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건축

아프리카에서 있었던 일

해암도 2015. 3. 27. 09:02

 한 번 외도를 하렵니다. 몇 번 ‘시장ㆍ도지사를 만나다’를 썼습니다만, 오늘은 한번 다른 스토리를 풀어놓겠습니다.

 아프리카 앙골라를 아시나요. 2006년 취재차 그곳에 갔습니다. 자원 전쟁과 관련해서입니다만, 현지에서 뜻하지 않았던 얘기를 만났습니다. 한국 건설기업 얘기입니다.

 그보다 한 해 전인 2005년, 앙골라는 연례 행사인 아프리카 석유생산국 석유장관 회의에서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내년에 우리가 개최할 때 번듯한 컨벤션센터를 새로 지어 거기서 회의를 열겠다”고요. 석유 덕에 쌓은 든든한 자금력을 믿었던 겁니다.

 그러곤 컨벤션센터 지어줄 곳을 찾았습니다. 처음엔 포르투갈과 브라질 건설사를 접촉했습니다. 앙골라가 포르투갈 식민지배를 받아서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 건설사까지 많이 들어와 있었기에 그쪽을 만났던 거지요.

 답은 “불가능”이었습니다. 7년은 걸린다고 했습니다. 고개를 돌려 다른 여러나라를 접촉했으나 별무신통이었습니다. 모두 4~5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건설사를 찾는 사이에 한 달이 흘렀습니다. 애가 타는 가운데 중동 출신 석유 고문이 이런 얘기를 했답니다. “내가 1970년대 그들이 중동에서 일하는 걸 봤다. 그들도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안된다면 전 세계 누구도 못한다.”

 석유 고문이 말한 ‘그들’은 ‘코리안’이었습니다. 당장 한국에 접촉했습니다. 한국 기업들도 “2년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때 N사가 뛰어들었습니다. 마침 이 회사는 외환위기 때 기업구조조정(워크아웃)을 받아 해외사업을 모두 정리했다가, 상황이 나아져 다시 해외 진출을 모색하던 차였습니다.

 사업을 수주했습니다. 조건은 달았습니다. 모두 한국 근로자를 쓴다는 거였습니다. 공사는 독특한 방식으로 했습니다. 현지에서 부지를 조성하는 동안 한국에서 거대한 철골 뼈대를 만들어서는 초대형 운반선에 싣고 가 땅에 박아버리는 식이었습니다.

 그렇게 10개월 만에 공사를 끝냈습니다. 건물 안에는 휘황찬란한 한국 정보기술(IT)제품을 설치했습니다. 그게 바로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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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4월 석유장관 회의 때 온 아프리카 국가들은 모두 놀라 뒤집어졌다고 합니다. “1년 전 허허벌판이던 이곳에 이런 컨벤션센터를 세운 게 도대체 누구냐”고들 했습니다. 이미 한국의 발전상을 알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이었습니다만, 그때 한국이란 나라의 이미지가 한층 깊이 심어졌다고 합니다.

 새삼 이런 얘기를 풀어놓는 이유는 최근 중동 건설 스토리가 몇 번 거론돼서입니다. 제 나이 50입니다만, 70년대 제 아버지뻘 되시는 분들이 중동에서 흘린 땀이 30여년 뒤 “내가 봤는데 그들이 못하면 아무도 못한다”는 평가로 되돌아와 한국 기업이 공사를 수주했던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또 30년 뒤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겨줄 수 있을까요?

[J플러스] 입력 2015-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