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최대 실정은 진영 가른 것” - 지금 한국은 불공정한 사회

해암도 2021. 8. 31. 06:20

‘불공정사회’ 펴낸 철학자 이진우 포스텍 교수

 

“저도 문재인 정부 출범 때는 지지자 중 한 명이었죠.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는 안타깝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단히 불공정한 사회가 돼 버렸습니다.”

경기 용인의 서재에서 만난 이진우 교수는“민주주의의 가치는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훼손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괴로운 진실”이라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국내 철학계의 대표적 학자 중 한 사람인 이진우(65·전 계명대 총장) 포스텍 교수가 정년을 맞아 저서 ‘불공정 사회’(휴머니스트)를 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공정(公正)을 철학적으로 짚는 책이다.

 

경기 용인의 서재에서 만난 그는 그러나 “우리 사회의 ‘공정’은 허구”라고 질타했다. “공정을 간절히 외치는 사회야말로 바로 불공정 사회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공정’한 권력자의 행위가 대단히 불공정하다는 것입니다.”

이 교수는 “합법적인 것을 곧 정당한 것처럼 여기는 행태야말로 대표적 불공정 사례”라고 말했다. 여당이 180석을 무기 삼아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것이 그 예라는 것이다. “다수결 원칙이라는 것은 다수이기 때문에 무조건 옳다거나, 힘을 지닌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묵살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는데 거꾸로 가고 있는 겁니다.”

‘공정’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해서 오히려 불공정을 키우게 됐는가? 정부 출범 때 지녔던 정치적 자원을 국민 통합이 아니 분열에 썼기 때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문 정부의 최대 실정(失政)은 우리 사회를 진영으로 찢어놓았다는 데 있습니다.

 

대화가 사라져 타협보다 독선을 앞세우게 됐죠. 사실 눈여겨볼 만한 업적도 별로 없습니다만…” 해나 아렌트가 ‘정치는 진리가 아니라 여론과 관련된 것’이라 했듯이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데, 자기 의견만 보편타당한 진리인 듯 착각한 결과라는 것이다. “권력에 불리한 보도를 ‘가짜 뉴스’로 모는 것은 여론이 시작되는 씨앗조차 없애려는 것입니다. ‘의심조차 하지 말라’는 얘기죠.”

그가 보기에 조국 사태는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 불법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음해라고 강변한다는 점에서 ‘도덕성의 완전한 타락’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은 개인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얻는 ‘능력주의’의 허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은 결코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보기에 능력주의란 민주주의 사회의 새로운 계급인 엘리트 집단이 자신의 특권을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다.

 

‘정의론’을 쓴 미국 철학자 존 롤스의 말처럼, 전적으로 한 개인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재능도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진짜 문제는 많은 사람이 능력을 스스로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로 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말로 아무리 ‘공정’을 외쳐 봐야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며 실질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첫째는 진영 논리를 벗어나 상대방을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협력해야 할 경쟁자로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중산층을 복원해서 양극화 현상을 해소해야 하는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능력을 갖추고 노력하는 사람이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확보하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너희는 영영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남아 있어라’라고 한다면 공정한 사회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입력 2021.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