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신장 이식 국내 최다…
췌장 이식 수술 회고 담은 '40g의 기적' 펴내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한덕종(67) 교수와의 인터뷰 일정을 잡으려 병원에 전화하자 병원 관계자는 "지금 교수님이 수술 중이어서 끝나면 연락 주겠다"고 했다. '정년퇴임한 교수가 수술을 하다니'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학병원에서 권위자로 꼽혀 정년 이후 석좌교수 등으로 남더라도 직접 수술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강의하거나 논문만 발표하는 것이 보통이다. 27일 서울아산병원에 있는 연구실에서 한 교수를 만나자마자 의심은 사라졌다. 그의 눈빛은 무척 날카롭게 느껴졌다.
국내 최초 췌장이식… 최다 신장이식
한 교수는 국내 최초로 췌장(膵臟) 이식을 집도한 췌·신장 이식 전문의다. 췌장 이식은 300회, 신장 이식은 4000회를 넘게 했다. 둘 다 국내 최다 기록이다. 그가 지난해 정년을 맞아 책 한 권을 펴냈다. '40g의 기적'이란 제목이다.
한 교수는 국내 최초로 췌장(膵臟) 이식을 집도한 췌·신장 이식 전문의다. 췌장 이식은 300회, 신장 이식은 4000회를 넘게 했다. 둘 다 국내 최다 기록이다. 그가 지난해 정년을 맞아 책 한 권을 펴냈다. '40g의 기적'이란 제목이다.
자전적 내용을 담은 회고록이겠지 했으나 예상은 빗나갔다.
책의 절반은 췌장 이식에 대한 내용이었다. 한 교수는 "췌장 이식이 필요한 환자들조차 췌장 이식 수술이 있는지조차 몰라 더 쉽게 설명하려고 했다"고 했다. '40g'은 췌장을 이식할 때 기증자로부터 떼내는 췌장의 양이다. 평균 100g 안팎의 췌장 중 40%만 제 기능을 발휘해도 건강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췌장은 십이지장과 연결돼 있는 10㎝ 길이의 길쭉한 기관으로 이자(�夷子)로도 불린다. 고장이 나더라도 바로 치명적 상태가 되지 않아 소홀히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췌장이 무너지면 삶이 비참해진다. 밥 한 숟가락,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 괴로운 지경이 된다. 췌장에서 소화 효소와 인슐린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높았다 낮았다 들쭉날쭉하는 당 수치 때문에 혈당 조절이 어렵고 결국 신장까지 망가져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거나 다리를 잘라내는 경우도 있다.
한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을 '장기이식 분야 최고병원'으로 끌어올린 사람 중 하나다. 어려운 환자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령인데다 합병증이 있고 혈관까지 약해 다른 대학병원들에서 수술을 거부했던 장명식(78) 제일테크노스 회장은 지난 11월 한 교수로부터 신장 이식수술을 받았다.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장 회장은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는 상태다. 생후 16개월 갓난아기부터 미국 의료진도 치료를 포기한 아랍에미리트 환자까지 그에게 수술을 받았다. 국내 최초로 뇌사자의 신장·췌장, 심장·신장, 간·신장을 동시에 이식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한 교수는 한때 '살인 의사' 취급을 받기도 했다. 장기이식법이 생기기 전인 1990년 뇌사자(腦死者)로부터 신장을 받아 임신중독 합병증을 앓던 김모(당시 55세)씨에게 이식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뇌사자의 장기를 떼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뇌사에 대한 개념조차 불분명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수술 직후 서울 동부지검에 불려가 추궁을 당했다. 그러자 이식을 받은 김씨가 당시 보건사회부와 검찰, 언론사 등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한 교수는 "사람 살리려 한 일인데 살인 의사라고 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3개월 뒤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는 "결국 그 일이 사람들에게 장기이식이 뭔지 알리는 계기가 됐다"며 웃었다. 장기이식법은 그로부터 9년 뒤인 1999년에 만들어졌다.
뇌사자 신장 이식했다가 '살인 의사' 누명도
한 교수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연구실에 쥐를 키웠다. 미세 이식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현미경을 연구실에 가져다 놓고 오전 수술과 오후 수술 사이 2시간이 비면 그 틈을 이용해 실험용 쥐의 심장을 이식했다. 실험용 쥐의 심장은 새끼손톱만 하다. 이식에 쓰이는 실도 머리카락보다 가늘어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서툴렀지만 이제 온전히 이식하는데 5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는 "20년 넘게 연습해왔으니 잡은 쥐만 1만마리 가까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익힌 손놀림은 미세한 혈관들을 이어야 하는 신장 이식 수술 도중 요긴하게 쓰인다고 했다.
20년 넘도록 이식 수술을 도맡았는데도 한 교수는 수술 때마다 바짝 긴장이 된다고 했다. "수술을 100번 하면 100명이 전부 다르다"고 했다. 자신이 긴장하는 만큼 후배 의사들에게도 엄격하다. 사고가 나면 환자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레지던트 4년 차인 후배의사와 함께 수술을 하게 됐는데 후배의사가 수술실에 들어오자마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졸도했다. 한 교수와 마주보고 하는 첫 수술이라 너무 긴장을 한 탓이었다.
한 교수는 "이제 (수술실에) 좀 덜 들어가려고 한다"고 했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대신 지난해 6월 의료지도자협의체(MLC)를 만들었다. 정년 퇴임한 각 분야 전문의들을 모아 저개발국가의 의료서비스를 향상시키려는 목적이다. 한 교수가 회장을 맡았고 지난해부터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의대와 파트너십을 맺어 강의와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이날 인터뷰를 마치면 밤 11시 비행기로 우즈베키스탄에 갈 계획이라고 했다. 한 교수의 흰색 가운 왼쪽 가슴엔 언젠가 검은색으로 수 놓았을 이름 세 글자가 하얗게 바래져 있었다.
췌장은 십이지장과 연결돼 있는 10㎝ 길이의 길쭉한 기관으로 이자(�夷子)로도 불린다. 고장이 나더라도 바로 치명적 상태가 되지 않아 소홀히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췌장이 무너지면 삶이 비참해진다. 밥 한 숟가락,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 괴로운 지경이 된다. 췌장에서 소화 효소와 인슐린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높았다 낮았다 들쭉날쭉하는 당 수치 때문에 혈당 조절이 어렵고 결국 신장까지 망가져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거나 다리를 잘라내는 경우도 있다.
한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을 '장기이식 분야 최고병원'으로 끌어올린 사람 중 하나다. 어려운 환자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령인데다 합병증이 있고 혈관까지 약해 다른 대학병원들에서 수술을 거부했던 장명식(78) 제일테크노스 회장은 지난 11월 한 교수로부터 신장 이식수술을 받았다.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장 회장은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는 상태다. 생후 16개월 갓난아기부터 미국 의료진도 치료를 포기한 아랍에미리트 환자까지 그에게 수술을 받았다. 국내 최초로 뇌사자의 신장·췌장, 심장·신장, 간·신장을 동시에 이식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한 교수는 한때 '살인 의사' 취급을 받기도 했다. 장기이식법이 생기기 전인 1990년 뇌사자(腦死者)로부터 신장을 받아 임신중독 합병증을 앓던 김모(당시 55세)씨에게 이식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뇌사자의 장기를 떼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뇌사에 대한 개념조차 불분명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수술 직후 서울 동부지검에 불려가 추궁을 당했다. 그러자 이식을 받은 김씨가 당시 보건사회부와 검찰, 언론사 등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한 교수는 "사람 살리려 한 일인데 살인 의사라고 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3개월 뒤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는 "결국 그 일이 사람들에게 장기이식이 뭔지 알리는 계기가 됐다"며 웃었다. 장기이식법은 그로부터 9년 뒤인 1999년에 만들어졌다.
뇌사자 신장 이식했다가 '살인 의사' 누명도
한 교수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연구실에 쥐를 키웠다. 미세 이식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현미경을 연구실에 가져다 놓고 오전 수술과 오후 수술 사이 2시간이 비면 그 틈을 이용해 실험용 쥐의 심장을 이식했다. 실험용 쥐의 심장은 새끼손톱만 하다. 이식에 쓰이는 실도 머리카락보다 가늘어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서툴렀지만 이제 온전히 이식하는데 5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는 "20년 넘게 연습해왔으니 잡은 쥐만 1만마리 가까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익힌 손놀림은 미세한 혈관들을 이어야 하는 신장 이식 수술 도중 요긴하게 쓰인다고 했다.
20년 넘도록 이식 수술을 도맡았는데도 한 교수는 수술 때마다 바짝 긴장이 된다고 했다. "수술을 100번 하면 100명이 전부 다르다"고 했다. 자신이 긴장하는 만큼 후배 의사들에게도 엄격하다. 사고가 나면 환자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레지던트 4년 차인 후배의사와 함께 수술을 하게 됐는데 후배의사가 수술실에 들어오자마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졸도했다. 한 교수와 마주보고 하는 첫 수술이라 너무 긴장을 한 탓이었다.
한 교수는 "이제 (수술실에) 좀 덜 들어가려고 한다"고 했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대신 지난해 6월 의료지도자협의체(MLC)를 만들었다. 정년 퇴임한 각 분야 전문의들을 모아 저개발국가의 의료서비스를 향상시키려는 목적이다. 한 교수가 회장을 맡았고 지난해부터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의대와 파트너십을 맺어 강의와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이날 인터뷰를 마치면 밤 11시 비행기로 우즈베키스탄에 갈 계획이라고 했다. 한 교수의 흰색 가운 왼쪽 가슴엔 언젠가 검은색으로 수 놓았을 이름 세 글자가 하얗게 바래져 있었다.
- 조선일보 & Chosun.com 김수경 기자 입력 : 2016.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