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여행박사의 신창연(50) 대표 - '펀(fun) 경영'으로 불황에도 매출 쑥쑥

해암도 2013. 4. 11. 11:34

 

투표로 팀장 뽑고, 성형수술비 지원, 1년내 골프 100打 이내 치면 1000만원… 김정훈 기자

[10위권 여행업체로 성장… '여행박사'의 유쾌한 반란]

- 덜 벌어도 재미있게
팀장 이상은 매년 신임 투표, 찬성·반대 이유까지 공개
복장 규제·사장 결재 없고 78세 경비 아저씨도 정규직

- 책임은 확실하게
팀별 독립채산제 작년 도입… 일정액 이상은 모두 직원 몫
사내 통신망에 익명 게시판, 실명 비판까지 무제한 허용

모두가 불황이라고 아우성인데 최고 실적을 갈아치우는 회사가 있다. 경기에 민감하고, 경쟁이 치열한 여행업에서 사장부터 직원까지 "제일 중요한 것은 재미"라고 외치지만, 저가 여행 상품을 팔면서도 1인당 영업이익은 업계 수위를 달리는 이상한 회사가 있다.

주인공은 자본금 250만원, 직원 3명으로 시작한 여행업계의 신데렐라 '여행박사'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600억원을 기록하더니 올해 1분기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성장한 매출 550억원을 올렸다. 이 회사는 지난 2009년 파산했다. 하지만 사장과 직원들이 힘을 합쳐 6개월 만에 재기해 3년 만에 파산 전 최고 매출 수준을 회복했다.

사장을 포함한 모든 자리를 직원 투표로 뽑고, 골프를 시작한 직원이 1년 내에 100타를 깨면 1000만원을 주며, 78세 경비 아저씨도 모두 정규직인 회사. 한국판 '펀(fun) 경영'의 대명사로 등장한 여행박사의 신창연(50) 대표는 불황 돌파와 창의성에 목마른 한국 기업에 작지만 중요한 힌트를 주고 있다. 직원들의 사기와 만족도를 최고로 끌어올리니 창의성을 발휘하고, 불황에도 똘똘 뭉쳐 난관을 돌파하고 있다.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 톰 피터스가 "이제 엄숙한 CEO는 기업을 이끌어갈 수 없다"고 한 조언을 여행박사는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장님, 원래 이상해요"

지난 15일 서울 갈월동의 여행박사 본사가 있는 7층짜리 건물. 사장실이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명패 하나 없이 빈 박스와 서류만 구석에 잔뜩 쌓여 있다. 사장이 안에 있으면 '회의중' 팻말이 걸리고, 아니면 그냥 아무나 들어와서 사용하는 방이다. 2주일 만에 사장이 회사에 왔다는데, 사장을 아는 척하는 직원도 드물고 혹시라도 사장을 쳐다봐도 씨익 웃고 말뿐이다. 신창연 대표에게 회사가 너무 막 나가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옆에 앉아 있던 직원이 "우리 사장님, 원래 이상해요"라고 끼어든다.

청바지에 1만5000원짜리 황토색 머플러를 맨 신창연 대표. 그는 “나는 넥타이 죽어도 못 맨다. 아침에 일찍 출근할 자신도 없어서 직원들 출퇴근 시간도 알아서 하게 한다. ‘직원들을 믿어서’라는 건 사실 언론용 멘트이고, 내가 편하니까 직원들에게 자율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이 회사는 매년 11월 전 직원이 부모와 함께 해외 워크숍을 간다. 워크숍에 가기 전에 팀장 신임 투표를 한다. 연임에 반대하는 이유와 찬성하는 이유도 무기명으로 적게 한다. 찬반 이유는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모조리 공개된다. 신 대표는 "위에서 팀장을 정해주면 함께 일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한다. 멋대로 뽑아보라고 했다.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팀장을 뽑으면 적어도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그도 신임 투표 대상이다. 지난해 말 93%의 지지를 얻어 재신임을 받았다. 물론 '쇼 하지 마라', '가서 좀 쉬어라'는 이유의 반대표도 나왔다.

골프에 입문한 1년 안에 100타(남자), 120타(여자) 이하를 치면 1000만원 포상, 10㎞ 마라톤 대회 47분(남자), 57분(여자)으로 기록을 끊으면 100만원 포상, 1년 100만원 한도로 성형수술비 50% 지원…. 다른 회사에서 보기 힘든 복지 혜택들이 있다. 왜냐고 물으니 그는 "그런 거 없는 회사가 돈은 더 많이 벌겠지만, 근데 일단 재미있잖아요"라고 했다. 작년 12월 여행박사는 KT 등 대기업들과 함께 '즐거운 직장, 행복한 기업' 문화부 장관상을 받았다.

"하지만 책임은 져라"

재미만 있다고 회사가 굴러 갈까. 그가 만들어 놓은 몇 가지 시스템이 있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한 팀별 독립채산제. 팀별로 일정 금액을 회사에 세금 조로 내면 나머지 수익은 팀원들에게 돌아가는 제도다. 마치 택시회사에서 사납금을 받는 형식이다. 예를 들어 부산지점의 올해 사납 목표는 6억원. 이제 4월인데 벌써 부산지점의 이익은 7억원을 넘었다. 직원들이 알아서 뛰는 것이다.

'게시판 문화'도 있다. 그가 회사에 출근해서 하는 일은 회사 인트라넷 익명 게시판에 답글을 다는 일이다. 이 게시판에는 '○○팀장이 일하지 않고 야근수당 챙긴다는 소문이 있다'는 등의 실명 비판이 익명으로 올라온다. 사원 200명이 이 게시판에 뜬 글을 제한 없이 본다. 그는 "건강한 감시다. 술자리에서 하는 뒷담화는 회사에 반영이 안 되는데, 여기에 띄우면 바로바로 반영이 된다. 직원들이 불평불만을 달면 내가 100% 답을 단다"고 말했다.

온라인 교육 전문 기업 휴넷의 안병민 이사는 "딱딱하게 명문화된 규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생적으로 생겨난 문화적인 규율이 회사를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망하면 어떤가, 전사하면 그뿐"

경북 문경이 고향인 그는 17세 때 상경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경원대 관광경영학과를 들어갔다. "놀면서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싶어서다. 1991년 대학 졸업 후 한 여행사에 취직해 10년간 일한 뒤, 2000년 여행박사를 만들었다. 창립 이듬해 23억원이던 매출은 2007년에 1200억원으로 급증했으나, T사와 인수·합병 후 상장한 이후 모기업인 T사 경영진의 불법 대출과 주가조작으로 8개월 만에 상장 폐지됐고, 파산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여행박사는 사장과 직원들이 연봉 1원을 받으며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씩 내놓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 몸부림친 끝에 6개월 만에 재기했다. 여행박사는 토요일 새벽에 출발해 월요일 새벽에 들어오는 '일본 올빼미여행' 등으로 '대박'을 치며 현재 일본 자유여행 분야를 꽉 잡고 있다.

그는 지난주 한 직원에게서 "10년 뒤 여행박사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받고 "모르겠다"고 답했다고 했다. 그는 "여행박사가 사라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전사하면 그뿐이다. 노키아가 휘청거리고 있다지만, 반면에 노키아 출신들이 만든 벤처기업들이 수없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여행박사가 망하더라도 우리 직원들이 나가서 여러 가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우리 와이프에게 출산의 고통을 주지 않고 직원 200명 낳고 키우는 것"이라고 답했다. 인터뷰를 마친 몇 시간 뒤 그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여행박사 정년 없습니다. 비정규직 없습니다. 78세 경비 아저씨도 정규직입니다. 이력서에 학벌이나 출신지 없습니다. 다른 기업도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펀(fun) 경영

1990년대 초 미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직원들에게 유머 훈련을 받게 해 직장 분위기를 밝게 만들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구성원이 즐겁게 일하면 자발적인 참여와 헌신을 이끌어낼 수 있고 생산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펀 경영을 실천하는 대표 기업이 사우스웨스트항공이다. 싼 항공료를 받지만 조종사와 직원들이 탑승객들에게 농담을 던지며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면서도, 정시 운항의 규율은 꼭 지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선풍기로 명단을 날려 간부 직원을 선정하는 괴짜 대표가 운영하지만, 오후 4시 45분 칼퇴근이라는 직원 행복 정책을 펼치는 일본의 미라이공업사도 펀 경영의 대명사다.

 

조선 : 2013.04.10