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만화 『우울증 탈출』의 다나카 케이이치 작가 서면 인터뷰
일본에서 33만부 판매를 기록하며 뜨거운 호응을 받은 만화가 있다. 다나카 케이이치(56) 작가의 에세이 만화 『우울증 탈출』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지독한 우울증을 겪다 호전된 이들의 사연을 에피소드 별로 다룬다. 첫 번째 이야기는 바로 작가 자신의 경험담이다. 1984년 스물 둘에 만화가로 데뷔한 다나카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장난감 회사에 취직했고, 일하면서도 만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샐러리맨과 만화가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일에 묻혀 살던 일상. 그는 책의 서두에서 “2005년경부터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다”고 고백한다. 우울은 10여년간 그를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여러 의사를 전전하면서도 고칠 수 없었다.
우울증 한 번에 나아지지 않아, '리턴' 겪으며 점진적 호전
다나카 작가는 중앙일보와의 e메일에서 “편의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자신의 우울증을 고친 정신과 의사의 방식』을 읽고 크게 좋아졌다”며 “『우울증 탈출』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나 자신을 좋아해야 한다’는 단순한 깨달음,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겠다는 자기 암시가 큰 힘이 됐다. 하지만 한순간 좋아진 건 아니었다. ‘리턴’, 돌연 찾아오는 불안과 우울을 다시 느꼈다. 그때 그는 차분히 기온 차, 호르몬 밸런스 등 여러 외부적 요소를 파악하며 스스로 우울증을 다루는 길을 찾았다.
다나카 작가는 자기 사연을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편집자, 에세이스트, 철학자, 에로 영화감독 등 여러 직군에서 우울증을 앓아온 열여섯 명의 케이스를 살펴본다. 그는 “알음알음으로 인터뷰이를 섭외하며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여러 인물을 내세운 건 “독자가 자신이 어떤 케이스에 해당하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탈출의 힌트를 더 많이 주기 위해서”다. 그런 만큼 책에는 각 인물이 겪은 상황, 느꼈던 감정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어떤 영화나 음악, 책을 접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잿빛 같은 순간, ‘죽고 싶다’가 아니라 ‘그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드는 순간 등등.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가 아니라 암”이며 “내버려 두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병”이라는 구절 역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타인을 최대한 배려하도록 교육하는 일본 사회의 특징도 눈에 띈다. 다나카 작가는 “남을 배려하는 것만큼 자기 자신도 배려해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일본, 직장 내 괴롭힘 줄었지만, 개인의 회복성은 떨어져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6년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평생 우울증, 불안‧공황 장애 등 주요 17개 정신질환을 한 번 이상 겪은 한국인은 25%에 달했다. 우울증 평생유병률은 5%, 불안장애의 평생유병률은 9.3%다. 하지만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인 9.6%다. 다나카 작가는 일본도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니라며 “최근 몇 년간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하기 쉬운 환경은 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적 시선은 차갑다. 심각한 우울증, 가벼운 우울증 모두 같은 선에서 인식된다”고 전했다. 이어 “직장 내 권력과 위계에 의한 괴롭힘(Power harassment‧파와하라)은 10년 새 줄어들었지만, 주변에서 거절당하는 일을 겪으면 떨치고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실수가 허용되지 않고, 실적을 중시하는 건 한국과 일본 모두 마찬가지인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효약은 긍정적 자기 암시
그가 강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자기 긍정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스스로를 칭찬하는 말'을 하는 자기 암시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돌이켜보면 (우울의) 터널 코앞까지 갔는데 그 사실조차 몰랐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 스스로 ‘우울증의 위험’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울증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nag.co.kr [중앙일보] 입력 2018.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