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詩…'윤해환(尹海煥)' 탄생 100년김

해암도 2018. 1. 2. 10:56

윤동주 탄생 100년 

단군 성전이 있는 사직단을 바른편에 두고 인왕산을 향해 오르다 창의문과 북악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튼다. 중간쯤 수성동계곡에 눈길을 주는 척하다 내쳐 걸으면 이윽고 산책로 끄트머리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만나게 된다. 수도가압장과 물탱크 시설을 고쳐서 언덕 밑에 윤동주문학관을 지어 놓았다. 멋스러운 찻집도 있다. 손바닥에 감긴 찻잔은 따뜻한데 가슴은 시리게 울린다.


▶윤동주는 한때 이 근처 누상동에 살았다. 언덕에 올라 시상(詩想)을 다듬었다고 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바위 시비에 새겨져 있다. 수백 번을 되새겨 읽지만 절로 마음의 옷깃을 여민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윤동주의 '서시(序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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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明東)촌에서 태어났다. 윤하현 장로의 손자였다. 며느리가 첫딸을 낳았으나 곧 잃고 수태를 못 하다 8년 만에 가진 아이였다. 마당엔 자두나무가 가득했고, 울 밖엔 살구와 오디와 우물이 있었다. 언덕 중턱엔 교회당이 보였다. 아버지 윤영석은 아명을 태양이라는 '해'에다 빛날 '환(煥)'을 붙여 '해환'이라 불렀다. 명동소학교 때 친구는 '윤해환(尹海煥)'으로 기억했다.


▶1939년 연희전문 2학년이던 윤동주는 조선일보에 작품을 실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학생란'을 두었는데, 우송돼온 작품을 골라 실은 뒤 신문 구독권 1~2개월치를 원고료 대신 보내주었다. 그때 조선일보에 실린 기라성 같은 선배 작가와 시인들 작품을 오려붙이며 문학의 꿈을 키운 스크랩북이 지금도 남아 있다. 1941년 윤동주는 써놓은 시 18편을 추려 필사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3권을 엮었으나 출판을 못 보고 옥사했다. 윤동주 시는 1947년 2월 시인 정지용이 주간으로 있던 경향신문에 처음 활자로 소개됐다.

▶시 제 목이 '쉽게 씨워진 시(詩)'다. 정지용은 시의 발문을 썼다. '그의 비통한 시 10여편은 내게 있다. 지면이 있는 대로 연달아 발표하기에 윤(尹)군보다 내가 자랑스럽다.' 엊그제 12월 30일이 윤동주 탄생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윤동주문학관과 연세대와 중국 선양(瀋陽)과 미국 뉴저지에서 행사 소식이 들렸다. 짧은 생애가 남긴 문학의 향기가 고맙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 2018.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