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초, 서울 서초동 가정 법원청사 소년 법정에서 있었 던 어느 판결의 이야기입니다.피고인 A양(16세)은 서울 도심에서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 등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A양은 작년 가을부터 14건의 절도·폭행을 저질러 이미 한 차례 소년 법정에 섰던 전력이 있었습니다.
법대로 한다면 '소년보호시설 감호위탁' 같은 무거운 보호 처분을 받을 수 있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김귀옥 부장 판사는 이 날 A양에게 아무 처분도 내리지 않는 '불처분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가 내린 처분은 '법정에서 일어나 외치기' 뿐이었습니다.
김 판사가 다정한 목소리로 '피고는 일어나 봐' 하고 말하자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던 A양이 쭈뼛쭈뼛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김 판사가 말했습니다.
"자, 날 따라서 힘차게 외쳐 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예상치 못한 재판장의 요구에 잠시 머뭇 거리던 A양이 나직하게 "나는 세상에···"라며 입을 뗐습니다.
"자, 내 말을 크게 따라 해 봐.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큰 소리로 따라 하던 A양은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라고 외칠 때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김 판사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A양이 범행에 빠져든 가슴 아픈 사정을 감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A양은 본래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간호사를 꿈꾸던 발랄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초, 남학생 여러명 에게 끌려가 집단 폭행을 당하면서 그녀의 삶은 급속하게 바뀌었습니다.
A양은 그 사건의 후유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신체 일부가 마비 되기까지 했습니다.
심리적 고통과 죄책감에 시달리던 A양은 그 뒤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고, 비행 청소년과 어울리면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 판사는 울고있는 A양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가해자로 재판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 라고 쉽사리 말하겠어요? 아이의 잘못이 있다면 자존감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는 처분을 내 려야지요."
그 말을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진 김 판사는 눈물범벅이 된 A 양을 법대(法臺) 앞으로 불러 세웠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 할까. 그건 바로 너야. 그 사실만 잊지 않으면 돼. 그러면 지금처럼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러고는 두 손을 쭉 뻗어 A양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마음 같아선 꼭 안아 주고 싶은데, 우리 사이를 법대가 가로 막고있어 이 정도밖에 못 해주겠구나."
이 재판은 비공개로 열렸지만 서울 가정 법원 내에서 화제가 되면서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법정에 있던 A양의 어머니도 펑펑 울었고, 재판 진행을 돕던 법정 관계자들의 눈시울도 빨개졌습니다.
저도 이 이야기를 읽는 순간 마음이 짠 했습니다.
법정에서 울음을 터뜨린 소녀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녀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보호 감호 라는 법적인 처분보다 자존감을 살리는 자신을 향한 외침이었을 거라는 겁니다.
"일어나서 힘차게 외쳐라!" 정말 아름다운 명판결입니다.
세상엔 법보다 중요한 게 따뜻한 사랑입니다.
조선 201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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