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 - 조오현(1932~ )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지나가고, 부서지며, 깨지고, 써버리기 좋은 게 시간이다. 시간이 줄면 그 의미도 준다. 그리고 갑자기 심리적 절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이 낭떠러지는 공간의 빈곤이 아니라 차라리 시간의 빈곤이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지나가고, 부서지며, 깨지고, 써버리기 좋은 게 시간이다. 시간이 줄면 그 의미도 준다. 그리고 갑자기 심리적 절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이 낭떠러지는 공간의 빈곤이 아니라 차라리 시간의 빈곤이다.
시작보다 의미가 바닥난 끝들이 부쩍 많아지는 것은 노화의 시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시간 빈곤의 징후인데, 이때 심리적 위축도 함께 일어난다. “나아갈 길”이 없고,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허공밖엔 없는 낭떠러지! 시간이 우리를 이 낭떠러지 앞에 데려다 세울 때 우리 안의 무능이 불가결하게 드러난다. <장석주·시인>
[중앙일보] 입력 2015.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