하면, 내 손을 떠난 사건도 나를 놓아주지 않을 때가 많아요.
상급심에서는 어떻게 판결할까? 책에서 쓴 강간범의 경우, 내 직관으로는 분명 유죄인데 상급심에서 무죄가 됐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같은 수법으로 죄를 짓고,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기술자였죠.”
-문득 궁금합니다. 판단할 때 직관을 많이 사용하는 편인가요?
“(미소 지으며)변호사 할 때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판사는 어떤 이유로 저런 결론을 도출할까? 증거를 모아 결론을 내리는 귀납법을 쓸 것 같지만, 아니에요. 오랜 경험으로 닦은 직관이 있죠. 느낌이 오면 자료를 보면서, 내 가설에 맞는 증거를 검증해 가요.
평소 법리와 증거를 보는 훈련이 돼 있어야 가능하죠. 그래도 편견과 확증 편향에 빠질 수 있다는 위험을 배제하면 안됩니다. 내 가설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어요. 반대 증거 나오면 과감히 내 가설을 부숴야 해요.”
-판사가 자기 가설을 부수기 어렵지 않나요?
“어렵죠. 판사만 하다 보면 똑똑은 해도 식견이나 시야가 좁아져요. 우습지만 판사들이 사기를 제일 잘 당합니다. 세상 물정을 잘 몰라요. 울산 법원에 있을 때는 보이스피싱 당한 분도 있었어요. 경력이 많은 판사일수록 법리는 훌륭하지만 법리 너머의 실체는 잘 모릅니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사실 관계의 파악이라고 했다.
“사실관계에서 증언이나 증거를 확정짓는 데, 판사가 그 부분에서 제일 무지해요. 추락해서 떨어진 산재 사건이면 노동자가 그 현장을 가장 잘 알죠. 일상을 사는 국민들이 사실관계의 전문가예요. 그런데 경험많은 판사분들일수록 본인이 사실관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무오류의 확신’이 있어요.”
그는 신비에 쌓여있던 판사라는 자기 직업의 객관화에 거침이 없었다. 무오류의 권위자보다 국민과 판관 사이의 커뮤니케이터가 되려고 작정한 듯 했다.
-무오류의 확신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만들어냅니까?
“사건 당사자보다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면,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 어려워요. 세상사에 무지하다는 걸 알아야 당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 재판 수준은 높고 오판가능성은 낮은 편이에요. 그래도 저는 현장에서는 아찔할 때가 많습니다. 과학적 방법을 쓰고 시간을 충분히 써서 더 개선해야죠.”
-얼마 전엔 뇌출혈 아버지를 방치한 한 청년의 간병살인이 인구에 회자됐습니다. 가해자이지만 생활고로 전기와 통신까지 끊어진 서사가 공개돼 많은 사람들이 탄원서를 썼어요.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2심에서도 형량이 줄지 않아 의아했습니다.
“제가 판결 전문을 읽어보니 법률적으로 타당한 양형이었어요. 셜록이라는 매체에서 청년의 고난을 탐사보도했지만, 재판부 입장에서는 번복하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존속살인은 징역 7년 이상이고 절반을 깎아도 3년 6개월입니다. 그러면 집행유예가 안돼죠.
아무리 가여워도 무죄가 아닌 이상, 유기치사가 아닌 존속살인으로 기소를 한 이상, 판사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다만 판결문에 좀더 상세히 썼더라면 인정머리 없다는 비난은 안 받았을텐데... 아쉽죠.”
-최근 들어 법원의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지적도 많습니다. 박주영 판사님은 ‘오프라인 N번방’이라고 지칭된 가출청소년 성매매 강요 사건에 도합 102년 형을 선고했었지요? 어마어마한 형량입니다.
“네. 12명의 양형 총량이 102년이었죠. 선제적으로 위험을 경고하는 사이렌이었어요. 그런데 성인지감수성은 법원 내부에서 변화도 있지만 저항도 있어요. 피해자 진술의 증거 능력이 올라가고, 결국 유죄 확률이 높아지는 거죠. 형사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과 부딪혀요.
저는 현장에 있다보니 페미니즘 논쟁이나 그 이론적 배경에는 관심이 없어요. 당장 맞아죽는 여자와 아이들, 강간당하고 자살하는 군대 내 여성들... 그들 앞에서 칼을 치우는 게 급해요. 기자님이 아시는 것보다 다급합니다. 친부, 계부에 의한 성범죄가 정말 많아요.”
재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피카소의 ‘우는 여인’이라고 했다. 아이를 죽여서 울고, 아이가 묵어서 울고, 맞아서 울고, 강간 당해 우는 소리가 선명한데,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없다는 얘기는 말이 안된다고 일갈했다.
-성범죄 99.1%의 피해자가 여성이라고요?
“네. 가해자의 80%가 남자죠. 살인이나 폭력도 피해자는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아요. 헤어지자는 말을 했다고 아흔 번이나 칼에 찔려 죽습니다. 경험상 여성이 여성을 살해한 경우는 엄마가 아이를 살해한 경우가 유일합니다. 그 외에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이나 동거남을 살해한 경우죠. 얼마나 많은 여성이 울고 있는 지 다들 잘 모르세요. "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교도소로 보내달라고 경범죄를 저지르고 와서 통사정을 한다지요.
“전통적인 사법시스템은 ‘응보’를 원칙으로 해요. 죄만큼 가둬놓는 거죠.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예방하는 효과가 있어요. 그런데 가두는 형벌을 부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나? 아니거든요. 남미에서는 마약 사범을 무조건 수감했더니 교도소가 거의 터져나갔어요.
교도소로 바로 보내지 않고 법원, 검사, 보호관찰소, 의사, 시민사회가 협조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생계유지가 안되는 ‘장발장’ 범죄자, 정신질환자 류는 무조건 감금 처벌보다 기술 가르치고 일자리 찾아주고 치료를 받게 해야 돼요.”
‘교도소 아니면 사회’ 이분법 만으로는 해결이 안된다고 했다.
-결국 돈이 더 있어야 되는 일 아닙니까?
“그렇지도 않아요. 서구 사례를 봐도 보호관찰 치료에 500불이 든다면, 교도소 보내는 데 1만 불이 듭니다. 피고인 서사는 형벌 서사만 있는 게 아니에요. 범행이 일어난 ‘158P’만 떼놓고 보지 말고, 그 사람 삶의 다음 페이지들도 봐야죠. 그래야 사회적 서사를 쓸 수 있어요.
지금도 정신이 취약해서 찌르고 궁핍해서 훔치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법원으로 와요. 미국처럼 법원이 콘트롤타워가 돼서, 이 사람들을 세워나가는 게 시급해요.”
-죄도 벌도 구제도 어쨌든 돈과 떨어뜨려 볼 수 없습니다. 가난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더 참담한 비극이더라고 하셨어요. 법정에서 본 가난 중 웃기는 가난은 한 건도 없었다고. 실제로 모든 죄를 파고들어가면 나오는 건 돈인가요?
“탐욕 아니면 돈이죠. 탐욕이 개인적인 영역이라면 돈은 사회적인 영역이에요. 가난하다고 다 범죄에너지가 있는 건 아니지만, 빈곤 범죄는 사회적 영역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래요. 사람은 안 미워해도 가난은 미워한다고. 마약 중독이나 자살 방조는 다 사회적 예산과 인프라 부족으로 생겨요.
그런데 추적해보면 돈은 늘 어딘가에 다 있어요. 소년부 판사할 때 여가부와 지자체 아동청소년과를 설득해서 가출 청소년 쉼터 보조금을 만든 적이 있어요. 법원은 예산이 거의 없어 MOU까지 체결해서 다른 기관에서 돈을 끌어왔죠. 현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수습하고 뒷처리할 뿐, 사법절차나 정책 수립은 입법과 행정의 영역이에요.”
죄의 중심부는 기승전 ‘돈’으로, 판결문의 중심은 기승전 ‘서사’로 돌아온다는 게 신기했다.
오직 서사만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이자 무기인데, 여전히 피해자의 서사가 너무 많이 사라진다고, 박주영은 오래 통탄했다. 판결문에 남지 않으면 누구도 그의 삶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저조차 몇 달 전의 사건은 다 잊어버리고 기억나지 않아요…”라며 그가 미안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판사님! 살다보면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악’도 만납니다. 요즘엔 ‘조커’나 ‘크루엘라’ 같은 빌런도 자기만의 고유한 서사로 거듭나고 ‘다크 히어로’로 추앙받지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미스테리한 ‘악인’을 저는 많이 목격했어요. 악은 모호하고 교활하고 궤변과 거짓에 능한 데 우리가 어떻게 악인의 얼굴을 식별하고 피할 수 있을까요?
“(한숨 쉬며)악은 선을 알지만 선은 악을 잘 몰라요. 성범죄의 50% 이상이 아동청소년에게 벌어져요. 웃는 얼굴로 구분이 안가는 자기애성 인격장애, 사이코패스가 많아요. 법정은 온갖 종류의 악이 흘러드는 바다같죠. 우리 스스로도 방심할 수 없어요. 선에 무관심하면 순식간에 흑화돼요. 판사조차 선과 악의 경계를 걸어가죠.”
-악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스스로가 염치와 양심을 지키며 사는 수 밖에 없어요. 저조차도 어느 순간 보니 아내가 혼잣말을 하고 있었어요. 따져보면 그 원인이 저였어요. 염치와 양심을 저는 거꾸로 난 가시라고 말해요. 제 몸을 파고드는 가시가 많은 사람은 늘 염치를 생각해요.
그런데 돈처럼 양심이나 공감능력도 이미 가진 사람이 더 가져요. 그래서 착한 사람은 더 상처받고 악한 사람은 더 뻔뻔해지죠. 제 피고인 중에 정신질환자 환자는 너무 착한 데 어머니를 칼로 찔렀어요. 연약한 마음이 벼랑 끝에선 흉기도 될 수도 있으니 안타깝죠.”
-인간으로 죄짓고 산다는 것의 부끄러움을 알면, 염치 있는 자들의 천국이 되지 않을까요. 한 사회의 염치가 적정 수준으로 지켜 지려면 무엇이 선행되야 합니까?
“법정에서 보면 안타까운 모습이 성범죄피해자가 자기 탓을 해요. 그때 저는 불러서 꼭 말해줍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은 ‘잘못이 외부에 있다’는 걸 자각해야 합니다. 악인들이 정신차리려면, 약하고 염치 있는 사람들이 씩씩하게 잘 살아야 해요. 그래야 악이 상처받습니다.”
-성공한 재판은 마음을 움직이는 재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신가요?
“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작은 소송도 몇 년에 걸쳐 수십 건의 더 큰 소송으로 비화됩니다. 제일 무서운 게 감정 싸움이죠. 마음이 풀리면 수십 억 소송도 조정으로 해결돼요. 법원의 최종 목적은 분쟁 해결, 갈등 해소입니다. 마음이 통해야 말끔하게 해소돼죠.
형사 재판은 민사와는 달라요. 사회적 피해가 있어 합의나 갈등 해결이 최종 지향은 아닙니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형벌을 부과하고 사회 정의를 구현한다는 목적이 있지요. 그 첫단계가 실체적 진실이에요.”
-실체적 진실은 밝힐 수 있습니까?
“우리는 실체적 진실을 찾지만, 아닐 가능성이 높죠. 누구도 모릅니다. 현장에 있어도 몰라요. 그래서 나중에 증거를 모아 절차적 진실을 추구할 뿐이죠. 그렇게 형사 재판 절차로 찾은 진실로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게 옳은가? 법대로 하는 게 정의인가? 우리는 또 질문할 수 밖에 없어요.”
-유한한 시간과 문화를 사는 인간이 정의를 고정시킨다는 게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미국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판례법을 따르지 않습니까?
“그렇죠. 정의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어요. ‘같은 걸 같게, 다른 걸 다르게’. 범주화만 할 수 있죠. 그래서 정의구현은 쟁취가 불가능해요. 다만 그 열망을 버리지 않는 거죠.
그래야 재판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일정량의 평화와 안식을 줄 수 있으니까요. 피해자에게는 위로와 치유를, 피고인에게는 죄지은 만큼의 처벌을, 법정에는 실체적 진실에 가까운 양형을, 사회적으로는 당사자간의 갈등 해소와 유사범죄의 방지를.”
-앞으로 판결문이 공개되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요?
“판결문 전면 공개라는 원칙은 이미 세워졌어요. 하급심 판결이 전면 공개되면 무수한 공격에 시달릴 거에요. 언론, 시민단체, 학계의 비판이 만만치 않겠죠. 그래도 해야죠. 하급심의 판결문은 사회 현상에 대한 법적인 기준이 돼요. 국민이 법의 잣대를 제대로 알아야 지켜나갈 수 있겠죠.”
-판결에 어려움을 느낄 때는 누구를 떠올리나요?
“제가 판결문을 마음대로 쓰도록 내버려 두셨던 고종주 판사님이요(웃음). 부부 사이의 강간을 최초로 죄로 인정했던 분이죠. 무엇보다 사랑이 넘치고 시인의 마음을 가진 분입니다.”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약을 못 끊던 마약중독자가 법정에서 제 격려를 받고 단약한 후에 편지를 보내왔어요. 보호관찰받던 자살 시도 청년도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연락을 합니다. 판사 하길 참 잘했어요(웃음).
-마지막으로 판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판사는 마지막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약자가 기댈 최후의 보루죠. ‘판결문’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지키고 있어서, 매일 밤 이렇게 집에도 못 가고 늦은 시간까지 사건을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학대 받는 아이와 떨어지는 노동자와 강간당하는 여성이 있다는 걸 잊지말아달라고. 선이 멀어지면 악이 가까워진다는 당부와 함께 기나긴 인터뷰가 끝이 났다.
그렇게 행위보다 발 딛고 선 위치를 각성하는 박주영의 얼굴이 묻는다. 죄와 벌 사이, 선과 악 사이, 염치와 몰염치의 거리에서 나의 얼굴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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