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낮엔 백종원이 있다면, 밤은 '흑종원'의 세상이다

해암도 2020. 5. 9. 09:49

얼굴가린 유튜버 '흑종원' 아하부장

유명 식당 음식 레시피를 낱낱이 공개하는 유튜버 ‘아하부장’이 자신의 유튜브 계정 첫 화면과 똑같이 계량스푼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아하부장은 “요리의 기본 중 기본이 계량이지만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요즘 맛집 유튜버 최고 스타는 '아하부장'이다.

 

별 재료 넣지 않았는데 맛있는 고깃집 된장찌개, 유서 깊은 국밥집 섞박지(넓적 깍두기),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 간장양념치킨, 월 매출 2억원 대박집 닭개장…. 유튜버 '아하부장'은 '너무 맛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만드나' 궁금해하던 맛집 레시피를 자신의 유튜브 계정 '아하부장'에서 아낌없이 공개한다.

 

MSG(글루탐산모노나트륨)는 물론이고 치킨스톡, 양파·마늘 분말, 짬뽕 다시 등 인공조미료를 어떻게 얼마나 왜 사용해 식당들이 그 맛을 내는지 숨김없이 밝힌다. 영상마다 조회 수가 10만 회는 가볍게 나온다. 고깃집 된장찌개 영상은 7일 현재 조회 수가 145만회. "식당에서 사 먹던 맛 그대로다" "진짜 똑같은 맛이 난다"는 감사와 찬사의 댓글이 영상마다 수백개씩 줄줄이 달린다.

 

"수백만원에 판다는 영업비밀을 무료로 공개하다니, 외식업자들에게 맞아 죽는 게 아니냐"는 진심 어린 걱정도 달린다. 그래서일까, 아하부장은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 영상에는 앞치마를 두른 몸과 조리용 검은 장갑 낀 손만 등장한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아하부장을 사람들은 백종원에게 빗대 '흑(黑)종원' '어둠의 백종원'이라 부른다. 아하부장은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6일 오후 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사람들이 '흑종원'이라 부른다.

"마음에 든다. 너무 재미있다. '흑종원 백종원' 라임도 잘 맞췄고, 방송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백종원씨와 유튜브에서 얼굴을 가리고 하는 나와의 대비도 절묘하고, 인공조미료 쓰지 않는 백종원씨와 반대로 숨김없이 집어넣는 점까지 잘 잡아낸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상상들을 할 수 있는지, 처음 듣고 혼자서 킥킥대며 웃었다. 백종원씨처럼 성공한 사업가와 비교돼 영광이다."

―업계 비밀을 모조리 공개하다가 '해코지'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가 많다. 그래서 얼굴을 가리고 하나. 아니면 아무 말이나 편하게 할 수 있어서인가.

"아니다. 식당 음식 맛 내는 법을 알려주면서 얼굴을 공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얼굴이 알려지면 일상생활이 불편할 듯하기도 하다. 얼굴은 나를 아는 사람을 통해서건, 내가 직접 하건 언젠가 알려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막말은 하지 않는다. 원래 말을 막 하는 편도 아니다."

―지난해 2월 계정을 개설해 1년여 만에 구독자 수가 54만명이 넘었다.

"이렇게 인기를 얻을지 전혀 상상 못 했다. 식당 하는 분 중에서 음식 맛 내는 법을 모르는 분이 의외로 많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기본은 알려드리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누가 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직업은 뭔가. 외식업체 조리부장일 거라고들 예상하던데.

"요리사였다. 경력이 15년쯤 된다. 요리학교는 다니지 않았다. 프랑스 요리로 시작해 2년쯤 하다가 한식으로 바꿨다. 중식, 일식도 1년 이상씩 하면서 체득했다. 요리사의 기본이 갖춰진 상태에서 1년은 결코 짧지 않다. 컨벤션(대형 행사장)과 이탈리아 레스토랑, 한식당이 같이 있는 외식업체 총괄부장이 월급쟁이 요리사로서 마지막 직장이다. 지금은 조그맣게 카페를 하면서 식당 컨설팅도 한다."

―요리학교 나오지 않고 어떻게 요리사가 됐나.

"짜장면이 너무 궁금했다. '이 까만 게 뭔데 이렇게 달콤하고 맛있을까.' 이걸 알아내려고 요리사를 하게 됐다. 15년 전만 해도 요즘처럼 온갖 요리 레시피를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없었다. 주방에 들어가 온갖 허드렛일 하면서 선배들에게 배워야 했다. 여러 식당에서 일하며 한식·중식·일식·양식을 배웠다. 호기심이 많아서 식당에서 먹어보고 맛있으면 주방에서 시간 날 때마다 만들어보며 들어가는 재료를 익혔다."

―처음 올린 영상이 뭐였나.

"계량하는 법이었다. 요리의 기본 중 기본이 계량이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냥 숟가락이나 국자로 마구 퍼 넣고 하는 게 안타까웠다. 계량만 알아도 얼마든지 음식 만들고 맛 낼 수 있다."

―음식 특히 한식은 손맛이라고들 하는데.

"손맛의 의미가 잘못 알려졌다. 고춧가루를 손으로 대충 퍼서 버무리는 게 손맛이 아니다. 음식 오래 하신 아주머니나 할머니가 대강대강 넣는 것 같아도 수십년간 축적된 계량이 손에 익어 있는 것이다. 이게 진정한 손맛이다. 일반 가정에서 음식 하는 분들이 이런 고수들의 요리 영상 1개 보고 따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유튜브 계정 ‘아하부장’의 첫 화면.

 

―그런데 계량법을 알려주는 초기 영상을 모두 내렸다.

"유튜브가 웃긴 게, 봐주지 않으니 재미가 없더라. 그런데 계량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 '빠르고 간단하게' '유명 맛집 맛 똑같이 내기', 사람들의 니즈(요구)는 정해져 있다. 마인드(생각)를 바꿨다. '빠르고 간단하게 맛 내는 법을 알려주자, 요리에 흥미를 붙이게 하자, 그런 다음 깊은맛과 원하는 맛을 내는 방향으로 인도하자'로. 그래서 요즘 영상은 전반에 기본 맛 내는 법을 알려주고, 후반에 더 맛있게 내는 응용법을 알려주는 포맷으로 찍는다."

―식당에서 쓰는 인공조미료 공개한다고 외식업자들에게 욕먹진 않나.

"전혀. 1(하나)도 걱정하지 않는다. 인공조미료 쓴다고 욕하면 자신도 똑같이 한다고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인공조미료는 좋다고 생각한다. 대중식당에는 필요하다. 인공조미료 쓰지 않고는 가격을 맞출 수 없다. MSG의 이미지가 긍정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설탕이나 소금처럼 테이블에 올려놓고 선택해 뿌릴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왔으면 좋겠다."

―된장찌개, 냉면 등 요리법을 무슨 비법인 양 수백만원에 사고판다. 판매하는 것보다 구매하는 게 더 문제라고 했는데.

"식당 하려고 하면서 그 정도 준비도 하지 않고 쉽게 맛집 레시피를 사려고만 하나. 자신이 무슨 음식을 팔 것인지 고민해 정하고, 어떻게 만들 것인지 연구해본 다음에 맛집 레시피를 사도 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응용력이 없어서 문제가 생겼을 때 고치거나 더 나은 맛이 나도록 업그레이드하지 못한다. 식당은 장난이 아니다. 얼마나 힘든 일인데, 아무 생각도 준비도 없이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음식이 맛있다고 장사가 잘되는 건 아니라고도 말했다.

"음식 맛은 식당 성공의 20% 정도? 솔직히 20%도 많이 잡아준 거다. 무조건 서비스다. 음식을 종업원이 손님에게 내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니다. 손님이 앉는 의자를 고르는 것도 서비스다. 식당 차릴 때 손님 입장에서 의자에 앉아보고 샀는지, 테이블 간격을 넓혀 매출은 줄어들더라도 편안하고 쾌적하게 드실 수 있는지 등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의 서비스를 말한다."

―'이건 3900원짜리 콩나물 국밥, 이건 1만2000원짜리 콩나물 국밥' 등 가격을 기준으로 설명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똑같은 음식의 가격 차이는 어떻게 생기나.

"결국 인건비다. 재료는 큰 차이 없다. 생선구이를 예로 들어보자. 비싼 생선구이를 파는 식당에서는 가시를 모두 발라서 먹기 편하게 낸다. 저렴한 생선구이집은 손님이 알아서 발라 먹어야 한다. 인테리어·분위기 등 얼마나 쾌적한 환경인지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진다."

―앞으 로 계획은. 유튜버가 최종 목표인지.

"현재 운영하는 카페 주방에서 영상을 촬영하는데, 이 주방을 오픈 스튜디오로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와서 촬영하는 걸 보면서 궁금하면 물어보고 답해주는 그런 공간을 기획 중이다. 이걸 하게 되면 그때는 얼굴을 공개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이 '집에서 이건 못 해, 여기 와서 먹어야 해'라고 평가하는 식당도 해보고 싶다."

 

조선일보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입력 2020.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