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극한의 두려움…두 늙은 여자

해암도 2018. 5. 5. 12:54

 인간의 잠재력은 어디까지일까


◇두 늙은 여자/벨마 월리스 지음/짐 그랜트 그림·김남주 옮김/176쪽·1만2000원·이봄

인간이 성장할 수 있는 건 언제까지일까. 인간에게 잠재된 힘은 얼마나 될까. 알래스카 인디언에게 구전되는 이야기를 정리한 소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알래스카에 맹추위가 닥치자 주요 식량이었던 큰사슴 무리가 자취를 감춘다. 유목민 아이들은 굶주림에 죽어 나갔다. 족장은 사냥감을 찾아 떠나기로 결정한다. 단, 80세의 칙디야크와 75세의 사는 두고 가기로 했다. 음식이 부족한 데다 이동하는 데 짐이 됐기 때문이다. 칙디야크의 딸은 부족민의 반발이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버려진 칙디야크와 사는 충격과 배신감에 눈물을 흘린다. 지난날 열심히 일했기에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여긴 건 착각이었다. 하지만 이내 죽음의 공포가 다가온다. 사는 말한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

극한의 두려움은 잠자던 기억과 감각을 깨워냈다. 사가 젊은 시절 익혔던 사냥 기술을 떠올려 손도끼로 나무다람쥐를 잡은 것. 이들은 가죽 끈으로 눈신발을 만들고, 토끼 덫을 놓는가 하면 올가미로 버들뇌조를 잡는다. 기억을 더듬어 물고기가 많이 살던 곳을 가까스로 찾아내고 식량을 저장하기에 이른다. 부족은 어떻게 됐을까. 사냥감을 찾는 데 실패해 더 처참하게 굶주린 모습으로 돌아오고 여인들은 기꺼이 식량을 내준다.  

야생의 벌판에서 두 여인이 벌이는 치열한 사투는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자신들이 나약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님을 당당히 증명해낸 두 여인은 나이 들어도 늙지는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말한다.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놓지 않는 한, 인간은 계속 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 낼 수 있다고. 내 안에 숨겨진 가능성의 씨앗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찾아보게 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입력 2018-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