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

해암도 2018. 6. 16. 08:18

이별도 사과도 문자로… '눈 맞추는 법' 잃은 현대인

'전화 울렁증' 겪는 젊은 세대… 스마트폰에만 집중, 공감력 떨어져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셰리 터클 지음|황소연 옮김|민음사|524쪽|2만1000원

한 대기업 중간 간부에게 신입 사원들이 시급한 일에도 왜 전화가 아닌 카카오톡 메시지를 이용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자 그는 동의하며 "휴대전화와 함께 자란 요즘 20대에게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은 '대면력'일 것"이라고 답했다.

MIT 교수로 인간과 기술 간의 상호작용 연구자인 셰리 터클의 이 책은 바로 그 '대면력'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스마트폰에 빠져 얼굴 보고 대화하는 법을 잃은 젊은 세대를 우려하며 책을 썼다. 인간은 상대와 온전히 마주해야 비로소 경청하는 법을 배우고 공감능력을 기를 수 있지만 오늘날 우리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접속하면서도 서로를 피해 숨는다. 퍼빙(phubbing)이란 신조어가 최근 미국 사전에 실렸다. 휴대전화의 'phone'과 무시한다는 뜻의 'snubbing'의 합성어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주변 사람과는 건성으로 눈을 맞춘다는 뜻이다.

'대면력'을 상실한 젊은이들은 직장에서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꼭 전화를 해야만 할 일을 문자메시지나 이메일로 해결하려 하고, 상대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의료 자문 단체의 직원들은 신입사원이 고객과 '이야기했다'고 말하면 반드시 전화로 통화했는지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신입 사원들이 이메일 교환을 '이야기했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전화 울렁증'을 느끼는 것은 전화통화가 문자메시지나 이메일과 달리 '실시간'이라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학 3, 4학년 여학생들에게 통화의 어려움을 들었다. 한 학생은 전화 통화를 "즉시 어색한 사람으로 전락하는 최악 중의 최악"이라며 "전화 통화를 할 때면 앞에 대본이라도 둬야 할 판"이라고 했다. 또 다른 여학생도 통화를 할 때면 미리 메모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화로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요. 사람의 목소리에서 풍기는 감정에 귀 기울여야 해요." 저자는 지난 20년간 대학생들의 공감지수가 40%나 하락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라고 개탄한다.

한 방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눈이 아니라 각자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는 커플.
한 방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눈이 아니라 각자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는 커플. 셰리 터클은“스마트폰 때문에 상대와 온전히 얼굴을 마주하며 약점까지도 드러내는 대화는 실종됐다. 새로운‘침묵의 봄’이 찾아온 듯하다”고 썼다. /게티이미지
한 고등학교 3학년생은 대면 대화는 편집과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안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사과마저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로 하는데 맛 들였다. 키보드로 "미안해"를 친 후 전송 버튼을 누르면 끝이니까. 하지만 얼굴을 마주한 상황에서는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상대와 공감 후에야 용서의 과정이 시작된다. '대면 결여 사과'는 비즈니스 환경에서도 문제가 된다. 한 기업 대표는 일터에서 직접 얼굴 맞대고 사과하지 않는 것은 "후진하는 법을 모르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성인들은 평균 6분 30초에 한 번꼴로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거의 '애착 담요' 수준이다. 어릴 때 조용히 하라며 휴대폰을 쥐여줬던 부모가 이에 한몫했다. 부모의 관심을 얻기 위해 스마트폰과 경쟁해야만 했던 젊은이들도 있다. 소셜미디어와 함께 성장한 사람들은 포스팅이나 메시징을 하지 않으면 '나'라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 "나는 공유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식이다. 한 광고회사 아트디렉터는 명문대 출신 신입 사원들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들은 재능이 출중하지만 페이스북의 '좋아요' 세상에서 자랐어요. 수많은 격려에 익숙하죠. 그걸 그대로 받아줘야 할지 아니면 혼자 일하면서 스스로 '좋아요'를 주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어요."

알랭 드 보통은 "진정한 사랑이란 그 사람 앞에서 스마트폰을 확인하고픈 욕구가 잘 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세대는 사랑도 스마트폰과 함께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진지하게 사귀는 젊은 연인들의 거의 절반이 함께 있을 때 휴대폰에 주의를 빼앗긴다. 이별 통보도 문자 메시지로 한다.

'대면력'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저자는 충고한다. 일단 노트북과 태블릿PC, 휴대전화를 치워야 한다. 저녁 식탁과 자동차 안에서 전자기기 사용을 금지해 가정에 대화를 위한 성소(聖所)를 마련해야 한다. 아이들 곁에서 조용히 아이들에게 집중해 고독의 수용을 가르쳐야 한다. 해결책이 너무 쉬운가? 그 쉬운 일을 지금 우리는 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     입력 2018.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