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세계를 공간적으로 바라보는 방법 <왜 지금 지리학인가>
"아빠, 저 사람들 왜 저래?"
며칠 전 옆에서 함께 뉴스를 보던 11살 둘째가 궁금하다며 질문을 던졌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얽히고설켜 아비규환을 이루던 바로 그 장면을 보고 나서였다.
뉴스를 보면서 한번쯤 듣겠거니 했던 질문이었지만 막상 아이에게 직접 듣고 나니 당황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내 기준으로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야 했다.
"그럼 왜 미국은 철수했어? 미국이 전쟁에서 진 거야? 탈레반이 더 세?"
"탈레반이 세다기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다른 나라가 이기기 어렵거든. 그리고 그 탈레반은 예전에 소련이 쳐들어 왔을 땐 미국하고 한 편이었어. 그때 미국이 자신의 무기를 많이 줬었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표정의 아이. 어쨌든 미국은 세계 최강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미국이 20년 동안이나 싸웠는데도 탈레반을 이기지 못하다니 믿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아빠의 대답은 아리송하기 짝이 없었다. 센 건 아니지만 이기기 어렵다니.
나 역시도 대답은 했지만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은 왜 탈레반을 소탕하지 못한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에 나는 오랜만에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역시나 내용 중에는 이미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하름 데 블레이의 <왜 지금 지리학인가>였다.
미국은 아프간에 대해서 무지했다
▲ <왜 지금 지리학인가>의 표지
저자는 이번 사태를 이미 예언하듯 미국의 실패 이유를 적어놓았다. 그것은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베트남전에서 미국의 패배를 회고했던 당시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의 말이다.
"베트남에서 우리가 재앙을 맞게 된 열한 가지 주요 원인(...)우리가 친구와 적 모두를 오판한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의 역사, 문화, 정치에 대한 우리의 심대한 무지를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민족주의가 사람들을 추동하는 힘을 과소평가했으며(...) 세계 여러 곳에서 같은 실수를 계속하고 있다." – 229p
실제로 미국은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에 대해 무지했었다. 저자는 맥나마라의 회고록에 당시 인도차이나의 복잡한 민족 다양성을 표시한 지도가 없음을 주목한다. 실제 전쟁에서 남베트남에 불만을 품었던 소수 민족들이 그 규모에 비해 많은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를 인지하지, 아니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패착은 아프간에서도 벌어졌다. 당시 아프간 침공을 주도했던 전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는 침공 후 두 달이 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떤 언어가 사용되는지 몰랐다."
이는 결국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 했거늘 미국은 그들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오만했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에 섣불리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20년 간 전쟁의 결과를 패배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지리적 특성
그렇다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무엇을 잘 몰랐던 것일까? 저자는 그것을 지리학이라고 이야기한다. 역사학은 세상을 시간적으로, 경제학과 정치학은 구조적으로 바라보지만, 지리학은 공간적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지리' 하면 단순히 땅의 위치나 생김새 등을 이야기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지리학은 훨씬 더 통합적이고 거시적이다. 각각의 문명이 다른 모습을 갖는 건 그곳이 위치한 곳의 기후와 토양과 관계가 깊은데, 이는 국가로 한정해도 마찬가지다. 그 지역의 지리는 국가의 특징을 규정짓게 마련이다.
세계를 지리적으로 보는 것은(...)일견 까다롭게 보이는 문제에 대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설명이나 통찰을 가리킨다. 지리학이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 훌륭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지리학은 다른 분야세서는 서로 연결시켜 보지 않는 기후 변화와 역사적 사건, 자연 현상과 정치 상황의 전개, 환경과 행동 사이의 예상치 못한 관련성을 제시한다 - 7p
저자는 이와 같은 맥락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지리학적 특성을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패전 이유는 과거 소련의 그것과 같다. 탈레반이 거점으로 삼고 있는 힌두쿠시 산맥은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분으로 '힌두인들의 무덤'이라는 이름을 가질 정도로 험준한데, 이곳의 기복 심한 지세와 바위투성이 지형, 고립된 피신처들은 침략한 제국들을 모두 괴롭혔다.
탈레반과 그 동맹 세력은 동굴이 벌집처럼 뚫린 지형에 익숙했고 이곳에서 현대식 첨단 무기는 효용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군사기지가 취약하고 헬리콥터를 띄우기도 위험한 고립된 계곡에서 연합군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 261p
그러나 미국이 결정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패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그 가혹한 통치 행태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주민들의 적지 않은 지지를 받았었다. 탈레반은 소련 철수 이후 종족 간 내전이 계속되고 있던 아프간에서 정국을 안정시킨 거의 유일한 정치권력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속되는 미군의 오폭과 미국이 내세운 카불정부의 부정부패와 무능함은 이런 탈레반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시켰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종족 집단(파슈툰족)의 근거지는 최소한 어느 정도 안정된 외관을 갖추고 있었다. 파슈툰족인 탈레반 세력이 남부 칸다하르 시의 통제권을 장악했을 때, 수십 년간 계속된 분쟁에 지친 주민들은 그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보냈다 – 259p
또한 탈레반의 파슈툰족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걸쳐 있는 종족으로 국민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다. 비록 종족이 살고 있는 땅 한 가운데에 국경선이 그어져 있지만 그것은 영국이 제국주의 시대 때 임의로 그은 것일 뿐, 파슈툰족은 아프간과 파키스탄을 지금도 큰 방해 없이 넘어 다닌다. 그러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섬멸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이는 미군이 오사마 빈 라덴을 파키스탄의 도시에서 사살한 이유이기도 한다.
저자는 아프가니스탄 외에도 중국이나 중동, 유럽, 러시아 등의 지역을 지리학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한다. 지리학은 과거를 인식하고 현재를 분석할 뿐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이 왜 저렇게 되었는지,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 궁금한 분들은 <왜 지금 지리학인가>를 펼쳐보시기를 바란다.
이희동 오마이뉴스 입력 202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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