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경기도 의왕 시몬느 본사에서 만난 박은관 회장이 자사 장인들이 제작한 해외 럭셔리 브랜드 가방들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시몬느는 전 세계 럭셔리 핸드백 가운데 약 10%(매출액 기준)를 생산한다. /박상훈 기자
글로벌 럭셔리 그룹 LVMH의 장 폴 비비어 전(前) 사장은 1999년 재직 당시 지방시·루이비통·크리스찬 디올·펜디 등 계열사 대표 10명을 이탈리아 한 공방으로 불러 모은 적이 있다.
핸드백 제조 단가가 너무 오르자, 이탈리아 공방에서 만든 핸드백과 한국 회사에서 만든 핸드백을 두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벌인 것이다. 결과는 무승부. 대표 10명 중 5명은 이탈리아 공방 제품을, 나머지 5명은 한국 회사 제품을 선택했다.
이 한국 회사 이름은 ‘시몬느’다. 1987년 직원 15명으로 창업해 코로나 사태 직전엔 연매출 1조원을 넘긴 핸드백 ODM(제조자 개발 생산) 기업이다. 주문한 대로 단순 제품만 생산하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과 달리, 직접 제품 개발과 기획, 생산까지 하는 것이다.
7일 경기도 의왕에서 만난 박은관 시몬느 회장은 “혼자 한 일은 아니다. 본사 공방에서 근무하는 장인만 366명, 이들의 땀과 정성, 기술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시몬느는 다음 달 초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다. 시몬느는 작년 코로나 이후 매출이 40%가량 꺾였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매출액 3335억원, 영업이익 434억원을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시몬느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가 추산하는 전 세계 럭셔리 핸드백 시장의 매출 규모는 70조원. 이 중 시몬느가 제작한 핸드백의 매출 점유율은 10%가량으로 추산된다. 미국 럭셔리 핸드백 시장 1위부터 6위를 차지하는 업체인 마이클 코어스·코치·케이트 스페이드·토리버치·마크제이콥스·DKNY가 모두 시몬느의 고객사다.
고객사의 상당수는 같이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 DKNY는 33년, 코치는 22년, 마크 제이콥스는 20년, 마이클 코어스는 18년째 협업하고 있다. 박 회장이 1988년 미국 뉴욕 맨해튼 DKNY 본사를 찾아가 “너희 제품의 1%만 우리에게 한번 맡겨보라”라며 첫 해외 물량 120개를 따냈던 얘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마이클 코어스’의 전(前) 사장인 존 D. 아이돌은 시몬느의 제품을 받을 때마다 “이 회사의 가격 경쟁력은 중국 업체보다 떨어져도 품질이 뛰어나서 거래처를 바꿀 수가 없어”라고 평했다고 한다. 박 회장은 “미국의 한 고객사 사장으로부터는 ‘시몬느 덕에 우리가 발 쭉 뻗고 잘 수가 있어서 편하다’는 말까지 들었다”며 “34년 동안 불량률이 거의 없고 어떤 경우에도 납품 기일을 지키다 보니, 브랜드 가치가 쌓였다”고 했다.
시몬느의 또 다른 경쟁력은 직원들의 생산성에서 나온다. 직원 1인당 연간 3만달러(약 3500만원)어치 매출을 낸다. 동종 업계 평균은 1만5000달러에서 1만8000달러로 추정된다. 단순히 가방을 바느질하는 작업을 넘어, 소재부터 디자인까지 제안하는 자체 개발 능력도 갖췄다. 자체 개발 디자인만 22만개가 넘는다.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일하는 장인들이 일본 미쓰비시사(社)와 협업, 가죽을 자연 건조시킬 때보다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하고 불량률도 적은 인공 건조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핸드백 제조 경력이 60년이 넘는 장인만 14명”이라며 “이들의 경험과 지혜, 손의 힘이 시몬느를 키웠다”고 했다.
박 회장은 내년쯤엔 코로나를 완전히 극복하고 매출 100%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회장은 “증시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해외 공장 설비를 늘리고 투자를 확대해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높이겠다”고 했다.
박 회장은 “1987년 창업할 때도 주변에선 ‘가방 제조는 이미 사양 산업’이라고 말렸지만, 나는 ‘우리가 만든 트랙으로 가면 프런티어가 된다’고 했다”며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사양 기업이 있을 뿐 사양 산업은 없습니다. 계속 앞서갈 겁니다.”
송혜진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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