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회룡]
혜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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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자는 상대가 짬이 나는 시간에 확인하고 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의 스케줄을 나에게 맞추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또한 문자는 전화통화에 비해 간결하게 요점만 전달하기 쉽기 때문에 불필요한 감정 소모도 많지 않고 대화 용건을 해결하는 시간도 비교적 짧아 효율적이다.
문자로 하는 소통은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더욱 자연스럽고 활발해진 것 같다. 카카오톡·라인·밴드·페이스북·트위터 등에서 문자로 주고받기 때문에 이젠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새로운 심리적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터넷만 되면 어디에서든 손쉽게 소식을 주고받는 시대가 되었지만 현대인들은 그럴수록 사람들 간의 관계를 예전보다 더 힘들어하고 고독감을 더 자주 느끼며 과거보다 쉽게 우울해한다는 점이다. 잠시라도 짬이 생길라치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사람들과 접속된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만, 그 많은 사람과 접속들 사이에서 오히려 외로움은 더 커져만 간다. 도대체 왜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미국 MIT 대학 사회심리학자인 셰리 터클은 지금의 현상을 “함께 있지만 따로 있는(Alone Together)” 상태라고 설명한다. 즉 같은 공간에 있긴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스마트폰을 통해 각기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들의 경우 모여서 몸을 부대끼며 노는 것이 아니고 같은 공간에서 스마트폰으로 각자의 게임이나 문자에 몰두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른의 경우 친구들 간의 모임이나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도 조금이라도 지루하다 싶으면 스마트폰을 조용히 꺼내 메시지를 체크하거나 앱을 열어 다른 세계와 접속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셰리 터클 교수에 따르면 이런 접속들과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다른 것이라고 단언한다. 문자를 통한 접속은 언제라도 개인이 불편하다고 느끼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한 실제 대화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제 대화에선 내가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을 때 상대가 어떻게 아파하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통한 문자 소통은 상대의 아픔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를 극심하게 괴롭혀 놓고도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모르기도 한다. 또한 우리의 마음이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온전히 가는 것이 아니고 스마트폰과 연결된 세상으로 쉽게 분산되기 때문에 한 사람과 깊은 교류를 나누는 경험이 갈수록 부족해진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접속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낸 메시지를 체크하거나, 남들이 무엇을 하는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곳을 계속해서 보다 보면 스마트폰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매우 불편하고 심지어 불안하기까지 하다. 나 혼자 가만히 있지 못하니 타인에게 자꾸 의존하게 되고, 그러니 당연히 외로움도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과 관련해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을 만나 여쭤 보았다. 어째서 혼자 있는 시간은 불편해하면서 목소리 통화나 직접 만나는 것은 왜 또 부담스러워하는지 말이다.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그건 연결은 되고 싶지만 상처 받는 것은 싫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면 상생상극의 화학반응이 일어나면서 서로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그런 공감과 성장의 경험을 하려면 반드시 같이 수반되는 불편함과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기 싫으니 상대적으로 안전한 스마트폰 뒤로 숨는 것이다.
결국 현대인들이 느끼는 새로운 고독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스마트폰 밖으로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생기를 느끼며 직접 소통해야 해결될 것 같다. 더불어 스마트폰 없이 혼자 사색하는 기예를 연마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문자 소통을 주로 했던 이들에게 가끔씩은 전화를 걸어 목소리로 이야기해 보자. 언제 한번 보자고 말로만 했던 이에게는 만남의 약속을 실제로 잡아 보자. 또한 가끔은 스마트폰을 완전히 꺼놓고 책을 보거나 명상을 하는 홀로 있는 시간을 만끽해 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혼자 있어도 좋고 사람들과 같이 있어도 좋을 때 우리 마음은 비로소 건강해진다.
혜민 스님 [중앙일보] 입력 201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