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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와의 대화 - "내가 세상을 떠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헐어버려라."

해암도 2015. 3. 24. 06:13

싱가포르 기적 만든 국부 리콴유 타계…오바마 "비범한 인물" 애도

싱가포르 기적 만든 국부 리콴유 타계…오바마 "비범한 인물" 애도(종합)
▲23일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블룸버그 제공

"내가 세상을 떠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헐어버려라."

23일(현지시각) 새벽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생애 마지막 순간에 남긴 유언이다.

싱가포르의 영자신문 스트레이츠 타임스에 따르면 리 전 총리는 22일 인터뷰에서 “내가 죽거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기념관 같은 국가적 성역으로 만들지 말고 헐어버리라는 말을 가족과 내각에 말해 놓았다”고 했다.

집이 남아있으면 주변 건물들을 높이 올릴 수 없게 돼 이웃들이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남긴 유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웃 주민의 건물 개발을 걱정한 그는 아시아 도약을 이끈 1세대 창업형 지도자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우리나라의 박정희·대만 장제스·중국 덩샤오핑과 함께 아시아의 기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1959년부터 1990년까지 총리직을 맡았다. 총리를 맡았을 당시 그의 나이 불과 35세였다.

리콴유는 1923년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에서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인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하고 사무총장에 올랐다.

그가 독립 싱가포르의 총리로 취임했던 1965년 싱가포르는 부존 자원은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해 이웃 말레이시아에서 사와야 할 정도로 암울했다.

하지만 리콴유는 1965년 국민소득 400달러 수준의 싱가포르를 1990년 퇴임 당시 1만2750달러까지 끌어올려 싱가포르의 전설적인 ‘국부(國父)’로 불려왔다.

현재 싱가포르는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로 불리고 있다. 가난한 어촌 마을이었던 싱가포르를 반세기만에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가 넘는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

하지만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자리잡고 있다. 마약 소지자는 엄벌에 처하고 껌만 뱉어도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격한 통제를 국가경영에 도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기도 했다.

국부를 잃은 싱가포르 국민들은 큰 슬픔에 빠졌다. 싱가포르 총리실은 이날 오전 짧은 성명서를 통해 “리셴룽 총리는 침통한 마음으로 리 초대총리가 오늘 새벽 입원 중이던 싱가포르종합병원에서 향년 91세로 편안하게 세상을 떴음을 전 국민들에게 알려드린다”고 발표했다.

리셴룽 총리는 리콴유 전 총리의 아들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리 전 총리가 “비범한(remarkable) 인물”이었다면서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는 서면 성명에서 "나는 리콴유 전 총리의 타계 소식에 깊은 슬픔을 표한다"면서 자신과 부인 미셸은 리콴유의 가족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마잉주 대만 총통도 이날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에 대한 조전(弔電)을 싱가포르 정부에 전달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유엔 웹사이트에 성명을 게재 “리콴유 전 총리의 가족을 비롯해 싱가포르 국민과 정부에 위로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는 “싱가포르의 국부인 리 전 총리는 지난 30년 간 싱가포르의 총리로서 싱가포르를 개발도상국에서 가장 선진화된 국가 중 하나로 만들었다”면서 “아시아에 가장 큰 영감을 준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전했다.

반 총장은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싱가포르와 유엔의 협력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는 뜻도 표명했다. 
                     
  • 유윤정 기자 입력 : 2015.03.23 

  • 리콴유 공포정치의 시작은 우물 위에 매달렸던 어린시절 경험

  • “사랑받느냐, 두려움을 주느냐 문제에서 나는 항상 마키아벨리가 맞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의미한 존재다.”(리콴유 어록)

    -조선닷컴 3월 23일자


    리콴유(李光耀·91) 싱가포르 초대 총리의 사망 소식을 들으며 2005년 12월 2일 호주 체류중 접했던 한 청년의 죽음을 떠올렸습니다. 그의 이름은 응웬 뚜엉 반(NGUYEN TUONG VAN·25). 베트남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멜버른에 살던 이 청년은 2002년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에서 400g의 헤로인을 반입하다 체포됐습니다. 싱가포르는 마약밀수를 교수형으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싱가포르 법원이 응웬에게 사형을 언도하자 호주 전역에서 사형 집행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와 성명이 잇따랐습니다. 존 하워드 당시 총리가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에게 직접 “사형에 처하지 말고 추방하라”고 탄원했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단호했습니다. 이날 오전, 응웬은 결국 25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날 호주 전역의 교회들은 응웬의 나이와 같은 스물 다섯번의 종을 치는 것으로 청년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베트남 출신 이민자 청년의 죽음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한 호주인들의 노력은 감동스럽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단호한 법 집행도 섣불리 비난하기 힘듭니다. 그 단호함이 말레이반도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작은 어촌마을을 세계 일류 국가로 발돋움시켰으니까요. 싱가포르는 리콴유가 집권하기 전만 해도 게으름과 가난 마약에 빠져 있던 가망없는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국부(國父) 리콴유가 이런 패배적인 분위기를 일신했습니다. 그는 국민에게 엄격한 절도를 요구했습니다. 특히 마약에는 무관용을 넘어 걸리면 죽이는 공포의 통치술을 펼쳤습니다. 아마도 리콴유 집안이 아편의 폐해를 크게 겪은 중국 광둥성(廣東省) 출신 화교란 점이 작용한 듯 합니다.

    리콴유의 통치에서 공포(恐怖)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마약 밀매자를 교수형에 처하고 거리에서 껌을 뱉은 이에게 태형을 가한 공포정치의 발단을 그의 개인적 경험에서 찾을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로션을 몰래 훔쳐 발랐다가 아버지에게 두 귀를 잡힌 상태로 우물 입구에서 허우적대는 공포를 체험했습니다. 청년 시절엔 영국을 몰아내고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이 무자비한 교수형으로 싱가포르인을 길들이는 것도 지켜봤습니다.

    리콴유는 단지 무섭다고만 생각하지 않고 훗날 조국을 부유한 나라로 도약시키는데 이 공포를 활용했습니다. 심지어 "나는 국가를 다스리고 사람을 지배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하게 됐다"고까지 했습니다. 또한 “정부의 절대적 필요성을 깨달은 시기”라고 회고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정부는 민주적 정체(政體)라기보다는 효율적인 통치를 위한 시스템에 가깝습니다.
    
	리콴유와의 대화
    리콴유와의 대화
    리콴유는 톰 플레이트 전 LA타임스 논설실장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리콴유와의 대화’(RHK)에서 공포의 효용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어릴 적 당시 고가(高價)였던 ‘4711’이라는 로션에 손을 댔던 날, 아버지는 내 두 귀를 잡고 우물 위로 번쩍 들어올렸습니다. 그날의 공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네다섯살 때 일인데도 아직 생생하게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59쪽)

    “일본 식민 치하에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마오쩌둥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을 듣기 훨씬 전에 나는 권력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영국이 이 나라를 다스리고, 이후 일본군이 총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국가를 다스리고 사람들을 지배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은)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들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72~73쪽)

    리콴유는 “국민은 자유보다 빵을 원한다”는 신념을 가진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추구한 극단적인 효율과 질서가 이룩한 눈부신 결과. 그것이 지금의 싱가포르입니다. 그러나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는 뼈아픈 사실을 리콴유는 생전에 경험하게 됩니다. 2011년 5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치러진 3번의 선거에서 리콴유의 아들 리셴룽이 이끄는 싱가포르 여당은 사실상 패배했습니다. 갤럽이 2012년 148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도 조사에서 싱가포르는 꼴찌를 했습니다.

    리콴유도 생전에 이 변화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톰 플레이트와의 대화에서 “향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나는 현재의 시스템이 최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75쪽)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포스트 리콴유’ 시대의 싱가포르는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디지털뉴스본부 차장
    디지털뉴스본부 차장
  • 김태훈 기자  조선  입력: 2015.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