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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복제한다

해암도 2013. 7. 9. 06:46

 

3D 프린팅 기술 3차 산업혁명 예고

▲ 3D프린팅으로 만든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요다를 어린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photo 신화·연합
최근 3D 프린팅 기술이 부상하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에서부터 산업기기, 심지어 인공장기까지 3D 프린터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는 3D 프린팅을 올해의 10대 유망기술 중 하나로 선정했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 초 국정연설에서 3D 프린팅 기술을 가리켜 ‘제3의 산업혁명’이라 언급해 이슈가 됐다. 3D 프린팅 기술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주목을 받는 것일까? 과연 제3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질 만큼의 잠재력을 가진 기술일까?
   
   3D 프린팅은 미래에 기대되는 대표적 기술이다. 3차원의 입체를 프린터로 찍어내는 3차원 인쇄 기술은 2차원 평면 인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영화의 한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어느 공상영화 속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컴퓨터로 똑같이 복제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3D 프린터는 현실에서 이를 가능케 한다.
   
   사람의 얼굴을 왼쪽과 정면, 오른쪽에서 사진을 찍고 컴퓨터로 스캔했다. 얼굴의 윤곽이 3D로 만들어지자, 3D 프린터가 그 얼굴과 똑같은 모습으로 복제를 시작한다. 2시간 뒤, 눈과 코, 입 모양까지 빼다 박은 얼굴이 만들어졌다. 믿기지 않는 기술혁명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3D 프린터는 특정 소프트웨어로 제작된 3차원 설계도로 실제 물건을 만들어 출력하는 프린터를 뜻한다. 기존 프린터가 PC에 있는 문서를 바탕으로 그림이나 글자를 종이에 인쇄하는 것과 달리, 플라스틱이나 금속을 녹여 잉크로 사용해 3차원 도면을 바탕으로 그릇, 신발, 장난감과 같은 입체적 물건을 만들어낸다. 마치 찰흙을 이용해 도자기를 빚는 것처럼 플라스틱이나 금속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입체형 물체를 만든다.
   
   잉크제트 프린터가 잉크를 뿌려서 인쇄하는 것처럼, 3D 프린터는 가루나 액체로 된 원료물질을 아주 얇은 층으로 반복적으로 층층이 쌓아올려 가면서 물체의 입체 형상을 만드는 방식이다. 만약 유리컵이 있다면 유리컵의 아랫부분부터 윗부분으로 서서히 물질을 쌓으며 조형하는 방식으로 인쇄한다.
   
   3D 프린터의 물건 제작은 먼저 원형을 3D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컴퓨터 스크린 안에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견본은 1만5000장 이상의 디지털 층으로 쪼개진다. 디지털 층 1장은 두께가 0.1㎜이다. 그 후 압출기 노즐을 통과한 녹은 상태의 폴리머 필라멘트가 가느다란 층을 쌓는다. 노즐은 그 위에 새로운 층을 쌓는다. 이렇게 한 층 한 층 쌓는 방식으로 견본 속 내부 구조도 똑같이 재현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프린터가 다양한 색상과 잉크를 사용한 것처럼 3D 프린터 역시 다양한 재료와 색상으로 물체를 만들 수 있을 전망이다.
   
   사실 3D 프린터는 1984년 미국의 발명가 찰스 헐(Charles W. Hull)에 의해 개발되었다. 초창기의 3D 프린터는 단순히 제품 모형이나 견본을 주로 제작해 상품의 문제점을 미리 파악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다양한 원료물질이 개발됨에 따라 적용 분야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분위기다.
   
   3D 프린터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액체형 원료를 분사해 설계도만 있으면 어떠한 모양도 인쇄가 가능하다. 특히 의료 분야에서 빛을 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미국 코넬대학의 생명의학과 로런스 보나사 교수팀은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는 인공 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교수팀은 콜라겐과 살아있는 연골세포가 들어 있는 ‘바이오 잉크’로 귀 구조물을 쌓았다.
   
   인공 귀는 고무나 플라스틱이 아닌, 살아있는 세포로 만들었기 때문에 몸에 이식하면 자랄 수 있다. 두 달 정도 자라 덩어리지면 몸에 이식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현재 쥐 실험에 성공한 교수팀은 5년 안에 임상시험에 돌입할 계획이다.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국제 생명공학 전시회를 통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3D 프린터로 만든 인공혈관을 공개했다. 이 혈관은 프린터 노즐에서 플라스틱의 일종인 고분자물질을 쌓아 혈관을 만든 뒤 전자 빔을 쏘아 굳혔다. 혈관은 프린터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의 혈관과 같은 탄력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3D 프린터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복사하는 실험도 성공했다. 복제된 ‘인간 배아줄기세포’는 간이나 심장, 피부 같은 다양한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다. 3D 프린터로 만든 장기는 모양이 자연스럽고 제작이 빠를 뿐만 아니라 환자 자신의 세포를 사용하기 때문에 면역 거부반응도 적다. 전문가들은 3D 프린팅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피부와 인공 관절, 심장 등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D 프린팅 기술은 음식과 약은 물론이고 장난감, 속옷, 신발, 심지어 건축물의 일부를 실제 크기로 만들어낼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코넬대 연구팀에서는 음식 재료를 잉크처럼 넣고 요리법을 입력하면 음식이 만들어지는 3D 음식 프린터를 개발한 상태이다.
   
   아직까지는 음식 출력에 쓰이는 원료가 주사기에 넣을 수 있는 가루나 액체 형태로 제한되어 있어 초콜릿, 치즈 같은 비교적 간단한 음식만 만들 수 있는 수준이지만, 앞으로 케이크나 바비큐와 같은 복잡한 요리도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유럽우주국(ESA)과 영국 건축설계업체 포스터 앤 파트너스는 지난 2월 3D 프린터를 사용해 달의 남극점 표면에 기지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리의 가정에서도 곧 3D 프린터를 이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의 물건을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3D 프린팅 기술이 완성되면 실제로 제조업 분야에서 근본적인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 좋은 기술도 악용될 염려가 있다. 최근 미국의 무정부주의 조직 디펜드디스트리뷰티드 그룹이 3D 프린터로 권총을 만들어 시험발사에 성공함으로써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저작권 침해 문제도 염려된다. 가령 범죄자들이 각종 문화재나 예술품의 도면을 해킹해 모조품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