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은 26일 주주총회를 열고 유상호 현(現) 사장에 대한 재선임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연임으로 유 사장은 국내 증권업계에서 9년째 한 회사 사장을 맡는 최장수 CEO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금융업종 중 특히 부침이 심한 증권업계에서 그는 어떻게 장수 CEO가 될 수 있었을까.
유 사장은 "엄연히 주주가 있는 회사에서 관두고 싶다고 맘대로 관둘 수도, 계속하고 싶다고 계속할 수도 없다"고 했지만, 회사 안팎에선 "실적이 뒷받침 안 됐다면 불가능했을 기록"이라고 말한다. 금융위기와 지난 3년여 최악의 증권 거래 빙하기를 겪으면서도 이 회사 고객자산은 유 사장 취임 첫해인 2007년 63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105조4000억원으로 42조원 이상 늘었다. 당기순이익도 리먼 사태가 터진 2008년 적자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꾸준히 네 자릿수 흑자를 냈다.
- 26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연임이 결정된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성형주 기자
유 사장은 "국내 1등은 확실히 다졌지만 세계로 나가면 아직 보잘것없어 할 일이 많다. 신흥 시장을 개척해 30년 뒤 먹을거리를 만들어주는 게 앞으로 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 초년병 시절부터 꿈이 사장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모든 젊은이의 표상이었고, 나 또한 그랬어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회사에 들어가 사장 한 번 해보자. 이런 꿈을 갖게 됐죠. (유학 후) 대우증권에 들어가서 내가 사장 될 때까지 몇 년 걸릴까 따져봤다니, 직급 체계상 딱 30년 필요하더군요. 그래서 그날로 30년 계획을 짰습니다."
30년 후에 사장이 되려면 1년 뒤, 10년 뒤, 20년 뒤엔 뭘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더란 얘기였다. "대리·과장 때도 임원 수준에서 생각하자, 이런 마음가짐이었어요. 당장 내가 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우리 조직을 위한 일이면 과감히 양보하는 그런 것 말이에요. '쟤는 임원급 대리야' 하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그릇이 큰 사람이다, 재목이다 이런 평가를 얻고, 여기에 실적까지 더해지면 이게 조직 안에서 내 평판이 됩니다. 미생(未生) 시절에도 사장처럼 생각하면 저처럼 진짜 사장이 됩니다."
이후 특진을 거듭한 그는 대우증권 런던법인 부사장을 거쳐 메리츠증권, 동원증권으로 스카우트됐고, 동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통합되면서 대형 증권사 최고 자리에 오르게 됐다.
"사장 자리는 사실 너무 외로워요. 회사 안에서 나와 대등한 위치에서 동료의식을 갖고 대화할 사람이 없거든요. 내 방에 들어온 모든 사람이 나에게서 뭔가를 얻어갈 궁리만 하죠. 퇴근해서 잠자리에 들어도 꿈에서조차 일로 고민해요. 하지만 이 자리에 오래 있으면서 나름대로 스트레스 해소법을 터득해가고 있어요. '이번 여름휴가엔 아내랑 어디로 여행갈까…' 이런 즐거운 상상 말이에요."
그는 아름다운 은퇴를 꿈꾸고 있다고 했지만, 일 얘기를 할 때 가장 목소리가 힘찼다. "급기야 금리 1% 시대가 오고 말았습니다. 확정금리 상품에 묶였던 돈이 이제 드디어 자본시장으로 옮겨올 물꼬가 터지는 시점입니다. 누가 가장 차별화된 상품으로 고객을 잡느냐에 따라 업계 판도가 완전히 뒤바뀔 겁니다. 진짜 제대로 된 싸움은 지금부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