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물회 같아 보이지만 횟감이 다르다. 고춧가루 양념 육수 위에 해산물 대신 한우를 올리는 것이 경주식 한우물회다. 주로 한우는 기름기가 적은 꾸리살이나 우둔살, 홍두깨살을 주로 이용한다. 백종현 기자
물회는 해산물에 물이나 육수를 부어 먹는 음식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가 그렇다. 하나 사전도 늘 맞는 건 아닌가 보다. 경북 경주에서 별난 물회를 만났다. 이른바 ‘한우물회’다.
생김새부터 희한하다. 고추장 양념 국물에 갖은 채소와 횟감을 올린다. 여기까진 속초식 물회와 닮았다. 하나 생선 대신 육회처럼 잘게 썬 한우를 올린다. 육회와 물회가 만난 셈이다.
인스타그램에서 ‘한우물회’를 검색해봤다. 관련 게시물이 5만 개 이상 쏟아진다. 나만 몰랐던 걸까. 경주시 식품안전과에 따르면 보문관광단지와 시내 쪽으로 한우물회를 내는 식당이 최근 부쩍 늘어났단다. 어림잡아 열 곳이 넘는다.
다른 횟감도 아니고 왜 한우일까. 경주는 알아주는 한우의 고장이다. 경북 상주, 전북 정읍과 함께 전국 3대 한우 생산지로 꼽힌다. 약 3000개 농가에서 6만3000두가 넘는 한우를 사육한다. 정육점은 530곳에 이른다. 경주시 곳곳에 고깃집이 있는데, 특히 산내면과 천북면 화산리는 역사 깊은 한우 마을이다. 고깃집 사이에선 손님을 붙잡기 위한 아이디어 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한우물회가 탄생하고 또 뿌리내린 배경이겠다.
경주사람에게 한우물회의 기원을 물으면 대부분 북군동의 ‘함양집’을 가리킨다. 울산에서 시작해 4대를 이어오는 집인데, 한우물회는 경주 분점에서 2010년대 들어 개발했다. 본래 육회 비빔밥으로 지역에서 명성이 쌓았으나, 한우물회를 낸 이후로 전국구 맛집으로 거듭났다. 이제는 역으로 울산 본점에서 경주식 한우물회를 낸다.
경주 보문뜰의 한우물회 상차림. 살얼음이 언 차가운 육수 위에 오이와 배를 깔고 그 위에 한우를 얹어 낸다. 백종현 기자
한우물회를 맛보러 보문관광단지 초입에 있는 ‘보문뜰’을 찾았다. 근방에서 국물 맛이 탁월하다고 소문이 난 집이다. 사골 원액에 배즙과 고춧가루 양념을 섞어 육수를 만든다. 냉면집을 운영하며 터득한 육수 노하우를 한우물회에 적용하고 있단다.
“저마다 질 좋은 한우를 다루는 식당들이니, 국물 맛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게 이혜현(52) 사장의 설명이다. 한우는 기름기가 적은 꾸리살(앞다리 부위)과 우둔살(엉덩이 부위)만 사용한다. 육회에 주로 이용하는 부위다.
한우부터 공략한 다음 소면과 밥을 차례로 말아 먹는다. 백종현 기자
육수만 완성되면, 조리법은 간단하다. 살얼음이 낀 시뻘건 육수 위에 오이와 배를 가지런히 깔고, 잘고 길쭉하게 썬 한우를 올린다. 참깨를 듬뿍 뿌리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고기의 누린내는 잡고, 고소함은 올리는 비책이다. 상에는 소면과 공깃밥이 함께 올라온다. 이혜현 사장이 일러준 ‘한우물회를 맛있게 먹는 순서’는 이렇다.
“일단 한우부터 공략한 다음, 소면을 풀어 건져 먹고, 끝으로 식힌 밥을 말아 먹는다.”
사실 한우물회는 경주사람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린다. “한우는 구워 먹어야 제맛”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물회로? 굳이?”라는 반응부터 보인다. “관광객이나 먹지 경주사람은 안 찾는 음식”이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반기는 쪽 입장도 확고하다. “물회나 냉면보다 푸짐하고 감칠맛이 대단하다” “구이가 아니라 물회 먹으러 고깃집 간다”는 식이다.
먹어본 소감을 요약하자면, ‘일단 먹어보시라’다. 물회 애호가는 물론이고, 해산물 비린내 때문에 물회를 꺼리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맛이다. 쫄깃쫄깃한 식감의 꾸리살과 우둔살은 차가운 얼음 육수와도, 소면이나 밥과도 제법 잘 어울렸다. 칼칼한 국물도 계속 입맛을 당겼다. 고기 누린내는 나지 않았다. 30도를 웃도는 초여름의 점심이었기 때문일까. 살얼음 낀 육수를 그릇째 싹 비우고 가게를 나왔다.
경주=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1.06.28
보문뜰 이혜현 사장. 냉면집에서 터득한 육수 노하우를 한우물회에 적용해 맛을 낸단다. 백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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