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똑같이 굽고 삶았는데… 감자, 왜이리 고급스럽니

해암도 2020. 10. 20. 05:28

2시간 요리법 20분 만에 뚝딱 만드는 구황작물 집밥

 

최근 '나의 프랑스식 샐러드'를 낸 이선혜씨가 만든 '강황 감자 샐러드'. 그의 요리 궁리는 프랑스 유학 시절 기숙사에서 싹이 텄다. '재료도, 도구도 마땅치 않아 한국 음식이 생각나면 숟가락 두 개로 수제비를 뜨고, 휴대용 전기레인지 위에서 호떡을 굽고, 래디시로 겉절이를 버무렸다. 그래서 방에는 늘 친구들이 북적거렸고, 내 방은 "이선혜 레스토랑"이라고 불렸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갑술년(1934년)생 엄마는 키가 167㎝였다. 부산대 영문과를 나와 1957년 우리나라 첫 미스코리아에 뽑혔고, 집 밖을 나설 때면 애가 일곱인데도 모자를 멋드러지게 써서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딸의 기억 속 엄마는 종갓집 맏며느리. 손이 크고 손맛도 남달랐던 엄마는 제사 때면 만두를 300개씩 빚었다. 몇 날 전부터 녹두를 불려서 껍질을 깠고, 돼지머리를 삶아 뼈를 추린 뒤 남은 고기에 소스를 끼얹어 통으로 구워냈다. 패션디자이너 진태옥이 “느그(너희) 어머니를 모델로 쓰면 딱인데” 하고 탐냈던 엄마는 재작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 시절 스테이크를 손님상에 올리던 엄마 모습은 지금도 선하다. 최근 요리책 ‘나의 프랑스식 샐러드’를 낸 지중해 레스토랑 ‘빌라 올리바’의 주인 이선혜(60)씨는 냄비에 감자를 쏟아부으며 말했다. “재료 가짓수와 요리 시간을 줄여도 맛만 있으면 돼요. 엄마가 늘 했던 말씀이죠. 먹고 삼키면 그만인 음식을 진 빼면서 할 필요 없다고.”

◇손끝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구황작물’

프랑스 요리학교 르코르동블루의 2시간짜리 요리법이 이씨 손만 거치면 20분짜리 초간단 요리로 재탄생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프랑스에 유학 가 8년을 살고, 프랑스인 남편과 30년 살면서 정통 프렌치 레시피를 익힌 그는, 그 옛날 추운 겨울이면 주린 배 채워주던 대표 ‘구황작물’ 감자로 맛있는 한 끼를 뚝딱 차려냈다. “잘 익은 감자와 강황 반 티스푼, 소금 1작은술만 있으면 돼요.” 감자를 삶을 때 강황 가루를 물에 풀어 20분가량 익혔다가 먹기 직전 통후추 간 것으로 간한다. 반숙한 달걀이나 다진 파슬리를 올려 모양을 내면 ‘강황에 레몬빛으로 상큼하게 익은 감자 샐러드’가 된다.

올리브 오일을 듬뿍 둘러 대파를 구우면 단맛이 올라가고 부드러워진다. 파를 씻어서 물기가 있는 채로 구워야 촉촉하고 부드럽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겨울은 뿌리채소가 맛 좋게 무르익는 시기. 겨울 대파는 보약이라 꼭 챙겨 먹는다. “대파를 오일에 구우면 매운맛이 없어지고 향과 단맛이 나죠.” 뿌리 부분을 잘라낸 대파를 길게 끊어 물기 있는 채로 프라이팬에 눕힌 뒤 올리브유를 두른다. 대파가 노릇하게 익을 동안 끓는 물에 소시지를 데친다. 통후추를 갈아서 뿌리면 끝. 고소한 파전 맛이 입안에 가득 차서 당뇨 환자도 즐길 수 있다. 맥주 한잔 곁들이면 “캬아~” 탄성이 절로 나온다.

별다른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한 상 맛있게 차려낼 수 있는 '강황 감자 샐러드'와 '대파 소시지 샐러드'. 여기엔 상큼하고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이선혜표 'SH드레싱'이 잘 어울린다. 다진 양파에 식초 1큰술과 홀그레인 머스터드 1작은술을 넣고 골고루 섞으면서 올리브 오일을 1큰술씩 넣어가며 저으면 SH드레싱을 만들 수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2시간짜리 레시피를 20분 만에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워 온 ‘산만디’ 주인 정해리(51)씨는 보기만 해도 배부른 감자 요리를 선보인다. 남편 따라 부산에 살러 갔다가 부산항 대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복도로에 원 테이블 레스토랑을 차려 화제를 모은 그는 ‘올리브 오일에 바삭하게 튀겨낸 두툼한 감자전(프리타타)’의 달인. 성악을 배우러 이탈리아에 갔다가 현지 할머니의 푸근한 레시피에 반해 최근 ‘이탈리아 집밥’을 펴냈다. 산만디는 산꼭대기를 일컫는 경상도 사투리다.

정해리씨가 손수 만든 '말하자면 달걀전 감자프리타타'. 프리타타를 우리말로 풀면 기름에 지진 전(煎)이다. 감자를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 올리브 오일에 튀기듯 구운 다음, 팬 바닥에 켜켜이 쌓은 뒤 갖은 채소를 넣은 달걀물을 붓고 뚜껑을 덮어 익혔다. 푹신한 감자전이 입안에 그득 찬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단순해서 맛있는 음식이 최고”라는 평소 지론대로 “감자를 종잇장처럼 썰어 올리브 오일에 튀기듯 구운 다음 켜켜이 쌓고, 그 위에 갖은 채소를 섞은 달걀물과 치즈를 듬뿍 올려 한 번 더 익혀내면 두툼한 감자전이 된다”고 했다. 찐 감자를 소금·설탕에 찍어 먹는 게 전부인 우리와 달리 유럽 사람들은 버터나 후추도 잘 찍어 먹는다.

정해리표 ‘크림당근’도 쉽다. 올리브유에 당근을 볶다가 생크림을 붓고 소금으로 간한 뒤 약불에 졸인다. 파르메산 치즈를 양껏 뿌리고 뚜껑을 덮은 후 약불에 두면 당근의 단맛과 부드러운 생크림이 조화를 이뤄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화이트 와인 안주로 제격이다.

스무 살까지 엄마 따라 시장 가는 것도 싫어했다는 그는 “충남 천안의 종갓집 며느리였던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올갱이된장국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마침 제가 요리를 배운 이탈리아 할머니 집이 과수원 한복판에 있었죠. 바로 딴 허브, 갓 낳은 달걀로 음식을 만드는데 입에서 살살 녹았어요.” 감자 요리엔 막걸리도 잘 어울린다. 감자전 할 때 남은 채소를 다 썰어 넣으면 되는데, 느타리버섯처럼 물기 많은 것만 피하면 된다.

'말하자면 달걀전 감자프리타타'와 '당근크림'. 당근은 열을 가하면 달콤해지는데, 그 단맛이 부드러운 생크림과 조화를 이룬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김경은 기자 eun@chosun.com]    입력 20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