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크(MOOC)기반 교육 구조/사진=코세라(COURSERA)
울란 바토르에서 자란 몽골 소년 바투시(Battushig Myanganbayar)가 미국 보스턴에 있는 명문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에 당당하게 입학한 사연이 화제다. ‘인간 승리’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바투시의 명문대 입학 비결은 대규모 공개 온라인 강좌 ‘무크(MOOC)’였다.
이달 13일자 미국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그는 열다섯살 때 MIT 무크 수업 중 하나였던 전기전자회로 강의를 온라인으로 들었다. 바투시는 이 수업의 기말고사에서 만점을 기록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이 수업의 학생 수는 지금까지 총 15만명. 이 중에서 340명만 만점을 받았다. 바투시는 이 성적을 바탕으로 MIT에 지원했고 입학을 허가받았다.
대규모 공개 온라인 강좌 ‘무크(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 열풍이 미국 대학가를 강타하고 있다. 내로라 하는 명문 대학들이 앞다퉈 인기 강좌를 온라인으로 무료 공개하면서 전 세계 어디에서나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무크 등 온라인 강좌 안내 사이트 마이에듀케이션닷컴(http://myeducationpath.com)에 따르면, 무크를 포함한 온라인 강좌는 약 1만 개에 달한다. 미 상아탑을 흔드는 무크 열풍이 대학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봤다.
①빅데이터와 결합한 교육 효과
교수가 지식을 전달하면 학생이 노트에 빠르게 받아적는다. 학습 진도는 개별 학생 수준에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나간다. 무크는 이런 전형적인 대학 풍경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미치 더네이어(Mitch Duneier) 프린스턴대 사회학 교수는 올해 초 무크로 수업을 진행하다 놀라운 체험을 했다. 개강과 동시에 113개국 4만명이 강좌에 접속한 것이다. 수업을 진행한 지 몇 분 지났을까. 전 세계 학생들이 실시간으로 댓글(코멘트)을 달기 시작했다. 수백개 코멘트는 다시 수천개가 됐다. 그는 “오프라인 수업에서는 받지 못했던 날카로운 질문과 피드백이 쏟아졌다”면서 “이런 피드백이 나의 강의와 세미나를 준비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몇몇 대학에서는 학업 성취도가 높아졌다는 보고를 내놓고 있다. 미국 새너제이 주립대 전자회로 수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자회로 수업은 1학년 기초 과목이지만, 수강생 중 40%는 늘 낙제점을 받았다. 담당 교수는 오프라인 수업과 무크를 결합한 방식으로 낙제 비율을 10%까지 낮췄다. 수업은 온라인으로만 진행하고 학교에서는 15문 질문과 답변 시간, 45분 토론 시간만 가졌다.
애리조나 주립대는 학생들이 중퇴하거나 수업을 끝까지 마치지 않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2년 전 이 대학은 뉴욕 교육 컨설팅 업체 K뉴튼(Knewton)에 문제를 상담했다. 해법은 데이터를 활용한 정교한 학습 관리. 가령 학생들은 자신의 학습속도에 맞춰 소프트웨어를 통해 동영상을 보고 책을 읽으며 각종 연습 문제를 푼다. 학생의 정답률과 오답률은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된다.
데이비드 헥맨(David Heckman) 애리조나주립대 수학과 교수는 “데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수강생의 능력을 바로 파악할 수 있고, 단원별로 학생들이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면서 “데이터 덕분에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지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강의에 무크를 접목한 김형률 숙명여대 문화역사학과 교수는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무크에는 수많은 데이터들이 쏟아진다”면서 “‘빅데이터’들을 정교하게 분석하고 가공해 교육 효과를 높이는 데 활용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②‘슈퍼 티처, 슈퍼 스쿨만 살아남는다’
지난 9월 16일 와튼스쿨 새 학기가 시작됐다. 와튼 스쿨은 미국 톱5 MBA(경영학 석사) 순위에 늘 이름을 올리는 곳이다. 놀라운 점은 와튼 스쿨이 이번 학기 코스를 무크 사이트인 ‘코세라(www.cosera.org)’를 통해 무료로 제공키로 했다는 점. 단돈 49달러(약 5만 4000원)만 내면 학점도 인정받을 수 있다. 지난 21일까지 온라인 와튼 스쿨에 몰린 신청자만 69만5000명에 달한다.
애틀랜타주의 조지아 공대는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알아주는 명문이다. 기존 석사과정 수업료는 4만 5000달러였다. 그런데 이 대학은 6600달러의 온라인 강좌를 열었다. 기존 수업료를 85%가량 할인한 가격이다. 대신 학생 수는 300명에서 4만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오프라인 수업과 달리 강의를 맡아줄 교수 숫자나 학생들을 수용할 강의실 공간 문제에 연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진풍경에 다른 대학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명문 대학들이 온라인 강좌를 앞세워 전 세계 학생들을 흡수하면, 다른 대학들은 학생 부족에 시달릴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피츠버그 경영대학 존 데라니(John T. Delaney) 학장은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무크를 통해 강의를 제공해 성공할 대학은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 등 지명도가 높은 곳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런 경향은 대학과 교수 사회의 엄청난 저항을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크는 계속 발전하겠지만, 교수 사회는 인원 감축이라는 태풍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슈퍼 대학’이 아니라 ‘슈퍼 티처’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코세라를 설립한 앤드루 능(Andrew Ng) 스탠퍼드 컴퓨터 과학 교수는 “연간 평균 400명의 학생을 가르쳤다. 하지만 무크 시스템 도입 이후, 10만명의 학생을 가르치게 됐다. 250년에 걸쳐서 받을 학생을 한번에 다 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무크의 두 얼굴은 미국 언론들의 평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국 경제매체 비지니스인사이더는 “수백만 명이 와튼스쿨의 강의를 통해 일자리를 얻을 것”이라고 평가했고, 또 다른 온라인 매체 에볼루션은 “무크 교육 혁명은 높은 등록금과 낮은 취업률의 대학을 퇴출 시키는 쓰나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③학위제의 종말 시작?…교과서부터 GRE 시장까지 교육 비즈니스도 흔든다
무크 덕분에 4년 만에 딸 수 있는 학위를 1년 만에 취득하겠다고 도전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코세라 수강자인 조나단 하버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자유학위제(Degree of freedom·http://degreeoffreedom.org/)’라는 웹 사이트를 운영하며 1년 만에 학위를 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는 미국 교육평가기관 에이스크레딧(American Council on Education’s College Credit Recommendation Service·ACE CREDIT)을 통해 학위과정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크를 통해 수업을 들은 학생이 각 대학이 요구하는 일정 수준의 성적을 달성하면, 에이스크레딧의 평가를 받아 학점을 이수하는 형식이다.
누구나 최고 대학의 수업을 들을 수 있고 학위제까지 무너진다면, 미국 교육 비즈니스는 연쇄적인 격랑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미국 대학수학능력 시험인 SAT 점수, 석사 입학과정에서 활용되는 GRE 점수에 학생들이 매달릴 필요가 없게 된다. 고교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AP(Advanced Placement)는 우등 고교생이 AP를 통해 대학 학점을 미리 이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미국 고등교육 전문 온라인 사이트 인사이드하이어에드(Inside Higher Ed)는 “기존 대학들이 시행했던 AP과정도 무크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라파엘 리프(Rafael Reif) MIT 총장은 “앞으로 세계 어느 지역에서든지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들을 것이고, 이를 신뢰할 수 있는 인증 시스템도 갖춰질 것”이라면서 “온라인 교육만으로 학위를 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컴퓨터 수업은 스탠퍼드, 윤리학은 브랜다이스, 문학은 에든버러에서 수강하는 등 분야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섭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④대학의 새로운 생존방법은 코칭(coaching)!
미국발 고등 교육 변화 바람은 유럽과 아시아도 흔들고 있다. 영국, 독일, 일본, 한국의 대학들도 무크 열풍에 하나둘씩 발을 담그고 있다. 인도에서 무크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지난 3월 무크 사이트 코세라에 등록한 사람은 290만명인데, 인도인만 25만명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를 기록했다.
국내 명문대도 미국 대학의 급진적인 변화를 눈여겨보고 있다. 서울대는 국내 대학 가운데 처음 재학생들이 학교에서 듣는 강의를 촬영해 일반인에게 무료 동영상으로 제공한다. 서울대는 온라인 공개강좌 사이트(http://snuon.snu.ac.kr)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SNU on'에서 올해 1학기에 진행된 학부 전공·교양 강의 13개를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하기로 결정했다.
KAIST 교수 사이에서도 ‘무크 열풍’이 화제다. 전 세계 우수 학생 유치에 열을 올린 KAIST로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난 셈이다.
김진형 KAIST 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강의를 인터넷을 통해 공짜로 듣고 학위까지 받는 세상이라면 KAIST도 중장기적으로 크고 작은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이란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학업과 창업 동지를 만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곳이기도 하다”며 “대학교수들은 지식 전달은 물론 재학생의 멘토자 코치로서 삶을 가이드하는 역할에도 더 신경 써야할 것”이라고 했다
류현정 조선비즈 기자 : 2013.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