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손실 없이 돈 번다는 건 妄想일 뿐입니다”
⊙ ‘주식 중독’으로 3억원 잃고 병원서 해고… 극단적 생각까지
⊙ 전 재산 날리고 끊은 것은? 주식 아닌 투자습관… ‘투자 체력’ 길러야
⊙ ‘주린이’는 실패할 가능성이 90%… 중요한 건 ‘회복 탄력성’
박종석
1981년생. 연세대 의대, 同 대학원 의대 석사 졸업 /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 서울대 보건진료소 정신과 전문의,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의료 임상교수 / 現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 원장, 연세대 의과대 정신과학교실·신촌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외래교수
답이 ‘0’ 아니면 ‘1’인 수학문제가 있다. 쉬워 보인다. 그런데 그런 경우, 보통 식(式)이 상당히 복잡하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답은 쉽다. 과정이 어려울 뿐이다. 이때 ‘개미’들은 패착을 둔다. 절차를 생략해버린다. 50%? 인생은 모 아니면 도지! ‘홀짝 게임’을 시작한다. 그래놓고 시키지도 않은 걸 한다. ‘올라라, 올라라….’ 주가 창 앞에 양손을 모으고 샤머니즘을 체험한다. 간절히 찾던 신(神)을 원망하는 단계가 와도, 절대 하지 않는 게 있다. ‘재무제표 보기’다.
주식시장은 냉정하다. 요행만 바란 개미는 바로 응징한다. -80%. 아프다. 우울하고, 잠도 안 온다. 너도나도 주식에 뛰어들며, ‘아픈’ 개미들도 많아졌다. 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있다. 2019년부터 ‘주식 클리닉’을 운영 중인 박종석(40)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이다.
― 주식 투자자들이 많아지면서 병원 찾는 사람도 늘었겠습니다.
“2019년경에는 주식 관련으로 하루 1~2명이 찾았는데, 요즘은 한 4~5명 정도 옵니다. 4배 정도 증가했네요.”
― 그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얘기할 순 없지만, 흔히 전세금을 빼서 투자했다 잃거나, 주식 때문에 파혼한 경우가 있고, 공금을 빼돌린 사례도 있습니다. 무리한 투자로 큰 손실을 낸 투자자들은 우울증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겪죠.”
― 주식으로 얻은 마음의 병은 모두 ‘중독’을 기반합니까.
“중독은 아주 심각한 경우고 보통 거기까지는 잘 안 갑니다. 우울감 등이 만성적으로 지속되면 중독에 빠지게 되죠.”
― 국내 1000만 ‘개미’ 중 학계에서 추산하는 ‘주식 중독’ 인구는 어느 정도입니까.
“그런 통계는 아직 없습니다. ‘주식 중독’이라는 개념이 겨우 만들어진 상태라서요. 학계에서는 이를 병으로 인정 안 한 상태고요. 관련 해외 논문도 없죠. 주식 중독 자가진단표도 제가 이번에 처음 만든 거고요.”
진단표는 총 14문항이다. 주식을 위해 돈을 빌린 적이 있다, 투자 후 불면증이나 불안증세가 생겼다, 업무시간에도 반복적으로 주식 창을 확인한다, 급등주 검색 프로그램을 쓰고 있다 등이다. 이 중 4개 이상에 해당되면 위험군이다.
도박처럼 주식 하는 사람들
올해 초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3000을 돌파했다. 박종석 원장은 “이때 유입된 개미들 중 도박하듯 주식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사진=조선DB
― 경제학에서는 지난해 대거 유입된 동학개미의 양상을 ‘유동성 공급’과 함께 설명합니다. 정신의학 차원에서는 어떻습니까.
“팬데믹 이전에는 주식 말고도 할 게 많았어요. 여행, 운동, 맛집 투어, 스포츠 경기 관람…. 세상에서 중국인 다음으로 도박을 좋아한다는 한국인들이 마카오는커녕 강원랜드조차 못 가게 됐습니다. 스포츠 경기 역시 줄어 토토도 못 하게 됐고요. 친구와 약속 한번 잡기도 힘들고, 재택근무, 육아로 계속 지쳐가는데, 유희(遊戲)라고는 배달음식과 넷플릭스가 유일한 시기가 1년쯤 지속되니 인내심이 바닥난 겁니다. 그때 주식이 무의식 속 눌려 있던 욕망의 문을 연 거죠.”
― 그래서 도박하듯 주식을 시작했다?
“PBR(주가순자산비율), PER(주가수익비율) 같은 기본적인 개념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잖아요. 특히 이번에 유입된 동학개미 중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어떻게 이것도 모르면서 주식을 하지?’ 싶을 정도예요. 그들은 말하죠. ‘그런 것 몰라도 잘할 수 있어.’ 임의 추론의 오류죠. ‘나는 가만히 있어도 부자가 될 수 있다’와 똑같은 말입니다. 그만큼 주식 자체를 운(運), 도박쯤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실제로 주식 중독의 양상은 도박 중독과 굉장히 닮아 있어요.”
― 주식을 도박처럼 하는 이유는 뭘까요.
“포모증후군(흐름을 놓치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 증상)이나 열등감 혹은 박탈감으로 투자를 시작하기 때문이죠. ‘친구의 아파트는 몇억이나 올랐다는데, 나는 무주택자다. 주식으로 빨리 몇억을 벌어야지.’ 열등감과 자존감의 감정적 보상을 위해 시작하다 보니 급하게 결과를 보려고 하는 거죠. 본인은 ‘주식을 시작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도박을 하고 있는 겁니다.”
주식 중독에 걸린 정신과 의사
“실상은 도박을 하고 있는 겁니다.” 마치 ‘남’ 얘기하듯 했지만, 그게 바로 ‘나’였다. 이쯤에서 그의 민망한 과거를 들춰본다. 2011년. 30대 초반의 나이에 처음 주식 계좌를 열었다. 당시 종잣돈은 2000만원. 송원산업과 삼성정밀화학(현 롯데정밀화학) 주식을 500만원어치씩 매수했다. 나머지는 삼성그룹 적립식 펀드에 넣었다. 지인에게 듣고 산 거지만, ‘초심자의 행운’은 비껴가지 않았다. 주식은 한 달 만에 9% 수익을 냈고 적립식 펀드는 +50%까지 찍었다. ‘투자의 귀재’라 생각했다. 뛰어난 능력에 비해 굴리는 돈이 적었다. 여윳돈 5000만원에 마이너스통장에서 뽑은 3000만원을 더하기로 했다. 또 다른 코스피 종목 3곳에 나눠 넣었다. 그러자 마자 다음 날. 코스피가 30% 폭락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오는 법. 그다음 날엔 북한 김정일이 죽었다. 단 2거래일 만에 계좌는 -17%가 됐다. ‘패닉셀’로 1200만원을 날렸다.
남은 돈은 6800만원. S사(社)에 ‘몰빵’하기로 했다. 다음 날, S그룹 부회장이 구속됐다. ‘강제 장투(장기투자)’에 들어갔다. 1년 뒤. 이번에는 S그룹의 회장이 구속됐다. 주가 폭락. 잔고는 달랑 2500만원이 됐다. ‘이러다 상장폐지 되는 거 아니야?’ 모든 주식을 매도하고 다짐했다. ‘다시 주식 투자를 하면 손목을 자르겠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미국 여행을 떠났다. 그랜드캐니언에서 대자연의 위대함을 보니 ‘돈이 다 무슨 소용’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엔 서서히 평화가 찾아왔다. 귀국 후. 성실한 의사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3개월가량 정신없이 일하던 어느 날. TV에서 S그룹 회장의 석방 소식이 들려왔다. 주당 7만원에 손절했던 주가가 단숨에 13만원까지 치솟았다.
― 그때 심경이 어땠습니까.
“마음의 평화고 나발이고 도저히 멘탈을 바로잡을 수가 없었죠. 착하게 살아온 나에게, 매주 5만원씩 감사헌금을 했던 나에게 하느님이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표적인 정서적 추론과 투사의 오류죠. 사실 착한 것과 투자의 성공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데 말이에요.”
― 정서적 추론과 투사의 오류를 범한 이후엔 뭘 했습니까.
“부랴부랴 다시 주식 계좌를 열었죠. 2015년, 서울대병원에 있던 때였어요. 손실을 만회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그간 모은 돈에다 대출까지 받아 총 3억원을 장외주식, 바이오주 등에 투자했습니다.”
― 인간은 역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군요.
“욕망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해지는지 체감했습니다. 도파민의 노예가 된 거죠. 그때 투자했던 장외주식 이름에 ‘삼성’이라는 글자가 들어갑니다. 그걸 보고 ‘이름에 삼성이 들어갔으니 오르겠지’라는 생각을 한 겁니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의사가 말이죠. 거액을 투자하면서도 PBR, PER은커녕 분할매도의 개념도 공부하지 않았어요. 주가는 신나게 떨어지더군요. 결국 4개월 만에 반 토막이 났어요.”
3억원 이상 날리고 해고 통보까지
주식으로 약 3억원을 날린 후 그는 안동으로 내려갔다. 2017년 근무하던 안동의 한 병원에서 병원 관계자와 함께. 사진=박종석 제공
1억5000만원이 눈앞에서 증발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춘다면 도파민의 진성 노예가 아니었다. 그만둔 건, 주식이 아니라 직장이었다.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곳을 찾아, 전북 전주의 한 병원으로 이직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주식 중독자’의 길을 걸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스마트폰만 봤다. 선물옵션, 레버리지, 급등주 등 초위험 투자에까지 손을 댔다. 주식으로 패가망신하는 ‘테크 트리’를 지르밟은 셈이다. 그 결과 총 3억2000만원을 날리고 말았다.
“주식에 빠진 의사, 우울증에 걸린 의사로 병원에서도 유명했어요. 결국 해고 통지를 받았죠. ‘서른여섯의 노총각, 흙수저 의사, 평생 고생해서 모은 돈을 주식으로 날린 바보’가 됐죠. 자존감이 바닥을 쳤어요. 마포대교에 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생활비를 드려야 하는 가족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일단 가족, 친구와의 연락을 모두 차단하고 구인 사이트에 들어갔습니다. 월급을 가장 많이 주는 병원을 검색한 뒤, 아무런 희망도, 의욕도 없이 경북 안동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로부터 3년간 주식을 끊고 살았죠.”
― 명색이 정신과 의사가 어떻게 그 지경까지….
“그 자만(自慢)이 한몫했던 거예요. ‘정신과 의사니까 자기관리를 잘할 거야’ ‘나는 욕망을 절제하는 법을 잘 알지’라는. 동기(動機)도 문제였죠. 주식으로 인생역전을 해보겠다고 뛰어든 거거든요. ‘연 5~10%씩 꾸준히 수익을 내겠다’처럼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주식으로 빨리 서울에 집을 사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계단, 한 계단 인내심을 갖고 올라야 하는데, 10계단 20계단씩 점프하려 한 거죠.”
주식을 끊은 3년간. 손이 근질근질할 땐 차라리 온라인 게임을 했다. 재무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끓어오르는 모험심(?)을 다스렸다. 틈틈이 운동하며 인내심을 길렀고, 회계 등 주식 공부도 하며 묵묵히 ‘투자체력’을 다졌다. 그렇게 2020년.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다시 계좌를 열었다. ETF, 채권, 금, 달러, 주식 등 분산투자에 더해 장기투자를 하겠다는 원칙도 꼼꼼히 세웠다.
‘도파민형’ ‘세로토닌형’ 투자자
‘초안전형 투자자’로 거듭난 지금은 적당히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 요즘은 주식 하면서 행복합니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투자를 하니까요. 끊어야 할 것은 주식이 아니라 잘못된 투자습관이었죠.”
―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주식 투자자의 유형을 나눠보면 어떻습니까.
“쉽게 ‘도파민형’ 투자자와 ‘세로토닌형’ 투자자로 나눠볼 수 있어요. 도파민은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에 의해 강한 쾌감을 느낄 때 나오는 호르몬입니다. ‘묻고 더블로 가!’를 외치며 급등주, 선물옵션, 초단타 매매를 즐기는 투자자들이 도파민형에 속하죠. 세로토닌은 길항작용(拮抗作用)을 하는 호르몬이에요. 세로토닌형은 주로 중장기로 삼성전자・애플・구글 같은 안정적인 주식을 택하며, 금・달러・부동산에도 분산투자를 하죠. 당연히 후자가 성공률이 더 높습니다.”
―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는 어떻게 압니까. 세로토닌형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도파민형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저도 비슷한 경우였죠. 어떤 유형인지 알려면 ‘자기 객관화’를 꼼꼼히 해봐야 합니다. 일기와 가계부를 쓰면 도움이 돼요. 내가 어떤 생산자이고, 소비자인지 알 수 있거든요. 그러면서 주식을 소액으로 몇 번 해보고, 손실도 경험해보는 거죠. 실패에 대한 2차 행동도 따져보고요. 100만원을 손해 봤을 때 1000만원을 들이붓는 사람인지, 다신 안 한다며 주식 계좌를 지우는 사람인지 보는 거예요. 이를 통해 스스로 어떤 투자에 맞는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겁니다. 그러면 스스로를 알지 못한 채 뛰어드는 것보다 성공 확률이 높겠죠.”
― 도파민형 투자자는 답이 없습니까.
“인지치료 등을 통해 개선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줄넘기를 하며 인내심을 길렀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도파민에 취한 이들이라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조언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쉬어갈 수밖에 없는 강제력, 이른바 ‘욕망의 휴게소’도 필요합니다. OTP생성기를 집에 두고 다니거나, 사려고 마음먹은 뒤 24시간 뒤에 매수한다거나, 주식 계좌 하루 한도액은 1000만원으로 설정한다거나요.”
― 피터 린치나 워런 버핏 같은 투자 귀재들의 뇌구조는 어떨까요.
“80~90% 세로토닌형일 거라 봅니다. 머릿속에 그들만의 철저한 공식이 들어 있을 겁니다.”
― 최근 도쿄올림픽에서 안산 선수의 심박 수가 화제였죠. 이런 ‘강철 멘탈’은 주식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까.
“그런 선수들은 애초에 무리한 행동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외부 자극에 휘둘림을 최소화하는 전략 자체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준비 없이 주식을 하지 않을 겁니다. 또한 이처럼 한 분야에서 최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공감 능력과 사회적 지능도 뛰어나죠.”
― ‘정신력’이라는 건 유전입니까.
“어느 정도 유전이죠. 어떤 사람의 ‘기질’이라는 건 유전이라 변하지 않아요. 여기에 경험과 환경이 더해지면 ‘성격’이 되죠. 성격은 후천적으로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어요. 비율로 따지자면 정해진 기질 30%에 경험과 환경 70%가 더해져 성격이 됩니다.”
― ‘강한 멘탈’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경험과 환경이 있다면요.
“예컨대 어릴 때 부모가 회복 탄력성을 키워주면 좋겠죠. 여러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끔요. 자책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다시 시도할 수 있게요. 실패를 자책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부정적인 자아상을 만들기 때문에 주로 과거에 머뭅니다.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는 능력이 떨어져 의미 없는 되새김질을 많이 하죠. ‘그때 삼성전자 살걸’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살걸, 팔걸, 팔지 말걸’이 입버릇인 사람
‘껄무새’는 ‘살걸’ ’팔걸‘과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투자자를 뜻하는 신조어다. 박종석 원장은 “회복 탄력성이 떨어지면 껄무새가 된다고 했다. 사진=인터넷 캡처
― ‘껄무새’(‘~할걸’이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개미를 일컫는 신조어)라고 하죠.
“회복 탄력성이 떨어지면 ‘껄무새’가 됩니다. 좋은 멘탈은 회복이 빨라요. 실패는 누구나 합니다. 이때 원인을 분석하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는데, 회복 탄력성이 떨어지면 만날 옛날얘기만 해요. ‘삼성전자 살걸’ 하는 동안 테슬라, 엔비디아 다 놓치는 거죠. ‘아, 그때 들어갔으면 1000만원 더 벌었는데.’ 아무 의미 없는 후견편향이죠. ‘그랬으면 나는 성공했을 거다’라는 가짜 자존감에 의지하는 겁니다. 그러는 동안 새로운 일을 실행하는 데 쏟을 에너지는 등한시하니, 당연히 수익이 안 나겠죠.”
― 다 커서 회복 탄력성을 기르는 방법도 있습니까.
“회복 탄력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통제력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 여유 자금의 10분의 1 정도로만 투자해 변동성에 충분히 대응할 시간적・심리적 여유를 두고 연습해보는 걸 추천합니다. 당연히 빚을 내거나 올인하는 건 금물입니다. ‘50만원 투자법(ETF에 50만원씩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것)’을 따라해보는 것도 좋아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내심을 기르는 겁니다. 인내심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언급했듯 운동이에요. 투자 근육을 키우려면 몸의 근육부터 키워야 합니다. 단 10분의 운동으로도 새로운 뇌세포를 만들 수 있어요. 1분 만에 그만두고 싶은 것을 매일 참으며 이어나가면 자연스레 인내심도 생기고요.”
― 마시멜로 실험(3~5세 아이에게 마시멜로를 주고 15분간 안 먹으면 하나 더 주겠다고 한 뒤 참는지 관찰한 실험)에 성공한 아이들은 나중에 주식 투자도 잘할 가능성이 크겠군요.
“그렇겠죠. 자기 통제력이 있다는 거니까요.”
― 듣다 보니 주식에 실패하는 이유는 결국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인데요, 감정이 크게 결여된 사이코패스들은 주식을 좀 더 잘하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주식에서는 공감 능력 또한 상당히 중요하니까요. 돈은 인간의 욕심을 따라 흘러가기 때문에 개인과 군중의 심리에 공감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까? 어쩌면 이게 투자의 시작이잖아요. 예를 들어 2020년 11월 코스피가 2500을 넘었을 때 애널리스트는 물론이고 동네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매수’를 외쳤는데, 이때 대세를 거스르고 ‘인버스’나 ‘곱버스’를 탄 사람들 어떻게 됐습니까. 망했잖아요. 특히 국내 주식 같은 경우에는 정치 등 사회적 이슈에 따라 많이 움직이기도 하고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감정’인 경우가 많은 만큼, 사이코패스가 주식을 잘하지는 않을 겁니다.”
― 적어도 손실이 난다고 ‘패닉셀’은 안 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타인의 손해에 둔감할 뿐이지, 자기 손해에는 엄청나게 민감합니다. 자기가 피해 보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요.”
하락장서 멘탈 챙기는 법
― 요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앞두고 떨고 있는 주린이들이 많은데요.
“시장은 시장대로 흘러가게 두세요.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장이 어떻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있습니다. 하락장에서도 돈 번다는 얘기가 있죠. 바꿀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요. 가장 신경 써야 할 종목은 ‘나’입니다.”
― 수익률이 -70%인데도 ‘존버(끝까지 막연하게 버티다)’하는 건 멘탈이 강한 겁니까.
“어떤 주식이냐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거 강박증일 수도 있어요. 강박증인 사람들은 유연함과 타협이 패자(敗者)의 논리라고 여깁니다. 폭락했다면 전략을 다시 세우고 목표가를 조정해야 하는데, 이들은 본전을 찾을 때까지 6개월이고 1년이고 버티죠. 겉으로는 덤덤해 보이잖아요. 속은 자책으로 가득해요. 근데도 꿈쩍을 안 합니다. 실리보다 가짜 자존감에 집착하기 때문이죠. 이런 사람들은 사실 주식 투자가 아니라 자기 고집과 한판 승부를 하고 있는 겁니다.”
― 저런….
“‘주식은 손절의 미학’이라고도 하잖아요. 손절은 고집을 버리고 실수를 받아들이는 작업이에요. 합리적이고 자존감이 높은 고수일수록 손절에 능합니다. 이들은 손절보다 오히려 돈이 묶인 채로 다른 기회를 놓치는 것을 더 기피합니다. 기회비용을 낭비하지 말고 한시라도 빨리 될 만한 종목으로 갈아타야죠. 손절 아까워하다가 반 토막 나요.”
― 손절했는데 다음 날 그 종목이 상한가, 그다음 날 2연상에 이어 3연상까지 찍어버리면 어떡합니까.
“며칠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겠죠.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 절반의 성공을 축하하세요. 수많은 투자 구루도 매도타이밍은 ‘신의 영역’이라고 하잖아요. 매도 직후 폭등했다는 건, 적어도 종목 선정은 잘 했다는 거니까요. 둘째, 때로는 그 주식을 다시 사야 합니다. 무작정 추격 매수하는 것이 아니고, 상승 여력을 냉정하게 재평가한 뒤에요. 셋째는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필요하면 판 주식을 다시 사면 되고, 다시 살 게 아니라면 그 주식이 폭등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지난 결과를 복기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다시 수익을 볼 기회를 노리세요.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요. 오늘, 내일 하고 말 것 아니잖아요. 중요한 건 오늘의 수익률이 아니라 누적 수익률입니다.”
― 혹시 ‘피그말리온 효과’가 투자에도 적용됩니까. ‘나는 돈을 벌게 될 거야’라고 생각하면 수익에 도움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자기의 현실 인식 등 충분한 준비가 된 상태에서, 우울감처럼 부정적인 인지 오류로부터 탈출하게 해주는 보상기전입니다. 주식에 피그말리온 효과를 적용시키기는 어려워요. 개미들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잘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건 피그말리온이 아니라 망상이니까요. 그래놓고 ‘왜 수익이 안 나지?’라고 합니다. 공부를 안 했으니 당연하죠. 나중에는 그럽니다. ‘이만큼 떨어졌으니 이제 오를 때가 됐어.’ 도박사의 오류죠. 홀수가 연속 10번 나오더라도 다음번에 짝수가 나올 확률은 여전히 50%인데, 근거 없이 계속 희망회로만 돌리는 겁니다.”
― 긍정적으로 살면 좋은 거 아닙니까. 허허.
“도박자들이 카지노 앞에서 ‘오늘은 운이 좋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쉽게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의 함정에 넘어간 거죠. 현실은 너무 힘든데, 친구의 사촌이 비트코인으로 몇십억을 벌었다고 합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스스로 긍정회로를 돌리면서 현실의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반동(反動)이죠. 주식은 수학인데 사람들은 너무 감정적으로 응하는 경향이 있어요.”
손실 없이는 수익도 없다
주식 실패담을 바탕으로 최근 《살려주식시오》라는 책을 냈다. 뼈아픈 회고록이지만, 무겁거나 딱딱하지는 않다. 제목처럼 재밌다.
― 주식이 수학이라고요.
“철저히 수학이죠.”
― 흔히 투자 고수들은 주식은 심리전이라고 하던데요. 뉴턴도 주식 투자에 실패한 기록이 있다면서요. 막상 심리전문가는 수학이라고 하는군요.
“그건 기본적으로 수학과 통계, 회계를 마스터한 사람들이 하는 얘기죠. 설마 수학과 기본 회계도 모르고 주식을 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안 하는 거죠. 내신 1등급 따놓은 사람들이 수능 전날 멘탈 찾는 거지, 공부도 안 하고 컨디션 관리만 백날 하면 뭘 합니까.”
― 주식에서 멘탈은 아인슈타인이 말한 ‘1%의 영감’ 같은 거군요.
“그렇죠. 고수들 얘기의 본질, 99%는 ‘공부하라’입니다. 근데 게으르고 귀찮으니까 1%의 멘탈 얘기만,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거죠.”
― ‘최소한 이건 공부해야 한다’는 게 있다면요.
“재무제표에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부채비율, 영업이익률은 봐야겠죠. 재무제표는 읽기 싫고, 수익은 내고 싶다면 최소한 인터넷에서 이것만이라도 검색하세요. 투자의견과 목표주가, 외국인 보유비중, 유상증자 횟수와 전환사채 발행 여부, 분기실적 발표일. 이 정도도 모르고 투자한다는 건, 상대방 나이도 모른 채 결혼하는 것과 같다고 봐요.”
― 결국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넘어가야 수익을 볼 수 있는 거군요.
“공부 안 하고 서울대 갈 수 있나요. 주변에 주식으로 1억원 벌었다는 사람 있잖아요. 운이 좋은 것 같죠? 그 뒤에는 엄청난 고난이 있었을 겁니다. 지옥도 여러 번 갔다 왔을 거예요. 그 과정을 모두 거친 후에, 이제 겨우 잘된 건데 사람들은 ‘하이라이트’만 봐요. 제가 《살려주식시오》라는 책에 실패담을 쓴 것도 그 과정을 남겨놓기 위해서였어요.”
― 속사정을 몰랐다면 ‘주식도 잘하는 정신과 의사’로만 비치겠군요.
“그런 오해를 샀겠죠. 사실 실패 과정을 드러내기가 참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이를 통해 말하고 싶었죠.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고요. 성공으로 가는 성장통일 뿐이니, 무너지지 말라고요.”
― 이왕이면 실패 없이 성공하는 게 더 좋은 거 아닙니까.
“워런 버핏도 손실을 보는데 아무런 준비 없이 뛰어든 ‘주린이’가 실패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건 인지적 오류입니다. 누군가 ‘손실 한 번 없이 수익만 올렸다’고 하면 부러워하지 마세요. ‘조만간 손실 나겠네’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만큼 경험이 적다는 거거든요. 초보자들은 실패할 확률이 90%예요. 중요한 건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겁니다. 현명한 투자자는 실패하지 않는 법이 아니라 빨리 회복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에요.”
투자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
주식 중독자들은 업무시간에도 반복적으로 주식 창을 확인한다. 현재 국내 주식 중독자 수는 집계된 바가 없다. 사진=조선DB
―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뭡니까.
“어릴 때부터 꿈이었어요. 시력이 안 좋은데, 그것 때문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야기 듣는 것도 좋아했고요. 특히 정신과 의사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잖아요. 보통 그런 이야기를 공유하면 남다른 친구가 되고요. 그게 굉장히 특별해 보였어요.”
― 그런데 주식 중독에 걸렸을 때 왜 자가 치료를 했습니까. 다른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지 않고요.
“갔었어요. 근데 주식으로 우울하다는 걸 공감을 못 하더라고요. 주식에 대해서도 모르고요. ‘그러게 왜 주식을 했느냐’라는 말만 하더군요. 이미 했는데 어떡합니까. 이 분야에 전문가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스스로 고칠 수밖에 없었던 거죠.”
― 지금도 주식으로 우울한 이들이 많을 텐데요. ‘과거의 나’ 같은 이들에게 한마디 하자면요.
“투자라는 건 ‘나’를 찾아가는 여행입니다. 우리는 ‘투자’라는 고행(苦行) 길을 함께 걷는 순례자고요. 그 과정에 좌절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결코 끝이 아닙니다. 인생도 좋은 날만 있지는 않잖아요. 열심히 산 오늘이 축적돼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으면 그게 성장이고 행복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버텨달라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조선일보 202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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