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리막국수’ 김윤정·유수창 공동대표
용인 맛집으로 입소문… 마니아들 몰려
평일 1시간·주말엔 2시간 이상 ‘웨이팅’
손님 많을 때는 하루에 1500명 찾아와
코로나 확산여파에도 2020년 50%나 늘어
집에서도 맛 볼 수 있는 ‘간편식’ 만들어
오뚜기 출시 초도물량 2만9000세트 완판
제품 나오기까지 8개월 넘게 연구 거듭
기존 유통방식 탈피 라이브커머스 판매
손님상 나가기 직전 고품질 메밀 반죽
들깨 바로 으깨어 쓰고 발효간장 고집
방송에 소개… 식객 허영만 화백 ‘단골’
경험 담은 책도 출간… 인세 50% 기부
“손님, 들기름막국수 처음이시죠? 먹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면은 이미 잘 섞여 있으니 면 위에 올린 김가루와 들깨가루를 섞지 말고 그대로 면과 함께 떠서 드시다가 3분의 1쯤 남으면 육수를 조금 넣어 드세요.” 직원 조언대로 젓가락으로 막국수를 그대로 떠서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아주 특이한 맛이다. 처음에는 좀 맹숭맹숭하다가 신선한 들기름향이 들깨, 김향과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며 고소한 향이 비강을 가득 채운다. 먹기 좋은 적당한 식감의 면발에서 풍기는 메밀향까지 더해지니 깊은 숲속에 서 있는 듯하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아주 잘 살렸다. 이래서 고기리막국수를 으뜸으로 꼽는구나. 2시간이나 줄을 서야 하지만 하루 평균 1000명이 찾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에도 지난해 매출 30억원을 돌파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리막국수. ‘장사의 신’으로 등극한 김윤정(46)·유수창(49) 공동대표 부부를 만나 들기름향 가득한 막국수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오뚜기도 인정한 막국수의 지존
들기름막국수라니. 비빔국수나 물국수 정도만 알던 이들에게는 많이 생소하다. 하지만 안 가본 이들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이들은 없을 정도로 들기름막국수는 맛의 신세계로 안내하며 엄청난 마니아들을 쏟아내고 있다. 평일에는 보통 1시간, 주말에는 2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인내가 필요하지만 많을 때는 하루 1500명이 들기름막국수를 먹으려 용인의 산골을 찾는다. 코로나19 여파에도 손님은 지난해 50%나 늘었다.
이런 막국수의 지존을 라면업계가 몰라 볼 리 없다. 지난달 말 오뚜기가 집에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고기리 들기름막국수’를 출시했는데 초도물량 2만9000세트가 순식간에 완판됐다. “오랜 시간 대기하는 손님들에게 늘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더구나 코로나19로 노모나 아이들과 함께 고기리까지 막국수를 먹으로 가기 힘들다는 손님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제가 뭘 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했죠. 여전히 장사는 잘 되기 때문에 매출보다는 손님을 헤아리는 마음에서 집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게 들기름막국수 간편식을 만들었답니다.” 단지 음식을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손님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김 대표의 철학이 읽힌다.
제품이 나오기까지 8개월이나 걸렸다. 라면처럼 선반에 편하게 보관하고, 가격을 낮추면서도 맛은 포기할 수 없었기에 오랜 시간 연구가 거듭됐다. 가격은 4봉지 한 세트에 1만2000원 정도인데 기존 유통방식과 전혀 다르게 배민 쇼핑 라이브 등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서 할인 판매된다. “아무런 메시지 없이 덜렁 마트에 내놓으면 소비자들이 낯설다고 생각할 것 같았어요. 라이브 커머스는 기존 홈쇼핑과도 달라요. 소비자들은 제품을 왜 만들었는지 궁금한 점을 채팅창을 통해 판매자와 소통할 수 있답니다.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와 음식을 만드는 철학 등 여러 메시지를 손님과 함께 나누기 아주 좋은 방법이죠. 가격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집에서 간편하게 만들어 먹는 음식인데 비싸면 안 되죠.” 반응은 아주 좋단다. 고기리막국수에 와본 이들은 궁금해서 간편식을 사먹고 간편식을 먼저 맛본 이들은 식당에서는 어떤 맛으로 구현되는지 궁금해서 고기리막국수를 찾는다.
코로나19에도 하루 손님 1000명이 찾아 ‘장사의 신’에 등극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리막국수 김윤정 대표(왼쪽)와 유수창 셰프 부부가 지난 12일 고기리막국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대표는 작은가게는 손님을 대하는 진심과 맛을 개선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막국수에 빠져 전국을 돌아다니다
독특한 맛의 들기름막국수는 과연 어떻게 탄생했을까. “올해 결혼한 지 20년이네요. 둘이 식성이 많이 달라요. 남편은 고기를, 저는 생선을 좋아해요. 결혼은 성격과 식성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 하나를 이뤄 가는 과정인데 다행히 막국수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어요. 강원도로 막국수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하루에 6∼7번이나 막국수를 먹었답니다. 막국수 좀 한다는 곳은 거의 다녔는데 100곳도 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막국수를 찾아 먹다 보니 막국수 맛의 기준이 생기더군요.”
서울 압구정동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며 단지 손님으로 막국수를 탐닉하던 부부에게 막국수 가게를 차리는 결정적 사건이 찾아온다. 오후에 나가 새벽 4시까지 일하는 이자카야를 10년이나 운영하던 유 대표가 그만 대장암 판정을 받고 말았다. 더구나 압구정 상권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빚더미에 앉았다. 아이들이 아빠 얼굴도 제대로 못 보던 삶을 살다가 암까지 얻자 회의가 찾아왔다. “남편이 어떤 메뉴를 시켜도 다 맛있는 식당을 해보겠다며 2001년 이자카야를 차렸어요. 메뉴가 무려 80가지였죠. 그런데 손님들에게 ‘괜찮기는 한데 딱히 맛있는 메뉴는 없는 집’으로 인식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압구정 상권이 확 무너지자 우리 가게는 선택받지 못했죠. 결국 2011년 사업을 정리하고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건강에도 도움 되는 막국수를 만들기로 했어요.”
가진 돈이 없으니 상권이 아예 없던 고기리까지 흘러들었다. 지금은 카페가 수십개에 달하고 예쁜 전원주택들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지만 2011년 고기리막국수를 차릴 때에는 완전 촌구석이었다. 당연히 손님은 거의 없었다. 하루 매출이 8000원인 날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메뉴를 다양하게 늘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막국수 하나로 밀고 나갔다. “막국수는 메밀이 중심인 음식인데 보통 식당의 막국수는 시고, 달고, 맵고, 짠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면은 훌륭한데 양념들이 조화롭지 않아요. 한번은 강원도의 막국수 가게를 찾아 갔는데 테이블에 다양한 양념을 두고 손님들이 입맛에 맞게 조리해 먹도록 준비해 놓았더군요. 거기에 들기름이 있기에 호기심에 들기름과 간장으로 간을 살짝 넣어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더라고요. 막국수에 약간의 간과 풍미만 더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정작 메뉴판에는 없는 들기름막국수
이렇게 들기름막국수가 탄생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과 들깨를 무척 좋아하는데 김을 구우면 자체에서 나는 향이 있다. 김을 그날 바로 구워 향을 잘 살리고 메밀도 식탁에 나가기 전에 반죽해서 면을 뽑는다. 들깨도 바로바로 으깨어 쓰고 발효간장만 사용한다. 이처럼 신선하게 재료 본연의 맛을 낸 것이 손님의 입맛을 사로잡은 비법이다. 메밀은 척박한 곳에서 자라고 들깨도 야생의 맛이 있어 둘이 잘 어울렸고 메밀 향을 북돋우는 역할도 한단다.
또 하나. 셰프로 주방을 지휘하는 유 대표는 면맛과 고기리의 물맛을 강조한다. “밥집은 밥이 맛있어야지 반찬만 맛있으면 소용없어요. 국수집이니까 면이 맛있어야 해요. 아무리 좋은 들깨나 간장을 써도 면이 맛없으면 손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없죠. 바로 도정한 쌀이 맛있듯, 메밀도 마찬가지예요.
고품질 메밀을 골라 손님상에 나가기 바로 전에 반죽하죠. 그러면 일주일치를 미리 만들어 놓은 식당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 나옵니다. 수돗물을 쓰면 면에서 냄새가 나더군요. 그래서 이곳에 아예 지하수를 직접 파서 그 물로 조리하고 있답니다. 국수를 지하수로 씻고 삶는데 물맛이 좋으니 국수맛이 더 좋아져요. 서울에서 똑같은 레시피로 국수를 만들어봤는데 이 맛이 안나더라고요.”
착한 가격도 인기비결이다. 들기름, 비빔, 물막국수가 있는데 가격은 단돈 8000원. 10년 동안 딱 한 차례 1000원을 올렸다. 어린이국수는 3000원이고 36개월 미만 아이에게는 아기국수가 무료다. 사리추가는 4000원인데, 놀라지 마시라. 어떤 막국수를 시키든 사리를 추가하면 그냥 온전한 막국수 한 그릇이 나온다. 덕분에 ‘1인 3막’을 주문해 모두 맛보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메뉴판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들기름막국수가 적혀 있지 않다. 사연이 있다. 고기리막국수를 차린 뒤 생소한 들기름막국수라 메뉴로 내지 않고 김 대표 부부만 즐겼다. 2012년 말 한 손님이 찾아와 부부가 먹는 막국수를 자기도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한 그릇 냈는데 손님이 너무 맛있다고 감탄했고 다시 찾아와 그때 그 막국수를 요청했다. 이렇게 입소문 나며 아는 사람만 찾는 메뉴였기에 자연스럽게 지금도 메뉴판에 넣지 않게 됐단다.
#작은가게의 진심이 손님을 부른다
지금은 하루에 1000명이 찾지만 하루아침에 대박이 난 것은 아니다. 맛을 위한 꾸준한 노력들이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이면서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번 다녀간 손님이 주변에 알리면서 그야말로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고 방송에도 가끔 소개됐다. 그러다 2016년 3월 수요미식회에 소개되면서 부쩍 손님이 많아졌다. 식객 허영만 화백도 단골이다.
막국수 맛은 지금도 계속 진화 중이다. 김 대표 부부는 더 좋은 맛을 내려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질릴 만도 한데 부부는 매일 손님 식탁 곁에 함께 앉아 막국수 맛을 보고 전날 맛과 비교한다. 손님들에게서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은 당연하다. 막국수로 번 돈은 다시 재료와 시설에 투자한다. 메밀 저온 저장고를 갖추니 메밀 맛이 더욱 맛있어졌고 손님이 더욱 느는 선순환이 계속됐다.
장사가 잘 됐지만 지점을 만들지 않았다. 막국수에 올인한 것과 무리하게 시설을 확장하지 않은 것도 성공비결이다. “시설은 주방에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30%만 늘려 쾌적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줄 많이 서는 가게이니까 테이블을 많이 늘리면 당장 매출을 늘릴 수는 있겠죠. 하지만 꾸준한 품질을 과연 유지할 수 있을까요.”
김 대표는 지난해 11월 그동안의 생생한 경험을 담은 책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를 출간했다. 인기가 높아 금세 4쇄까지 찍었는데 인세 50%는 베이비박스에 기부한다. “음식점에서 가장 진심이 많이 담기는 곳은 메뉴판이에요. 한두 가지 메뉴만 하면 음식 품질이 좋아지고 선순환이 이뤄지죠. 식당 사장님들이 이것저것 여러 요리를 내놓을까 하는 유혹을 받는데 자기중심을 잘 잡아야 해요. 아마 우리가 이것저것 다 했으면 전국에서 올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사람들이 맛집 가는 이유는 단순히 배고프기 때문만은 아니랍니다. 길 검색부터 맛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기에 열렬히 맞아주는 환대가 있어야 하고 그에 걸맞은 공간도 필요하죠. 가격은 합리적이어야 해요. 내가 낸 돈보다 음식의 가치가 높다고 느껴야 부담 없이 다시 찾게 되고 좋은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입소문이 나는 거죠. 이를 깨닫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어요. 진심은 손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답니다.”
용인=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입력 2021.04.18
김윤정 대표는 ●1975년 서울 출생 ●정의여고·숙명여자대학교 졸업 ●중학교 교사 ●고기리막국수 공동대표 ●2021년 저서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 출간 ●2021년 라면업체 오뚜기와 협업 ‘고기리 들기름막국수’ 출시
유수창 대표는 ●1972년 서울 출생 ●단국대학교 부속고·고려대학교·일본 도쿄 센슈대학 경영대학원 졸업 ●이자카야 니와 오너셰프 ●고기리막국수 공동대표 ●수요미식회·식객 허영만의 백만기행 등 다수 TV방송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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