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밥맛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쌀을 전문으로 다루며 어떤 품종이 더 맛있는지 감별하는 이들을 ‘밥소믈리에’라고 한다. 일본취반협회에서 인정하는 일종의 자격증으로 현재 국내에는 약 7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밥소믈리에로 활동 중인 박재현(50)씨를 만나 올바른 쌀 선택법과 맛있는 밥 짓기 노하우 등 ‘밥맛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재현씨는 20년간 쌀 유통일을 하다 지난 2015년 밥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본격적인 '밥 감별사'의 길로 들어섰다. 박재현 밥소믈리에가 직접 블렌딩한 쌀 상품들과 함께 누웠다. 장진영 기자
- 질의 :밥소믈리에가 된 계기가 있나?
- 응답 :대학을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활동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쌀 유통일을 돕게 됐다. 시골 정미소에서 일하며 대형마트 등에 납품했는데 아무리 좋은 쌀을 재배하더라도 유통이 안정적이지 않아 농민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좋은 쌀을 소비자들에게 다양하게 소개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다. 최근 쌀 소비 트렌드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좋은 품종을 사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다양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쌀 메신저’가 되기로 결심했다.
- 질의 :밥소믈리에가 되는 과정은?
- 응답 :매년 3월 일본에서 시행되는 인증시험을 거쳐 선발된다. 일본취반협회가 주관한다. 시험은 이틀간 진행되고 쌀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맛, 향, 외관, 윤기, 단단함 등을 맛보고 평가하는 실기시험을 봐야 한다. 시험은 일본어로 시행된다.

박재현 밥소믈리에는 현대백화점의 현대쌀집 수석 밥소믈리에로 활동중이다. 장진영 기자
- 질의 :지역별 재배 품종에 관해 설명한다면?
- 응답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각 지역 쌀 산업의 브랜드화가 다양하게 진행됐다. 경기지역은 오랜 시간 자리 잡아 온 '추청' 품종 외에 '참드림', '맛드림' 이라는 대체 품종이 새롭게 개발되었다. 충청지역의 '삼광', 호남지역의 '신동진', 영남지역의 '일품', 강원지역의 '오대' 등이 지역별 대표 품종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질의 :추천하고 싶은 품종이 있다면?
- 응답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재배되는 ‘골든퀸3호’를 추천하고 싶다. 아밀로스 함량이 낮아 찰기가 뛰어나고 식감이 좋다. 팝콘 향처럼 구수하게 퍼지는 냄새도 일품이다. 밥을 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도 식감이 그대로 유지된다. 찰기가 좋은 밥맛을 선호한다면 ‘고시히카리’, ‘진상’, ‘히토메보레’를, 담백하고 부드러운 밥맛을 좋아하면 ‘참드림’, ‘삼광’ 등을 추천한다.

박재현 밥소믈리에가 잡곡 등을 살펴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 질의 :쌀의 유통기한은?
- 응답 :쌀은 도정한지 7시간이 지난 후부터 산화가 시작되고 7일이 지나면 산패가 발생한다. 구입한 쌀은 도정 일로부터 2주 이내에 소비하는 것이 좋으며, 최대 30일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쌀을 구입할때 도정 일자를 꼭 확인하고 가급적 바로 도정한 쌀을 사는 것이 좋다.
- 질의 :쌀 블렌딩의 이유와 좋은 조합은?
- 응답 :밥소믈리에는 잡곡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파악하고 조합해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아밀로스 성분은 밥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찰기를 결정한다. 아밀로스 함량 15% 이하면 저아밀로스 계열로 분류되는데 이것과 일반 품종을 섞으면 밥맛이 좋아진다. 저아밀로스 계열의 ‘진상’, ‘백진주’, 골든퀸3호’ 등과 일반 품종 중에 담백함이 특징인 ‘추청’, ‘삼광’, ‘참드림’을 섞는 것을 추천한다.

박재현 밥소믈리에는 지난 2015년 일본취반협회 주관 밥소믈리에 인증 자격증을 취득했다. 장진영 기자
- 질의 :밥 짓기의 정석을 알려달라
- 응답 :밥 짓는 과정은 계량, 세미(쌀 씻기), 침적(물에 담그기), 가열, 뜸 들이기의 순서로 진행된다. 최근 도정한 쌀을 선택하고 전기밥솥이 아닌 일반 냄비에 1인분 기준 120~150g을 준비한다.
쌀을 씻을 때 첫 물은 버리고 3분 이내에 씻는 과정을 마무리한다. 이때 나오는 탁한 물에 쌀의 감칠맛이 남아있으므로 물이 투명해질 때까지 씻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밥맛의 부드러움은 담가두는 시간에서 결정된다. 백미 기준 30분 ~ 1시간이 적당하다. 현미의 경우 최소 2시간 이상 담가야 한다. 쌀양의 1.3~1.5배의 물을 넣고 10분 동안은 강한 불로 둔다. 이후 약한 불로 줄이고 15분~20분 후에 불을 끄고 뚜껑을 덮어둔 상태로 15분 정도 뜸을 들이면 맛있는 밥이 완성된다.
- 질의 :쌀 보관 방법은?
- 응답 :직사광선을 피해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되는데 적정 보관 온도는 5℃ 전후다. 지퍼백에 적절하게 나눠 냉장 보관하면 쌀의 세포 노화를 방지할 수 있다. 최근 공기 유입을 막아 쌀벌레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페트병에 담긴 쌀이 많이 유통되기도 하는데 빈 페트병을 씻고 건조 후에 보관하는 것도 좋다.
- 질의 :좋은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 응답 :한국인의 에너지는 밥심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난 30여년간의 통계를 보면 1인당 쌀 소비량은 1990년 119.6kg에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예전보다 다양하고 좋은 품질의 쌀이 출시되지만,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 생산이 지속되지 않기도 한다. 다만 최근 추세를 보면 다행히 쌀 소비량의 감소 폭은 줄어들고 있다. 위에 열거한 품종 외에도 철저한 관리로 생산된 고품질의 쌀이 많다. 소비자의 선택이 있어야 좋은 쌀이 살아남을 수 있다. 쌀값이 비싸다 하더라도 한 끼 외식비용보단 적을 것이다. 쌀을 고를 때 경기, 강원, 충청 지역 외에 어떤 품종인지에 신경 써서 구매한다면 행복한 밥상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박재현 밥소믈리에는 "소비자의 선택이 있어야 좋은 쌀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박재현 밥소믈리에는 20년 전 시골 정미소에서 일하며 쌀 유통을 시작했다. 산지의 다양한 쌀 품종을 대형마트에 유통하다 쌀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 지난 2015년 일본취반협회가 주관하는 '밥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2012년부터 대구에서 곡물 전물 로드숍 '미미정미소'를 운영 중이며 현대백화점의 곡물 전문숍 '현대쌀집'의 수석 밥소믈리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