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동섭 교수는 “1990년대 초반까지는 췌장암 수술 후 30일 이내에 사망하는 비율이 20~30%에 달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술 기법이 발달해 우리 병원에서 2002년부터 현재까지 수술 후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여자 친구들은 제가 외과의사가 됐다고 하면 깜짝 놀랍니다. 어려서부터 순해서 잘 울기도 했던 제가 의사 중에서도 외과의사가 됐으니 말이죠.(웃음)”윤동섭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는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응급 상황이 많은 병원은 어느 직업 현장보다도 군기(?)가 거센 것으로 유명한데, 후배 의사들에게 무서운 얼굴을 하는 윤교수의 모습이 상상이 안 갔다.
“안 그래도 제가 병원 내에서
학생들이 어려워하지 않는 교수로 통 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 중 하나가 ‘부드러운 카리스마’인데 환자를 보는 원칙은 철저해야 하지만, 저와
일하는 사람들이 제게 의견을 내거나 저와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데엔 어려움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췌장암은 다른 암에 비해 수술 후 생존율이 현저히 낮고, 재발률이 높아 외과 수술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5년 생존율은10대
암 중 가장 낮다. 5년 생존율이란 암 확정 진단이나 수술 뒤 5년후까지 생존해 있는 비율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5년 동안 암이 재발하지
않는다면 그 암으로부터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이토록 어려운 분야인 췌장암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 병원이나
다른 큰 병원에도 위암 수술 전문의는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위암 환자도 많기 때문에 치료법이 정례화돼 있어 치료 성적도 상당히 좋았고요.
제가 분야를 선택할 당시엔 췌장암 환자가 많지 않았고 췌장암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많지 않았습니다. 수술 자체도 어렵고
예후(豫後)도 좋지 않았죠. 저는 젊은 마음에 남들이 다 잘 치료하는 분야 말고 치료가 어려운 분야에 도전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윤 교수는 당시 간담췌(간·담도·췌장)질환을 전공하는 지훈상연세대 의과대학 외과학교실 교수실에 들어가 간담췌를 깊이
연구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췌장암 명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세계적인 췌장암 전문의인 닥터 에발스를 만나기 위해 미국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센터로 연수를 가기도 했다. 윤 교수는 MD 앤더슨에서 암이 진행되는 방식에 대해 연구하고, 매주 열리는 췌장암 관련 컨퍼런스에서 한국과 다른
치료법을 접했다.
“국소적인 암에서 절제가 가능함에도 방사선 치료를 먼저 하고 수술을 하더라고요. 수술을 하고 방사선 치료를 하는 것과 방사선 치료 후 수술을 하는 것의 결과가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현재는 한국에서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윤 교수는 “췌장암은 아직까진
조기 검진의 유용성(有用性)이 높지 않은 암 중의 하나지만 정기 검진을 통해 미리 예방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지난 2011년
국내 최초로 로봇을 이용한 ‘췌두십이지장 절제술’을 성공시켜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췌두십이지 장절제술이란 췌장의 머리 부분과 이에
접하는 십이지장을 절제한 뒤, 남은 담도(膽道)와 췌장, 위를 소장과 연결하는 수술법이다. 윤 교수는 “로봇 수술의 장점은 시야가 굉장히
확대된다는 점”이라며 “어시스턴트가 수술 부위를 잡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집도의가 원하는대로 조정하기가 쉽지 않은 반면, 로봇 팔은 몇 시간이
지나도 처음자세를 유지해준다”고 설명했다.
환자와 함께 울고 소통하는 의사
수술이 잘 되면 재발률이 낮은 다른 암과는 달리 췌장암은 상황이 좋다가
급반전되기도 한다.
“가끔은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생기기도 하는것 같아요. 아이가 두 명 있는 40대 초반
여성분이었는데 6시간에 걸친 수술을 했고 결과도 좋았습니다. 췌장 머리 부분에만 국한된 수술로 수술 후 회복도 굉장히 잘 된 편이었어요. 추적
관찰을 했는데 1년조금 더 지나고 재발을 하더라고요. 항암 치료도 열심히 하셨는데 2년 조금 넘게 사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췌장암의 예후가
나쁜 이유는 암 세포가 자라는 속도가 빨라 주변조직과 혈관, 림프절까지 침범하기 쉽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이 환자분이 퇴원하면서 ‘큰 수술을
하고 보니 일상적인 삶이 너무나 큰 행복으로 느껴진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 주셨는데 기대만큼 오래 사시지 못해서 너무나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윤 교수는 지난 2001년부터 사비(私費)를 들여 개인 홈페이지 (www.pancreassurgery.org)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홈페이지를 만든 이유는 대학병원에 오기 힘든 소외된 이웃들이나 진료를 받은 환자들이 간담췌질환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부분을 해소해주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질문 내용이 ‘술을 많이 마셔도 되나요?’와 같은 내용들이었지만, 최근에는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질문들도 많아졌어요. 바쁜 일과 중에도 가능하면 24시간 내에 답하려고 노력하죠. 제가 가슴아픈 것 중 하나가 악성 바이러스성 광고 때문에 2001년부터 상담했던 글 2000~3000건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는 겁니다.”
윤 교수는 홈페이지 재단장을 준비 중이다. 65세에 정년퇴임을 하고 나면 상담을 좀
더 열심히 할 계획이다.
“아시다시피 외과의사의 하루는 항상 짜인 틀 속에서 힘들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돌아갑니다. 의사는
환자 상태가 악화되는 게 가장 마음이 안타깝고 스트레스 받는 일인데, 이렇게 힘들다가도 수술 후 5년, 10년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
환자분들이 병원에 오시면 엔돌핀이 ‘확’ 솟아납니다. 수술 후 10년이 지난 것을 축하하면서 환자분과 기념사진 촬영도
하죠.(웃음)”
스트레스를 받는 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 모두 ‘환자’와 연관돼 있는 윤 교수는 천생(天生) 외과의사로서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같았다.
“의사로서 나이가 들면 점점 더 일의 강도를 줄여가는 게 일반적인데, 저는 힘이 닿는 한 환자들을 치료하고
싶어요.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상담 업무에 전념해야죠. 지금도 하고 있는 건데 제 전문 분야에 대한 한국소비자원 상담이라든지, 홈페이지 상담을
더욱 활발히할 생각입니다.”
췌담도암 의심 증상
* 체중이 갑자기 줄고 황달이 나타난다.
* 복부·허리 등에 통증이 있다.
* 통증으로 똑바로 눕기 힘들다.
* 위·대장
내시경 검사에서 이상이 없는데 복통이 계속된다.
* 식욕이 없고 식사량이 준다.
* 식후 통증, 구토, 오심(惡心·가슴 속이 불쾌하고
울렁거리며 구역질이 나면서도 토하지 못하고 신물이 올라오는 증상) 등의 증상이 있다.
* 당뇨병이 새로 발생하거나 기존의 당뇨병이
악화된다.
1961년생. 87년 연세대 의학과 졸. 96년 연세대 의학석사, 2003년 고려대 의학박사,~현재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의사, 췌담도암클리닉 팀장, 연세대 의과대의학과 일반외과학교실 교수.
/이코노미 조선
백예리 기자 byr@chosun.com 입력 : 201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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