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개미 굴 파기의 비밀, 게으름이 최고 효율 낳는다

해암도 2018. 8. 19. 08:34


페인트로 개체를 식별할 수 있는 불개미가 실험실에서 굴을 파고 있다. 조지아 공대 제공.
페인트로 개체를 식별할 수 있는 불개미가 실험실에서 굴을 파고 있다. 조지아 공대 제공.

남아메리카 원산의 불개미는 세계적인 침입종으로 악명을 떨친다. 홍수와 가뭄에 모두 강한데, 큰물이 지면 무리가 뗏목을 이뤄 떠내려가다 마른 땅을 만나면 곧바로 굴을 파 번식에 돌입한다. 그런데 불개미의 매우 효율적인 굴 파기에 뜻밖의 비밀이 숨겨져 있음이 밝혀졌다.

다니엘 골드만 미국 조지아공대 물리학 교수 등 미국과 독일 연구진은 불개미가 좁은 굴을 파면서 일개미끼리 정체를 빚지 않는 비결을 찾아 로봇 등에 활용할 가능성을 과학저널 ‘사이언스’ 17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이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효과적으로 일하려면 일꾼을 많이 투입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사공 많은 배’나 ‘셰프 많은 부엌’에서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남미 원산의 불개미는 세계적으로 골치아픈 침입종이다. 스티픈 아우스무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남미 원산의 불개미는 세계적으로 골치아픈 침입종이다. 스티픈 아우스무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골드만 교수는 “컨테이너에 개미가 150마리가 있다면 그 중 어느 순간 실제로 굴을 파고 있는 녀석은 10∼15마리에 불과했다”며 “우리는 왜 그런지, 또 그것을 관통하는 물리학적 기본원리를 이해하고 싶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실제로 연구자들이 발견한 것은 얼핏 매우 불공평해 보이는 작업환경과, 그것이 아니면 굴을 파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연구자들은 개미 30마리에 페인트로 식별 무늬를 칠하고 촬영해 활동을 분석했다. 그 결과 개미의 30%가 작업의 70%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개미에는 3가지 부류가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여러 시간 동안 죽어라 흙조각을 파내 밖으로 날랐다. 다른 개미들은 그리 부지런하지 않았다. 일하러 굴로 들어가던 개미는 안에서 모래 알갱이를 물고 나오는 개미가 있으면 재빨리 뒷걸음질쳤다. 아예 작업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빈둥거리는 개미도 적지 않았다.

연구자들이 개미에 식별 무늬를 칠하고 있다. 조지아 공대 제공.
연구자들이 개미에 식별 무늬를 칠하고 있다. 조지아 공대 제공.

어떤 개미는 애초 늘 힘들여 일하고 다른 개미는 늘 게으른 것일까. 연구자들이 가장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을 제거해 보았다. 그랬더니 다른 개미들이 그 역할을 떠맡았고, 30%가 일의 70%를 하는 구도가 다시 만들어졌다.

개미는 굴을 두 마리가 간신히 비껴갈 정도로 좁게 판다. 수직으로 판 굴이 더 넓다면 개미는 밑으로 떨어져 이동이 더 어려울 것이다. 이런 비좁은 환경에서 빨리 굴을 파는 방법으로 개미는 ‘게으름 속의 최고 효율’이란 방식을 진화시켰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연구자들은 소형 로봇을 이용해 개미의 행동을 흉내 냈다. 비좁은 환경에서 로봇의 수가 늘면 아주 쉽게 정체됐다. 그러나 개미처럼 정체의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후퇴하라는 명령을 추가하자 작업은 원활하게 이뤄졌다.

소형 로봇을 이용해 불개미의 정체 회피 행동을 모사하고 있다. 화성 탐사 로봇이 거대한 모래폭풍을 피해 땅속으로 숨어들 때 개미의 이런 기술이 쓰일지 모른다. 조지아 공대 제공.
소형 로봇을 이용해 불개미의 정체 회피 행동을 모사하고 있다. 화성 탐사 로봇이 거대한 모래폭풍을 피해 땅속으로 숨어들 때 개미의 이런 기술이 쓰일지 모른다. 조지아 공대 제공.

이번 연구결과는 신속하게 장애물을 통과해 진입해야 하는 재해복구나 마이크로로봇을 이용한 혈액 속 약물 전달, 또는 화성탐사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기대했다. 골드만 교수는 “화성에서 로봇 무리가 모래폭풍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땅속으로 파고들려면 개미의 전략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 Aguilar et al, Collective clog control: Optimizing traffic flow in confined biological and robophysical excavation, Science, VOL 361 ISSUE 6403, http://science.sciencemag.org/cgi/doi/10.1126/science.aan389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등록 :2018-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