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흔든 시 한 줄] 도종환 국회의원·시인

해암도 2015. 7. 2. 07:00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정호승(1950~ )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에서



그늘을 모르는 자여 인생을 알 수 없으리


돌아보면 상처투성이의, 그늘이 많은 인생이었다. 어려선 지독하게 가난했고, 30대 초반 결혼 2년 반 만에 아내는 4개월 된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많이 울면서 시를 썼고, 그때 내가 울면서 쓰지 않는 시는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이어 직장에서 쫓겨났고 감옥에 가야 했다. 40대 후반엔 병이 찾아왔다. 충북 보은군 깊은 산 중 외딴 방에 갇혀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병과, 고독과 싸웠다. 사람들은 모두 나를 가리키며 ‘이제 끝났다’고 했다. 그때 불현듯 이 시가 떠올랐다.

누구든 그늘 없는 사람은 없다. 인생엔 양지만큼 음지, 영광만큼 좌절이 있다. 만약 내가 끝났다면,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 순간 이미 끝났던 것 아닐까?

누구나 햇빛 가득한 양지의 삶을 꿈꾸지만, 햇빛만 기대하다가 사막이 돼버린 땅이 있다. 10대의 가난, 20대의 좌절, 30대의 절망, 40대의 고통. 그 지독한 상처들이 오늘의 나를 지금껏 끌고 온 힘이라며 나를 달래고, 용기를 준 시다.

도종환 국회의원·시인   [중앙일보] 입력 201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