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 김선생과 제자들]
중식 메뉴 해부 <1편>
중국음식은 한국인이 가장 친숙하고 즐겨 먹는 외국 음식일 겁니다. 하지만 짜장면, 짬뽕, 군만두, 탕수육 외에 다른 메뉴를 주문하는 경우는 드물죠. 맛 없어서가 아니라 뭐가 뭔지 몰라서가 아닐까요
중식당 메뉴판을 보고 더이상 혼란스러워하거나 당황하지 말자구요. 공복과 그의 제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서울 광화문에 있는 중식당 ‘루이키친M’에 갔습니다. 중식을 먹으면서 ‘맛있는 중식당 감별법’ ‘알쏭달쏭한 중식 요리 이름 풀이’ ‘먹는 방법과 순서’ 등을 제자들이 묻고 공복이 답했습니다.
공복: 중국 음식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다고?
제자1: 중식 메뉴는 왜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까?
공복: 한국에 오래 전 들어온데다 여러 시대에 걸쳐 들어왔기 때문이네. 임오군란 이후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산둥성 출신 화교들이 제일 먼저 정착했지. 이들이 중식을 들여오면서 산둥식 사투리로 발음한 요리 이름이 알려졌지. 여기에 한국식 한자 음독(音讀)이 섞였어.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지. 한국 중식당에서 일본 단무지를 반찬으로 내주는 게 단적인 예지. 광복 이후로는 표준 중국어가, 최근 광둥요리가 유행하면서는 광둥어가 들어왔지. 이처럼 한국·중국·일본 말과 문화가 뒤섞이면서 이름만 봐서는 무슨 음식인지 알기 힘들게 됐다네.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된 짜장면./조선일보DB
제자1: 음식 전문기자의 중식당 잘 고르는 팁을 좀 알려주십쇼.
공복: 팁 하나. 문 앞에 ‘화상(華商)’이라고 써 있는지 살펴보게. 화(華)는 중국 화교(華僑), 상(商)은 장사치라는 뜻. 그러니 화상이라 써 붙였다면 중국인이 운영하는 중식당이라는 뜻이지. 요즘은 한국인 중식 요리사가 많고, 중국사람이 만든 중식이라고 반드시 더 맛있으란 법은 없다네. 하지만 중국인이 하는 중국집이니 최소한 기본은 할 거라고 기대할 수 있지.
팁 둘. 메뉴판에 ‘덴뿌라’라고 써 있는지 살펴보게. 덴뿌라는 고기 튀김을 말한다네. 탕수육에서 소스만 없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지. 고기 튀김을 일제강점기 때부터 튀김을 의미하는 일본어 ‘덴푸라’라고 부르던 게 메뉴로 굳은 것. 이런 오래된 이름이 메뉴판에 있다면 그 중식당도 오래됐을 가능성이 높고, 망하지 않고 오래 버틴 곳이라면 맛이 괜찮을 가능성이 높다네.
제자2: 중식에도 코스 문화가 있습니까?
공복: 중식은 원래 우리처럼 한상차림이라네. 하지만 서양의 영향을 받아 한 가지씩 순서대로 나오는 코스화됐지. 상하이, 홍콩 등 서양의 지배를 받은 지역에서 코스로 시작했다고 보이네. 산라탕 등 탕 요리는 요즘 서양요리에서 메인 전에 수프가 나오듯 다른 요리에 앞서 나오지만, 원래는 모든 요리를 먹고 난 다음 입가심으로 먹었지.
제자1: 중식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한국의 중식은 어느 지역에서 온 것입니까?
공복: 중국음식은 베이징·광둥·산둥·스촨 등 지역에 따라 4대, 8대, 16대 요리로 나누기도 하지.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대중적인 중식은 산둥성(山東省)에 뿌리를 뒀다네.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의 90% 이상이 산둥 출신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워낙 오랫동안 한국에서 한국인 입에 맞게 변형됐기 때문에 산둥식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많아. 한국화교요리사협회 회장을 지낸 여경옥 셰프는 “이제 한국의 중식은 ‘한차이(韓菜)’라고 불러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지.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독자성을 갖춘 중식’이란 뜻이라네.
제자2: 산둥성에도 짜장면이 있나요?
공복: 있지. 산둥에도 베이징에도 있다네. 하지만 한국의 짜장면과 완전히 다르다네. 한국 된장과 비슷한 춘장(春醬)을 기름에 볶아서 면에 비벼 먹지. 굉장히 짜고 뻑뻑해서 한국인 입에는 맞지 않아요. 짜장면을 한자로 ‘炸醬麵(작장면)’이라고 쓰는데, 작(炸)은 ‘기름을 많이 두르고 볶다’ ‘튀기다’는 뜻이고, 장(醬)은 춘장이니까 ‘기름을 듬뿍 두르고볶은 춘장을 얹은 국수’라는 뜻일세.
트레일블레이저 미드나잇
코스1: 양장피
첫 요리로 양장피(兩張皮)가 나왔다. 제자2가 환하게 웃었다.
공복: 제자들이여, 양장피 재료가 뭔지 아는가?
제자들: 모르겠습니다.
공복: 전분이라네. 고구마 녹말로 만든 얇고 넓적한 국수 모양의 식재료를 양장피라고 하고, 양장피에 각종 채소와 해산물을 넣고 매운 겨자 소스에 버무린 음식도 양장피라고 하지. 양장피는 쫄깃하고 말랑한 식감 때문에 해파리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실은 당면에 더 가깝다네. 양장피(兩張皮)라는 한자를 해석해 ‘두 장[兩張]의 피(皮)를 겹쳐 만든 피’로 아는 이들이 많지. 심지어 화교 요리사들조차 그렇다네. 하지만 양장피의 원 이름은 '양분피잡채(洋粉皮雜菜)로, 이것이 언젠가부터 양장피로 잘못 불리워진 것으로 보인다네. 양장피도 중국에서 보기 힘든, 한차이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코스 2: 유산슬
유산슬./조선일보DB
두 번째 요리 유산슬(溜三絲)이 나왔다. 제자2가 박수를 쳤다.
공복: 유산슬의 한자를 뜻풀이 하면 어떤 음식인지 금새 알 수 있지. 류(溜)는 ‘전분을 끼얹어 걸쭉하게 만드는 요리법’이고, 삼(三)은 ‘세 가지 주 재료가 들어갔다’, 사(絲)는 ‘가늘게 썰다’라는 뜻이네. 그러니 유산슬은 3가지 주 재료를 비롯 각종 재료를 가늘게 썰어서 볶은 뒤 전분을 끼얹어 걸쭉하게 만든 음식이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국내에서는 그리 인기가 많지 않았는데, 최근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면서 예명으로 ‘유산슬’을 쓰면서 화제가 되면서 깜짝 인기를 끌고 있지. 이 식당(루이키친M) 오너셰프인 여경래씨가 한국화교요리사협회를 대표해 “유산슬을 알린 공로에 감사한다”며 감사장을 유재석씨한테 전달하기도 했지.
제자2: 세 가지 주 재료는 바뀌기도 하는지요?
공복: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네. 삼선짜장면에 들어가는 재료도 집집마다 다르지 않은가.
코스 3: 깐풍기
깐풍기./조선일보DB
제자1: 깐풍기(乾烹鷄)가 나오니 선생님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공복: 가장 좋아하는 중식 요리 중 하나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웃음)
공복: 깐풍기를 한국식으로 읽으면 ‘건풍계’이네. 계(鷄)는 ‘닭·닭고기’, 팽(烹)은 ‘삶다·볶다’ 또는 ‘요리 전반’, 건(乾)은 ‘마르다·건조하다’는 뜻. 닭고기에 튀김옷을 입혀 튀긴 다음 소스에 버무리는데, 탕수육 등 다른 중식 요리처럼 소스가 흥건하거나 축축하지 않아 건조한 느낌이라네.
코스 4: 난자완스
난자완스./조선일보DB
공복: 난자완스(南煎丸子)도 내가 무척 사랑하는 요리지. ‘완자(丸子·환자)를 지져(煎·전) 만든 음식’이라는 뜻이네. 난(南·남)이 왜 붙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중국 남부에서 즐겨 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하고 있다네. 중국 남부 주요 도시 중 하나인 난징(南京)에서 탄생해 세계적으로 인기인 ‘스쯔터우(獅子頭)’는 음식이 있다네. 국내에서는 ‘사자 머리 완자’라고 흔히 부른다네. 스쯔터우는 돼지 삼겹살을 다져서 크게 빚은 다음 튀기고 굽고 쪄서 만드는데, 난자완스와 맛이 상당히 비슷하다네.
코스 5: 산라탕
산라탕(酸辣湯)은 제자1이 가장 반갑게 맞았다.
제자1: 산라탕이 해장에 좋더라구요.
공복: 그렇지. 산라탕은 ‘시고(酸·산) 매운(辣·랄) 탕(湯)’이라는 말이네. 원래 상하이 음식이지. 상하이 음식의 특징이 신맛과 단맛을 잘 쓴다는 거지. 맵지만 고추를 써서 얼얼하게 매운 한식과 달리 후추로 후끈하고 얼큰하게 매운맛을 내지. 한국은 전분을 많이 풀어서 상하이보다 걸쭉한 편이라고 나는 판단한다네.
산라탕 그릇이 비어갈 종업원이 새로운 요리를 들고 들어왔다. “‘알탕수육’입니다.” 공복이 반갑다는 듯 미소 지었다.
공복: 알탕수육은 쉽게 볼 수 없는 종류의 탕수육이라네. 왜냐하면 말이지….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0.10.09
중국집 솜씨? 볶음밥과 깐풍기 시켜보면 안다
중식 메뉴 해부 <2편>
중국음식은 한국인이 가장 친숙하고 즐겨 먹는 외국 음식일 겁니다. 하지만 짜장면, 짬뽕, 군만두, 탕수육 외에 다른 메뉴를 주문하는 경우는 드물죠. 맛 없어서가 아니라 뭐가 뭔지 몰라서가 아닐까요.
중식당 메뉴판을 보고 더이상 혼란스러워하거나 당황하지 말자구요. 공복과 그의 제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서울 광화문에 있는 중식당 ‘루이키친M’에 갔습니다. 중식을 먹으면서 ‘맛있는 중식당 감별법’ ‘알쏭달쏭한 중식 요리 이름 풀이’ ‘먹는 방법과 순서’ 등을 제자들이 묻고 공복이 답했습니다.
코스 6: 알탕수육
탕수육/조선일보DB
공복: 지금 나오는 건 ‘알탕수육’이라고 한다네.
제자1: 알탕수육이요?
공복: 탕수육은 탕수육이나 튀기는 방법이 다르다네. 보통 탕수육은 고기를 튀김옷 반죽에 버무린 다음 기름에 한꺼번에 쓸어 넣지. 그런 다음 튀김옷이 대충 익으면 젓가락이나 주걱 등으로 탁탁 쳐서 분리시키지. 알탕수육은 반죽에 버무린 다음 한 알 한 알 따로 집어넣는다네. 이렇게 하면 튀김옷이 더 고루 묻고 바삭하게 익어서 더 맛있지. 하지만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 단골이 아니면 잘 해주지 않지. 정 먹어보고 싶다면 바쁘지 않은 시간에 가서 부탁해보게.
알탕수육까지 요리는 다 나왔다. 간짜장이 나오며 식사는 마무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코스 7: 간짜장과 중국냉면
짜장면/조선일보DB
제자1: 선생님, 짜장면과 간짜장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공복: 짜장면(炸醬麵)은 ‘기름에 튀기듯 볶은(炸) 장(醬)에 비벼 먹는 국수(麵)’라는 뜻일세. 여기서 장은 한국의 된장과 비슷한 중국 산둥 지역 춘장(春醬)이고. 옛날에는 모든 짜장면이 간짜장면이었지.
제자2: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공복: 옛날에는 그냥 짜장면을 시키면 간짜장이 나왔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 중식집에서 배달이 중요해졌네. 배달할 때 중요한 건 음식이 쉬 식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지. 녹말을 물에 풀어 음식에 섞으면 잘 식지 않는다네. 게다가 촉촉하니 윤기가 자르르 흘러서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장점도 있고. 그래서 중식당에서는 짜장면에 물녹말(녹말 푼 물)을 짜장 소스에 섞기 시작했네. 이때부터 녹말물을 넣은 짜장면과 옛날식으로 넣지 않은 간짜장면을 구분해 부르기 시작했다네.
제자1: 선생님은 간짜장을 더 선호하시지요.
공복: 녹말을 섞으면 천천히 식고 윤기가 난다는 장점과 함께 시간이 지나면 물기가 생겨 질척하고 맛이 흐려진다는 단점이 있다네. 그래서 간짜장을 더 좋아하지.
제자2: 간짜장에는 왜 달걀 프라이를 얹어 주나요.
공복: 간짜장을 조금 더 비싸게 받으면서 서비스 차원에서 올리지 않았나 싶네. 최근까지도 서울 중식당에서는 간짜장에 달걀 프라이를 주지 않았네. 경상도에서만 줬지. 여전히 서울은 모든 중국집에서 주지는 않지. 경상도 출신인 내 아내는 ‘웍(중국식 프라이팬)에 튀기듯 부쳐서 테두리가 누릇하고 바삭한 달걀 프라이를 올려야 제대로 된 간짜장인데’라며 섭섭해한다네.
리얼뉴 콜로라도 출시 이벤트
중국냉면/조선일보DB
제자2: 여름 인기 메뉴 중국냉면은 정작 본토에는 없다면서요.
공복: 그렇다네. 중국인은 찬물도 싫어하는데 냉면을 먹겠는가. 중국냉면은 한국에서 탄생한 중식 그러니까 여경래 사부가 ‘한차이(韓菜)’라고 부르는 한국식 중식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싶네.
코스 8: 볶음밥과 군만두
볶음밥/조선일보DB
제자1: 중국집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메뉴가 있을지요.
공복: 나는 볶음밥을 시켜본다네. 소박하고 평범한 음식이지만, 볶음밥에는 중식에 필요한 조리 스킬이 모두 들어있지. 밥알 하나하나 기름으로 코팅돼 고슬고슬하면서도 기름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아 느끼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볶음밥일세.
미국의 한 대학에서 볶음밥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사실, 아는가? 중식 요리사 고수들은 웍을 화덕 테두리에 탁 쳐서 볶음밥을 공중에 붕 뜨게 하잖나. 이때 밥알에 불길이 직접 닿으면서 불필요한 기름은 제거해준다네. 동시에 밥알에 불맛을 입혀서 훨씬 더 복합적이고 깊이 있는 맛을 내준다네.
군만두/조선일보DB
제자2: 군만두도 좋아하시 않습니까.
공복: 좋아하지, 단 튀김만두가 아닌 진짜 군만두라야 한다네.
제자1: 무슨 말씀이신지요.
공복: 원래 군만두는 한쪽은 바삭하게 굽고 나머지 한쪽은 부드럽게 쪄야 한다네. 프라이팬에 만두를 굽다가 바삭하게 됐을 때 물을 조금 붓고 뚜껑을 덮으면 이렇게 된다네. 요즘 중식당에서 내주는 군만두는 기름에 만두를 던져 넣어 튀겨내지. 이래서야 군만두라고 할 수 없지.
제자2: 어쩌다 군만두가 튀김만두가 됐습니까.
공복: 군만두가 공짜로 주는 서비스 메뉴가 되면서 싸구려로 전락했지. 제대로 돈 받지 못하니 시간과 정성 들여 굽지 않게 된 것이지. 안타까운 세태일세….
후식이 나오고 ‘루이키친M’ 오너셰프인 여경래 사부가 방으로 들어왔다. 공복 선생이 여 사부를 반갑게 맞았다.
제자1: 공복 선생께도 여쭤봤습니다만, 중국집 수준을 볼 수 있는 메뉴가 있을지요.
그리고: 깐풍기
깐풍기/조선일보DB
여경래: 깐풍기가 조리 솜씨의 척도라고 봅니다. 깐풍기를 먹어보면 그 집 주방장이 잘 하는지 못하는지 알 수 있단 소리죠. 깐풍기는 튀기기도 잘 튀겨야 하는데다, 소스가 한 가지 단순한 맛이 아니라 맵고 달고 새콤한 맛이 복합적인 조화를 이뤄야 하거든요.
(3편에서는 딤섬 등 광둥식 중국음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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