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다아쿠아포닉스 박창섭·김지연 공동 대표
도전이란 때때로 실험적이고 무모하다. 그러나 여기에 청년의 열정이 더해지면 그 힘은 가늠할 수 없는 폭발력을 발휘한다. ‘폭망’을 하든 ‘쪽박’을 차든, 경험치를 쌓는다는 데서 청년들의 도전은 가치 있다. 20대에 농사에 도전한 박창섭·김지연 부부는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에서 국내 최초로 시도한 아쿠아포닉스(Aquaponics) 시스템으로 장어를 양식하고 엽채소와 희귀 관엽식물을 농사지어 연 10억 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아쿠아포닉스란 물고기 양식(Aquaculture)과 수경재배(Hydroponics)의 합성어로, 물고기와 작물을 함께 길러 수확하는 친환경 방식을 말한다.
“아쿠아포닉스는 일종의 자연순환 농법이에요. 물에 녹은 물고기의 배설물이나 사료 찌꺼기를 여과 필터로 분해해 식물의 영양소로 쓰고 있어요. 식물은 물고기가 서식하는 환경을 정화해주는 역할을 하고요. 식물에는 농약이나 비료를 전혀 쓰지 않아요. 그럼 물고기가 폐사하니까요. 수경재배를 하면 식물 자체의 면역력이 강해져서 약을 치지 않아도 잘 버팁니다. 버려지는 자원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환경 친화 농법으로 최근 여러 농가에서 주목하고 있어요.”
선풍기 50대가 ‘팽팽’ 돌아가는 비닐하우스. 박창섭 핀다아쿠아포닉스 대표가 바람에 땀을 말리며 입을 열었다. 핀다아쿠아포닉스는 결혼 4년 차, 귀농 3년 차의 박창섭·김지연 부부가 운영하는 농장이다. 530㎡(약 16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서는 장어 5만 마리와 200종의 열대작물과 희귀 관엽식물, 엽채소가 자라고 있다. 핀다아쿠아포닉스는 친환경 순환 농법을 입증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해썹(HACCP)’ 인증을 받았다. 최근에는 농림수산식품부 ‘무항생제 인증’에도 도전 중이다.
“장어 양식을 결합한 아쿠아포닉스 기법은 국내에서 우리 농장이 처음 시도한 거예요. 수온에 민감한 장어는 양식이 까다로운 데다 치어 자체가 비싸서 리스크도 크지만, 잘 키우면 부가가치가 높은 편이에요.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농법에다, 키우기 까다로운 장어 양식까지. 모든 게 도전이었어요.”
20대, 청년창업자금대출 3억 원으로 시작
50대의 선풍기가 돌아가는 핀다아쿠아포닉스 농장.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친환경 자연순환식 시스템 아쿠아포닉스를 적용했다. 장어 양식장과 식물이 자라는 수조가 파이프로 연결돼 양분을 주고받는다.아쿠아포닉스 농법을 처음 제안한 건 박창섭 대표다. 서울에서 제과 제빵을 공부하다 만나 6년 연애 끝에 결혼한 부부는 귀농에 뜻이 맞아 경기도 양평에 정착했다. 2018년 박창섭 대표가 먼저 양평으로 이사 와서 숙박업을 열었고, 이듬해 두 사람의 본격 귀농 생활이 시작됐다.
“귀농을 결심하고 문득 서울에서 실내 낚시터를 운영할 때 귀동냥으로 들었던 아쿠아포닉스 농법이 떠올랐어요. 수경재배의 하나로만 생각했는데, 해외에서는 이 기술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해요. 수박 농사짓는 농가도 있고요. 가능성을 봤죠. 사업 초기 자금은 청년창업자금대출로 3억 원을 받았어요. 막상 큰돈이 생기니 숨이 턱 막혀왔죠. 농업과 양식업 모두 처음이라 두려움이 앞섰고요. 남들이 해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게 쉽지 않지만, 모르면 무조건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요. 두려움보다 모험 욕구가 더 컸어요.”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농법인 만큼 부부에겐 모든 게 새로웠다. 용어조차 생소한 우리나라에서 관련 설비기술을 찾기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농장을 허가받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농업과 어업을 결합한 형태의 농장을 한다고 하니, 용지 허가부터가 난제였다. 창업자금대출을 받아 이상한 일을 꾸민다는 의심도 받았다. 이들을 설득하고 설비를 갖추기까지 고비가 많았지만, 그때마다 ‘일단 해보고 후회하자’는 마음으로 헤쳐 나갔다.
5만 마리 장어가 꿈틀대는 장어 양식장.
“남편은 한번 마음먹으면 직진하고 보는 사람이라 부딪치며 해결해갔어요. 농장에 들어가는 모든 기술은 해외 사이트를 뒤져 찾아냈고, 직접 구상한 틀을 설비업체에 맡겨 우리 농장에 맞는 형태를 만들어갔죠. 농지를 매입하고 장어 구입까지 큰돈이 들었어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최소한의 설비로 최대의 효율을 볼 수 있도록 꾸몄어요. 우리 농장은 자투리 농지에 세운 거라 폭이 좁고 길어요. 공간에 맞게 층고를 높여 효율을 높였죠.”
김지연 대표의 말을 듣고 보니 하우스 천장이 일반 농가보다 한참 높다. 하우스 안에는 거대한 수조 두 개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주어진 환경에 맞게 설비를 갖추는 게 먼저였어요. 하우스 층고가 높아야 병충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기에 보통 하우스보다 2m가량 더 높은 6.5m 높이로 지었죠. 하우스가 높은 대신 두꺼운 골조를 사용해 태풍 피해를 덜 받게 지었고요. 또 선풍기를 곳곳에 설치해서 공기가 순환하도록 신경 썼어요. 식물을 키우는 수조는 사람 허리춤 높이로 특수 제작해서 우리도 일하기가 훨씬 편해요. 하우스 안쪽 장어 양식 수조에 연결된 파이프로 물이 순환하는 구조예요.”
장어와 잎채소의 행복한 공존
거대한 수조에서 자라는 희귀 열대식물.
농사 첫해는 초보 농부들에게 가장 고난의 시기다. 좌충우돌, 손에 익지 않은 일을 사계절 치러내기도 숨 가쁜데, 투자에 비해 큰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도 그랬다. 한번은 수조에 물이 넘쳐흐르는가 하면, 수조 밸브를 잘못 건드려 물이 다 빠져나가기도 했다. 전기 공급이 안정적이지 않아 수온과 산소 조절에 예민한 장어가 폐사하기도 했다. 건강하게 농사지은 잎채소는 판로가 없어 엎기만 몇 번. 회의감에 빠질 때마다 두 사람은 “어떤 일이든 시작하고 첫해는 원래 힘든 거다”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이들은 묵묵히 농사일을 배우고 장어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처음에는 욕심이 없었어요. 농장 규모도 크지 않으니, 우리가 키운 채소나 장어를 조금씩이라도 팔 수 있으면 좋겠다, 정도였죠. 농장 인근 큰길가에 직판장도 열었어요. 다양한 작물을 심어보자 해서 고수, 공심채 같은 아열대 작물이나 희귀 관엽식물도 키웠어요. 가재도 키워봤는데, 얘가 자라면서 식물 뿌리를 다 갉아먹어버려서 치워야 했죠, 하하.”
양식이나 농사도 처음이지만, 장어를 손질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장어가 미끄러운 데다 힘이 세서 손을 다치기 일쑤. 한 마리 손질하는 데도 30분이 넘게 걸렸다. 농사지으랴, 장어 손질하랴 하루가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힘들다 느낄 틈 없이 1년이 지났다.
부부의 노력이 빛을 본 건 이듬해, 방송에 소개되면서다. 아쿠아포닉스 농법을 공부한다고 간이로 수경재배 시설을 설치해 재배 과정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방송국에서 보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이를 계기로 생소한 이름의 ‘아쿠아포닉스’가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운이 좋았어요. 아쿠아포닉스가 알려지며 장어가 많이 팔렸죠. 장어는 거의 입소문이에요. 처음 판매가 어렵지, 고객이 일단 만족하고 돌아가면 주변에 입소문을 내주거든요. 장어 양식을 시작하고 두 해 만에 매출이 다섯 배 올라, 올해는 장어만으로 10억 원을 벌었어요. 처음에는 식물을 키울 목적으로 장어 양식을 시작했는데, 장어가 더 큰 수익원이 됐어요.”
장어 치어 값이 전해에 비해 반값 이하로 떨어진 것도 한몫했다. 치어는 평균 1년 정도를 키우는데, 성어가 되면 킬로그램당 2만~4만 원 선에 팔린다. 농사를 시작한 첫해 한 마리 6000원에 구입한 치어가 지난해 1500원대로 떨어져 더 많은 장어를 구입해 키울 수 있었다. 자연히 매출도 늘었다.
“그저 정직하게 팔기 위해 노력했어요. 손님들이 장어 손질과 포장이 깨끗해서 좋다고 얘기해줘요. 합리적인 가격과 신선도, 무엇보다 위생을 중시했기에 얻은 결과입니다. 또 장어와 함께 식물도 키운다고 하니 안심하는 분들이 많아요. 만약 우리가 장어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 약을 치면 식물이 죽고, 식물에 농약을 치면 장어가 죽거든요. 이 둘이 생존한다는 것 자체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증거죠.”
청년 농부의 도전이 연 농업의 새 길
아쿠아포닉스 농법이 성공을 거두면서 주변에서도 기술을 배우기 위해 농장을 찾고 있다. 벌써 30개 농가가 이곳을 다녀갔다. 국가 연구기관에서도 농가 보급형 농법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연구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왔다. 청년 농부의 무모하고도 실험적인 도전 정신이 우리나라 농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셈이다. 여전히 배우는 중이고 도전할 과제가 많다는 부부는 희귀 열대작물 재배로 또 다른 도약을 꿈꾸고 있다.
“아쿠아포닉스는 어종과 식물의 궁합이 중요해요. 장어가 자라는 물의 수온이 연중 27도를 유지해야 하니까 아열대 작물을 들여와 키웠어요. 식물을 흙에서 재배할 때 생육 환경이 맞지 않으면 뿌리가 쉽게 죽지만, 수경 재배는 적응만 잘하면 생육도 빠르고 잘 크죠. 지금 키우는 작물은 한 그루당 50만~100만 원대를 호가하는 희귀 식물이라 2억 원 정도의 수익을 예상합니다.”
물고기의 배설물을 먹고 쑥쑥 자라는 식물처럼 이들의 꿈도 자라고 있다.
“식물이 번식과 성장을 계속하듯 우리도 머무르지 않고 도전하며 성장해가고 있어요. 나이를 떠나 언제든 도전 정신만 있다면 못 이룰 게 없다고 생각해요. 처음 아쿠아포닉스 농법을 시작할 때 주변에서는 ‘돈이나 벌 수 있겠냐?’며 만류했지만, 우리 성장을 발판 삼아 우리나라에도 아쿠아포닉스가 점차 정착하고 있잖아요. 지금처럼 발전적인 방향으로, 조금씩 더 나아가고 싶어요.”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조선일보 202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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